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7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78화(278/353)
☆ 제278화 ☆
어이가 없었다.
“저기요, 나도 보는 눈이 있거든요?”
내 말에도 남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
‘……대체 왜 당당해진담?’
“그쪽 별로라는 뜻인데.”
남자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지만 나는 봤다.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걸.
‘뭐야, 도끼병은 내가 아니라 본인이면서.’
“그리고 나한테는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남친이 있어서.”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어쩐지 그 묘하게 재수 없는 표정을 보자 이 남자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랐다.
“아, 그 재수……!”
예전에테르아크네 광장에 걸린 내 성화 앞에서 눈이 마주쳤던 바로 그 남자였다.
‘사인해줄까 물었다가 악마 녀석에게 실컷 비웃음당했었지.’
솔직히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악마 녀석이 쿨타임만 차면 놀려서 강제로 기억하게 됐다.
그놈은 사람들이 나한테 사인해달라고 할 때마다 저 이야기를 꺼낸다.
“재수?”
“……음, 재수 좋은 사람?”
비록 대뜸 자기한테 작업 거냐고 하는 이상한 놈이지만.
어쨌든 교양있는 현대인으로서 초면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 재수탱이라고 할 순 없기에 나는 대강 말을 돌렸다.
당연히 남자는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스레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뭐. 왜.
못 믿어서 어쩔 건데.
당당하게 눈을 마주치자 남자 역시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자 아보르 대 신관이 쩔쩔매며 내게 남자를 소개했다.
“예하, 이쪽은 크레센티오 님이십니다. 일전에 예하께 말씀 드렸던一.”
“아, 그 신성력이 엄청나다는?”
“네, 맞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젊다.
옛날에 비하면 현재 신관들에게는 신성력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해서 예전에 슈엘라의 몸에 깃든 사기를 검사할 때도 여러 명이 힘을 합쳤는데도 힘들어하지 않았던가.
로판에서 신관의 기본 능력이나 다름없는 치유 능력도 거의 없고.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고 했지.’
현재뿐만 아니라 옛날 신관들 기준으로도 강대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의 능력자가 왜 추기경이 아닌가 했는데. 이렇게 젊어서였나?’
추기경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위치인 것 같았다.
대신관인 아보르가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한 달 전쯤 아보르 대신관은 크레센티오에 대해 말해주면서 신의 뜻을 받들기 위해 먼 타 대륙까지 순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순례 여행은 끝난 건가?”
“예, 며칠 전 제국으로 귀환하셔서 여독을 풀고 바로 성녀 예하께 인사드리는 겁니다.”
며칠 전?
‘이상한데.’
내가 저 남자를 길거리에서 본 건 꽤 오래전이었다.
‘……내가 착각一할 리는 없는데.’
남자는 착각할 만한 외모가 아니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대체로 허약한 신관들 틈에서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피지컬.
그렇게 체격이 좋으면서도 야성적이라기보다는 기품 있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녔다.
흔치 않은 타입이었다.
‘역시 그때 본 남자가 맞아.’
한데 며칠 전에 제국으로 귀환했다?
‘수상해.’
“그런데 좀 신기하네. 이렇게 대단한 신성력을 지닌 신관님이 계신다면 소문이 많이 났을 거 같은데. 왜 전에는 몰랐을까?”
나는 별 뜻 없이 순수한 의문을 느낀 척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 궁금하실 법하죠. 사실 크레센티오 님의 신성력이 처음부터 이렇게 강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
“몇 년 동안의 순례 여행 중에 깨달음을 얻으셔서 신의 은총을 받으신 겁니다. 참으로 모든 신관의 귀감이시지요.”
“그렇구나. 대단하네.”
“이제 순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으니 대외활동을 하실 예정입니다. 지금 추기경 자리에 공석은 없지만 예외적으로 추대하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순례 여행을 떠나 있었다는 남자가 왜 몇 달 전에 제도에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아보르 대신관이 딱히 내게 거짓말을 할 것 같진 않은데.’
아까 순수한 의문인 척 물었을 때의 반응도 그렇고.
‘그렇다고 저 남자한테 그때 나랑 마주치지 않았냐고 물으면 또 헛소리나 할 것 같고.’
