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7화(27/353)
☆ 제27화 ☆
한참의 침묵 후, 익시온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래, 이 못난이가.”
깜빡깜빡.
루아티샤는 물기 가득한 커다란 눈을 순진하게 감았다 떴다.
“칫.”
익시온이 짜증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흥이 깨졌어.”
뒤돌아 가는 그를 멀뚱히 보고 있는데 아레스가 말을 붙였다.
“루루는 오빠가 좋아?”
“응!”
당연하지.
오빠는 잘생겼고 착하잖아.
고개를 끄덕이자 아레스가 손을 뻗어 뺨을 감쌌다.
아주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촘촘한 속눈썹이 아레스의 눈가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아래에서 붉은 눈동자가 기묘하게 반짝였다.
부드러운 미소.
“정말 귀엽네, 내 동생은.”
“고마워! 아레스는 정말 멋져!”
‘잘생긴 동생바보 오빠 진짜 최고되신다!’
루아티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레스랑 꽁냥꽁냥 남매의 우애를 다지고 있으려니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음에 안 들어.”
루아티샤를 노려보던 익시온이 그 말만 남기고 휭하니 자리를 떴다.
‘흥, 나도 너 맘에 안 들거든?’
루이티샤도 지지 않고 째려봤다.
비록 뒤통수였지만.
‘퀘스트만 아니었으면 상관도 안 했어!’
거칠게 콧김을 뿜으며 루아티샤는 팩 고개를 돌렸다.
완전 별로인 익시온 대신 사근사근한 아레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머리칼 엉망된 거 봐. 추웠겠다, 내 동생. 들어가서 따뜻한 코코아 마시자.”
……다시 보니 아레스도 별로야.
‘내 마음의 별로!’
루아티샤는 활짝 웃으며 아레스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응! 쿠키도 먹을래!”
* * *
– 진행 중인 퀘스트
1. 〈착한 독자의 길(1)〉
2. 〈내 재산은 멈추지 않아!(1)〉
3. 〈집안을 먼저 다스려야(1)〉
끄으응.
나는 퀘스트 목록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일단 1번은 캐시가 부족해서 완료할 수 없고.’
2번은 사업하라는 거니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당장 처리할 건 3번인가.’
무엇보다 실패 시 인생 하차라는 패널티가 걸려 있다.
‘익시온에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살 수 있다는 건데.’
“드디어 때가 왔는가.”
나는 양손을 깍지 끼고 턱을 얹은 채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내가 누구냐!
수많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은 헤비 리더!
가장 많은 베스트 댓글을 달성했다고 신에게 별점 평가까지 부탁받으신 몸이다!
……진짜 신인지는 차치하고서.
“드디어 나의 진면모를 드러낼 때다!”
틱틱대는 오빠를 꼬셔서 여동생 바보로 만들기.
로판에서는 아주 단골 장면이라구!
당연히 로판 독자인 내 전공이다!
익시온은 틱틱대는 정도가 아니긴 하지만 문제 없음!
로판 오빠들 중에선 제정신 아닌 것들 천지다!
뭐, 물론 내가 실제로 틱틱대는 오빠를 꼬셔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책은 곧 간접 체험!’
내가 본 수많은 로판이 나의 길을 인도해줄 것이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빛나는 태양을 척, 가리켰다.
보인다, 태양처럼 밝은 나의 미래!
‘가장 좋은 건 오빠 꼬시기의 달인인 여주들의 능력을 소환하는 거겠지만.’
안타깝게도 캐시가 부족한 지금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이 독심술 비스끄무리하니까.
‘거기다 기본 사항은 전부 다 숙지하고 있는걸!’
1. 재수 없는 오빠가 아무리 틱틱대도, 밀어내도 굴하지 않는다.
2. 자꾸 보면 정이 든다. 최대한 자주 얼굴을 비출 것.
3.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웃으면 복이 온다. 빡쳐도 웃자!
“…….”
정리하니 좀 이상한데.
이게 진짜로 통할까?
“아냐 아냐! 여긴 다른 곳도 아니고 로판 세계라구! 괜찮을 거야.”
……진짜 괜찮겠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많은 로판 여주 언니들의 가르침, 제가 잘 따르겠습니다!
* * *
뾱.
뾱 뾱 뾱.
뾱 뾱 뾱 뾱 뾱 뾱
“아 좀. 시끄러!”
익시온이 팩 뒤를 돌며 신경질을 냈다.
“응, 그치만 아빠가 이거 신구 다니랬어. 공작성 너무 넓다구.”
아빠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는지 익시온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왜 따라오는 거야.”
저벅.
익시온이 한 발짝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며 비뚜름한 미소를 걸쳤다.
“알고 있어? 지금은 널 보호해줄 아레스 녀석도 없어.”
