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1화(261/353)
☆ 제261화 ☆
여동생의 외침에 굳었던 아레스의 입가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가 왔던 거야?”
“응. 아레스 때문에 자꾸 흐리잖아.”
“그럼 어쩔 수 없네. 내가 내 동생 책임져야지.”
아레스가 루아티샤의 양산 속으로 들어오며 미소 지었다.
루아티샤의 손 위로 양산 손잡이를 겹쳐 쥔 그가 은근하게 물었다.
“혹시 다른 놈 때문에 비 온 적 있어?”
“아레스도 참. 그럴 리가 없잖아. 아레스뿐이야.”
아레스가 웃었다.
평소 짓는 미소와 달리 순수하게 해사한 미소였다.
루아티샤가 마주 웃는 찰나.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만약에라도 웬 놈팡이가 내 동생 마음에 비를 내리게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의 비든.
“내가 처리해줄게.”
루아티샤에게서 양산을 받아 든 아레스가 환히 웃었다.
양산이 기울어지며 그늘이 루아티샤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었다.
‘음…….’
아레스의 마음이 풀어지긴 풀 어진 것 같은데.
‘과연 잘 끝난 게…… 맞을까?’
루아티샤는 조각난 포석과 한 겨울처럼 잎사귀를 죄 떨어트린 나무들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에라, 모르겠다.
루아티샤는 아레스를 보고 마주 웃었다.
* * *
루아티샤는 같이 산책하자는 아레스의 말에 잠시 함께 걷다가 곧 빠져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익시온의 연무 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역시 난리가 나 있었다.
“이딴 걸 검이라고 가져온 거야? 찌르면 바로 즉사할 만한 걸 가져와야지!”
익시온이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며 닦달했다.
덩치가 산만한 익시온의 보좌관은 불쌍하게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그걸로 찔러도 주, 죽을 텐데요…….”
“난 안 죽어.”
익시온이 당당하게 말했다.
“보, 보통 사람은 주, 죽어요.”
“그래? 그럼 한 번 시험해볼까?”
익시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 놈에게.”
척.
날카로운 검 끝이 보좌관의 턱 밑을 향했다.
“히이이익!”
보좌관이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그와 루아티샤의 시선이 마주쳤다.
보좌관은 순식간에 에르켈 자작과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살려주세요, 아가씨!’
‘……나, 알고 보면 많은 사람을 구한 게 아닐까.’
루아티샤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었다.
“익시온.”
익시온은 루아티샤가 부를 줄 알았다는 듯 놀라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장난이었어.”
“알아.”
루아티샤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뒤로 숨은 보좌관은 아니었다.
그가 루아티샤의 등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외쳤다.
“자, 장난이었다고요? 그게?!”
“왜. 장난이 아니었던 게 더 나았나?”
아닙니다.”
보좌관이 깨갱해서 다시 루아티샤의 뒤로 얼굴을 숨겼다.
‘근데 이런다고 숨겨지나? 덩치가 세 배는 차이 나는데. 왜 맨날 내 뒤에 숨지?’
호기심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쉽게도 연무장에 거울은 없었다.
루아티샤는 보좌관을 내버려 두고 익시온에게로 걸어갔다.
“괜히 심술부리면서 화풀이하지 마.”
“난 별로 화난 적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익시온의 뺨에는 심통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시선은 고집스레 루아티샤를 보지 않고 있었다.
‘흐음.’
익시온이 오늘따라 유독 삐딱하다.
루아티샤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시드 때문에 이러는 거지.”
“…….”
“저 검도 시드를 어떻게 하려고 가져오라고 한 거지. 황족 시해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
“…….”
익시온은 여전히 루아티샤를 보지 않았다.
루아티샤가 빽 외쳤다.
“자꾸 그럼 고소할 거야!”
“……!”
익시온이 깜짝 놀라 동생을 돌아보았다.
“……고소? 나를?”
익시온은 진심으로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
좀 삐딱하게 나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솜뭉치가 달래주길 바라서였다.
속상한 걸 알아주었으면 해서.
그런데, 고소라니.
내 솜뭉치가 나에게…….
‘이게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충격으로 흔들렸던 얼굴은 이내 더한 분노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익시온이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을 훔쳐 간 죄로!”
