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화(28/353)
☆ 제28화 ☆
* * *
나는 가만히 아키투스의 표지를 노려봤다.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핑크빛으로 물들었던 하트컷 크리스탈은 다시 투명해진 지 오래였다.
나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열었다.
– 장착 중인 능력: –
이번에도 텅 빈 능력창이 나를 반겼다.
세 번 남았던 사용 횟수를 익시온에게 다 썼으니 당연했다 3시간 동안만 상태 메시지가 뜨니 아껴서 쓴다고 썼는데 어느새 다 써버렸다.
‘그나마 이게 길잡이가 되어 줬는데, 이제 어쩌지?’
탁.
나는 서랍 안에 아키투스를 집어넣고 방을 나섰다.
‘의지할 능력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더더욱 로판 여주들의 진전을 따라야 해!’
익시온을 찾아서 얼굴이라도 비치자!
나는 기합을 넣고 열심히 뽈뽈뽈 성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익시온은 방에도, 수련 장에도, 집무실에도 없었다.
‘어디 갔지?’
드레스룸 안.
커튼 뒤.
심지어는 항아리 속까지.
온갖 곳을 샅샅이 찾았지만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공작성은 너무나도 넓었고, 네 살 응애는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다행히 공작성 곳곳에는 휴게 공간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내가 늙는다, 늙어!”
의자에 앉아 다리를 통통 두들기는데, 푸스스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벽에 살짝 기댄 채 서 있는 소년이 보였다. 그 모습조차 화보처럼 아름다웠다.
“아레스!”
아레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내 동생이 무슨 일로 늙는 걸까. 그럼 큰일인데.”
톡, 길고 우아한 검지가 내 뺨을 두드렸다.
“인생은 원래 고단하고 힘든 법이야, 아레스.”
아레스야, 누나 너무 힘들다.
로판 여주들이 다 잘하길래 나도 금방 함락시킬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읽은 육아물이 대체 몇 권인데, 하…….
능력을 다 썼는데도 익시온은 날 인정할 기미도 안 보이구.
“에효.”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레스가 미소를 베어물며 내 곁에 앉았다.
“한숨 쉬는 모습도 귀엽지만, 내 동생한테 걱정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걸.”
아레스가 차분차분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한테 말해볼래?”
은근한 어조였다.
나도 모르게 비밀을 털어놓을 것만 같이.
나를 내려다보는 아레스의 눈동자는 타오르는 루비처럼 선명했다.
“익시온이 자꾸 나 따돌리잖아!”
생각하니 더 짜증 나서 나는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입술을 비죽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인 듯 아레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내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이 좋나 보네, 익시온과.”
“흥, 사이 좋긴 무슨!”
나는 퉁퉁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맨날 나 귀찮다고 하구! 못되게 굴구! 저리 가라고 하구! 메롱이야!”
“진짜 사이 좋은가 보네? 신기한걸.”
흐음, 아레스가 묘한 비음을 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라?’
뭔지 모르지만 나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아레스를 바라보자 그가 눈매를 가늘게 휘었다. 아주 보드랍고 나긋한 웃음이었다.
“조금 질투나.”
그 말에 나는 콧김을 뿜었다.
무슨 그런 오해를!
“아레스가 훨씬, 훨씬 좋아!”
“정말?”
“응! 익시온이랑은 비교도 안 돼!”
오빠는 내 힐링이고 내 삶의 복지인걸!
아레스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사라락.
내 머리칼을 쓸던 아레스의 손이 미끄러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아레스가 내게 더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어?’
너무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한 순간.
쪽.
따뜻하고 보드라운 촉감이 뺨에 닿았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들짝 놀라 아레스를 바라보는데一.
“영광이네.”
우와아…….
겨울 오후의 햇살이 소년의 뺨을 희게 물들이고 있었다.
살짝 쳐진 눈매가 나른하게 휘었고, 호선을 그린 입매 끝에는 보조개가 깊게 파여 있었다.
와…….
와…….
잘생긴 동생 바보 오빠 만세!
별점 10개가 뭐야!
100개 드립니다!
* * *
“익시온이 자꾸 나 따돌리잖아!”
커다란 목소리에 익시온은 멈칫했다.
‘……따돌리다니. 이 몸이 기껏 놀아주고 있는데.’
솜뭉치가 또 저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대는 것을 보고 숨어 줬을 뿐이다.
저 약골은 술래잡기를 좋아하니까.
분명 약골 솜뭉치도 항아리 속까지 들여다보며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레스 녀석한테 저렇게 얘기하다니.
“사이 좋나 보네, 익시온과.”
“흥, 사이 좋긴 무슨!”
