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5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59화(259/353)
☆ 제259화 ☆
살짝 가늘어진 눈가.
나긋하게 부드러워진 입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는 라일락처럼 짙은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머리카락에 감각이 없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
그게 진짜라면 시드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게 이렇게까지 떨릴 리 없잖아.
나는 괜히 시선을 돌리다가 흠칫 놀랐다.
가족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
익시온은 당장이라도 시드의 뒤통수를 깰 거 같았고, 미소 짓는 아레스의 얼굴 위로는 심연과도 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표정하던 제온의 얼굴에는 살기가 감돌았고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당장 시드를 후드려 팰 거 같았다.
아빠는一.
‘안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기서 가족들이 별궁까지 부수면 그땐 정말 수습할 수 없다구!’
내가 기겁하며 시드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풋……!”
사람들 사이에서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질투심을 위해 이용?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푸흡!”
“성녀님께선 소설을 너무 많이 보셨나 봐?”
“와,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나 보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저 말을 듣고一
‘아, 리리엘이 두 사람 사이를 도와주려고 자길 이용하라고 했구나!’
一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와, 내가 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자신만만하게 자길 이용하라고 치명적인 척했을 거 아냐. 어떡해…….”
“그렇게 치명적인 척한 후에 급이 안 맞아서 안 되겠다는 말이나 듣고.”
“솔직히 그런 말 들어도 싸.”
키득키득.
‘저 하찮은 버러지들이……!’
리리엘은 이를 악물었다.
그냥 여기서 다 쓸어버릴까?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왜 성녀인지도 모르겠다니까? 뭐, 사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있으니 신전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녀라면 기본적인 몸가짐을 바로 해야지.”
성녀가 그 존재만으로 존경받는 것은 비단 특별한 능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의 딸이라는 말에 걸맞는 자세 역시 사람들의 동경을 사는 요소였다.
그런데 리리엘은 어느 영애가 했어도 입방아에 오르내릴 짓을 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성녀 예하께 이 무슨 무례한 말이오!”
신관들을 비롯해서 신실한 성도인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했지만, 사람들의 조소를 막을 순 없었다.
“어마나, 리리.”
루아티샤가 생긋 웃으며 리리엘을 손을 잡았다.
“나와 시드 사이를 도와주려고 그런 제안을 했구나. 마음은 정말 고마워.”
루아티샤가 괜히 이렇게 말할 리 없다.
그걸 아는 리리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데 급이 안 맞다니. 아이참, 시드도. 얘가 너무 솔직해서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
“네가 시드에게 알짱거려도 난 열심히 질투해볼 테니까. 속상해하지 말기?”
루아티샤가 눈을 찡긋했다.
‘이 쳐 죽일 년이!’
리리엘의 눈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자신을 우습게 보고 이런 놀림거리로 삼다니!
더 짜증 나는 건 루아티샤가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아프타네스의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두고 봐.’
지금 이 여유가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종래에는 자신의 발밑에서 벌레처럼 땅을 기며 애원하게 되도록.
두 눈앞에서 저토록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과 시드리한을 죽이고 또 죽여줄 것이다.
그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한 다음엔一.
‘네년을 아흔아홉 갈래로 찢어주겠어.’
그래, 그 저주받을 아프타네스처럼.
리리엘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 * *
“아르델라와 아퀼렘 거래를 성사시키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주변의 도움이 컸죠.”
“그게 도움만으로 되는 일입니까. 안수르의 상단주가 공녀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놀라웠지만, 공녀님께서는 항상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시는군요.”
“과찬이세요.”
내가 미소 지으며 적당히 응대하는 순간이었다.
시드가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은근히 감쌌다.
‘뭐지?’
시드를 올려다봤지만,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에게 말을 건 상대를 뚫어지라 바라볼 뿐.
문제는一.
‘……너무 가까운데.’
그것도 여름이라 시드가 입고 있는 옷은 얇았다.
‘엄청 단단해. 다 근육인가?’
