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2화(282/353)
☆ 제282화 ☆
“마음에 안 드는 황자님이시지만 그래도 이번엔 옳은 판단을 했군. 내 동생에게 더러운 피가 묻으면 안 되지.”
“칭찬 감사하군.”
에스테반이 분노하든 말든 아레스와 시드리한이 느긋하게 말했다.
“……하.”
에스테반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파에라톤 공작가의 팔불출은 알아준다고 하지만 감히 황족의 피가 더럽다고 일컬을 때는 생각을 하고 말한 것이겠지?”
“글쎄. 적어도 황태자 전하께서 감히 내 동생의 턱을 들어 올릴 때보다는 생각 있는 행동이었던 거 같은데.”
“적당히 하지 그래? 루아티샤가 황태자비가 된다면 파에라톤에게도 큰 영광일 터!”
“영광?”
아레스가 대놓고 비웃자 에스테반의 얼굴이 붉어졌다.
“파에라톤 공작가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여태까지 황후 한 명 배출해내지 못한 가문 아닌가!”
정확히는 배출해내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루아티샤 전까지 파에라톤 공녀들은 모두 마기를 지닌 채 태어났다.
그리고 루아티샤가 안정화시켜준 아레스나 익시온, 제온보다 성깔이 더러웠으면 더러웠지, 결코 곱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황후 자리를 원했겠는가?
몬스터를 찾아 살육 원정을 떠나는 게 그녀들의 일상이었다.
“파에라톤의 역사에 남을 정도의 기회다. 루아티샤, 나는 이 세상의 가장 좋은 것과 귀한 것들 모두 다 네 손에 쥐여 줄 수 있다.”
에스테반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작?”
풋!
루아티샤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하시는 말씀이 겨우……. 제국의 황태자라는 분이 배포가 작아도 너무 작으시네요.”
“뭐……?”
“그딴 거에 내가 솔깃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 건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루아티샤 스스로의 힘으로.
“거실 거라면 황태자 위라도 거셨어야죠.”
루아티샤가 툭, 에스테반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너……!”
“물론 별로 탐나지도 않지만.”
“황위를 그리 가볍게 혓바닥 위에 놀리다니 역모로 잡혀가고 싶은 건가? 귀엽다고 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농담인데 왜 그렇게 정색하세요? 황제 폐하셨다면 호방하게 웃으며 오히려 제게 ‘이 자리를 주랴?’ 하고 농을 치셨을 텐데.”
루아티샤가 “아.” 하며 피식 웃었다.
“배포가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애초에一.”
루아티샤가 발돋움을 해 에스테반의 귓가에 속삭였다.
“시드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전하께서는 황태자 위에 오르지도 못했을 테니까.”
“……!”
딱딱하게 굳은 에스테반의 얼굴을 보고 루아티샤가 생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적당히 할 사람은 아레스가 아니라 황태자 전하예요.”
“…….”
“진심으로 짜증 나고 불쾌하니까 그만 좀 집적거려요. 진짜 없어 보이니까.”
루아티샤는 에스테반에게서 몸을 돌리고 활짝 웃었다.
“시드!”
시드리한은 온순한 양처럼 루아티샤에게 다가왔다.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의 손을 잡고 오늘 뭐 했냐, 잠은 잘 잤냐, 밥은 잘 먹었냐는 둥 쓸데없는 것을 종알종알 묻기 시작했다.
시드리한이 그 모든 질문에 성의껏 대답을 하면 루아티샤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웃었다.
에스테반은 눈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거야?”
“아레스.”
루아티샤가 아레스를 돌아보았다.
그 부름 한 번에 아레스의 불만스러웠던 표정이 풀렸다.
“내 동생.”
아레스가 양팔을 벌렸다.
루아티샤는 타박타박 다가가 둘째 오빠의 품에 푹 안겼다.
“내 동생,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나도.”
“그랬으면서 나보다 저 자식을 반겨?”
“어허, 저 자식이라니. 황자님께.”
황태자인 에스테반에게 더 심한 말을 할 때는 되레 역성을 들어주더니 시드리한에게 고작 ‘저 자식’이라고 했다고 볼을 부풀린다.
‘어미새 따라오는 아기새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내 동생이…….’
아레스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
루아티샤가 히히, 웃으며 아레스를 올려다봤다.
“장난이야.”
“……울 뻔했잖아.”
“에이, 뭐 이런 걸로 울어. 제온이랑 아빠도 아니고.”
“그럼 솔직히 말할까?”
“응.”
“응.”
“저 새끼를 죽일 뻔했어.”
아레스가 사르르 웃으며 수줍게 고백했다.
루아티샤는 그냥 못들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같이 온 거야? 함께 사이좋게 온 걸 보니 기분이 좋네.”
그 질문에 시드리한은 시선을 피했고 아레스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우연히?”
