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7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79화(279/353)
☆ 제279화 ☆
“좋은 냄새.”
나른한 숨결이 피부 위에 번졌다.
나도 모르게 손끝을 말아쥐는 순간, 시드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앞에 있는 보랏빛 눈동자.
그 짙고 어두운一.
어쩐지, 목이 바짝 조였다.
* * *
그 시각.
파에라톤 공작령.
어둠 속에서 흐릿한 빛에 의지한 채 한 사내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이제 곧이야…….’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도를 넘어선 긴장감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 시켜 기묘한 흥분을 주었다.
이윽고 사내는 곧 탁 트인 방 안에 도착했다.
방 안에는 천장 끝까지 닿아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마도 장치가 있었다.
바로 이 드넓은 파에라톤 공작령의 수리 시설을 관리하는 중앙 제어기였다.
사내의 숨결이 떨렸다.
‘흥, 철벽이라 불리는 파에라톤 공작령도 실상 별거 아니군.’
이곳까지 오는 게 쉽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아니, 그만큼 그분께서 대단하시다는 거겠지.’
자신의 힘이 아니다.
그분의 인도에 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파에라톤 공작가가 대단하다고 한들 그분의 전지전능함에 비하겠는가.
‘이제 이 제어기를 망가트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사내는 준비해온 마도구를 품속에서 꺼냈다.
시동어를 읊조리자 마도구에 붉은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중앙 제어기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마도구를 든 두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나는 구원 받을 거야.’
넘실넘실거리는 핏빛의 기운이 그대로 제어기에 내리꽂히려는 순간,
“……!”
사내의 동공이 흔들렸다.
곧 식은땀이 전신에서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축축해진 등줄기가 부들부들 떨렸다.
‘파, 팔이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팔뿐만이 아니었다.
신체의 어느 한 곳조차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그대로 굳어 조각상이 된 것처럼.
상상도 못 한 상황에 사내는 패닉에 빠졌다.
그때.
저벅, 저벅一.
등 뒤에서 느긋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미, 미, 미친!’
공포와 두려움과 초조함이 신경을 짓눌렀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뒤를 향해 눈알을 굴리는 것뿐.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등 뒤의 일이 보일 리가 없었다.
사내의 셔츠는 육안으로 볼 때도 아예 푹 젖었다.
“결국 이거였나.”
딱히 위협할 생각 없이 가볍게 말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위압적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사내는 자신의 손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마도구를 빼앗긴 것인가?
‘아, 안돼! 그건 그분께서 내게 내려주신一.’
“커헉!”
생각은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장을 직접 강타하는 듯한 강한 충격에 뱃속이 꼬이는 것만 같았다.
신물과 함께 핏덩이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쿠당탕탕!
사내는 구석에 처박혀 널브러진 채 몸을 말았다.
“콜록, 콜록!”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흔들리는 시야에 시꺼먼 무언가가 스쳤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구별되는, 심연을 뚝 떼어온 것 같은 짙은 암흑.
‘서, 설마……!’
제어 장치가 내뿜는 희미한 빛에 반질반질한 가죽 구두 코가 보였다.
구석에 처박히면서 사지를 속박하던 무형의 기운은 사라졌다.
이제 사내는 원하는 대로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속박되었을 때보다 더한 공포가 남자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확인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다.
천천히, 남자의 시선이 구두에서부터 위로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야 끝나는 길게 쭉 뻗은 다리.
옷 위로도 탄탄함이 느껴지는 허리.
넓고 견고한 대흉근과 어깨.
그리고 그 위에는一.
‘파에라톤 공작……!’
신이 직접 빚었다는 말을 듣는 완벽한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압적이면서 서늘한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사내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바짝 얼어붙었다.
‘어, 어떻게 파에라톤 공작이 이곳에……?!’
만약 들키더라도 고작해야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네놈 때문에 제도에 올라가는 시간이 나흘이나 지체되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느긋한 음성임에도 사내에게는 흡사 천둥이 내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내 딸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사흘이나 미뤄졌다는 뜻이다.”
으득.
파에라톤 공작의 잇새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덧붙여 내 딸을 볼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나흘이나 줄었다는 뜻이고.”
콰드득!
파에라톤 공작의 발아래의 바닥이 깨어져 나갔다.
