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5화(285/353)
☆ 제285화 ☆
“사이다?”
“응.”
그게 뭐냐는 듯 크레센티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게 있어.”
내 혈관에 흐르는 거.
‘우선 탄산 넣기 전에 당부터 충전하러 가야겠다.’
* * *
체시아 백작의 말대로 시드의 궁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근위병들이 깔려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황제가 병중이라 황궁 내궁의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 리가.
‘정면 돌파할까.’
나는 근위병을 살피며 고민했다.
아무리 황제 대행의 명령이라고 해도 신의 대리자인 성녀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을 터.
‘……됐다. 괜히 엄한 사람 문책당할라.’
저들도 갑작스러운 추가업무에 찌든 직장인일 뿐이다.
거기다가一.
어쨌거나 황제가 쓰러져 정세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상황.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없는 덤터기까지 쓸 수 있다.
‘간만에 실력 발휘해보실까.’
나는 열 살 응애 때 폐후의 궁에 숨어들어 시녀들을 협박했던 몸이시다.
거기에 시드의 궁에 몰래 갔던 적도 있고.
‘……문제는 그때보다 훨씬 감시가 삼엄하다는 건데.’
고민하는 내 눈에 마침 적절한 미끼가 들어왔다.
“크레센티오.”
“……뭐지?”
“왜 그렇게 흠칫해? 난 그냥 부른 것뿐인데.”
“네 눈을 보니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에이, 불길하다니. 너무하네.”
나는 하하하, 웃었다.
“나는 그저 당신이 신관으로서 사람들에게 작은 봉사를 할 기회를 주려고 했을 뿐이야.”
“……봉사?”
“원래 신관의 기본적인 덕목이잖아? 거기에 율법에도 있어. 곤경에 처한 자를 지나치지 말고 도와주라고.”
크레센티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체 누가 그딴 율법을…….”하고 중얼거렸다.
얘도 가만 보면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신관이 됐는지 신기하다니까.
재능이 뛰어나서 됐다기엔 처음부터 신성력이 강했던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타대륙에서 순례 여행 중이었다는 때에 제도에서 날 만났던 것도 아직 풀리지 않았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크레센티오를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례없이 강한 신성력을 가진 유능한 대신관으로서 나라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근위병들을 턱짓하며 가리키자 크레센티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너는?”
“나는 그 사이에 할 일이 좀 있어서.”
“……그 남자에게 가려는 거군.”
“음, 그 말이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지 않은 게 아니야.”
“그래서, 나 보고 미끼가 되어라?”
정확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에이. 미끼라니.”
나는 팔꿈치로 크레센티오의 옆구리를 툭 쳤다.
“추가업무로 찌든 지친 현대인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달라는 거지. 폐하께서 쓰러진 상황이라 심리적으로 얼마나 압박이 크겠어.”
크레센티오는 실실 웃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툭 내뱉었다.
“……이 나를 이렇게 부려 먹는 인간은 너뿐일 거다.”
솔직히 많이 부려 먹진 않았는데.
내 보좌단이나 다른 신관들에 비하면 크레센티오는 꿀 빨고 있었다.
“하아, 내가 왜…….”
투덜투덜하면서도 크레센티오는 근위병들 쪽으로 걸어갔다.
“시선만 끌면 되는 거지?”
그렇게 묻기까지 하면서.
“응.”
‘쟤도 가만 보면 은근히 말 잘 듣는다니까?’
그냥 재수탱이인 줄 알았는데 말 잘 듣는 재수탱이랄까.
지난번에 함께 일하자며 데리고 나가서 얼굴마담一 아니 봉사시켰을 때도 느꼈지만.
시키면 엄청 꽁시렁대면서도 결국 다 한다.
‘……재수탱이라는 건 뺄까? 말 잘 듣는데 재수탱이라고 하는 건 좀.’
지금도 보라.
얼마나一.
“영광인 줄 알아라. 내가 친히 축복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음.
‘역시 재수탱이인 건 어쩔 수 없나 봐.’
근위병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와서 저러면 나라도 그러겠다.
‘에이, 몰라.’
어쨌거나 시선을 끄는 것만큼은 성공이었다.
3초 뒤에 수상하다며 시선을 끄는 거 같으니 주변을 살피라는 말이 나올 거 같지만.
나는 일단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때였다.
번쩍번쩍한 빛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모습.
크레센티오가 신성력을 퍼트려 축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요란한 축복이라니.’
그래도 효과는 끝내줬다.
저 앞에 있던 근위병들까지도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하며 웅성대며 크레센티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체 이게 뭐지?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이 몸에서 힘이 흘러!”
“오오, 36시간은 꿀잠 잔 것 같은 기분!”
“피로 싹! 기력 충전!”
“어이, 이쪽으로 와 보라구! 정말 끝내줘!”
“…….”
뭐지.
이 싸구려 바이럴 문구 같은 감탄사는.
어쨌거나 계속된 추가업무로 퇴근조차 하지 못했던 근위병들이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은 긴장을 놓게 만든다.