흥, 흥 콧김을 뿜는 루아티샤를 보고 익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맨날 나 귀찮다고 하구! 못 되게 굴구! 저리 가라고 하구! 메롱이야!”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루아티샤는 의자에서 일어날 기세로 씩씩거렸다.
“…….”
익시온은 한걸음 물러나다가 벽을 짚었다.
그는 자신이 충격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익시온이랑 놀았어!”
“재밌었어!”
환하게 웃으며 말했던 루아티샤의 모습이 기억에 선했다.
‘결국, 그건 다 거짓이었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기도 못 쓰는 평범한 인간들은 나약한 주제에 감히 익시온을 혐오하고 섬뜩해 한다.
그게 정상이다.
저 애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그 순간.
아레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
몰래 훔쳐보다 들킨 기분에 익시온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아레스의 입매가 스윽 호선을 그렸다.
예의 그 기분 나쁜, 음흉한 미소였다.
익시온이 얼굴을 구겼다.
그가 뭐라 하기 전에 아레스의 시선이 다시 루아티샤를 향했다.
“조금 질투나.”
아레스가 가증을 떨었다.
멍청한 약골은 그 가증에 홀딱 넘어갔다.
“아레스가 훨씬, 훨씬 좋아!”
“정말?”
“응! 익시온이랑은 비교도 안 돼!”
“…….”
익시온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기분이 더러웠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아레스보다 자신이 못하다는 게 기분 나빠서.
그래서 더러운 거다.
저 약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알 바 아니니까.
“……시발.”
저 요망한 놈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짝짝꿍이 잘 맞는 거야?
그때였다.
느끼하게 루아티샤의 머리를 쓰다듬은 아레스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익시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젠장.’
무어라 외칠 듯 익시온의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레스가 더 빨랐다.
쪽.
귀엽고 깜찍한 마찰음이 공작 성에 울려 퍼졌다.
‘저 새끼가……!’
꽈드득! 우득!
익시온의 작은 손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벽이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고개를 든 아레스가 익시온을 향해 빙긋 웃었다.
언제나처럼 기분 나쁜 웃음이었지만 오늘은 더 했다.
“아레스? 저기 뭐 있어?”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레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익시온은 휙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헉! 저기 벽 부서졌어! 부실 공사였나 봐!”
등 뒤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약골 솜뭉치가.’
익시온은 으득, 이를 악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러운 지 알 수 없었다.
* * *
나는 테이블보를 걷은 채 매의 눈으로 아래를 살폈다.
“으음……. 여기도 없나.”
벌써 며칠째 익시온이 안 보인다.
이래서야 로판 여주들의 ‘동생 바보 오빠 만들기 프로젝트 수칙’을 하나도 실천할 수 없다.
‘어쩌지…….’
퀘스트가 마냥 기다려줄 것 같지도 않고.
클라티에에게 사이다를 먹이는 퀘스트도 자동 종료되지 않았던가.
‘익시온에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퀘스트가 자동 종료되면…….’
인생 하차.
즉, 깨꼬닥 죽음이다.
나는 추욱 쳐져서 고개를 숙였다.
꼬르르륵!
그런데 눈치 없는 배 속 거지가 울어대는 게 아닌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도 배는 고팠다.
어쩔 수 없잖아. 난 네 살 응애인걸.
애기는 많이 먹어야 해!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산책은 즐거웠나요?”
“나 배고파!”
당당하게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식이 대령되었다.
‘귀족의 삶, 정말 최고야!’
나는 레몬 아이싱이 잔뜩 올라간 레몬 케이크를 얌냠 먹으며 언니들한테 물었다.
행적을 추적하려면 역시 목격자의 진술만한 게 없지!
“혹시 익시온 봤어?”
“셋째 도련님이요? 아뇨, 못 봤는데요.”
“원래 익시온 도련님께선 사람 많은 곳으로 나오지 않으세요.”
“그래?”
“네, 셋째 도련님은 특히 사람과 어울리는 걸 안 좋아하시니까요.”
“그렇구나…….”
나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은 자주 보였는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걸까?
“익시온 도련님이 아가씨를 피하지 않으셨나 봐요.”
안나가 후후, 웃었다.
하지만 나는 마주 웃을 수 없었다.
그 말은 지금은 익시온이 날 피해 다닌다는 거잖아.
여태 안 그러다가 이제 와서 숨다니.
‘내 행동들이 오히려 역효과였던 걸까?’
상큼달콤한 레몬 케이크가 까끌하게 느껴졌다.
시무룩한 내 얼굴을 보더니 로라가 웃었다.
“막내 아가씨께선 셋째 도련님이 좋으신가 봐요.”
“누가! 걔 완전 밉상 꼬맹이야!”