루아티샤가 주먹을 꼭 쥐며 외쳤다.
“뭐……?”
“익시온이 자꾸만 루루 마음을 훔쳐 가잖아. 그래서 나는 익시온밖에 생각할 수 없어졌구.”
익시온의 얼굴이 한순간에 풀리며 말랑해졌다.
“그, 그래?”
“응. 그래서 익시온이랑 같이 밥 먹고 쇼핑하고 검술 수련하는 생각만 나.”
익시온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걸 깨달은 그가 괜히 다른 곳을 보며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하, 어쩔 수 없네.”
익시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소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내 생각만 난다니. 생각나는 일들을 다 같이 해주는 수밖에. 정말 피곤하지만 하는 수 없지.”
저기요.
애써 내리고 있지만 계속해서 입꼬리가 슬쩍슬쩍 올라가고 있는데요?
“안 그래도 쉽게 찌그러지는 솜뭉치인데 나라도 빵실빵실하게 만들어줘야지.”
익시온이 루아티샤를 향해 씨익 웃었다.
“……와아, 고마워. 익시온이 최고야.”
루아티샤는 떨떠름하게 환호했지만 이미 루루깍지가 잔뜩 낀 익시온의 눈에는 막냇동생이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고 있는 걸로만 보였다.
시드를 패려던(?) 검은 저 멀리로 내던진 채 익시온이 동생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렸다.
“어서 가자. 뭐 먹고 싶어? 뭐 사줄까?”
“으음, 여름 딸기가 잔뜩 들어간 파르페!”
그 대답에 익시온이 피식 웃었다.
여동생의 손을 잡고 연무장을 나서던 그가 멈칫했다.
“그런데. 그러면 역시 솜뭉치 마음엔 이 익시온 님뿐인 거지?”
지나가는 척 물었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루아티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나는 지인짜 딱히 그러고 싶지 않은데一.”
익시온의 한쪽 눈썹이 휙 올라갔다.
루아티샤는 얼른 뒷말을 이었다.
익시온이 내 마음 다 훔쳐 가버려서 어쩔 수 없잖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구.”
진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는 듯 푹푹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원망스러운 눈으로 익시온을 바라보았다.
익시온의 광대는 이미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좋아죽네, 좋아죽어.’
저렇게까지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그간 주접 좀 더 떨어줄 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슬쩍 주변을 보니 익시온의 보좌관이 잇몸을 훤히 내보이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곰 아저씨가 왜 웃는데요.’
루아티샤가 입술을 삐죽이든 말든 그는 망상 가득한 표정으로 킁킁거리며 웃었다.
역시 익시온의 보좌관은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었어.
* * *
왠지 순회공연을 마친 극단원처럼 지쳤다.
소파에 철푸덕 늘어지자 안나가 아이스티를 가져다 주었다.
“마마, 시들시들해.”
니케가 내 등에 올라타 두툼한 앞발로 꾹꾹이인지 안마인지를 시작했다.
“아고, 내 새꾸! 엄마 지친 거 알고 안마해주는 거야?”
나는 언제 지쳤냐는 듯 니케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뽀뽀를 했다.
꺄르르륵!
니케가 숨넘어갈 듯 웃었다.
니케를 무릎에 앉힌 채 쓰다듬으며 자몽 주스가 들어간 아이스티를 쪽쪽 빨자 기력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고생하셨어요.”
“어쩌면 반응이 다 한결같은지. 그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주접이 안 통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가족이라서 그런 거겠죠.”
안나가 후후, 웃었다.
“하긴, 서로 자긴 아닌 척하는데 우리 가족들은 너무 닮았어.”
“그거 아가씨도 포함인 거 아시죠?”
“내가?”
난 절대 아닌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하녀 언니들의 시선은 내 의견과 다른 듯했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표정이 그래.
‘치.’
입술을 삐죽이는데 안나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왜 그래?”
“좋아서요.”
갑자기?
“아가씨 얼굴만 봐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게 보여서요.”
그 말에 나는 머쓱해졌다.
안나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처음 공작가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나는 이미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었으면서도 사랑받는 줄 몰랐다.
그게 너무 낯설어서.
