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7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72화(272/353)
☆ 제272화 ☆
“어머, 성녀님.”
“언제 오셨어요?”
“진짜 성녀님께서 오셨어!”
싱글싱글.
귀부인들이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쪽팔려 하는 내 얼굴을 보고 더 광대가 올라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성녀님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마치 축복을 받는 것처럼.”
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림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랄까?”
기분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 초상화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다나가 그렸으니까 그런 거지!’
* * *
“아가씨.”
다나는 루아티샤를 발견하자마자 싱긋 웃으며 다가갔다.
“다나, 잘 지냈어?”
“아가씨 덕분에요.”
“그런데…… 왜 내 그림을 그린 거야?”
창피한 듯 볼멘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고 다나는 웃음을 참았다.
정식으로 성녀로 공인받아 곧 즉위식을 치를 루아티샤를 축하하기 위해서, 미력하게나마 루아티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一.
“……안 되나요? 저는 아가씨를 그리고 싶었는데…….”
시무룩해 하자 루아티샤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우리 다나의 그림은 정말 귀한 그림인데.”
손까지 잡아주며 칭찬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후후.”
루아티샤의 눈이 샐쭉해졌다.
“뭐야. 나 놀린 거야?”
“놀리다니요.”
다나가 루아티샤의 손을 꽉 잡았다.
물감과 시너(thiner:도료의 점성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혼합용제)로 상해 거칠거칠한 자신의 손에는 루아티샤의 손이 비단보다도 더 매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손으로 루아티샤의 손을 잡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좋아서요.”
다나는 이 다정하고 상냥한 아가씨가 정말 좋았다.
루아티샤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평생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그대로 둔 채 살았을 것이다.
루아티샤는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해준 사람이었다.
신시아와 아펠리아가 제멋대로 칠해 망가진 캔버스 같았던 삶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
“제 그림에 마력이 깃든 것은 다 아가씨 덕분이에요.”
“또 그런다. 그건 다나가 노력해서 이뤄낸 거야.”
루아티샤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 결과가 오늘 나온 거고.”
오래전, 다나는 루아티샤에게 자신이 본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편지와 함께 그림을 보냈다.
그 그림을 보고 루아티샤는 깨달았다.
왜 어린 다나를 아동 학대에서 구하는 게 왜 그녀의 명성으로 되돌아오는지.
이건 단순하게 잘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훌륭한 예술 작품에 마음을 뒤흔드는 마력이 깃들어있다고 하지.’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
이게 심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괴담처럼 화제가 되기도 한다.
노래에 홀려서 자신도 모르게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지붕 위에 올라간다는 이야기.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비극적인 소설의 주인공에 심취해서 자살한 사람까지 있다.
안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돈을 부르는 그림을 걸고 난 뒤 사업적으로 대박을 쳤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건 그냥 괴담이나 미신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는데…….’
루아티샤는 다나의 풍경화에서 미약하게나마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다.
자신이 본 풍경을,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루아티샤에게 그대로 보여 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겼던 걸까?
그저 잘 그린 풍경화를 보고 시원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마력이었다.
검술의 극한에 치달은 사람이 검기를 다루듯, 극한에 치달은 예술가의 손끝에서도 묘한 기운이 어리는 것이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다나의 모든 그림에 그런 힘이 깃든 건 아니었다.
다나가 보내준 수많은 그림에서 루아티샤가 이런 감각은 느낀 건 그 그림이 유일했다.
그래서 셰루인 부인이 크로펠 대부인과 함께 찾아와 회장의 권한으로 자신을 〈메티스〉의 일원으로 천거하겠다고 말했을 때.
“제가 셰루인 부인께 치른 값 보다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단 하나뿐인 기회를 제게 사용하시는 거니까요.”
“그럼 거절하겠다는 말이니?”
“아니요. 이런 대단한 기회를 놓칠 순 없죠. 저 역시 추가금을 치르겠다는 뜻입니다.”
루아티샤는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안목과 예술성으로는 정평이 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셰루인 부인이 다나를 전담해서 키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오랜만이에요, 아가씨.”