“우연?”
“응.”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제에게 보고를 마친 아레스는 동생이 황궁에 왔다는 소식에 빠르게 이쪽으로 향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시드리한 역시 루아티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움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런 서로를 우연히一동선이 겹치니까 필연적이긴 했지만 아무튼一 발견했다.
아레스가 먼저 마기로 장애물을 만들었고 시드리한이 대응하듯 아레스의 발밑에 얼음을 깔았다.
공동의 적? 에스테반의 모습이 보이기 전까지는 사실 경쟁적으로 서로를 견제해가며 엎치락뒤치락했다는 사실만 말하지 않았을 뿐.
어쨌든 우연히 만난 거였다.
“아무튼 보기 좋아. 앞으로도 싸우지 말고 잘 지내기야?”
“그럼 그럼.”
아레스가 입에 침도 안 바른 채 햇살처럼 환히 웃었다.
* * *
루아티샤는 아레스와 시드리한과 함께 사라졌다.
아레스와 시드리한이 등장하며 대기소를 지키던 궁인 역시 눈치껏 자리를 비킨지라 이곳에는 그 외에 아무도 없었다.
에스테반은 덩그러니 홀로 그 자리에 남아 빈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냥 무시당하는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감히 누가 제국의 황태자인 에스테반을 그리 대한단 말인가!
‘시드리한……!’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던 그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장애물.
황태자가 되었으니 이제 더는 신경 쓸 일 없다고 여겼건만.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리는 것은 끝까지 제 손에 떨어지지 않는 여자였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이미 사라진 루아티샤의 빈자리를 보는 에스테반의 눈길이 음험했다.
그때였다.
“황태자 전하.”
갑자기 들린 가느다란 목소리에 에스테반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반짝거리는 금발을 길게 늘어트린 예쁘장한 여자가 서 있었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루아티샤는…… 원래가 그런 아이예요.”
“…….”
“천박한 제 어미를 닮아 천성부터 남자들과 놀아나길 좋아하니 어쩔 수 없지요.”
보드라운 손이 에스테반의 주먹을 감싸 쥐었다.
“그래도 그 아이를 원하시나요?”
에스테반은 답이 없었다.
여자가 샐쭉 웃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요.”
그녀가 에스테반에게 몸을 붙였다. 한 치의 틈조차 없을 정도로.
달큼한 향기가 에스테반의 코를 찔렀다.
“높은 가지 위의 고고한 꽃은 꺾기 힘들지만一.”
숨결과 함께 녹진한 목소리가 에스테반의 귓가에 울렸다.
“땅에 떨어져 짓밟힌 꽃을 줍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 아닙니까.”
그리 속삭인 입술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 * *
– …….
“미안해.”
– …….
“정말 미안하다니까?”
“에이, 화 풀고 내 얼굴 좀 봐주라, 응?”
내가 삭삭 비는 대도 익시온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정말 삐졌나 봐.’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었다.
그렇다.
어제 아빠가 돌아오신 후, 너무 많은 일이 생긴 바람에 나는 익시온에게 다시 연락하는 것을 완전히 까먹어 버린 것이다.
방금 익시온에게 연락이 오고 나서야 ‘아차!’ 하고 재빨리 통신을 받았다.
보통 아무리 삐졌어도 이쯤에서는 풀어지던 익시온이 이러는 걸 보면 아무래도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었다.
‘안 되겠어.’
간만에 비장의 수를 써야겠다.
쪽팔림은 잠깐이지만 집안의 평화는 영원하다!
도와줘요, K-주접!
“익시온, 그거 알아?”
– …….
익시온은 여전히 날 보지 않았지만, 통신석에 비친 그의 귀가 살짝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나는 공용마차를 탈 때 항상 두 명분의 삯을 내. 왜인지 알아?”
이번에는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가 도로 원위치로 돌아갔다.
‘귀엽긴.’
나는 속으로 쿡쿡 웃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익시온이 함께 있거든.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언제나 두 명 몫을 내.”
익시온은 아직도 나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뺨이 볼록해졌는데요. 그것도 엄청.’
삶은 달걀을 눈 밑에 툭 얹은 모양새였다.
“항상 익시온이랑 함께 있는 기분이라서 그랬어. 저얼대! 익시온한테 연락하는 거 잊은 거 아냐.”
– ……정말?
“정말이지!”
그제야 익시온이 나를 바라보았다.
옅은 심통이 묻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익시온이 반사적으로 미소 지었다가 다시 얼굴을 굳혔다.
“다들 공작저에 있는데 왜 나만 여기에 있는 거야.”
“익시온이 가장 믿을 만하니까 그러지. 까딱 잘못하다간 영지에 큰일이 생길 수 있는걸.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길 사람은 익시온밖에 없어.”
– 그래?
“그러엄!”
–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익시온이 씨익 웃었다.
