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2화(262/353)
☆ 제262화 ☆
“흥, 리리엘 그 기지배. 내가 너랑 시드리한 황자님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 사이도 아닌데요?’ 하면서 끼어들더니. 꼴 좋다.”
티리엘이 그렇게 말하며 고소해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생각 없었다.
그런데.
“다른 건 없는 거지?”
“다른 거?”
“……리리엘이 뒤에서 너한테 해코지를 했다거나.”
그 망설임 끝에 나온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티리엘은 리리엘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게 리리엘이 내게 해코지하는 걸로 연결될 수 있나?’
어쨌거나 리리엘은 성녀였고, 은근하게 내 평판을 낮추려는 꼼수는 써도 대놓고 날 해한 적은 없었다.
새벽 축제 이후 사교계의 영향력을 놓고 많은 사람들과 겨뤘지만, 그게 실질적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것으로 이어진 적은 또한 없었고.
그런데 리리엘이 날 해코지할까 봐 걱정하다니?
리리엘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사기를 쓰는 존재라는 걸 안 걸까?
그게 아니라면一.
“그렇구나. 괜찮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티리엘의 얼굴이 복잡했다.
나는 가만히 그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 아파서 힘들 텐데 내가 너무 오래 있었다. 이만 가볼게. 보약 가져왔으니까 꼭 챙겨 먹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티리엘이 머뭇거린 끝에 입을 열었다.
“루루.”
“응?”
“……전에 말했던 거 있잖아. 그 치수제.”
“응.”
“그거 어디에서 할지 결정했어?”
나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티리엘을 바라보았다.
잠시 우리의 시선이 교차했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티리엘이었다.
“아니야, 알려줄 필요 없어. 그냥一.”
“결정했어. 라이켈에서 할 거야.”
티리엘이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 지었다.
“또 올게. 그때까지 얼른 나아야 해?”
“……응.”
나는 티리엘의 이불을 꼼꼼히 잘 덮어준 후 저택을 나왔다.
“아가씨?”
안나가 내 얼굴을 보더니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집에 가자마자 WBD랑 SSS를 불러야겠어.”
* * *
치수제.
물을 다스리는 제사로, 본격적으로 치수 사업의 첫 삽을 뜨기에 앞서 당연히 치르는 의식이었다.
지구의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식인데 여기라고 다르겠는가.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기 앞에서 K-고사를 지내는가 하면 서구권에서는 교황이 축복해주기도 했다.
‘그걸 또 사진 찍어서 신문에 싣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원래 치수제는 부정 타지 않도록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에서 한정된 사람들만 비밀리에 치르고 끝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대대적으로 공개해서 열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먼저 이런 제안을 한 건 내가 아니었다.
“성녀 예하께서 계신데 응당 예하의 축복을 받아야지요! 이 기회를 놓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녀 예하께서 축복하는 치수제인데 어찌 조용히 끝내겠습니까. 마침 영상석이 있으니 전국에 생중계하는 건 어떻습니까?”
“공녀님께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그 나이에 이런 대규모 국가사업을 맡는다는 걸 보다 직접적으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일이 될 테지요.”
점점 하향길을 걷고 있던 신전으로서는 어떻게든 성녀를 통해 세력을 높이고 싶었을 거다.
지난번 즉위식에서 꿀을 못 빨았으니 이번 치수제에서 위엄 넘치는 성녀의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겠지.
“짐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군.”
황제도 동의했다.
그 역시 황후 때문에 황가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제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고 싶었을 터.
나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
제국의 젖줄이라는 실란트 강의 가장 높은 수원지인 라이켈 산맥 아래.
나는 큰 국가 정책과 사업을 맡은 막중한 책임자로서 위엄 넘치게一.
“어머머, 시드리한 황자님이랑 파에라톤 공녀님 좀 봐.”
“이제는 이런 공식 행사에서 대놓고……. 어머, 어머.”
위엄一.
“후후, 공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 좀 보게나. 저런 모습은 또 처음인데. 풋풋하니 귀엽구나!”
내 위엄…….
흑.
시드가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엄청 중요한 행사 중인데도 시드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만 좀 봐. 집중해야지.”