내가 변태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시드가 먼저 나를 끌어당겼고, 그러느라 내 손에 시드의 몸 닿아서 느껴지는 걸 어떡해.
내 손에 감각 신경이 있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가 일부러 만지는 거 아니야.
절대 내가 궁금해서 주물럭거리는 게 아니다.
그때, 내 손바닥에 닿은 복근이 꿈틀거렸다.
탄력이 있는 정도로 살짝 부드러운 상태였던 근육이 움찔 떨리더니 힘이 바짝 들어가 더 단단해졌다.
‘오, 이제는 손가락으로 눌러도 안 들어가.’
신기하다.
울룩불룩한 굴곡이 재밌어서 나는 그 굴곡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윽…….”
별안간 귓가에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꼭 숨을 참는 것 같은…….
그리고 나와 딱 붙어있던 시드의 몸이 살짝 떨렸다.
“시드?”
어디 아픈가 싶어서 쳐다보는데 그는 내 반대편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그의 목덜미가 새빨갰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시드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
나는 순진한 로판 영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드는 섭렵하지 못한 온갖 것(?)을 섭렵한 로판 독자였다.
이건 〈5000골드만 주면 키스해주는 공작〉에서 많이 나온 장면과 비슷한 것이…….
내 시야에 아직도 시드의 복근을 쭈물쭈물하고 있는 내 손이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시드에게서 두 손을 뗐다.
“미안.”
시드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눈가를 가린 손을 슬쩍 내린 그가 여전히 붉은 얼굴로 말했다.
한쪽만 드러난 보랏빛 눈동자가 촉촉했다.
“……미안할 거 없어.”
아니, 진짜 미안해지네.
이렇게 순진한 애를 두고 몸을 쪼몰락거렸다니.
‘근데 나는 진짜로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구.’
[정말이에요?] [되게 현란하게 더듬던데.]‘아씨, 진짜! 그런 적 없거든?!’
나는 민망함에 괜히 주변을 살폈다.
“어? 아까 얘기하던 그 사람은?”
“아까 갔어.”
“서, 설마 내…… 어, 행동을 보고?”
‘뭐야, 이 변태는?’ 하면서 질색해서 사라진 건 아니겠지?
쪽팔림에 가슴이 싸해졌다.
“그 전에 갔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말하던 중간에 왜 갔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고개를 갸웃하는데 뒤늦게 떠올랐다.
내가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신경 쓰는 동안 시드의 눈빛에 쫄아서 뒷걸음질 치다 도망치던 모습이.
“일부러 그런 거지. 왜 그랬어?”
내 질문에 시드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내가 계속 바라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검은 머리잖아.”
“검은 머리? 그게 대체 무슨 상관一 아!”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흑발 파파?’
그간 은근슬쩍 내 주변을 경계하며 묘하게 훼방 놓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 흑발 파파를 찾고 있는 거였어?!’
다시 돌이켜보니 시드는 내게 다가오는 흑발남의 생김새와 나이조차 가리지 않고 날을 세우곤 했다.
기가 막혀서 쳐다보니 시드가 불퉁하게 변명했다.
“안 그래도 주인님은 흑발에 약하잖아.”
“내가 언제?”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흑발남한테 유독 약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제온이 뭘 졸라도 들어주고. 아레스가 웃으면 바로 풀어지고, 익시온이 심통 부리면 다 져주잖아. 거기에 파에라톤 공작이一.”
“그건 가족이니까 그렇지!”
기가 막혔다.
시드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가족 외에 다른 사람한테 그런 적 있어?”
“아까 그 흑발 놈팡이한테도 경계심이 없었잖아.”
허.
아니 다가와서 대놓고 칭찬하고 있는데 뭘 경계해.
나는 물끄러미 시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질투 나?”
시드는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끄덕.
“그 흑발 파파가 신경 쓰여?”
“내가 더 좋은 아빠가 되어줄 수 있어.”
심통 난 시드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시드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한가지씩 알아가는 게 너무 설레고 즐거웠다.
