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0화(260/353)
☆ 제260화 ☆
* * *
“아빠랑 할아버지랑 오빠들은?”
“공작님께선 서재에, 후작님께선 정원에, 제온 도련님은 침실, 아레스 도련님과 익시온 도련님은 개인 연무장에 계십니다.”
안나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도와주세요. 공작 각하랑 도련님들 때문에 숨도 못 쉬겠어요.”
낸시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매달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푸딩으로 당분 섭취도 끝냈으니 이제 가족들을 달랠 시간이었다.
* * *
서재 문을 열자마자 시꺼멓고 우중충한 기운이 훅 나를 덮쳤다.
‘깜짝아!’
아빠가 마기라도 쓰고 있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나 기분이 별로면 사람에게서 저런 기운이 내뿜어져 나오는 거지?’
아빠는 서가에 비스듬히 기댄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책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저건 절대 읽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책이 식은땀과 눈물을 뚝뚝 흘리는 환영이 보이는 것이…….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빠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 에르켈 자작과 하인츠(공작 저의 수석 집사)마저 구석에 찌그러진 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에르켈 자작이 내게 필사적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살려주세요, 아가씨!’
나는 엄지를 척 치켜들며 눈을 찡긋했다.
‘나만 믿어!’
“아빠!”
아빠가 움찔하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내가 서재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척을 눈치챘을 텐데, 나한테 삐져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계셨던 게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넘실거리던 살기가 가라앉았다.
‘하여간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라니까.’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빠, 시드한테 왜 그래?”
“……!”
뒤에 서 있던 에르켈 자작과 하인츠가 소리 없이 절규했다.
살려달라고 했더니 왜 목을 조르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에게 재차 물었다.
“왜 이렇게 안착해?”
내 질문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쉬이 동요하지 않는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후후, 그야 당연히 충격이겠지.’
남친 생겼다고 지금 죽고 못 살던 아빠한테 바락바락 따지는 건가.
딸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 등등.
‘……응?’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나를 원망하긴커녕 붉은 눈동자에 슬픔이 가득 차오르더니, 이내 누군가에 대한 살의로一.
‘히익!’
나는 서둘러 외쳤다.
“내 심장에 안착!”
광포하게 휘몰아치던 살의가 한순간에 꺼진 촛불처럼 가라앉았다.
아빠가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루루 심장에는 아빠밖에 없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아빠가 자꾸만 루루 심장에 안착하니까!”
나는 히히 웃으며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빠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내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쓸었다.
“놀랐잖아.”
“왜 놀라요. 내가 아빠한테 뭐라 할 리가 없잖아. 아빠가 지금 당장 반역을 꾀하겠다고 해도 뭐라 안 해.”
“…….”
“루루 심장에는 이미 아빠가 안착해 버렸으니까.”
아빠가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꾹 눌렀다.
“그러면 내 딸에게는 그 누구보다 아빠가 먼저인가?”
“당연하지!”
“그 놈팡이보다 더?”
아니, 유치하게.
하지만 내게는 그 말을 하지 않을 눈치가 있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활짝 웃으며 외쳤다.
“당연히 아빠가 루루의 첫 번 째지요!”
아빠의 입꼬리가 오만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물었다.
“들었나?”
“역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막내 아가씨의 첫 번째는 오직 각하뿐이십니다!”
“이렇게나 한결같이 따님의 사랑을 받다니! 이런 아버지는 세상에 각하뿐이실 겁니다!”
에르켈 자작과 하인츠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에르켈 자작의 눈가가 촉촉한 것이, 아무래도 생존에 대한 기쁨으로 눈물이 난 모양이었다.
‘대체 아빠가 얼마나 살기를 내뿜고 있었던 거야.’
유난이다 싶어서 웃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뭉클하기도 하고.
나는 아빠의 옷자락을 죽죽 잡아당겼다.
“아빠는요?”
아빠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의 첫 번째는 나예요?”
“…….”
장난 같은 질문이었는데 아빠의 입가에서 미소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어지러이 휘몰아쳤다.