“집중하고 있어.”
“나한테 말고 치수제에! 이거 전국에 다 생중계 중이라구!”
소리를 낮춰 속삭이자 시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싫어?”
보랏빛 눈동자가 우주를 담듯 나를 담았다.
“시, 싫다고는 말 안 했어…….”
“어머머머, 아주 둘만의 세상에 있네.”
“좋을 때야, 좋을 때.”
“황실에서 연애 결혼하는 건 최초 아니야?”
아, 쫌!
이게 무슨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왜 이렇게 여기저기서 패널처럼 말을 보태는 거야!
“성녀 예하께서 축복을 내리 십니다!”
물론 그 덕에 단상 위에서 축복을 하고 있는 리리엘에게서 시선이 분산된 건 좀 고소했지만.
사실 리리엘의 축복에 대해 무언가 특별한 걸 기대하는 사람은 적었다.
사기를 정화했던 것 자체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정작 성녀로 즉위한 후 리리엘이 보여준 행보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이적을 행한 적도 없고, 성녀로서 모범이 되었다고 하기엔 정반대였다.
오히려 남의 남친에게 집적거린, 다분히 세속적으로 지탄 받을 짓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해서 사람들은 기껏해야 신관들이 보통 하는 축복一일명 뾰롱뾰롱 효과一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촤아아악一.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리리엘의 손짓에 따라 강물이 튀어 올랐다.
마치 폭포를 거스르는 것처럼 솟아오른 물줄기가 뻗어진 리리엘의 손을 따라 핑그르르 돌더니 이내 리리엘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저게 무슨……?”
“저런 광경은 처음 봐요. 마치 강물이 축복에 화답하듯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이 놀라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탄성과 중얼거림마저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멍하니 리리엘을 올려다보았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이 온 신경을 잡아끈 것이다.
햇살에 반사된 물줄기가 오색 찬연했다.
그 안에 감싸인 리리엘의 은발이 물줄기보다도 더 찬란하게 빛났다.
이내 감고 있던 그녀의 눈이 뜨이고一.
드러난 황금빛 눈동자는 평소와 달라 보일 정도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눈이 아닌 것처럼.
“대비하라. 곧 절망이 닥치리라.”
리리엘의 입술을 타고 기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가장 높은 곳의 기원.
가장 낮은 곳의 수렁.
가장 보편적인 곳의 수림.
가장 배타적인 곳의 심연.
세 곳의 위기가 지나 마지막에서 세상을 집어삼키고 거꾸르는 악마가 탄생하리라.
경계하라.
악마는 지고한 선의 모습으로,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너희의 틈을 파고들지니.”
리리엘의 입술이 닫혔다.
제의장 내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리리엘을 감싼 물줄기가 훅 잦아들자 곁에 있던 신관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이 깨지고 나서야 사람들의 입이 열렸다.
“이건 설마…….”
“예언의 계시?!”
그 말이 불러오는 파장은 엄청났다.
“마, 말도 안 돼……. 계시가 내린 지가 언제인데.”
“그거 전설이나 성서 속에나 있는 일 아니었어?”
“진짜 계시라니…….”
“역시 성녀…….”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고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계시를 마친 것과 동시에 정신을 잃은 듯 보였던 리리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성녀 예하! 정신이 드십니까?”
고위 신관이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리리엘이 힘겹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무슨…….”
평소 리리엘의 목소리였다.
“괜찮으십니까?”
“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축복을 하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무언가 제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계시를 내릴 때 느낀다고 기록된 반응과 일치합니다!”
“오, 신이시여…….”
“걱정 마십시오, 예하. 그저 신께서 예하의 입을 통해 세상에 말씀을 전한 것뿐입니다!”
신관들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계시가 내린 거야?”
“그렇다면 역시 리리엘이, 아니, 리리엘 님께서 신의 선택을 받은一.”
나는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드는 것을 지나 리리엘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신의 계시에 순수하게 놀란 반응을 하고 있었지만 곧 이 사건은 내게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시드의 일로 리리엘과 내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계산이 빠른 자들은 이미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사기를 쓰는 리리엘이 성녀일 리 없어.’
