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3화(263/353)
☆ 제263화 ☆
* * *
화면에 커다랗게 루아티샤의 모습이 비쳤다.
머리를 높게 위로 묶은 채 거대한 검은 군마를 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화면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계시할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이 신탁의 내용이 무엇인지 감이 오시나요?”
“절망이 닥칠 걸 대비하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요? 너무 두려워요.”
다들 리리엘의 곁에 모여 조금이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더 듣기 위해 안달이었다.
리리엘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 자리에 루아티샤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입장이 바뀌었을 때 루루, 네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꼭 보고 싶었는데.’
아, 물론.
‘인류 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내가 그 정도 아쉬움은 참아줘야겠지.’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다니.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멍청하기 그지없다.
그때였다.
콰광!
“까, 깜짝이야!”
갑자기 들린 커다란 폭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영상을 향했다.
루아티샤가 말을 모는 강변을 따라 산에서 바위가 굴러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할 법에 루아티샤는 침착하게 말고삐를 풀며 상체를 숙였다.
루아티샤의 뜻을 기민하게 알아챈 군마가 거침없이 속도를 높였다.
“저, 저기서 더 속도를?”
굴러떨어져 내리는 바위는 하나가 아니었다.
위에서 산사태라도 난 것인지 크고 작은 바위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작은 짱돌이라도 맞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루아티샤의 상체가 완전히 기울어지며 군마와 딱 붙었다.
바짝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말의 등을 꽉 조였다.
군마가 방향을 틀 때마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마치 말의 갈기 같았다.
루아티샤는 아슬아슬한 시차를 두고 떨어지는 바위를 전부 피해냈다.
마치 신기와도 같은 묘기.
숨조차 참은 체 그 아찔한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와, 엄청난 기마술이네요?”
“파에라톤 공녀는 공자들과 달리 저런 기술은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파에라톤은 파에라톤인가? 저 군마도 공작 각하의 것이죠? 아무나 등에 태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다행이에요. 파에라톤 공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낙마해서 부상을 당했을 거예요.”
“과연 공녀님은 다재다능하시네요.”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때였다.
자스민이 발끈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지금 이렇게 감탄하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요? 천만다행히 무시했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사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어요!”
라파엘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리리엘에게 달려들었다.
“저 녀석을 꼭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이럴 걸 알고 일부러 보낸 게 아니라?”
신관들이 당황해서 라파엘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소드 마스터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라파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럴수록 본질은 흐려져.”라고 말하고 나서야 라파엘은 리리엘을 붙든 손을 놓았다.
“느낌이 들었다는 말에 신의 뜻이니 뭐니 했는데 저런 위험을 예지하고 막는 게 신의 뜻 아닌가?”
“애초에 그 신의 계시라는 것도 믿을 만한 거야? 나는 잘 모르겠어.”
“계시 같은 거 성서에만 있었던 일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일도 아니잖아.”
아쉘타인의 쌍둥이들이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둘 석연잖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가족들조차 느낄 수 있었던 불길함을 예언까지 한 성녀가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건…….”
“아까 그 기적을 보고도 성녀님을 의심하는 거예요?”
“애초에 기적 자체가……. 치유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 작금의 신전인데.”
“뭐야, 그럼 속임수라는 거예요?”
그렇게 설전이 오고 가는 사이, 루아티샤는 무사히 수원지에 도착했다.
아쉘타인 산맥의 지류가 처음으로 모이는 샘이었다.
군마에서 훌쩍 뛰어내린 루아티샤는 품 안에서 성물을 꺼내 치켜들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백은의 성물.
땀에 젖은 루아티샤의 얼굴이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의지를 담고 있는 파라이바빛 눈동자는 수원보다도 더 맑은 빛이었다.
“오…….”
“공녀님은 영락없는 사교계의 레이디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모습도 잘 어울리시네요.”
“책에서 나오는 용사님 같아…….”