언제는 질투 난다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해서 오히려 내가 더 두근거렸는데.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진짜 많이 신경 쓰였구나.
“바보야.”
나는 시드의 팔을 끌어당겼다.
심통이 난 상황에서도 시드는 내가 이끄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발꿈치를 살짝 들었다.
톡.
이마가 맞닿았다.
“그거 너야.”
시드의 눈동자가 훅 커졌다.
아직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표정에 나는 푸스스 웃었다.
“너라구, 바보一 꺅?!”
그 순간, 시드가 내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연회장을 장식하고 있던 휘장이 그의 성마른 손짓에 내려앉고一.
입술이 닿았다.
나는 놀라 크게 뜬 눈을 감고 시드의 목에 팔을 둘렀다.
우리의 모습을 가린 휘장이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 * *
황제는 가족들과 독대한 후, 곧바로 나를 불렀다.
시드는 나와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혼자 내실로 들어갔다.
황제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참 말없이 술을 들이키던 그가 내게 물었다.
“아르델라와 아퀼렘 거래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여기서 아니라고 발뺌해봤자 황제는 믿지 않을 터.
“네, 폐하. 황후 폐하께서 서부 토호 세력과 접촉해 가격을 올리라는 충동질을 한다는 정보를 듣고 아르델라와 접선한 것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리 말씀 안 드린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정보를 들었다며 폐하께 미주알고주알 고할 순 없었어요.”
황제는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한참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당히 그 눈을 마주 보았다.
“하. 루아티샤, 네가 짐의 딸 이었으면 네가 다섯 살 때 이미 후계 자리에 올렸을 거다.”
“어머? 감사한 말씀인데 그 말씀은 우리 아빠 앞에서 하시지 않는 게 좋겠어요.”
딱딱하게 굳어있던 황제의 얼굴이 풀렸다.
피식 웃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짐에게도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을 치웠다.
“안색이 안 좋습니다, 폐하.”
“……폐후도 쉬운 일이 아니야. 그 끝이 사형이라면 더더욱.”
그래, 그걸 아니까 내가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거 아니겠어?
아이젤 영애의 몫과 시드의 몫, 죽은 황녀의 몫을 다 받아내도록.
“왜 아무 말이 없지? 분명 짐에게 충언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폐하께서는 이미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실지 알고 계십니다. 제가 굳이 재촉해서 짐을 지워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나는 물을 글라스 가득 따른 후, 황제의 앞에 놓았다.
“제가 지금 원하는 건 폐하께서 옥체를 챙기시는 것뿐입니다.”
“…….”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내실을 나왔다.
* * *
탁.
문이 닫히자마자 뒤에 서 있던 체시아 백작이 앞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루아티샤의 함정은 아닌 모양이야. 가격을 올린다는 정보를 들었으면 다른 곳과 거래를 뚫는 게 현명하지.”
“예, 폐하.”
체시아 백작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단순히 다른 곳과 거래를 뚫은 게 아니라, 비아트랑제에서 폭로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해 온 것 같은데.’
증거도 일부러 인장을 쓰게 한 게 틀림없다.
이미 황후는 예전에 같은 짓을 저질렀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인장을 빼앗는다고 해서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 딱 타이밍 좋게 아이젤 영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다니…….’
황궁 다섯 곳에 방어진이 파훼된 건물이 나왔다.
다섯 개의 건물을 이으면 오망성이 그려졌다.
명백한 사술의 흔적.
이는 제국은 물론 인류의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였다.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판을 짰군.’
훌륭하다.
하지만 체시아 백작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루아티샤와 같은 배를 탄 지 오래였으니까.
“그래도 어릴 때부터 봐왔다고 날 챙겨주는 건 그 아이밖에 없어.”
물잔을 마시며 미소 짓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일 뿐.
‘그런데 괜찮을까?’
다만 걱정되는 건.
‘파에라톤 공작이 시드리한 황자를 죽일 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