붉은 눈동자가 위험하리만치 어두워졌다.
그와 동시에 익시온의 뒤에서 스스슥,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파에라톤에 유일하게 마기를 타고 나지 않은 자.”
노래라도 하듯 가벼운 어조.
“네 약하디약한 몸은 마기를 견딜 수 없다고 하던데.”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미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걸.”
그에 반해 그가 내뿜는 마기는 세상을 거꾸러트릴 듯 난폭했다.
새까만 해일처럼 일어나는 흉악한 기운 앞에서 나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내 목숨은 촛불보다 희미해서 입김 한 번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익시온이 즐거워합니다.] [익시온이 독자님께 흥미를 느낍니다.] [익시온은 독자님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주저앉을까, 비명을 지르며 달아날까, 그것도 아니면 엉엉 울며 살려달라고 빌까 궁금해합니다.]아까부터 뜨고 있는 상태 메시지가 나를 안심시켰다.
솔직히 메시지를 읽어도 저 어린노무 자식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지금 당장 나를 해칠 마음이 없다는 것.
검은 해일이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눈 앞을 가리는 새까만 파도 사이로 익시온의 얼굴이 보였다.
개미굴에 물을 부으며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공포에 휩싸인 내 반응이 과연 어떨지 기대하는 표정.
그 순진하면서도 잔인한 얼굴.
나는 그 눈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익시온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익시온이 독자님의 반응에 당황합니다.] [익시온이 독자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합니다.] [익시온이 초조함을 느낍니다.]익시온이 초조하다는 알림과 함께 어둠이 확 물러갔다.
다시 밝게 드러난 세상에는 완전히 당황한 표정의 남자애가 보였다.
꼬맹아.
누나가 그래도 인생 2회차야.
꼬맹이가 겁주려고 한다고 순순히 당해줄 거 같아?
그것도 내가 벌벌 떨면 그거 비웃으려고 작정한 놈한테.
‘누나는 네 마음대로 놀아나 줄 생각이 없어요.’
당황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이거나 먹어라!
“익시온, 나랑 놀아주는 거야?”
나는 활짝 웃으며 “꺄아!” 소리를 질렀다.
“하아?”
“나 알아! 술래잡기지? 익시온이 잡았으니까 이번엔 내가 술래야?”
나는 슬슬 물러가고 있는 마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차피 공격용 마기가 아니라서 만져도 상관 없다. 아까 집어삼켜졌을 때도 멀쩡했고.
“무슨一.”
익시온이 슬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후후, 당황하고 있군. 당황하고 있어.
어른을 놀리기엔 100년은 일러요, 요 녀석아!
“잡았다!”
나는 마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활짝 웃었다.
“이번에는 마기 말구 익시온 잡을래! 내가 다시 술래야!”
[익시온이 독자님과 꽃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머리에 달면 아주 잘 어울릴 거라 확신합니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익시온을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뾱뾱뾱뾱!
뾰뵤뵤뵤뵤뵤뵤!
걸을 때마다 울리는 공격적인 소리에 겁을 먹은 것인지 익시온의 얼굴이 구겨졌다.
“너 그러다가一.”
삐끗.
너무 망아지처럼 달렸는지 발이 휘청였다.
‘으아! 넘어진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아픔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 코가 바닥에 꽝 부딪치는 대신 단단한 팔이 내 몸을 받아냈다.
“……이럴 줄 알았다.”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눈을 떠보니 익시온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못된 꼬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익시온이 독자님을 왜 잡아줬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을 느낍니다.] [익시온이 엄청난 불쾌감을 느낍니다.]‘아니!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 취소야!’
익시온이 나를 휙 던지려고 해서, 나는 꺄르륵 웃으며 냉큼 그를 꽉 끌어안았다.
“잡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줄 거 같아? 흥이다!’
익시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꺄르르 웃는 나를 내려보다 툭, 내뱉었다.
“이상하게 생겼어.”
이상하게 생겼다니! 애기한테!
나는 더 환하게 웃으며 짤뚱한 팔로 익시온의 목을 감쌌다.
절대 목 조르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익시온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너…….”
“익시온 힘 쎄다!”
익시온이 제 목을 조르던 나를 휙 들어 올려 떼어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놀이인 척 허공에서 양팔을 휘저었다.
“높아! 번쩍번쩍!”
꺄르르, 꺄르르륵!
진짜 목 조른 거 아냐.
그거 기분 탓이야.
열심히 연기하며 힐끔 아래를 내려다 보자 익시온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뭐지, 진짜 어디 모자라나?”
이 못된 꼬맹이가!
* * *
최근 익시온은 어딜 가나 저를 따라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뾱뾱뾱.
뾱뾱뾱.
