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1화(281/353)
☆ 제281화 ☆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뭐……?”
“안 그래도 오늘 티파티에서도 다들 그 얘기로 난리였어.”
“신전 예배에 가봤냐면서.”
“크레센티오 신관님은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시거든. 대예배 때에나 멀리서나마 볼 수 있고.”
“루루는 예배에 나오지 않으니까 모르겠구나.”
“응…….”
성녀는 굳이 예배에 참석할 의무가 없었다.
그 시간에 혼자 기도를 올리고 수양에 임해 신과 깊고 밀접한 유대를 쌓으라는 게 목적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성녀라는 존재에 신비감과 희소성을 부여하려는 신전의 전략 아닌가 싶었다.
어쨌든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지라 나로서는 참 다행이었다.
‘……내가 이렇게 믿음이 없어서 신성력도 없는 건가.’
하지만 그 악마 녀석이 모시는 신이라고 하니 있던 믿음도 사라지는 느낌인걸.
“후우, 이제는 정말 예배일이 오기만 기다려진다니까?”
금방 사랑에 빠지는 자스민이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잘생긴 게 중요하긴 하지.
시드를 좋아하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나도 얼굴을 엄청 밝혔다.
하지만.
“모난 데 없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잘생겼나?”
“이 복에 겨운!”
“너야 주변에 가족들이랑 시드리한 황자님께서 계시니까 그렇지!”
“라파엘도 솔직히 잘생겼고, 너는 질색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도 정말 기품 있으시잖아?”
“거기다가 안수르의 부상단주인 아즐 님과 흰장미의 귀공자 님이신 카이셴 소백작님까지.”
“……그 별명 펠릭스가 들으면 진짜 질색한다.”
자기가 소백작이 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흰장미의 귀공자 소리를 듣냐고 난리였다.
“흠,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미인들이 많구나.”
남자들은 워낙 가족들과 시드의 미모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자각하지 못했다.
‘확실히 여자애들은 그런 거 없이 다 예뻐 보이는데.’
지금 내 곁에 있는 클라우디아와 자스민, 티리엘도 당장 고전 영화에 나와도 될 법한 미인들이었다.
내 상상 속의 로판 영애님들이랄까.
보고 있으니 새삼스럽지만 눈이 행복했다.
“그렇다니까? 거기다가 이제는 카인 님과 크레센티오 님까지 계시잖아.”
“하아, 두 분 다 약간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잘생긴 게 아니라 묘한 분위기가 있어. 약간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점은 비슷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라. 꼭 물과 기름처럼 상반된 매력이랄까?”
“……너네 분석이 날카롭구나.”
“당연하지!”
자스민과 티리엘이 자랑스레 가슴을 폈다.
티파티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안 들어도 알겠다.
“그렇게 좋으면 소개시켜줄까?”
카인은 마족이니 절대 안 되지만, 펠릭스는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 진짜로 엮이는 건 별로.”
“나는 현실이 되는 순간 싫어지는 타입이라서.”
자스민과 티리엘이 단호하게 정색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남들의 연애를 보고 학을 뗀 후부터 항상 그랬지.
“아무튼 이상 현상이 계속 생기는 혼란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성녀님의 즉위와 유례없이 강력한 신성력을 지닌 신관의 등장 덕분에 신전에 대한 신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야.”
클라우디아가 상황을 정리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원래 신전은 교세가 강한 편이 아니었잖아. 만약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신전은 급속도로 힘을 잃었을걸. 재앙이 닥치는데 대체 뭐하냐고.”
“지금처럼 사이비 종교가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전면에 나왔겠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교계 쪽에서 그 사이비에 대한 동향이나 정보는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줘.”
클라우디아가 관심을 보이면 환심을 사기 위해 정보를 물어 오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다.
“어쩌면 그쪽에서 클라우디아를 포섭하려고 할 수도 있고.”
클라우디아는 지금 미혼 영애들의 중심으로 영향력이 큰 상태였다.
‘내 부탁을 받고 움직이는 내 사람인지라 클라우다아의 영향력은 그대로 내 것이 되고 있지만.’
이렇게 말하니 약간 다단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성녀인 나보다 클라우디아가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겠지.”
“알았어. 그럼 한동안 우리 못 보겠네. 사이비에게 여지를 주려면.”
역시 클라우디아.
내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움직이길 바라는지 바로 알아챘다.