사내는 마치 제 몸이 깨어져 나간 것처럼 흠칫하며 몸을 옹송그렸다.
도대체 파에라톤 공작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단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망했다.’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으로 끝이 아니었다.
탁, 탁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에 사내는 초조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
그곳에는 아레스 파에라톤이 사내가 가지고 있던 마도구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길 반복하고 있었다.
붉게 넘실거리는 기운이 아레스의 얼굴을 비췄다가 멀어지길 반복했다.
탁!
허공에서 마도구를 잡아챈 아레스가 그 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재미난 걸 가져왔네.”
어찌 보면 상냥하게 보일 정도로 나긋한 미소가 아레스의 얼굴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딴 장난질을 쳐서 내 동생을 신경 쓰이게 하다니.”
아레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순간, 사내는 깨달았다.
“너도 내 동생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거야?”
이 자가 파에라톤 공작보다도 더 잔인하고 잔혹하다는 사실을.
저 눈빛은 도무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어서 처리하자고.”
그 말은 아레스나 파에라톤 공작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솜뭉치가 오빠 보고 싶다고 울고 있으면 어떡해.”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익시온 파에라톤이 천천히 사내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뚜벅, 뚜벅.
그 일정한 발걸음 소리가 사내에게는 꼭 시한폭탄의 카운트 다운처럼 들렸다.
“보송보송해야 솜뭉치지, 눅눅해지면 안 되는데.”
익시온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파에라톤의 세 남자가 움찔했다.
마치 이상 전조를 읽은 맹수처럼 기민하게 고개를 든다.
“왠지 기분이 더러운데.”
“……불안하네.”
“시간 끌 거 없지.”
파에라톤 공작의 말에 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처리하고 제도로 간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익시온의 발밑에서 새까만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一.’
사내가 미처 생각을 끝맺기 전.
모든 것이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 * *
스르륵一.
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탄력 있는 분홍빛 머리카락이 시드의 뺨을 간질이는 게 보였다.
시드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진다.
내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가 위로 고개를 살짝 드는 순간一.
“하……. 또 염병질이네.”
산통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카인이 짜게 식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완전 가까이서.
‘언제 이렇게 가까이 온 거야. 전혀 몰랐어!’
“기, 기척 좀 하고 와!”
“뭐래. 둘만의 세계에 빠져서 내가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 때까지 몰랐으면서.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면一.”
그의 얼굴에 나른하고 퇴폐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나를 껴도 좋고.”
카인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려는 순간,
“꺼져.”
탁!
시드가 거칠게 카인을 쳐냈다.
“이래서 마족 놈들에 대해 말하기 싫었던 거였어. 이 모럴도 없는 것들.”
“인간 기준에서나 없는 거겠지. 마족 기준으로 나는 신사야.”
카인이 내게 윙크했다.
“흥, 나한테서 기분 나쁜 냄새 난다면서?”
“아니, 그건 진짜로一. 아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자.”
시드의 시선에 카인이 두 손을 들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조금 걱정됐다.
‘시드는 아니라고 했지만, 얘는 내 이빨에 고춧가루가 껴있어도 아무 문제 없이 예쁘다고 할걸.’
불안해.
“정말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는 거 아니지? 솔직하게 말해. 나는 이빨에 뭐 껴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보다 바로 말해주는 게 좋은 타입이야.”
“정말로 좋은 향기만 나.”
시드가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위험할 정도로.”
귓바퀴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가 습하고 낮았다.
위험할 정도로.
뺨이 살짝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서 나는 괜히 얼굴을 돌리며 “치.”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이 방으로 들어왔다.
“황비 전하께서 오셨습니一.”
“아가!”
시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비님이 방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곧장 내게 다가와 손을 꼬옥 붙잡았다.
“아가가 왔다는 소리에 한 것을 음에 달려왔단다.”
“하하, 네.”
황비님은 내가 시드와 공개 연애를 한 다음부터 나를 완전 며늘 아가처럼 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아무리 싫어해도 황비님은 굴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 아가가 많이 바빠서 힘들지? 나랏일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가의 건강이란다.”
“감사해요, 황비 전하.”
“황비 전하 말고 엄마라고 부르라니까 그러는구나.”
아니, 아직 시드랑 결혼도 안 했는데.
