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6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69화(269/353)
☆ 제269화 ☆
나는 오빠들을 향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솔직히 박제하듯 저렇게 얼리는 건 못하잖아. 범위 공격으로 한 번에 다 죽이는 걸 할 줄 아는 거지.”
“겨, 결과적으론 똑같은 거잖아!”
“아니야. 할 수 있어. 안 해봐서 그렇지.”
“그냥 흔적도 안 남기고 단번에 죽이는 게 더 멋진 거야.”
오빠들이 자기들도 멋지다며 낑낑거렸다.
참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 * *
손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왔다.
티리엘은 서서히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싫어…….’
정신을 차려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숱한 절망과 고통뿐일 터였다.
그러니 이대로 정신을 잃은 채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一.
‘루아티샤!’
그 순간 혼절하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 떠오르며 잠결인 듯 몽롱했던 의식이 단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독한 고통 탓에 기억은 여기저기 끊기고 엉켜 뒤섞인 상태였다.
하지만 리리엘이 루아티샤를 죽이려고 했던 것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 후로 어떻게 된 거지?
무사히 도망쳤을까?
티리엘은 억지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초점이 맞춰지자마자 보인 것은,
“티리엘! 정신이 들어?”
루아티샤였다.
“루, 루…….”
걱정이 가득한 얼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울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루아티샤가 깜짝 놀라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도 한참 눈물을 그치지 않자 티리엘을 안고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품에 안겨있자니 그냥 모든 것이 다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기를 접하고 난 다음 자신에게 닥쳤던 수많은 일들이 그저 꿈인 듯이.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걸 알아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으흑, 나, 나는 이제一.”
괴물이야.
지금도 자신의 몸 안에 깃들어있는 기묘한 힘이 느껴졌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 티리엘은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리리엘에게 고문당하는 숱한 시간 동안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새김질했던 말.
“루, 루루. 나 자, 잘못한 게 있어. 그때 너한테 물었던 거一 그거 미, 미안해. 미안, 흐윽…….”
이런 존재라서.
이런 괴물이라서.
그래서 괴물 주제에 편해지려고 한순간이라도 친구를一.
“티리엘.”
어깨를 붙드는 강한 손길에 티리엘이 흠칫하며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서 헤매는 듯했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루아티샤는 티리엘이 자신을 인식한 것을 확인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여전히 내 소중한 친구야. 너는 리리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잖아.”
티리엘은 숨을 멈춘 채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비겁한 변명 같아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준 걸까?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미안해할 게 없어. 오히려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
“정말 고마워, 티리엘.”
진심 가득한 감사 인사에 티리엘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서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슴 속에 뭉쳐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응어리가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리리엘의 말에 따르지 않고 소중한 친구와의 신의를 지키는 것.
그건 단순히 우정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결의였다.
그걸 놔버리면 정말로 괴물이 될 것 같아서.
티리엘은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나 애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루아티샤는 그걸 알아주었다.
“루아티샤.”
티리엘이 루아티샤의 손을 꽉 붙잡았다.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 선명했다.
“나를…… 죽여줘.”
지금 죽으면 적어도 괴물이 아니라 네 소중한 친구로 죽을 수 있으니까.
루아티샤는 가만히 티리엘을 바라보다가 탁, 소리 나게 이마를 튕겼다.
“싫어.”
티리엘은 살짝 얼얼한 이마의 통증을 느끼며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조금 화난 표정.
알고 있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이기적인 부탁을 하는지. 그래도…….
“난一.”
“나는 해피엔딩이 좋아.”
루아티샤가 티리엘의 손을 마주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책 읽을 때도 그랬어. 누군가의 희생으로 남주와 여주가 행복해지는 건 딱 질색이야.”
다시는 아이젤 영애처럼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티리엘에게 WBD와 SSS를 붙였고, 이상을 눈치 챘으면서도 치수제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희생이 아니야. 나는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괴물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왔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죽고 싶었다.
“티리엘, 너는 사람이야.”
“……!”
“앞으로도 계속 사람일 거야. 네가 아주 못된 짓을 한다고 해도 네가 사람인 건 변하지 않아.”
“하지만一.”
“친구가 뭐야.”
루아티샤가 티리엘을 향해 씨익 웃었다.
“토라지기도 하고 어쩔 땐 지지고 볶고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거잖아?”
그 웃음이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해서.
티리엘은 어느 순간 잊혔던 희망 위로 다시 햇빛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티리엘, 네가 나를 도와줬던 것처럼 나도 너를 도와줄게.”
루아티샤라면, 내 친구라면 어떻게든 해줄지 몰라.
그냥 믿고 싶어졌다.
아니, 믿을 수 있었다.
절망이 파도처럼 몇 번이고 휩쓸고 지나가 그 안에 바다처럼 잠겨 있어도.
루아티샤의 손을 잡으면 언제든지 햇볕이 쨍한 수면 위로 나올 수 있었다.
처음 만난 그날 그랬듯이.
* * *
“세상에!”
숨을 죽인 채 영상석을 통해 루아티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저, 저런 게 가능한 거였나요?!”
“신체 내부에서 융합된 사기를 정화시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외부에 방출된 사기를 정화 시키는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지요!”
“파에라톤 공녀께서 지닌 힘이 저 정도라니……!”
신관들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그럼 티리엘은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데르센 백작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타렌카 후작을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제 딸아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아니라 내 손녀딸한테 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후작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런 곳으로 손녀분을 보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내 손녀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있어야지.”
타렌카 후작이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도 아데르센 백작은 한 번 더 읍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타렌카 후작은 영상에 비친 손녀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중해서 감은 눈.