기쁨과 환희, 행복.
그러나 그 속에는 슬픔과 고통, 후회 같은 것들도 함께였다.
너무 사랑하면 오히려 고통스럽다는 말.
나는 그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지만一.
“……네가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마음에 내려앉았다.
“넌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였다.”
一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을 보면 알 거 같아.
“뭐야.”
나는 괜히 바닥을 내려다보며
발로 땅을 툭 찼다.
“어렸을 때랑 변함이 없구나. 부끄러우면 꼭 그러지.”
아빠가 픽 웃으며 내 뺨을 문질렀다.
나도 모르는 내 습관을 아빠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빠 품에 푹 안겼다.
* * *
나는 코를 문지르며 서재를 나왔다.
‘아빠 달래러 갔다가 예상외의 가족 힐링물을 찍고 나왔네.’
그러나 파에라톤 공작저의 평화를 위한 내 행보는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곧장 정원에 있는 할아버지에게로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등나무 벤치에 앉아 어쩐지 삶을 회고하는 듯한 시선으로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나와 엄마의 머리칼과 똑 닮은 분홍빛 꽃이었다.
“할부지, 루루는 떠나요.”
조용히 말하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결국 그 놈팡이 놈과 떠난다는 게냐! 이나이스처럼? 루루, 너는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다!”
아니, 엄마.
설마 내 나이 때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했던 거예요?
내가 할부지여도 반대했다!
“어쩜 지 애미를 닮아도 이런 구석까지 똑같아! 어찌 이래 할아비 속을 썩여!”
트라우마가 자극된 건지 할아버지가 가슴을 치며 나를 끌어안았다.
‘이게 아닌데…….’
“절대 안 된다는 건 아니다. 아니, 절대 안 되지만……. 아무튼 절대 안 된다는 건 아니다.”
할아버지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너무 반대하다가 손녀조차 잃을까 봐 갈등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루루는 이만 떠나요. 좋아하는 신의 품에 귀의하기로 했어요.”
우뚝.
떨리는 손으로 나를 쓰다듬던 할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신의 품? 갑자기?”
“엄청 좋아하는 신이라서요.”
할아버지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눈을 찡긋했다.
“바로 당신.”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벌어졌다.
“루루는 엄청 좋아하는 할부지 품에 귀의해서 평생 살 거예요!”
에잇.
나는 할아버지를 와락 끌어안았다.
평생 살 거라는 멘트는 계산에 없었는데.
아빠랑 평생 살기로 하지 않았냐며 울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좀 걱정됐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줄 거야!’
“원, 녀석도. 할아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래그래. 이 할아비랑 함께 평생 오순도순 살자꾸나.”
“응!”
“휴양지에 있는 성과 섬을 또 잔뜩 사들여야겠구나! 일 년마다 성을 바꾸는 것보단 계절마다 바꾸는 게 좋겠지!”
예?
조금 떨떠름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이제 할아버지는 잘 달랬고 그 다음 차례였다.
* * *
제온은 소파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세상만사가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한 자세.
하지만 그의 품에는 분홍빛 햄찌 인형이 토실한 뺨이 눌린 채 안겨있었다.
그때였다.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제온의 눈이 반짝 떠졌다.
‘막내다.’
초점이 맞지 않았던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것 같은 발걸음.
이런 사랑스러운 기척은 막내밖에 없었다.
제온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까워졌던 발걸음 소리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저편으로 멀어졌다.
반짝였던 제온의 눈빛이 시무룩해졌다.
“…….”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가 먼저 와주기를 바랐지만, 지금 이 순간 막내의 얼굴을 못 보는 게 더 슬펐다.
문을 열고 나가자 저 멀리 막내의 모습이 보였다.
루아티샤는 회랑 끝에 마련된 소거실에서 하녀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가씨께선 어때요?”
“역시 제온 도련님이 가장 잘 생기셨죠?”
“아가씨께서 ‘제온 도련님 얼굴이 곧 복지고 나라다一’라고 하셨잖아요.”
