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0화(280/353)
☆ 제280화 ☆
* * *
제국처럼 대륙의 전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국가는 하나의 영지가 웬만한 국가보다 더 크기도 하다.
따라서 본디 어느 곳이 평화롭더라도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기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종말의 징조.’
예전부터 티 나지 않게 진행되었던 종말의 전조가 이제 중첩되어 가속화된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인재(人災)마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지친 상태라 미처 제대로 살피거나 판단하지 못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경각심을 가지고 더 정신 차릴 법도 하지 않나?
‘아무래도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일부러 침입해서 수리 시설의 중앙 제어기를 파괴하려고 했다고요?”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재해를 만들려는 사람을 검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영지에서 수해를 일으키려던 범인을 잡자마자 제도로 압송해오셨다.
나는 아빠와 함께 공작저의 별채 지하 감옥으로 향하며 물었다.
“그런데 영지에서 처리하지 않으시고 제도로 데려오신 거예요?”
“아무래도 내 딸이 직접 신문(訊問)하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역시 우리 아빠!”
어쩜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시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처럼 아빠의 팔을 잡고 매달리자 아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르켈 자작이 중얼거렸다.
“물론 그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각하께서 빨리 막내 아가씨를 보고 싶一. 크흠! 흠!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에르켈 자작이 아빠의 눈을 피하며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빠가 많이 괴롭혔나 보네?”
“말도 마세요. 우리 애가 아빠 보고 싶어 할 거라면서 빨리 처리하라고 얼마나 가신들을 들들 볶았는지.”
에르켈 자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그 범인 혼자서 일을 꾸몄을 리는 없고. 범인을 잡았다고 방심한 틈을 타서 다른 짓을 꾸미면 어쩌죠?”
“익시온을 두고 왔다.”
아.
‘그래서 어젯밤에 익시온에게서 통신이 그렇게 많이 와 있었구나.’
어제는 피곤해서 일찍 잠든 바람에 오늘 아침에야 연락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쪽에서 통신을 걸려고 했는데 아빠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바로 나오느라 깜빡했다.
“으, 익시온 연락 못 받았는데. 지금쯤 완전 시무룩해 하고 있겠네요.”
익시온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개복치니까.
“시……무룩이요? 익시온 도련님이요? 그걸 시무룩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분명 지금쯤 영지의 가신들에게 온갖 행패를…….”
행패라니!
“혹시라도 또 침입자가 생기면 그 침입자에게 동정심이 생길 지경입니다.”
“아레스한테 걸리는 것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죠.”
거봐.
‘어쨌든 익시온에게 나중에 연락해서 달래줘야겠다.’
“아레스는요?”
“바로 황궁으로 가라고 명했다. 저녁이면 돌아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지하 감옥에 도착했다.
사내는 팔이 꺾인 채 결박당한 상태로 축 늘어져 있었다.
“파에라톤의 영지민이 아니군요.”
“그래.”
“어떻게 아셨습니까? 따로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그야 파에라톤령에 대한 내 영향력은 최대치니까.
그 효과로 파에라톤의 봉신들과 가신들은 물론, 영지민들까지도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는다.
촤아아악一!
병사가 물을 끼얹자 늘어져 있던 사내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잠시 콜록거리다가 나를 보더니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아아, 그 유명하신 성녀님을 뵙게 되는군.”
비죽 올라간 기묘한 미소와 버석거리는 음성.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광기가 어려있었다.
“기만 가득한 신전의 거짓된 성녀. 네 주제도 모르고 감히 그분의一. 커헉……!”
새까만 마기가 남자의 복부를 강타했다.
“생각을 하고 입을 놀리는 게 좋을 거다.”
“크흐, 크흐흐흐!”
입가에 선혈이 주르륵 흐르는 데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지, 사내는 광소를 터트렸다.
“이런다고 네 녀석들이 그분의 위업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팔이 꺾여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우드득!
그 바람에 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남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나는 선택받았다! 그분의 쓰임을 받는 신실한 종으로서!”