어린 영애들이 초롱초롱 눈을 반짝였다.
루아티샤가 기도문을 읊조리는 것과 동시에 흐릿했던 성물의 보석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기도를 끝낸 루아티샤가 가지런하면서도 유려한 손놀림으로 샘에 성물을 띄우는 순간.
쿠궁.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자체가 주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화, 화면이 너무 흔들리는데요?”
쿠구구구웅!
콰과광!
흔들리는 건 화면이 아니었다.
루아티샤가 있는 수원지 자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튀고 나무가 스러지며 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틈에서 루아티샤는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히이이잉!”
거대한 군마가 펄쩍 뛰며 애타게 울부짖었다.
쾅!
어디선가 튕겨 오른 커다란 바위가 화면을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 그 바위가 사라졌을 땐一.
“무, 무슨?!”
“루아티샤!”
루아티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화면을 눈에 담은 파에라톤 공작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마치 빛을 잃은 천체처럼.
‘방어진이 형성됐어.’
딸에게 다시 걸어주었던 방어진.
꽉 깨문 공작의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그게 발동되었다는 건 다시 말해一.
루아티샤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위기가 닥쳤다는 뜻이다.
* * *
“뭐, 뭐야. 지진이야?”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기묘했다.
저 정도의 난리가 났으면 분명 이곳까지 피해가 미쳤어야 하는데 멀쩡했다.
“황자 전하!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곧장 달려 나가는 시드리한을 근위병들이 막아섰다.
시드리한은 비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바닥에서부터 피어오른 얼음꽃이 근위병들을 움직임을 얼렸다.
그들은 바람처럼 제의장을 나서는 시드리한을 두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극히 혼란스러운 상황.
“폐, 폐하!”
그 가운데, 체시아 백작이 희게 질린 얼굴로 황제에게 달려왔다.
“지베르타 늪지대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는 급보입니다!”
“뭐라?”
“뿐만 아닙니다! 디안 숲에 커다란 화재가 일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갑자기 일어난단 말인가.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예언이에요! 예언이 실현됐습니다!”
* * *
가장 높은 곳의 기원.
가장 낮은 곳의 수렁.
가장 보편적인 곳의 수림.
가장 배타적인 곳의 심연.
세 곳의 위기가 지나 마지막에서 세상을 집어삼키고 거꾸르는 악마가 탄생하리라.
“가장 높은 곳의 기원은 제국의 젖줄인 실란트 강의 기원一 즉, 원류지 중 가장 높은 곳인 라이켈 산맥을 일컫는 겁니다.”
“가장 낮은 곳의 수렁은 지베르타 늪지대를, 가장 보편적인 곳의 수림은 제도 근교의 숲인 디안 숲을 뜻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가장 배타적인 곳의 심연은……?”
가장 배타적인 곳, 하면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파에라톤 공작령.
물론 공작령은 드넓고, 상업과 관광업이 잘 발달된 곳이다.
결코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영지.
하지만.
“파에라톤만큼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는 곳은 없죠.”
파에라톤 공작가의 특성 자체가 그런 수식어를 붙게 했다.
“파에라톤령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없습니까?”
“심연이라……. 파에라톤령에 이렇게 부를 만한 곳이 있던가? 공동(空洞) 같은 것을 말하는 걸까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에라톤 공작 일가를 비롯해 그들의 가솔들까지 이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딴 예언 나부랭이를 해석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어.”
파에라톤 공작은 그 말만 남기고 제의장을 나갔다.
앞길을 막아서는 사람이 누구든 그 자리에서 반을 갈라버릴 것만 같은 기세에 아무도 막지 못했다.
“일단 기다려봅시다. 이만한 사고가 났으면 소식이 오겠죠.”
“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소식이 왔겠죠. 지베르타 늪도 파브넬령인데 바로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럼 파에라톤령이 아니라 다른 곳이一.”