작업실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다던 다나가 찾아온 날.
“아가씨, 성공했어요.”
“……!”
“그러니 말씀하세요. 기꺼이 아가씨의 체스 말이 되도록 할게요.”
다나는 자신의 힘을 다루는 법을 마스터했다.
“하지만 역시 아가씨께 도움이 되진 못했어요.”
다나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가씨께서 저는 아가씨의 체스 말이 아니라고, 기사님까지 해주셨는데…….”
“무슨 소리야. 그런 생각하지 마.”
다나가 뭘 말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나의 그림을 리리엘을 그린 성화의 카운터로 쓸 생각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리리엘이 성녀 즉위식을 치르고 난 뒤, 우리 예쁜 다나를 세상에 ‘쨔잔!’ 하고 선보일 생각이었다.
‘리리엘이 치수제에서 그 지랄을 떨 줄 몰랐으니.’
성녀라면 당연히 성화를 남긴다.
그리고 이 성화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 성녀를 배알할 기회가 가물에 콩 나듯 적은 사람들에게는 성녀의 초상화만큼 뽕을 채워주는 게 없으니까.
무려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성녀다.
루아티샤 방해가 있어서 좀 애매해졌지만,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제국민이 열광할 법했다.
동시대에 성녀가 탄생했다는 것에 기뻐하며 누구나 성녀님의 성화 한 장쯤은 가지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성녀의 성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건 루아티샤에게는 굉장한 적신호였다.
루아티샤와 리리엘이 번번히 부딪칠 때, 별 상관없는 공녀님보단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성녀님이 잘되길 바라는 게 사람 심리 아니겠는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의 무의식 영역에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왜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초상화나 사진을 곳곳에 걸어놓게 하겠는가.
태국 왕실에서도 그렇고, 북한이나 중국에서도 그렇고.
‘리리엘의 성화가 이슈가 될 때 딱 다나의 그림을 발표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성녀님의 초상화니 어련히 축복이 깃들었겠거니, 하는 성화와 달리一.
‘다나의 그림은 진짜니까.’
당연히 리리엘의 성화는 다나의 그림만도 못하다는 소리가 나돌 거고.
‘그때 리리엘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1미터 거리에서 직관하고 싶었는데.’
어휴, 아직 먹일 사이다가 정말 많이 남았는데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그렇게 가버린 게 참 아쉬웠다.
물론 완전히 보낼 생각으로 초소형 영상석까지 준비했던 거긴 한데.
‘아쉽다고 해서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건 절대 아냐.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다나는 여전히 시무룩한 상태였다.
“물론 우리의 원래 계획이 어긋나긴 했지만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
루아티샤는 그림이 걸려 있는 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역시 성녀님의 성화는 축복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봐요.”
“셰루인 부인, 이 그림은 판매하시지 않나요?”
귀부인들의 말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렸다.
“내 초상화를 보고 저렇게 느끼는 건 다 다나의 능력 덕분이잖아. 덕분에 성화 걸어놨는데 별거 없다는 소리는 안 듣겠어.”
눈을 찡긋하는데 다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건 아가씨의 초상화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예요. 저랑 상관없어요. 제 그림 따위 아가씨의 사랑스러움은 반의 반도 담지 못한 쓰레一.”
“어, 그래. 미안.”
깜빡했다.
‘얘도 만만찮은 내 광신도였지.’
루아티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나를 바라보는 때였다.
“뭔데 저렇게 시끄럽지?”
그림이 있는 쪽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셰루인 부인께서 자선을 목적으로 그림을 팔겠다고 말씀하셨나 봐요.”
“아니, 그 말 한마디에 저 난리가 나? 역시 다나의 그림은 최고一.”
루아티샤는 말을 멈췄다.
‘어? 저건 황비님의 사람인데?’
황비의 시녀나 보좌관처럼 얼굴이 잘 알려진 존재는 아니었지만, 암암리에 활약하는 측근이었다.
‘산드라랑 프리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WBD와 SSS의 부대장과 부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을 사겠다고 외치는 귀족들에게 조용히 뭐라고 속삭이자, 귀족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약점을 잡힌 사람처럼.