오로지 광기 어린 외침만 울부짖을 뿐.
“나는 낙원으로 갈 것이다!”
핏발 선 흰자위와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핏물이 지저분하게 묻은 입은 찢어질 듯 벌어졌고 광대는 고정된 것처럼 비죽 올라가 있다.
스스로 부러트린 팔이 이상한 모양으로 매달린 채 늘어졌다.
인간 같지 않은 괴기스러운 형태에 사내의 곁에 서 있던 병사가 저도 모르게 주춤, 몸을 물렸다.
“뭐야, 사이비네.”
나는 침을 퉤, 뱉었다.
끼기긱 소리가 나는 것처럼 사내의 고개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쫄 리가 없었다.
목이 180도를 넘어 360도로 돌아가는 공포 영화를 본 환생자는 강했다.
“낙원?”
사람 개빡치게 만드네.
“이딴 짓을 벌이고 그런 말이 나와? 낙원이 있어도 거기에 네놈 자리는 없을 것 같은데.”
“거짓된 성녀 주제에 감히 그분의 약속을 모욕하는 것이냐!”
“고작 그딴 이유로 공작령의 중앙 제어기를 파괴하려 했다고?”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혔다.
“만약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했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뻔했어. 백 명, 천 명 단위도 아니야. 어림잡아도 몇십만 명이라고!”
“크흐흐, 그게 무슨 상관이지?”
“뭐……?”
“그분을 따르지 않는 우매한 불신자들 따위 몇이 사라지든 뭐가 문제라고!”
사내가 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그분을 위해 죽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영광이다! 그에 반해 나는 선택받았어! 그분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라!”
“…….”
“경배하라! 경배하라!”
고개를 치켜든 사내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목구멍을 쥐어 짜냈다.
“진정한 신, 이 세상을 암흑으로 물들여 구원하실 키야스에델 님이시여!”
“……!”
키야스에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금품이나 착취를 목적으로 한 사이비가 아니라는 것을.
* * *
“사내의 이름은 말론. 가족들이 지난번 포텔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다 죽었다고 합니다.”
“왜 사이비 종교에 빠졌는지는 알 것 같네.”
“재해를 겪은 모든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건 아닙니다. 이 자가 나약하기 때문이겠죠.”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닐걸.”
키야스에델의 이름이 나온 이상, 이건 그냥 사람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세뇌하는 사이비가 아니다.
“조사는?”
나는 내 보좌단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인재(人災)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를 명했다.
그전까지 발생한 인재는 실수로 체크를 안 하거나 그냥 순간적인 판단을 잘못해서 일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 아예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을 수도 있겠어.’
“전달했습니다. 아무래도 시일이 다소 소요될 것 같습니다.”
“조사를 전부 다 완료한 뒤에 보고하지 말고 사이비하고 연관된 건이 있으면 즉시 알려 줘.”
“네, 아가씨.”
좋아.
디에르 자작의 일 처리니까 믿어도 되겠지.
‘클라우디아에게 가봐야겠어.’
나는 여러 가지 일로 바빠져서 사교계 활동을 줄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 부탁을 받은 클라우디아가 미혼 영애 사교계의 중심이 되었다.
집무실을 나와 내 방에서 외출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가니 아빠가 계셨다.
“아빠.”
아차.
오늘 아빠가 제도에서 며칠 만에 돌아오셨는데 너무 무심했나.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올 거니?”
나는 고개를 젓고는 아빠에게 다가가 푹 끌어안았다.
“아빠랑 먹을래요.”
“그래.”
아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영지에서 네가 좋아하는 체리를 잔뜩 가져왔단다.”
“정말요? 아빠 최고!”
파에라톤령의 체리는 엄청 달아서 정말 맛있다.
사실 제도에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데 아빠가 가신 김에 날 생각해서 챙겨오셨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돌아오신 날에 제가 나가서 서운하세요?”
“서운하지.”