“아니요. 다른 곳이었어도 이미 보고가 왔겠지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 * *
무너진 수원지는 한순간에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파에라톤과 타렌카의 인력, 그리고 황실 인력을 총동원해서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각하.”
에르켈 자작이 파에라톤 공작의 어깨 위로 모포를 덮어주었다.
공작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말끔했던 머리는 땀과 먼지에 섞여 헝클어진 데다가 실크셔츠는 이미 다 해져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이 나은 것이었다.
에르켈 자작이 인력을 이끌고 뒤늦게 이곳에 당도했을 때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새까만 마기가 천지를 뒤덮어 그야말로 태양이 사라진 것 같았다.
땅이 뒤집히고 물이 거꾸로 솟았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친 것만 같은 광경.
온몸의 세포를 짓누르는 살기에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수십 년간 파에라톤 공작의 지근 거리에서 그를 모신 에르켈 자작조차 두려움에 몸서리 칠 사태였다.
공작뿐만 아니라 공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간 루아티샤와 함께 지내며 어느 정도 사회화도 되고 부드러운 면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맹수는 사람 손을 타도 여전히 맹수이다.
어렸을 때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첨예하게 벼려진 잔혹성을 숨기고 있었을 뿐.
‘거기에 시드리한 황자도…….’
에르켈 자작의 시선이 시드리한을 향했다.
반짝거리는 금발은 이미 제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의 손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아깐 정말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
시드리한의 주변으로 풀과 나무가 까맣게 죽어가는 광경은 다시 생각해도 섬뜩했다.
에르켈 자작은 이대로 독에 당해 죽을 줄만 알았다.
독성을 이능으로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 범위와 위력이 저 정도라니?
심지어 시드리한은 다시 독성을 제거하기까지 했다.
격한 감정에 이능이 순간 폭주했지만, 이내 이 독성이 루아티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게 한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시드리한이 지닌 이능은 독성만이 아니었다.
“같이 갔어야 했어.”
그때, 시드리한이 중얼거렸다.
괜찮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해도 루아티샤와 같이 갔어야 했다.
그 애는 항상 그렇게 말하니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굴다가도 가장 위험한 순간에는 혼자 가려 한다.
그 작은 등으로 몰아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으려고.
마치 그게 자신의 몫인 것처럼.
‘만약 그 아이가 잘못된다면.’
콰드득
시드리한의 손에서 바윗덩이가 부서져 내렸다.
보랏빛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한 번 마계를 경험했던 자로서, 인세는 지옥이 어떤 것인지 똑같이 겪게 될 것이다.
* * *
“휴.”
드디어 멈췄다.
나는 위로 쏟아지던 토사가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하고 주변을 살폈다.
살핀다고 해도 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빠의 방어진 덕분에 깔려 죽는 건 면했는데…….’
이대로 있어도 방어진이 무너질 것 같진 않았다.
문제는 다른 거였다.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공기가 잘 안 통하면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一.
“쓸 능력이 없네.”
시드를 마계에서 다시 데려오기 위해 마구잡이로 책을 소환하고 능력을 뽑았던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게 아니면 〈눈새〉고.’
이딴 능력 진짜 필요 없는데.
“캐시도 2000캐시 뽑기권 하나.”
괜히 15금 소설 소환하겠다고 난리 친 바람에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다.
‘〈5000골드 주면 키스해주는 공작님〉의 여주 언니는 딱히 이렇다 할 능력도 없고.’
물론 키스는 잘하지만.
‘괜찮아. 샘이 가까워. 어차피 깔리거나 부딪칠 위험이 없으니 땅을 파서 샘으로 이동하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어.’
이럴 때 공황으로 난리 나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키투스를 꺼내 들었다.
2000캐시 뽑기권이라도 돌려서 도움이 될 능력을 소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사삭一.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니지?’
불안해서 위를 올려다보는 찰나.
콰르르르르一.
토사가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