“성녀 예하께서 임하신 지금 이 시기에 이렇게 방대하고 순도 높은 신성력의 보유자까지 나오다니……!”
아보르 대신관은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감격에 차올라 몸을 떨었다.
“신전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을 것입니다! 이는 신전을 넘어 이 세상의 홍복입니다.”
은근히 서러운 기억이 많았나 보다.
“두 분께서 힘을 합쳐 이 세계를 잘 이끌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음, 난 별로. 굳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을까. 각자 할 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이런 건 괜히 애매하게 묶여서 나중에 잡음이 생기는 것보다 처음부터 선을 긋고 시작하는 게 편하다.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상황이고.’
그때, 미간을 찌푸린 크레센티오가 툭 내뱉었다.
“내가 더 싫다.”
뭐래?
“나는 더더 싫은데.”
“나는 더더더一.”
크레센티오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 유치한 싸움을.”
이제 와서 기품 있는 척해봐야 더더더 거리던 게 사라지는 건 아닌데.
“자신의 수준에 남까지 맞추게 하는 재주가 있군.”
허.
크레센티오의 말에 기가 막혔다.
‘이거 내 욕 맞지?’
지가 먼저 유치하게 굴어놓고 왜 내 탓을?
내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일하며 내 성질을 잘 알게 된 아보르 대신관은 내 눈치를 보더니 슬슬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하, 저는 다른 일 때문에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다른 일, 뭐?”
“하하하하! 두 분께서 편히 이야기 나누시죠. 하하하하!”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후다닥 방을 나갔다.
거, 참.
누가 잡아먹나.
* * *
나는 소파에 앉으며 팔짱을 꼈다.
아보르 대신관이 오버해서 저러는 거지, 난 딱히 크레센티오를 어떻게 할 생각 따위 없었다.
‘나도 이제 어른이야. 다 컸다구.’
제국에 없었다는 사람이 왜 테르아크네 광장에서 나와 마주쳤는지는 안 알려줄 것 같지만, 그것 외에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아까 전의 이야기.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 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다.”
“원래는 이렇게 적혀져 있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보르 대신관은 원본을 그대로 옮겼다고 하던데. 원본에 지워지거나 수정된 흔적도 없다고 하고.”
“그 흔적을 한낱 인간이 알아볼 수 있을까?”
크레센티오가 오만하게 턱을 살짝 들었다.
“성서란 인간이 아니라 신의 이야기다.”
“…….”
“그 신이 사라지면 자연히 이름도 사라지기 마련이지.”
“……!”
‘신이 사라졌다……?’
“아니, 이름이 사라졌기에 신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나는 크레센티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신의 힘은 영향력, 신앙심, 교세에서 나온다.
지금 상황은 믿는 자들이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그저 ‘신님, 신님’하고 따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을 경배하기 위한 성전이 있고 신관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신명(神名)조차 전승되지 않고 있는데 그 신이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단순히 이름을 모르는 것뿐일까?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았다면 다른 건 더더욱 남겨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신의 자취를 더듬을 뿐.
‘심지어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 않고 있었어.’
내가 그 어느 곳에도 신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고 나서야 반응이 왔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른 신관들과 달라.’
몇 년이나 걸렸다는 순례 여행에서 무언가 단초를 발견한 걸까?
아니면一.
“그럼 원래 신의 이름이 뭔데요?”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크레센티오의 대답은 내게 확신을 주었다.
‘역시 아프타네스구나.’
내게 신성력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파사의 힘을 지녔기에 성녀로 추대되었다.
파사의 힘은 아프타네스의 힘.
‘내가 성녀라는 게 곧 아프타네스가 신전이 모시는 신이라는 증거지.’
아프타네스는 어째서 이름을 잃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이 남자는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기묘한 빛을 띠는 은회색 눈동자가 나를 직시한다.
“……당신, 누구야?”
“이제야 내게 흥미가 생겼나 보군.”
“…….”
“글쎄, 누굴까.”
크레센티오가 긴 다리를 우아하게 꼬았다.
제대로 답도 안 해주면서 저러니까 거드름 피우는 거 같고 진짜 재수 없다.
‘너만 다리 꼬을 줄 아냐?’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우리 아빠처럼 우아하고 기품 있게 다리를 꼬았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더 안 묻는 건가?”
