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6화(266/353)
☆ 제266화 ☆
“티리엘은 어딨어?”
지지 않으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던 리리엘이 흠칫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왜긴 왜야.
네가 내 친구 괴롭히고 있으니까 그렇지!
겸사겸사 너도 족치고.
* * *
티리엘 아데르센은 왈칵 피를 토해냈다.
시꺼먼 핏덩이가 쏟아져나오자 차라리 통증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을 뿐이다.
숨을 쉬고는 있는가?
사실 모르겠다.
어쩌면 호흡이 끊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죽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자신은 괴물이 되어버렸나 보다.
리리엘의 말처럼.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티리엘.”
리리엘이 매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했던 말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너는 나의 권속. 그렇게 반항할수록 너만 힘들어질 뿐이란다.”
“이…… 괴물.”
“내가 괴물이면 너는 뭐지?”
리리엘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괴물의 힘을 받아서 삶을 연명하는 버러지?”
“아니야!”
“푸흣……!”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사람이야!”
피거품이 끓어오르면서도 티리엘은 절대 아니라고, 나는 너 따위와 다르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어…….’
과연 자신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리석은 것. 너는 태생부터 내게 복종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몇 달 전 치수 사업 공개 경합일, 슈엘라의 몸에서 사기가 터져 나오던 때.
그때부터 몸에 이상이 생겼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불쾌하고 거북한 감각을 느끼는 〈사기〉에 자신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기에 노출되자 오히려 전신에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리리엘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티리엘의 삶은 악몽으로 뒤바뀌었다.
“넌 내가 나를 위해 안배해놓은 도구야.”
“네 어미가 널 품었을 때 뱃속에 내 사기를 불어넣었지.”
리리엘은 인간의 태아에 자신의 권속을 심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자라나 때가 되면 각성해 내 수족이 되도록.”
반은 인간, 반은 리리엘이 심어놓은 괴물.
“자아, 그러니 어서 네 근원이자 주인인 내게 복종하렴.”
리리엘의 뜻에 따르지 않자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새까맣게 썩어들어 갔을 때는 정말 공포에 질렸다.
귀족 영애로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온 티리엘로서는 모든 것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리리엘은 때때로 찾아와 그녀를 고문했다.
루아티샤에게 거짓된 정보를 말하도록, 혹은 루아티샤에 대한 정보를 토해내도록.
가끔은 정말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리리엘의 뜻을 따르고 싶었다.
자신 안에 깃들어있는 더러운 리리엘의 힘이 편해지고 싶지 않냐며 속살거리는 게 끔찍했다.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몸이 상했을 때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루아티샤가 찾아왔다.
티리엘은 하마터면 루아티샤를 끌어안고 엉엉 울 뻔했다.
부모님께는 내색조차 하지 못한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루루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리고 말하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변하는 건 아닐까.
나는 괴물인데…….
루아티샤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웠다.
그래서 차라리 웃었다.
온 힘을 다해 웃으면서 활기차게, 평소처럼.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달라며, 황자님과는 어떻게 된 거냐며 졸랐다.
루아티샤는 걱정하는 게 분명했지만, 이내 그 기색을 감추고 평소처럼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루아티샤가 오히려 리리엘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있다고 해서 더더욱.
“다른 건 없는 거지?”
“다른 거?”
“……리리엘이 뒤에서 너한테 해코지를 했다거나.”
루아티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괜찮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기뻤다.
가슴이 푹 내려앉을 정도로 안도감이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헛된 일은 아니구나.
그런 한 편으로 가슴 저 밑바닥에서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어쩌면.
루아티샤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무사하다면 내가 리리엘에게 딱 하나만 말해도 되는 거 아닐까.
아주 조금만 편해져도 되는 게 아닐까.
루아티샤가 너무 곤란하지 않도록, 리리엘이 요구했던 정보 중 아주 사소한 것 하나만이라도一.
“……전에 말했던 거 있잖아. 그 치수제.”
“응.”
“그거 어디에서 할지 결정했어?”
그 말에 옷을 정돈하던 루아티샤가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티리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맑고 투명한 빙하수 같은 눈동자가 꼭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거 같아서一.
티리엘은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며 입술을 열었다.
“아니야, 알려줄 필요 없어. 그냥一.”
“결정했어. 라이켈에서 할 거야.”
루아티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답해준 것일까.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데 자신이 지레 찔린 걸까?