발끈해서 외쳤는데 언니들은 우후후, 흐뭇하게 웃기만 했다.
나는 뾰로통해져서 입술을 모았다.
뭐어, 아주 싫은 건 아니고.
조금 짜증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고.
꼼지락.
‘어쨌든 지금은 정말 열받는 꼬맹이일 뿐이야! 호적에 나란히 박혔으면 가문의 일원인 거지! 뭘 또 인정하고 말고야! 울 아빠도 인정했는데 지가 뭔데!’
나는 포크를 쥔 채 분노로 부르르 떨었다.
‘이러다 나 진짜 죽겠다구!’
익시온을 이해하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걔는 마기가 없다고 나를 인정 안 하는 거 같으니까.’
몇 번이나 마기를 이용해서 나를 압박하던 걸 보면 분명했다.
‘차암나, 유치하긴.’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건데 그런 거 가지고 날 차별하다니.
‘나쁜 놈아. 네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으면 상종도 안 했을 거야.’
아직 꼬마니까 인생 2회차인 누나가 정상 참작해준다.
“있지, 마기가 정확히 뭐야?”
그 물음에 언니들이 입을 다물었다.
곤란한 얼굴.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한테는 다 마기 있는 거 알아. 근데 나는 없잖아.”
“아가씨……. 그건 아가씨한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거 아녜요.”
“위로해달라는 거 아냐. 나는 그냥 알고 싶을 뿐이야. 나와 내 가족 이야기인걸.”
나는 진지한 눈으로 언니들을 바라봤다.
언니들은 잠시 시선을 교환하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에라톤 공작가에는 대대로 마기가 내려옵니다. 공작가의 직계에게만 전승되는 힘이지요.”
“마법사 집안이라는 뜻이야?”
“아뇨.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건 마나예요. 마기는…….”
설명하던 안나가 말을 멈췄다.
말을 고르는 그녀의 얼굴에는 다소 두려움이 번져 있었다.
“……아주아주 특별한 힘이에요.”
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상황인데.
공작가에 내려오는 특별한 힘.
마법사의 마나와도, 기사의 오러와도 다르다.
심지어 색도 암흑처럼 새까맣다.
거기다 그 힘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 사람들의 태도.
나의 로판 짬바가 말해준다.
악마/괴물/흑막 공작가.
로판 독자인 내게 이 정도 키워드는 아주아주 익숙하다고.
척하면 척이지!
“뭐, 악마의 힘이라거나?”
“아니에요!”
새하얗게 질린 낸시가 크게 소리쳤다.
나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낸시를 바라봤다.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 그런 소문이 돌긴 하지만 헛소문이에요.”
“사람들은 너무 강한 힘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죠. 자기가 이해할 수 없으면 더욱더.”
“마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힘인지는 사실 저희도 알지 못해요. 오로지 그 힘을 사용하는 파에라톤의 직계만이 알고 있겠죠.”
“그렇구나.”
그럼 나는 알 수 없는 걸까.
“워낙 압도적인 힘이다 보니 여러 소문이 붙는 거예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불안하고 겁이 나잖아요.”
“저는 처음 봤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어요. 하녀장님이 저 정도로 끝나면 양호한 거라고 했어요. 덕분에 공작저에서 일할 수 있었지요.”
언니들의 얼굴은 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거북하고 섬뜩한 것을 이야기 하듯.
악의가 없는 건 안다.
하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아니야.”
“네?”
“나도 마기 봤어. 몇 번이나 봤어.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섬뜩한 거 아냐.”
새까만 힘.
어둠의 힘.
당연히 배척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검정 좋아해.”
“때가 타도, 낡아도 잘 티가 안 나니까.”
고아인 내게는 그런 게 꽤 중요했다.
“하지만 나는 검은색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
편해서 선택한 색이다.
나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의 옷을 가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기는一.”
처음 본 순간 압도당했다.
순간적으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一아름다워.”
방안이 조용했다.
“마기는 밤이야.”
나는 아빠의 마기가 나를 푹 감쌌을 때를 떠올렸다.
견고하게 짜인 아빠의 몸을 휘감은 짙고 어두운 그림자.
타오르는 아빠의 붉은 눈.
그리고, 클라티에가 나를 손가락질하고 멸시하던 것을 일순간에 끊어낸 새까만 어둠.
“눈 감고 쉴 수 있는 밤이야.”
아빠가 만들어낸 마기는 마치 밤으로 만든 이불처럼 나를 둘렀다.
“나한테는 그 어떤 것보다 포근포근해.”
* * *
“나한테는 그 어떤 것보다 포근포근해.”
또랑또랑한 아이의 말이 울렸다.
창밖, 외벽에 기대있던 아레스가 잠시 침묵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는데?”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던 익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