그리고 그 즉시 그림 구매를 포기했다.
‘아니, 오빠들의 보좌관들까지?’
보좌관들 중에서도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네미스? 네미스가 대체 왜 여깄어?!’
처음 판매할 생각 없냐고 셰루인 부인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은 힘도 못 쓰고 밀려나는 중이었다.
“와, 가격 올라가는 것 좀 봐요. 경매도 아닌데 엄청나네요.”
“솔직히 오늘 티파티에서 성화를 공개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저도 각오를 하고 왔는데 도저히 못 당해내겠어요.”
“그런데 저 사람들 처음 본 사람들인데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에게 팔라며 미친 듯이 난리를 피우는 사람들一루아티샤의 가족들과 황비, 시드리한의 명을 받은 게 분명한一을 보고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우.”
루아티샤는 학을 뗐다.
“진짜 우리 가족이지만 좀 심각하다니까.”
“아가씨의 그림인데 그럴 만도 하죠. 가장 마음에 드는 아가씨 그림은 저도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저만 간직하고 있어요. 물론 그래봤자 아가씨의 실물에 비하면 털끝만도 못할 정도로 비루한一.”
“어, 그래.”
루아티샤는 흐린 눈으로 대강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빛냈다.
“아, 맞다. 다나.”
“네?”
“우리 니케 좀 그려줘.”
“니케라면…….”
“내 환수 말이야. 알지?”
“그럼요.”
“걔가 얼마나 멋진데. 영상 봤어? 지금 큰 모습이랑 어렸을 때 모습도 그려줘.”
“어렸을 때 모습이요?”
“영상석에 울 애깅이 어릴 때 다 저장해놨거든. 후우, 이렇게 클 줄 알았으면 더 찍어놓는 건데. 물론 이렇게 자란 모습도 늠름하고 귀엽고 멋지고 혼자 다 하지만!”
“네에…….”
“어렸을 때 영상 보면 다나도 깜짝 놀랄 거야! 우리 말랑콩떡 솜방망이 애깅이가 말이야, 어렸을 때 얼마나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는지 세상에 내가 태어나서 그토록一.”
대흥분해서 끊임없이 말하는 루아티샤를 보며 다나는 결국 미소 지었다.
팔불출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맨날 아빠와 오빠들, 할아버지더러 심각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만, 루아티샤 역시 똑같았다.
* * *
네미스는 여기저기 다 털린 모양새로 터덜터덜 걸어 아지트로 들어섰다.
“성화는?”
이런 상태인 자신을 보자마자
괜찮냐는 말도 없이 그림부터 묻는 단장을 보자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단장이 그냥 단장이었을 때도 뭐라 못하던 네미스였다.
이제는 단장뿐만 아니라 제국의 황자님이시라는 것까지 알게 됐는데.
“……파에라톤 공작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뭐?”
“그 여자…… 보통이 아니에요. 이름이 산드라라고 하던데 아주 미친 사람처럼……. 프리스라는 자는 일행인 것처럼 보였는데 그 여자한테 머리칼이 쥐어 뜯겼다니까요?”
“그래서 못 얻었다?”
“……죄송합니다.”
방안의 온도가 한순간에 내려갔다.
네미스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시드리한의 눈치를 살폈다.
차라리 대형 의뢰를 실패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것 보시오! 내가 가는 게 더 나았을 거라니까!”
바렌이 울끈불끈한 제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아니, 그건 절대 아닙니다.”
바렌이 귀족들 틈에서 난장을 피웠을 생각을 하자 네미스는 아찔해졌다.
시드리한은 혀를 쯧, 하고 차더니 품에서 자그마한 초상화를 꺼냈다.
루아티샤의 초상화였다.
그걸 본 네미스가 입을 떡 벌렸다.
“뭐, 뭡니까! 이미 한 장 가지고 있잖아요!”
“겨우 한 장이야.”
시드리한의 말에 네미스는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화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 한 장을 얻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래서 커플들은……!’
본인에게도 애인이 있다는 건 잊을 정도였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