긴 머리카락이 마치 승리의 깃발처럼 휘날렸다.
루아티샤의 손길에 따라 시뻘건 사기가 흩어지며 불티처럼 튀었다.
마치 성화에 나올 법한 광경.
“역시 진짜 성녀는 파에라톤 공녀였군요. 저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 분께 악마라는 누명을 씌우려 했다니!”
“진짜 악마는 악독한 리리엘이었던 거죠!”
“파사의 능력을 지닌 진짜 성녀를 죽이려고 이런 판을 짠 것입니다!”
“아까 왜 그렇게 파에라톤 공녀에게 집착하나 했는데, 이제 이해되는군요.”
“더 이상 심문할 것도 없습니다!”
“더 살려둬봤자 분란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애초에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리리엘의 죽음을 입에 담았다.
이윽고 황제의 입술이 열렸다.
“리리엘은 감히 성녀를 사칭해 제국민을 속이는 극악무도 한 죄를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이용해 감히 성녀인 파에라톤 공녀를 음해하려 하기까지 했다. 또한…….”
황제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이에 사형에 처한다.”
판결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기실 리리엘은 인간도 아니었으니 이런 판결은 의미 없었다.
다만 공식적으로 형을 집행해 제국민들 앞에 세우기 위한 절차일 뿐이었다.
제국민들 역시 이 일에 대해 직접 알 권리가 있으니.
“또한.”
황제의 눈이 날카롭게 대회의장을 훑었다.
“이 일에 연루된 자들 역시 조사를 명한다.”
* * *
피바람이 불었다.
리리엘의 사형은 확정적이었고, 그간 리리엘을 따르고 옹호하며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준 자들 역시 옥사에 갇혀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이었다.
모든 언론은 이 일에 연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해야만 제국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부르짖었고, 제국민들 역시 이 사건에 그 어떤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죽어라, 이 괴물!”
“괴물 주제에 감히 성녀 행세를 하다니!”
“사특하고 교활한 악마!”
“우리 성녀님을 죽이려고 해?!”
“신전은 각성하라! 진짜 성녀님을 못 알아본 것도 기가 찬데, 성녀님을 죽이려고 하는 악마의 편에 서다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리리엘을 향해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퍼억!
누군가가 던진 돌이 리리엘의 관자놀이에 직격했다.
붉은 피가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데도 리리엘의 눈은 더 형형하게 빛나며 독기 어린 시선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그 반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사람들은 더 크게 분노했다.
쓰레기와 돌무더기가 리리엘에게로 쏟아졌다.
나는 마차 안에 탄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착각일까?
이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리리엘과 내 시선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나를 인식한 리리엘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으니까.
비난받는 리리엘의 모습은 처참했지만, 그간 저질렀던 짓을 생각하면 동정심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만족해? 네가 바라던 대로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고 있잖아?’
오늘 리리엘의 사형식에는 성녀 즉위식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리리엘은 마치 내 입술 움직임을 알아본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가만있어!”
“그 더러운 입으로 성녀님의 존명을 입에 담다니!”
“이 지경이 됐는데도 반성조차 하지 않고!”
집행관들이 단번에 리리엘을 바닥에 짓눌렀다.
힘을 잃은 리리엘로서는 그조차 당해낼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리리엘이 바짝 고개를 치켜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一一一一.”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새파란 칼날이 허공에서 반짝였고一.
시드가 내 눈을 가렸다.
“내 주인님 눈에 더러운 게 담기면 안 되지.”
앞을 가렸던 손이 치워졌을 때 보인 것은 잘생긴 시드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카야스에델의 대리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제도에 독자님에 대한 찬사가 울려 퍼집니다!] [제국민이 독자님을 성녀로 인정하는 가운데 억울해하는 무리 발생!]억울?
‘설마 리리엘의 끄나풀들인가?’
누군지 파악해서 이 기회에 전부 소탕一.
[이제서야 공녀님을 성녀라고 부르는 자들 따위와 우리는 다르다!] [우리 치킨교는 언제나 공녀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치느님을 전파하신 공녀님이야말로 진정한 성녀님! 성녀님 만세! 만만세!] [치킨교의 한마디: 다른 맛의 치느님을 이 땅에 전파하실 예정은 없나요?]“…….”
후.
안 되겠군.
마늘간장 치킨을 출격시키는 수밖에.
[영향력이 폭증한 당신에게 10000캐시 뽑기권 선물★]이어지는 알림을 보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다.
시드가 불쑥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드?”
“왜 그렇게 멍해?”
“……그냥, 기분이 좀 묘해서.”
소문만 들었을 땐 성녀인 줄 알았던 리리엘이 사실은 인간도 아니었고,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였다니.
그 사실을 밝혀내고 족치기까지 했다.
마치 하나의 대단원이 끝난 기분.
로판으로 치자면 이제 역경을 이겨냈으니 남주와 꽁냥거릴 일만 남은 듯한…….
그때였다.
“이렇게 좁은 마차 안에서 나랑 단둘만 있는데.”
시드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스윽一.
그의 커다란 손이 유리창을 자근히 짚었다.
자연히 나는 빠져나갈 구석 하나 없이 시드와 마차 시트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다른 생각하는 거야?”
유려한 눈매 속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말도 안 돼.’
시드는 숨결조차 잘생겼나 봐.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릴 리 없잖아.
콩닥콩닥.
나는 괜히 가슴을 누르며 침착하려 애를 썼다.
지금 타이밍 엄청 좋은 거 같아.
딱 키스할 때 아닌가?
나는 너무 기대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생각 못하게 해 줘.”
시드의 동공이 일순 확장되더니 다음 순간 눈빛이 확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