– 솜뭉치가 그렇게 나를 믿고 따른다는데 힘내보는 수밖에. ……그리고 만약 또 개수작을 부리는 새끼 있으면 내 손에 뒤졌어.
아니, 죽이진 마.
죽이더라도 알아낼 건 알아내고 죽여야지.
그때였다.
“별 용건도 없는 것 같은데 이만 끊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돌아보니 긴 다리를 꼰 채 크레센티오가 문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방금 그 목소리 누구야? 남자 목소리 같은데.”
“칭찬이라도 해드려야 하나? 맞춰서 대단하다고?”
코웃음 치며 다가온 크레센티오가 내 손에서 통신석을 채갔다.
“너 이 새끼 누구一.”
툭.
통신석이 빛을 잃으며 익시온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통신석이 울렸지만, 크레센티오가 아예 꺼버렸다.
허.
“뭐하냐?”
“너야말로 뭐 하는 거지?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있나?”
“적어도 너랑 이렇게 입씨름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크레센티오가 우아하게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애초에 딴짓하지 않았으면 입씨름할 일도 없었겠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해가 안 되네.’
이 재수탱이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는 거지?
내 친구들의 시력 괜찮은 건가?
내가 무척 좋아하고 신뢰하는 친구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시력과 취향이 의심스러웠다.
“왜 왔어?”
내 말에 크레센티오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불러놓고도 까먹은 건가?”
아, 맞다.
“……정말 까먹었나 보군. 사람 불러놓고 노닥거리는 것으로 모자라서 아예 잊어버리다니.”
듣고 보니 좀 미안했지만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
오죽 재수가 없어야지.
내가 흥, 하고 고개를 돌리자 크레센티오가 소파에 앉았다.
“……카인이라고 했나?”
침묵 끝에 나온 이름에 나는 다소 놀랐다.
크레센티오와 카인은 만난 적도 없을 텐데.
“갑자기 카인은 왜?”
“글쎄, 왜일까.”
그의 입가에 비딱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 속뜻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아니,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의도가 가득 담겨서一.
“당신…….”
카인이 마족인 걸 알고 있어?
나는 애써 그 물음을 삼켰다.
크레센티오는 바짝 굳은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정신 차려. 그런 녀석과 함께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종말에서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건 크레센티오가 카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시인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아니,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제 어쩌지?’
카인이 마족이라는 게 알려지는 순간 성녀로서의 내 입지는 흔들릴 터.
‘더군다나 리리엘의 경우가 있었기에 또 가짜가 아니냐고 의심할 거야.’
파사의 힘인 척 꾸며내는 경우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니까.
사회적인 통념과 달리 직접 겪어본 마족은 딱히 신과 대적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사람들이 알까?
알려준다고 해도 곧바로 받아들일까?
그리고 마족을 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기준에서 보자면 좀 문제가 많았다.
“왜.”
크레센티오가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잿빛 눈동자는 묘하게도 얼음처럼 깨끗해 보였다.
깨끗하다 못해 어떤 어둠도 담지 못하는 거울처럼一.
“약점이 될 걸 알면서도 그를 곁에 두는 거지?”
“……그야 그 약점을 상회하는 장점이 있으니까.”
만약 카인이 아니었다면 티리엘이 갇혀 있는 곳을 그렇게 빨리 찾지 못했을 거다.
특히 키야스에델은 사기를 다루는 신이다.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사기에 익숙한 마족이 필수적이었다.
나는 각오를 단단히 굳혔다.
여기서 발뺌하고 부정해봤자 의미가 없다.
“카인과 함께하는 것이 이 세상을 종말에서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냐고?”
“…….”
“당연히 도움 되지. 적어도 당신보다는 훨씬 도움 돼.”
“뭐?”
크레센티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진심으로 울컥했어.’
크레센티오가 재수탱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아무래도 신성력이 강한 신관이라서 그런가?
마족을 유독 싫어하는 듯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크레센티오의 속을 긁기로 결정했다.
수많은 로판을 본 독자로서 감이 온다.
이런 녀석은 숙이고 들어가는 것보다 맞서는 게 다루기 더 쉽다.
“당신, 딱히 하는 일 없잖아?”
크레센티오는 묘하게 귀족보다도 더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노동하지 않는 자 특유의 아우라가 있달까.
그래서 그런지 신관들은 크레센티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부른 거고.’
“하는 일이 없다니. 내가 얼마나一.”
“됐고.”
나는 크레센티오의 말을 일축했다.
함께 있는 편이 쓸데없다고 말하지 않나 감시하기도 편하겠지.
“나랑 일 좀 하자.”
“……너랑?”
이건 예상외였다.
까칠하게 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솔깃해하는 반응.
“……무슨 일?”
“우선 그 잘생긴 얼굴부터 이용 좀 하자.”
크레센티오의 얼굴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