“응, 그리고 미첼로인 후작님께 하나만 전해줘.”
“아버지께?”
“어쩌면 〈지식 보고〉를 사용할 수도 있으니 준비를 해주시라고.”
“……!”
클라우디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첼로인 후작가의 〈지식 보고〉.
일전에 말했듯이 이건 단순히 서재나 보물창고, 도서관 혹은 아카데미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미첼로인의 근간이자 가보인 성물이었다.
제약 때문에 미첼로인의 가주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보물 중의 보물.
예전에 새벽 축제 본선에서 내가 클라우디아를 위기에서 구했을 때.
미첼로인 후작은 내가 원하는 때 〈지식 보고〉를 한 번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단순한 사이비가 아닌가 보구나. 그 어느 때보다 빛이 강한 시기이니 어둠은 곧 사라질 거라고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도드라지는 법이지.”
“내 쪽에서도 최대한 협력할게.”
“고마워.”
그때였다.
“어머?”
자스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술을 가렸다.
“흰장미의 귀공자님이셔!”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과연 펠릭스 카이셴이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흰장미의 귀공자’라는 말을 들었는지 그가 멈칫하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까칠한 표정.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 * *
나는 펠릭스와 나란히 걸었다.
용무를 마친 상황이었기에 이제 황궁을 나갈 생각이라고 하니 펠릭스가 에스코트해주겠다 고한 것이다.
“펠릭스, 눈가가 거뭇해.”
“남서부의 대형 해일 때문에 며칠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다 이제 겨우 가는 중이야.”
“힘들겠네.”
제온과 동갑인 펠릭스는 내가 열한 살이었을 무렵부터 ‘카이셴의 젊은 천재’라고 불리면서 제국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일컬어졌다.
과연 그 말대로 현재 제국을 이끌어가느라 몸이 갈리고 있었다.
나와는 〈메티스〉에서 안면을 터서 함께 뮤리엘을 처치하면서 인연이 깊었다.
좀 까칠한 사람이긴 하지만 묘하게 내게 협력적이고.
“……크레센티오 신관은 어때?”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펠릭스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묻는 건 처음이었다.
‘신경 쓰이나?’
그러고 보니 펠릭스와 크레센티오는 조금 이미지가 겹쳤다.
둘 다 우아하고 기품 있어서 귀공자스러운 면모가 있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결벽증이 있어 보이는 것도 비슷하고.
‘펠릭스도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하지만 은근히 영애들 사이의 인기에 신경 썼나 보네.’
이런 점은 조금 귀여운지도?
‘그래도 우리 인연이 있는데 당연히 나는 펠릭스 편이지.’
큰오빠 친구一제온은 전혀 아니라고 했지만一이기도 하고.
애초에 크레센티오는 어딘지 석연찮은데다가 무엇보다,
‘재수 없어.’
나는 활짝 웃으며 펠릭스를 향해 따봉을 날렸다.
“내가 보기엔 펠릭스가 훨씬 더 잘생겼고 멋져! 크레센티오 따위 신경 쓰지 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펠릭스 멋있다! 잘생겼다! 훈훈하다!”
“하아, 됐다.”
놀리는 게 분명한 내 말에 펠릭스가 이마를 감싸 쥐며 못 말리겠다는 듯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난 봤다.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 * *
“파에라톤 공녀께서 외궁에 오셨습니다.”
시종이 전해준 귓속말을 듣자마자 에스테반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궁으로 향했다.
“저, 전하! 지금 의제는……!”
“알아서 처리해. 그 정도도 못 하나?”
하여간 대신들이라고 있는 것들은 다 쓸모가 없었다.
루아티샤는 최근 사교계에도 나오지 않고 거의 신전과 공작저만 오가고 있었다.
황궁에 오는 건 가끔 치수 사업에 대한 회의 때문인 게 전부.
그때 찾아가봤자,
“회의 중이라서요. 이만 가주세요, 황태자 전하.”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한마디 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얼굴 한 번 보는 게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고 미소 한 번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 같았다.
‘바쁘니까 내가 이해해주는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아티샤라면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
이런들 저런들 어차피 루아티샤는 자신의 여자가 될 테니까.
에스테반은 관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펠릭스가 훨씬 더 잘생겼고 멋져! 크레센티오 따위 신경 쓰지 마!”
루아티샤가 환히 웃으면서 그렇게 외쳤다.
에스테반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장난기 어린 친근한 미소였다.