“또 올게. 그때까지 얼른 나아야 해?”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루아티샤를 보는 순간.
‘뭔가를 눈치챘구나.’
티리엘은 확신했다.
어렸을 적부터 팔짱을 낀 채 꼭 붙어 다녔던 친구다.
자신이 루아티샤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읽은 것처럼, 루아티샤 역시 자신의 표정을 보고 이변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믿어주고 있는 거야?’
티리엘은 루아티샤가 나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아티샤가 꼭꼭 덮어준 이불을 그대로 덮은 채.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날 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뜬 티리엘은 자신이 낯선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울어진 시야에 리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 후로 몇 날 며칠이 지났을까.
티리엘은 루아티샤에 관해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편해지겠지만, 자신이 별거 아닌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 한 마디가 루아티샤를 죽일지도 모른다.
리리엘은 티리엘을 짓밟으며 분노했다.
“내 명령을 듣는 게 네 본능이라고! 그깟 계집이 뭐길래!”
그러게.
뭘까?
나도 모르겠어.
이제 싫어. 아파. 괴로워. 이제 그만 죽고 싶어.
그래도一.
“루루는, 나를…… 믿어주고 있어.”
내가 지지 않을 거라고.
티리엘은 딱히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 적이 없다.
미래는 불안했고, 디저트를 뭘 시켜야 만족할지조차 고민이었다.
하지만.
루아티샤가 딸기 타르트가 맛있겠다고 말해줘서 고르면 정말 꼭 맛있었다.
그러니까一.
“나는 걔가, 흐, 고르는 건一 다 믿어.”
그 말이 리리엘을 완전히 자극했는지, 그녀가 화를 주체 못 하고 난리 쳤다.
쌤통이다.
꺽꺽 숨이 넘어가면서도 티리엘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비록 감각이 사라진 입술은 제대로 미소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그런 티리엘을 보고 리리엘이 멈칫하더니 이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알아낼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네 덕분에 좋은 무대가 떠올랐어.”
“버러지가 반항해봤자 꿈틀거릴 뿐이지.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도 네게 큰 교훈이 될 거야.”
* * *
라이켈 산에서 나는 곧장 아데르센 저로 향했다.
티리엘은 본인 침실의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계속 이 상태란다. 저번에 루루, 네가 다녀간 다음 날부터.”
아데르센 백작 부인이 수척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실을 나왔다.
침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드가 곧장 나에게 꼭 붙어 에스코트했다.
무너져내린 수원지에 갇혔던 이후로 시드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시드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순간이었다.
“그럴싸한 껍데기를 만들어놨네. 지금 인간 신관들은 별 능력도 없으니 인형인 걸 눈치채지도 못했겠지.”
갑자기 내 그림자 속에서 사람 형체가 솟아올랐다.
“너……!”
“안녕. 오늘도 예쁘네.”
카인이 살살 눈웃음을 쳤다.
하. 진짜 하나도 안 설렌다니까 이러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너 다 봤어?”
“그럼 다 봤지.”
“숙녀의 침실에!”
“흐응一. 그건 인간 기준이지. 나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거든.”
카인이 나른하게 눈매를 접으며 말했다.
“인간 세상에 왔으면 이쪽 기준을 지켜.”
“나는 꽤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족 기준이었으면 나는 이미 네 욕실에一.”
파사삭一!
내 얼굴을 향해 뻗어지던 카인의 손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손등에 시퍼렇게 돋은 얼음을 보니 보통 인간이었다면 동상에 걸려 살점이 떨어졌을 정도였다.
“꺼져.”
시드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짓씹었다.
“농담이야, 농담.”
휙휙 손목을 털어내며 씨익 웃던 카인이 그대로 마차 좌석에 처박혔다.
나는 조금 놀랐다.
시드는 묘하게 위험한 냄새를 폴폴 풍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내 앞에서 행동은 온순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거친 면모가 있다니.
‘……좀 멋있는 거 같기도. 표정도 좀 많이 섹시하구.’
一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콩깍지가 두껍게 꼈기 때문일까?
그치만 지금 시드 얼굴은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섹시하다고 할걸.
카인은 시드에게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킬킬대며 웃었다.
“어이쿠! 나를 쫓아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네 여자친구에겐 내가 필요할걸?”
카인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봤던 누워있는 티리엘이 진짜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오, 어떻게? 인간은 알아보기 힘들었을 텐데?”