아빠가 내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니까 일을 벌일 때 아빠 생각도 좀 하고. 위험한 짓 하기 전에 꼭 상의라도 해라.”
“응.”
“루루.”
“응.”
“너는 온전한 한 사람의 파에라톤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걸 막을 생각은 없다. 아빠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나는 가만히 아빠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그래.”
아빠가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조금 상념에 젖은 아빠의 눈빛을 보니 장난기가 불쑥 올라왔다.
“그럼 나 시드 만나고 와도 돼요?”
“……그건 빼고.”
아빠가 이를 악물었다.
‘우리 아빠도 참.’
내가 새들새들 웃는데 아빠는 웃지도 않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재차 물었다.
“……그놈을 만나러 갈 생각이냐? 미첼로인 영애를 보러 간다고 들었는데.”
“농담이었어요. 클라우디아 보러 가는 거 맞아요.”
“그래.”
아빠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죄송해요, 아빠.
클라우디아가 마침 황궁에 있다네요.
이건 진짜 나도 예상 못 한 일이야.
‘하지만 황궁은 엄청 넓으니까 시드랑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시드가 외출한 상황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건 아빠를 속이는 게 아니다.
* * *
“성녀 예하.”
클라우디아와 티리엘 그리고 자스민이 우아하게 내게 인사했다.
“아, 진짜. 그거 하지 마.”
“왜? 성녀 예하 맞잖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영애들은?”
“그냥 우리가 빠져나왔지, 뭐.”
“괜찮아? 클라우디아가 오늘 티파티 호스트 아냐? 이렇게 나와도 돼?”
“그렇긴 하지만, 중요한 용건으로 나 찾은 거 아니야?”
“응, 맞아. 고마워.”
“잠깐 자리 비우는 게 뭐 대수라고.”
클라우디아는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 황실과 관련 없는 영애가 황궁에서 티파티를 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인 일이었다.
이 중요한 날에 나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것이다.
‘내가 티파티에 참석하는 모양새면 클라우디아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도.’
우리는 외궁의 중앙 정원에 있는 가제보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사교계에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말을 들은 적 있나 해서.”
“사이비 종교?”
내 말에 자스민과 티리엘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달랐다.
“……은연중에 그런 말이 오고 가는 거 같긴 해.”
“진짜?!”
자스민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응, 비밀리에 진행되는 사교 모임이나 심야의 가면무도회 같은 곳에서.”
“으, 듣기만 해도 어떤 식인지 알겠다.”
“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어. 지금 여기저기에서 천재지변과 이변이 생기는 상황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사이비 종교나 이상한 약 파는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지.”
“응. 그리고 딱히 사교계에서 공공연히 알려질 정도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티리엘하고 자스민도 몰랐잖아?”
“더 자세한 정보는 몰라?”
“음. 곧 암흑천하가 올 것이고 세계는 멸망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유치한 이야기를 떠든다던데.”
“하지만 재해가 겹치는 지금은 좀 솔깃하긴 하겠네. 영지가 엉망이 된 귀족들도 있고.”
“악마 숭배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티리엘과 자스민이 떠드는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악마를 숭배해 봤자 딱히 믿을 만하진 않을 텐데.’
악마 녀석을 실제로 보면 확실히 느낄 거다.
[너무해!] [내 어디가 어때서!]나는 악마 녀석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하긴, 사이비에서는 악마 녀석이 아니라 키야스에델을 숭배하고 있겠지.’
“그래도 사이비 종교가 별로 힘을 얻진 못할걸?”
“왜?”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너도 만나봤잖아.”
클라우디아가 왜 모르냐는 듯 날 바라보았다.
“신전에 엄청난 병기가 생겼잖아.”
“병기?”
그런 게 있었나?
“크레센티오 님.”
“……그 남자가 왜?”
물론 강력한 신성력의 보유자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치유력을 보이면 사람들도 신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 테니까.
하지만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유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잘생겼잖아.”
“엄청 잘생겼지.”
“덕분에 주말에 신전에 나가는 사람들이 늘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