설령 결혼했어도 황실 법도가 있는데 시엄마라고 부를 순 없잖아요.
“시드, 너도 아가를 잘 챙기거라.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란 아내를 잘 챙기는 것이야.”
“예, 모비.”
시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가 아주 쿵짝이 잘 맞았다.
‘아직 결혼 안 했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인가.’
“자아, 이건 우리 아가를 위해 카텔란에서 들여온 차란다. 딱 우리 아가 취향일 거야.”
“어, 정말 맛있네요. 향과 맛은 진한데 떫거나 쓰지도 않고.”
“후후, 그렇지? 우리 아가는 진한 차를 좋아하면서도 특유의 쓴맛은 싫어하잖니.”
뿌듯하게 웃는 황비님을 보자 내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어렸다.
우리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꼭 황비님 같았을 거 같아서.
차 맛도 정말 좋았지만, 일부러 날 생각해서 정성스레 골라 준 게 더 좋았다.
“그래서 아가, 언제 황궁에 들어올 거니?”
“푸흡!”
“어머, 저런. 자자, 이 엄마가 닦아주마.”
황비님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다정하게 내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준비는 다 해놨단다. 시드 궁의 단장도 새로 했고 정원도 아예 다 갈아엎은 거, 알지? 우리 아가의 취향이야. 이제 몸만 오면 돼.”
황비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슬쩍 보니 시드의 눈도 반짝반짝하다.
“그, 저는 아직……. 아빠랑 할아버지 말씀도 들어봐야 하고…….”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란다. 중요한 건 우리 아가의 의지 아니겠니?”
황비님이 내 손을 잡으며 은근하게 물었다.
‘으음, 아무래도 아빠가 제도에 없으니 기회는 이때다, 하고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어필 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결정하기 힘들면 요 며칠이라도 지내보는 건 어떨까? 그냥 황궁으로 여행 왔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여행이요?”
“거기다가 치수 사업 업무는 황궁 외궁에서 보니까 그게 오고 가기도 편하지 않니?”
이건 꽤 솔깃한 소리였다.
출퇴근 시간은 줄어들수록 좋으니까.
“여기서 마차 타면 외궁까지 10분밖에 안 걸린단다.”
황비님이 나를 살살 꼬셨다.
그때.
“5분이 걸린다고 해도 내 동생은 싫다고 할 겁니다. 순진한 막내 흔들지 마시죠.”
등 뒤에서 들린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제온?”
“막내야.”
제온이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뺏기지 않겠다는 듯 나를 황비님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어머나.”
황비님이 하나도 반갑지 않은 얼굴로 웃었다.
“제온 소공작께서는 영지에 내려가지 않았나 보군요.”
“이럴까 봐 걱정되어서.”
“본비는 아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고작 몇 분 아낀다고 편해지겠습니까. 막내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정을 느낍니다.”
“글쎄. 나랑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던데.”
시드의 중얼거림에 제온이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불량식품을 먹을 땐 그 자극적인 맛에 잠시 현혹될 수 있겠지.”
나는 제온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건 항상 먹던 음식이야.”
‘제온이 이런 비유적인 말을 하다니?’
놀라웠다.
제온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싫어해서 말수도 적은데다가 겨우 한마디 해도 직설적이었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량식품 취급하는 건가. 루루는 그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찾은 것뿐이야. 그것도 평생 먹을 음식을.”
‘우리 제온, 소공작이 되더니 달라졌구나.’
“본디 취향이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되는 것이지.”
“어렸을 때의 취향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사라지는 것 아닌가?”
성장한 거 같아서 꽤 뿌듯했다.
‘이제 파에라톤의 정치? 외교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그때가 바로 불량식품의 자극에 현혹되는 순간이지. 그 시기가 지나면 바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렇지, 막내야?”
“불량식품에 현혹된 게 아니라 자기 취향이 확고해진 것뿐이다. 그렇지, 루루?”
‘아니, 근데 며칠 전에 아빠 대신 참석했던 중앙 선별 회의에서는 왜 평소랑 똑같이 행동했지?’
이렇게 말 잘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어째 묘한 침묵과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응?’
고개를 드니 제온과 시드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야, 오빠다.”
“내 주인님.”
어서 나를 선택해!
두 쌍의 눈빛이 내 위를 뒤덮던 토사보다도 더 압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