“우정의 힘으로.”
“…….”
우정의 멋짐 따위 알지 못하는 마족 놈은 짜게 식은 표정이 됐지만,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뭐,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난날 티리엘을 만나고 돌아온 즉시 WBD와 SSS를 소환해 티리엘의 신변을 감시하고 보호할 것을 명했다.
‘그날 새벽, 산드라는 분명 이변을 감지했다고 했어.’
티리엘이 가짜인 줄은 몰랐지만, 아데르센 저에 침입했던 흔적이 밖으로 이어진 것은 발견했다.
WBD와 SSS가 합심해서 그 흔적을 추적 중이었으나 내가 수원지에 갇히며 완전히 멈췄다.
문제는 사기 추적은 중간에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 흔적을 따라가면 티리엘이 있을 거야. 빨리 찾아야 해.”
마지막으로 봤을 때 티리엘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일부러 티리엘에게 치수제가 어디서 열릴지도 알려주고 리리엘의 말에 맞춰 수원지로 갔는데.’
리리엘에게 티리엘이 어딨냐고 물은 것도 티리엘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위축된 리리엘이 티리엘을 놓아주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오늘 보니 안 통했나 봐.’
“내가 찾아줄까?”
카인이 은근하게 말했다.
여태 카인의 유혹 따위 정말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내가 찾아줄게.”
시드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흐음? 사기를 추적하는 것은 너보다 내가 더 나을 텐데.”
“내가 찾아줄게.”
시드는 카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재차 말했다.
‘……왜 이런 데서 경쟁하는 거지?’
조금 황당했다.
솔직히 시드와 카인 놈이 경쟁이 되어야 말이지.
“왜 경쟁해? 어차피 쟤가 찾아도 상관없잖아.”
“저놈이 네게 도움이 되는 게 싫어.”
“어차피 쟤는 나한테 의자나 책상 같은 거인 걸. 질투할 필요 없어.”
“야, 그거 마족 차별적인 발언이다!”
“나는 질투해.”
“바보.”
나를 보는 시드의 시선이 짙었다.
괜히 부끄러워서 나는 손을 꿈지럭거렸다.
시드가 그런 내 손을 움켜쥐며 미소 지었다.
아, 잘생겼어.
“야, 야. 너네 나 안 보이냐? 하씨, 내가 이런 취급이나 당하다니.”
쟨 낄끼빠빠 모르나.
빨리 찾으러나 가지.
한시가 급한데.
* * *
“커헉!”
티리엘은 몸을 웅크렸다.
아니, 몸을 웅크리려 했지만 사실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길고 길었다.
숨을 멈춰도 살아있던 이 저주스러운 몸뚱이도 명이 다한 모양이었다.
“내가 루아티샤 그년 때문에 무슨 수모를 겪고 있는지 알아?!”
리리엘이 티리엘의 가슴을 거칠게 짓밟았다.
환수까지 나타나며 리리엘의 계시가 확연히 신뢰성을 잃은 바람에 명문 세도가의 귀족들이 들고일어났다.
성녀로서 모은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고 오히려 루아티샤의 영향력은 더 강력해졌다.
심지어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감히 자신을 재판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끄으…….”
“애초에 네년이 정보를 줬다면 처음부터 치수제를 공개적으로 열자는 제안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이런 치욕도 없었을 터.
“생각해보니까 널 순종시키는 것보다 그냥 죽이고 네게 심어두었던 힘을 흡수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인간은 버러지긴 하지만 꽤 좋은 양분이거든.”
리리엘이 티리엘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너는 나의 일부가 되는 거야. 죽어서도 내 도구로서 네 사명을 다하는 거지. 기쁘지?”
끔찍하다.
차라리 죽기를 바랐지만 리리엘의 일부가 되는 걸 원한 건 아니었다.
“시, 싫어. 나는 괴, 괴물이 아니야…….”
“푸하하하!”
리리엘이 폭소를 터트렸다.
“아직도 그딴 소리야? 아아, 완전히 이거 코미디네? 반은 인간이라 이렇게 나약하고 버러지 같은 특성을 지닌 건가.”
리리엘의 조롱 따위 티리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꺼지기 직전에 가장 밝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티리엘은 몸이 불살라지는 고통 속에서도 선명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나는一.”
사람으로 죽고 싶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문이 열리며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누가 내 친구보고 괴물이래! 뒤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