그 짤따란 다리로 어찌나 잘 뽈뽈뽈 돌아다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성큼성큼 걷던 익시온이 멈칫했다.
뾱뾱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찮은 솜뭉치가 하인과 뭐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가 좋다고 웃는 거야.’
하여간에 짜증 나는 애였다. 별로 재밌는 얘기 같지도 않은데 저렇게 웃다니.
귀찮게 쫓아오던 주제에 한눈이나 팔고.
그러다 놓치고 나서 빽빽 울어도 소용없다.
하인과 이야기를 마친 솜뭉치가 이쪽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익시온은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녀석.’
약한 것들은 그를 보면 다 새파랗게 질려서 버러지처럼 발발거렸다.
파에라톤이면서 마기도 못 타고 난 약골은 당연히 그를 마주 보지도 못해야 했다.
하지만.
“잡았다!”
꺄르르, 웃는 얼굴.
목을 보드랍게 끌어안던 포동포동한 팔.
“익시온 힘세다!”
아이는 따끈따끈했다.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서 조금만 힘을 빼면 떨어트릴 것 같았다.
“…….”
가슴께를 타고 오르는 기묘한 감각을 떨쳐내듯 익시온은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 뾱뾱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관없어.’
익시온은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자 뾱뾱 소리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뾱, 뾱뾱뾱뾰뵤뵤뵤뵤뵤뵤一.
결국 익시온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자 아니나 다를까 저 솜뭉치가 또 데구루루 구르려 했다.
‘귀찮아, 진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익시온은 능숙하게 넘어지는 루아티샤를 받아냈다.
“익시온!”
뭐가 그리 좋은지 못생긴 게 또 활짝 웃었다.
얜 진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확신하며 익시온이 루아티샤를 내려놨다.
그를 보는 아이의 얼굴이 뾰로통했다. 마치 머리에 문제 생겼다는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럴 리는 없지만.’
익시온이 루아티샤에게 경고했다.
“따라오지 마.”
이번에는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뾱뾱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눈치 보듯 뾱, 하더니 뾱, 뾱, 살살 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익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뾱뾱 소리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듣고 걸음을 늦췄다.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익시온, 나 귀찮아?”
어느새 옆으로 와 뾱뾱거리는 솜뭉치가 물었다.
“귀찮아.”
“나는 익시온이랑 잘 지내구 싶어.”
익시온이 고개를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잘 지내고 싶다니.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익시온이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 때였다.
“루루.”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루아티샤가 휙 뒤를 돌았다.
“아빠!”
양팔을 번쩍 들고 뾰뵤뵤뵤 달려간 아이를 파에라톤 공작이 번쩍 안아 들었다.
익시온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벌써 열흘 넘게 보는 광경이었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빠, 일 끝났어요?”
“아직.”
“그럼 같이 밥 먹을 수 없어요?”
루아티샤가 시무룩해져서는 축 처진 눈으로 물었다.
파에라톤 공작이 그런 딸의 뺨을 톡 쳤다.
“루루랑 맘마 먹을 시간은 있어.”
……맘마?
잘못 들었나.
저 귀찮은 솜뭉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귀가 안 좋아졌나 보다.
익시온이 멀쩡한 자신의 인지 능력을 부정했다.
“진짜지요?”
“그래.”
그러건 말건 루아티샤와 파에라톤 공작은 둘만의 세계에서 꺄르륵하며 잘 놀았다.
익시온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배 속에 귀찮은 벌레가 들어앉은 것만 같은…….
“익시온과 함께 있었나?”
“네!”
“……괴롭힌 건 아니겠지.”
파에라톤 공작의 시선이 익시온을 향했다.
저번에 익시온이 루아티샤를 향해 마기를 사용하다 아레스와 충돌했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진짜로 루아티샤를 해할 리는 없어서 내버려두고 있긴 하지만.’
최근 너무 자주 붙어 다니는 것 아닌가.
파에라톤 공작의 시선을 받은 익시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괴롭혔다며 루아티샤가 일러바쳐도 할 말이 없었다.
마기를 이용해 몇 번이나 겁준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아냐!”
루아티샤가 볼을 부풀리며 빽 소리쳤다.
“익시온 나 안 괴롭혔어!”
익시온이 고개를 들어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익시온이랑 놀았어!”
“놀았다고?”
“응, 재밌었어!”
루아티샤가 파에라톤 공작의 말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익시온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랑 있는 게, 재밌다고?’
파에라톤 공작이 가만히 막내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어쩐지 조금 전과는 달랐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더?”
“네?”
“아빠랑 있는 것보다 더?”
“…….”
“…….”
루아티샤와 익시온의 마음이 처음으로 맞았다.
남매라는 것을 증명하듯, 둘 다 똑같은 표정으로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