제온의 귀가 쫑긋해졌다.
막내가 잘생긴 남자를 무척 좋아하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막내의 원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제온 좋아. 제온이 최고야.”
一하고 히히 웃던 모습을 떠올리면 역시 자신이…….
“참나, 제온이 뭐가 잘생겨?”
우뚝.
막내에게로 다가가던 제온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온이 제일 잘생겼어.” 하며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었는데……!
설마하니 아레스 놈과 익시온 놈이 막내에게 수작질을 벌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一.’
가슴이 선뜩했다.
‘설마, 시드리한 황자?’
그 요망한 놈팡이가 시도 때도 없이 순진한 막내에게 작업질을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의 입에서 저런 소리마저 나오다니.
충격에 제온이 비틀거리는 순간이었다.
“잘생긴 게 제온이지.”
루아티샤가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모르겠으면 외워. 제온이 잘생긴 게 아니라, 잘생긴 게 제온이야. 잘생김의 정의가 곧 제온이라구.”
“어머! 그렇군요.”
“그럼 막내 아가씨께서는 역시 제온 도련님이 제일 좋겠네요?”
“그러엄! 세상에서 제온이 젤루 좋아!”
“어머머!”
“…….”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제온이 발걸음을 옮겼다.
“제온?”
루아티샤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제온은 루아티샤의 옆에 앉아 몸을 기댔다.
“쓰다듬어줘.”
보이지 않는 꼬리가 휙휙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루아티샤는 씨익 웃으며 제온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제온, 제온은 다른 사람한테 좀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
“……관대?”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잖아? 근데 그 사람들이랑 제온이랑 비교가 돼?”
“…….”
“잘생긴 제온이 좀 참아. 어차피 비교도 안 되니까.”
제온은 물끄러미 루아티샤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막내의 첫 번째는 나니까.’
첫 번째 운운을 이미 아빠와 할아버지한테 하고 왔다는 걸 모르기에 가능한 관대함이었다.
* * *
천지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나뭇잎이 무성한 잎을 떨구고 포석이 조각조각 깨어져 나갔다.
그 한가운데 아레스 파에라톤이 서 있었다.
봄볕처럼 웃는 미소 뒤에 가려진 그의 본모습이었다.
괜히 아레스가 가신들에게 파에라톤의 세 공자 중 가장 흉포하고 잔혹하다는 평을 듣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을 전부 어둠으로 뒤덮을 듯 끝없이 팽창하던 마기도 한순간에 훅 사라졌다.
아레스는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그의 동생이 양산을 든 채 오도카니 서 있었다.
언제 그 살의 넘치는 마기를 뿜어냈냐는 듯, 아레스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동생, 나 보러 왔어?”
“응. 근데 무슨 훈련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고용인들이 무서워서 다가오지도 못하잖아.”
“이건 훈련이 아냐.”
“그러면?”
“예행연습이야.”
“…….”
대체 누구를 죽이려고?
루아티샤는 차마 묻지 못했다.
왠지 답을 알 것 같아서.
대신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레스 때문에 내 마음은 항상 흐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동생. 내가 왜 네 마음을 흐리게 해.”
아레스가 눈매를 사르르 접으며 물었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레스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로운 봄볕 같았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더 시무룩 해졌다.
“아레스 때문에 내 마음엔 항상 비가 오거든.”
아레스가 멈칫했다.
보통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웃으면 루아티샤는 따라 웃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一.
실망이 가득하다는 눈초리.
똑똑한 동생은 자신이 누굴 생각하며 이렇게 흉악한 마기를 흩뿌렸는지 알 거다.
“설마 그 자식 때문에?”
내가 그 자식을 탐탁지 않아 해서?
그 새끼가 그렇게 소중한가?
나보다?
아레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루아티샤의 입술이 열렸다.
“심장마비.”
아레스의 눈이 훅 커졌다.
“아레스가 너무 좋아서 나 자꾸 심장마비가 오잖아!”
루아티샤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외쳤다.
“책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