“물어야 해요?”
“…….”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 죽겠으면 본인이 먼저 얘기하던가요.”
“……말하고 싶어 한 적 없다.”
“그럼 내가 물을게요.”
나는 등받이에 붙였던 몸을 바로 세웠다.
크레센티오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자 그의 시선이 내게로 따라왔다.
안 그런 척 그가 은근히 집중하며 내 질문을 기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세요?”
“……?!”
크레센티오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내게서 이런 말을 들은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 고상하고 오만하던 얼굴이 한순간에 멍청해진 걸 보자 뱃 속에서부터 통쾌함이 짜르르 밀려왔다.
“아~ 내 소문 아직 못 들으셨구나?”
나는 귀족적인 자세를 집어치우고 불량하고 삐딱하게 몸을 기댔다.
크레센티오가 움찔했다.
“난 착하디착한, 자애롭고 온화하고 인자한 옛날 성녀님들하고 달라.”
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건들건들 크레센티오를 올려다봤다.
“우리 확실히 하자? 그쪽이 연상인 거 같아서 일단 존댓말을 써주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쪽이 자연스럽게 나한테 반말하면 안 되지.”
나는 K-유교걸로서 예의를 지켰을 뿐인데 왜 반말이야.
“나 성녀야, 성녀. 응?”
“무슨 성녀가 이런…….”
크레센티오는 내 되바라진 태도에 적잖이 충격받은 것 같았다.
“교황이랑 비슷한 급이라고. 권한이 다르긴 한데 굳이 또 따지자면 교황 할부지도 나한테 고개 숙인다. 알지? 나 신의 대행자인 거.”
“…….”
“니가 신성력 좀 높다고 나한테 이렇게 굴면 안 되지. 막말로 니가 교황보다 높아? 추기경조차 아니면서.”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짝다리를 짚은 채 크레센티오에게 다가갔다.
“앞으론 잘하자? 예의 잘 챙기고.”
툭툭.
나는 크레센티오의 옷을 털어 주곤 건들거리며 방을 나갔다.
“허어…….”
문을 닫기 전 등 뒤로 기가 막힌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알게 뭐람?
흥이다!
* * *
문 앞에는 아보르 대신관이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왜 여기 있어?”
“아, 아닙니다.”
“왜. 내가 저놈 팰까 봐?”
“하하, 아닙니다. 설마 우리 성녀 예하께서 그런 폭력을 쓰시진…… 쓰시지…… 않으셨죠?”
아보르 대신관이 불안하게 내게 물었다.
“안 썼어. 그리고 그때 그놈 팼던 건 그 새끼가 재난 기부금을 삥땅 쳐서 그랬던 거잖아.”
지진으로 피해가 극심해서 애기들도 굶고 있는데 그곳에 갈 후원금을 삥땅 친 천하의 죽일 놈이 있었다.
그놈 때문이라는 게 밝혀지자마자 나는 참지 못하고 죽빵을 날렸다.
“그건 예외적인 상황이었어. 나는 비폭력 평화주의자야.”
“그, 렇죠.”
“대답이 좀 애매하네?”
“그렇습니다! 성녀 예하께서는 폭력의 ‘표’도 모르는 평화 주의자이십니다!”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신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시드의 궁으로 향했다.
* * *
“기분 나쁜 냄새가 나.”
카인이 나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가 내 곁에 가까이 붙어서 킁킁대려고 하는 순간, 얼음이 파사삭 피어났다.
“떨어져.”
“아니, 진짜로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고.”
“네 녀석이 더 기분 나빠.”
시드가 카인을 팼다.
음, 어쩜 저렇게 찰지게 잘 패는지.
“진짜 안 좋은 냄새가 나?”
나는 깜짝 놀라서 팔을 들어 내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는데?”
고개를 드는 순간, 시드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가까워.’
마치 키스를 할 것처럼 거리가 가까웠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 데一.
닿을 듯 가까웠던 시드의 입술이 내 입술을 빗겨 갔다.
오똑한 그의 코끝이 내 뺨과 목덜미를 살짝 스쳤다.
귓가와 목에 그의 숨결이 닿는다.
오소소,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