그러니 신의 계시 따위 받았을 리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생각은 나중에.
‘여기서는 내가 나서서 리리엘과 척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우선이야.’
언플에 당하지 않도록 미리 밑밥을 까는 건 중요하다.
특히 지금 이 순간도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으니까.
“리리.”
“루루.”
리리엘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나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치수제 중신의 계시가 내렸으니 제국의 홍복입니다.”
“음.”
“성녀 예하께서는 단순히 축복 이상의 일을 해주셨어요. 어서 성녀 예하를 모시고 계시에 대한 해석을一.”
“아니야.”
리리엘이 내 말을 막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치수제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게 좋겠어.”
“이 상황에서?”
“치수 사업은 민생과 직결된 중요한 사업이야. 제의가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면 좋을 게 없어.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이상해.’
나는 리리엘이 당연히 여기서 치수제를 멈추자고 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다음 순서는 내가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이 치수 사업의 책임자로서 수원지로 가서 마지막 예식을 치르는 절차였으니까.
‘그런데 굳이 나를 보낸다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다.
‘가지 않는 게 좋겠어.’
하지만 리리엘의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의 효과는 참 대단했다.
“그런 기분이 든다니, 혹 신의 뜻 아닙니까?”
“아무래도 성녀 예하께서는 방금 막 신의 통로가 되셨으니…….”
신관들은 물론, 귀족들까지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이 자리에 없는 제국민들은 더 하겠지.’
이런 상황에서 안 갈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리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계속 진행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리리엘이 미소 지었다.
나는 뒤돌아 단상에서 멀어져 이동할 준비를 했다.
“루루.”
시드가 내 팔을 붙잡았다.
“뭔가 이상해. 함정이 틀림없어.”
“괜찮아.”
“그럼 나도 같이 갈게. 주인님을 지키는 게 내 일이잖아.”
아직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났는데도, 그의 얼굴은 마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절박했다.
나는 미소 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一.’
“나 혼자 갈 거야.”
시드는 이미 나 때문에 큰 희생을 치렀다.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으리라.
“루루.”
“아빠, 나 다녀올게요.”
아빠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거 아니잖아요. 원래 있는 치수제 절차 중 하나일 뿐이에요.”
하지만 아빠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으셨다.
오빠들과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리엘의 시중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 하고 코웃음을 쳤다.
“공작가에서 막내 공녀를 아, 낀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정도껏 이어야지.”
“누가 보면 치수제를 치르는 게 아니라 어디 전쟁터라도 나가는 줄 알겠어요?”
“우리 성녀 예하께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신 건데, 저렇게 위험한 곳 가는 것처럼 구는 게 좀 그러네요.”
“우리 예하께서 해코지라도 하신다는 거야, 뭐야.”
“쉿. 그런 생각하지 말거라. 가족이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이치야.”
리리엘이 시중인들을 나무랐다.
‘아주 욕하라고 떠밀어주는구나.’
저렇게 나왔는데 우리 가족이 자중하지 않으면 결국 욕먹는 건 이쪽이다.
우리 아빠와 할아버지와 오빠들은 남들의 평판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 욕먹는 거 싫다구!’
“진짜 괜찮아요. 그냥 말 타고 휙 다녀오는 건데요. 그거 다 여기서 중계해주니 볼 수도 있고요. 나, 말 잘 타는 거 아빠도 알잖아요? 누가 가르쳐준 승마인데.”
눈을 찡긋하며 활기차게 말하자 아빠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랑 같이一.”
“아니야. 원래 책임자가 모든 책임을 어깨에 지고 혼자 다녀오는 게 원래 절차인걸.”
내 말에 신관이 옆에서 거들었다.
“공녀님의 말이 옳습니다. 계시가 내리자마자 편의적으로 절차를 바꾸면 신께서 노하실 겁니다. 계시를 내렸는데 오히려 건방져졌다면서.”
“건방져? 신이 무슨一.”
아빠가 흉흉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해서 나는 얼른 아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아빠가 한쪽 눈썹을 꿈틀했지만, 결국 내 뜻에 따라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나셨다.
‘좋아.’
그렇게 나는 혼자 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