“펠릭스 멋있다! 잘생겼다! 훈훈하다!”
우뚝.
에스테반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루아티샤가 시드리한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시드리한 녀석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펠릭스 카이셴에게까지 꼬리치는 건 대체 뭐지?
거기다 크레센티오라니.
그 남자에 대한 소문은 에스테반 역시 많이 들었다.
강대한 신성력만큼이나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로 이름이 높았다.
오죽하면 여자들이 눈요기하기 위해 예배에 간다는 말이 돌까.
‘……설마 루아티샤가 신전에 자주 가는 것도 크레센티오라는 남자 때문인가?’
꽈악.
에스테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루아티샤는 카인이라는 남자를 타대륙에서 데려오기까지 했다.
‘……내가 잘못 판단했군.’
때마침 정원을 나간 루아티샤와 펠릭스가 마차 대기소 앞에 도착했다.
그곳엔 카이셴 가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루아티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 잡으시지요.”
“좀 더 기다려서 너 먼저 보내고 갈게.”
“됐어. 나보다 펠릭스가 더 피곤해 보이는걸.”
루아티샤가 어서 잡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살다 살다 에스코트를 받을 줄이야.”
“영광으로 알라고?”
펠릭스는 그 말에 대답하진 않았지만, 결국 루아티샤의 손을 잡고 마차 위에 올랐다.
마차에 올라탄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루아티샤는 손을 흔들며 마차를 배웅했다.
대기소의 궁인을 제외하면 루아티샤 혼자 남은 것을 확인한 에스테반이 걸음을 옮겼다.
“대체 남자가 몇이야?”
갑작스레 들린 귀에 익은 목소리에 루아티샤는 질색하며 뒤를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에스테반 황태자였다.
“뭐라고요?”
“펠릭스 카이셴과 가깝게 지내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나? 거기다가 최근에는 카인이라는 놈과 크레센티오 신관과도 놀아난다지? 대체 남자를 얼마나 모아야 만족하는 거지?”
뭐래.
루아티샤는 어이가 없었다.
가족을 제외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따지자면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니, 문제는 이게 아니지.’
“설령 나한테 열 명의 남자가 있거나 백 명의 남자가 있어도 그게 황태자 전하와 무슨 상관인데요?”
“…….”
“확실한 건 내가 백 명의 남자랑 놀아나도 그 안에 황태자 전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많은 건 사실이야?”
허.
‘대체 내 말을 어떻게 들었길래 저런 질문이 나오는 거지?’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군.”
버릇?
기가 막혔다.
연인인 시드리한조차 이런 식으로 루아티샤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 좀 노는 건 귀여우니 상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뚜벅, 뚜벅.
에스테반이 루아티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서로의 옷깃이 스칠 정도로.
그가 루아티샤를 향해 몸을 숙인 순간,
“야.”
나직한 중얼거림이 에스테반의 고막을 울렸다.
고저 없이 말한 루아티샤가 스윽, 고개를 들었다.
파라이바빛 눈동자가 흠칫할 정도로 서늘했다.
“적당히 해라.”
“…….”
“황태자고 뭐고 그냥 패버리고 감방 가기 전에.”
잠시 놀란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던 에스테반의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가 걸렸다.
“이런 모습도 꽤 괜찮은데?”
에스테반의 손이 루아티샤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타악一!
“윽……!”
에스테반이 손등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무언가가 그의 손등을 후려갈긴 것이다.
어찌나 셌는지 손목까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에스테반은 이를 악물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루아티샤의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한 게 더 화가 났다.
“누구냐! 감히 제국의 황태자인 나를……!”
“자살을 희망하면 그냥 곱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황태자 전하.”
천천히, 정원 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레스 파에라톤이 봄볕처럼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소원대로 최대한 고통스럽게 보내드렸을 텐데.”
“파에라톤 공자! 감히 황족의 신체를 상하게 하고서도一.”
“아, 참고로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뭐라고?”
“아쉽게 됐지요. 내 공격이 먼저 나갔으면 손이 아예 잘렸을 텐데.”
아레스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의 등 뒤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그러면 안 되지. 저 쓰레기의 손이 잘리는 건 상관없지만, 내 루아티샤의 성스러운 얼굴에 더러운 피가 튀잖아.”
“시드리한……!”
증오스러운 이복형제의 모습에 에스테반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목구멍을 쥐어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