커다란 저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쭈뼛거리던 작은 아이.
하지만 이제 나는 외출했다 돌아오기만 해도 아빠를 껴안지 않으면 집에 돌아온 거 같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팔짱을 낀 채 산책하는 것도, 오빠들과 킥킥 웃으며 거리를 쏘다니는 것도.
언젠가의 내게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어색하고 생소한 것이었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일상이 되었다.
“오늘 저녁은 다시 평소처럼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오붓하게 하겠네요.”
안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도 아니고, 어제까지는 다들 삐질 대로 삐져서 따로 먹은 참이었다.
“그래, 오늘은 오붓하겠지.”
그간 모여 식사할 때 오붓했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 * *
파에라톤 공작가의 저녁 식사 시간.
이 시간은 사교계의 정치판보다도 물밑 암투가 더 격렬히 오가는 때였다.
누가 막둥이의 옆자리에 앉느냐부터 시작해서, 누가 막둥이와 더 많이 이야기하는지, 누가 디저트를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건지.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견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흥, 불쌍하고 우매한 것들.’
그 어떤 때보다 식사 시간은 평화롭다 못해 화기애애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막둥이에게는 내가 첫 번째이니 착각 속에서 행복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막내는 내가 가장 좋댔으니까.’
‘승자의 여유랄까, 가진 자의 여유랄까.’
‘굳이 내가 아득바득 상대할 필요 없겠지.’
다섯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우아하게 식사했다.
이렇게 양보하다니.
막둥이도 자신의 이런 배려 깊은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할 게 틀림없다.
다섯 남자의 어깨가 으쓱으쓱 하늘로 치솟았다.
루아티샤는 그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며 고기를 콕 찍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는데.’
뭐, 평화로우니 됐다.
부디 이 평화가 오래가길 바랄 뿐이다.
Chapter 36.
“어서 오십시오, 공녀님.”
“오랜만이야.”
내 말에 아데르센 백작 저의 집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티리엘은?”
“아가씨께선 침실에 계십니다만…….”
“침실? 많이 아파?”
집사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거 다 몸에 좋은 거야. 달여서 먹여.”
안나가 집사에게 한약재를 건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티리엘.”
“……루루?”
티리엘이 일어나려고 해서 나는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세상에. 얼굴이 왜 이래.”
창백한 얼굴에 눈 밑이 거뭇하고 입술은 보랏빛인 데다가 바짝 말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죽은 아이젤 영애가 떠올라서.
“이렇게 아픈데 편지에는 그냥 괜찮다고 한 거야?”
티리엘은 침대 헤드에 기댄 채 힘없이 웃었다.
“그냥 좀. 잘 지냈어?”
“지금 나한테 그런 걸 물을 때야? 의사는 뭐래? 아니다. 내가 파에라톤 가의 의사를 불러서一.”
침실 밖에 있는 안나에게 말하려고 일어나는데 티리엘이 내 팔을 붙들었다.
아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그러지 마.”
“티리엘.”
“나 정말 괜찮아. 보기에만 이런 거야.”
“…….”
“그냥 오랜만에 얼굴 봤는데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듣고 싶어. 나 너무 오래 못 나갔잖아.”
나는 가만히 티리엘을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신문은 봤어. 너랑 황자님 아주 난리 났더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티리엘이 웃었다.
“……그럼 뭐 다 알겠네. 정말 온갖 곳에서 아주 상세히 기사를 썼더라. 아빠랑 할아버지랑 오빠들이 신문사 족치겠다고 하는 거 말리느라 혼났어.”
“그래도 네 입으로 듣고 싶어.”
티리엘이 슬금슬금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불을 들췄다.
“나 외출복인데.”
“상관없어.”
못 이기는 척 티리엘의 옆에 누웠다.
나는 티리엘과 나란히 누워 미주알고주알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정말? 정말로 다 보는 앞에서 황자님을 끌어당겨 키스한 거야?”
“……응.”
“꺄아!”
티리엘이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너네 가족들 난리 났겠네.”
“그야 장난 아니었지.”
“용케 황자님이 안 죽었고.”
“야.”
이렇게 나란히 누워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괜히 더 설레고 재밌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一.
‘뭔가 이상해.’
가슴 속이 선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