덕분에 나는 아주 수월하게 근위병들을 지나쳤다.
‘……나야 좋지만 황궁 근위병들이 이래도 되는 걸까.’
약간 이 나라의 보안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몬스터 때문에 내적도, 외침(外侵)도 없는 나날이 몇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뭐, 실질적으로 안전을 책임지는 건 황실 기사들이니까.’
그리고 에스테반은 아직 황실 기사들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못 하는 거겠지만.’
절차상 황태자인 에스테반이 대리청정한다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황제가 쓰러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대리청정까지 가겠는가.
단순 업무 대행과 대리청정은 차원이 다르다.
‘하니 황실 기사들은 움직일 수 없는 거겠지.’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 * *
시드리한은 창문에 기댄 채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사실 아무리 근위병들이 진을 치고 있든 말든 시드리한은 원한다면 언제든 산책이라도 나가듯 자신의 궁을 나갈 수 있었다.
다만 에스테반의 의도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귀찮아. 그냥 죽여버릴까?’
에스테반 따위, 자신의 손짓 한 번이면 그 조잡한 숨이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뒷수습을 생각해야 했다.
어쨌거나 에스테반은 황실의 직계 피를 이은 황족.
그냥 마음대로 죽이면 저주가 따를 것이다.
‘루루한테 하는 짓을 보면 내가 저주받든 말든 그냥 죽여버리고 싶지만.’
분명 그 애는 자신이 저주받은 것보다 더 슬퍼할 것이다.
그 파라이바빛 눈동자에 걱정과 슬픔이 가득 들어차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지끈거렸다.
그 애는 착하고 동정심이 많으니까 분명 저주에 걸린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줄 것이다.
다른 것들一어쩌면 가족들까지도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을 보살펴줄지도.
‘……그건 좀 좋은지도.’
시드리한은 조금 고민했다.
‘아.’
애달픈 한숨이 나온다.
‘보고 싶다.’
얼굴을 떠올렸더니 보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더 강해진다.
‘통신했을 때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가 끊을걸.’
하지만 그 애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 알아채는 즉시 이쪽으로 올 게 뻔해서.
‘……여기에 오면 안 돼.’
에스테반이 근위병들을 배치 한 건 단순히 시드리한을 고립시키겠다는 뜻만이 아니다.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궁에 억지로 들어가려 한다면 거기에 누명을 씌울 생각조차 하고 있을 것이다.
‘루루도 그걸 알겠지.’
이쯤이면 루아티샤 역시 시드리한이 고립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통신에서 내가 괜찮다고 말 한 의도를 알아챘을 테니 오진 않겠지.’
다행이었다.
그럼에도一.
시드리한이 툭, 창틀에 머리를 기대는 순간이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 만발해 있는 정원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보였다.
본디 이 정원은 이렇게까지 호화롭지 않았는데, 루아티샤를 궁에 들여야 한다고 황비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갈아엎어서 황궁의 그 어느 정원보다도 사치스러워졌다.
온갖 꽃으로 눈이 어지러운 가운데 분홍빛 정수리가 꽃 사이로 뿅, 하고 떠올랐다.
시드리한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루루?’
몰라볼 리 있겠는가.
분홍 정수리가 다시 빼꼼하더니 들썩들썩 화단 사이를 이동한다.
‘대체 여긴 왜一.’
초조함이 가슴을 까맣게 태웠다.
‘들키면 어쩌려고.’
그때, 꽃 사이로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그 말간 얼굴과 단번에 시선이 마주쳤다.
‘시드!’
입 모양만으로 시드리한을 부르며 루아티샤가 환히 웃었다.
만개한 꽃보다도 더 아름답게.
아.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시드리한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서서히 그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는 미소가 깃들기 시작했다.
* * *
“괜찮다니까 왜 왔어.”
분명 아까 엄청 반가워한 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막상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니 이런 말이나 한다.
‘아까 웃는 얼굴은 진짜 기록해두고 싶을 정도로 예뻤는데.’
시드가 그런 식으로 웃는 건 정말 처음 봤다.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에스테반이 일부러 파둔 함정이야.”
“그래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착각하지 마. 너 때문에 너가 걱정되어서 온 거 아니니까.”
“…….”
“날 위해서 온 거야.”
내 말에 시드의 얼굴이 기묘했다.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빨리.”
“…….”
“아야야, 팔 떨어지겠다.”
시드가 못 이기는 척 나를 푹 끌어안았다.
“날 위해서 온 거 아니라며.”
“응, 날 위해서 온 거야.”
나는 시드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당 충전.”
“…….”
시드의 뺨이 슬쩍 빨개졌다.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내게서 시선을 피한다.
수줍어하는 미남의 모습은 언제나 귀한 것이라 나는 눈을 빛내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음, 좋아.
보는 것만으로도 당이 충전되는 게 아주 맛있는 사이다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시드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들이밀며 히히 웃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애질이냐.”
불만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이니까 더 그러는 거거든?”
내 말에 카인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럼 모처럼이니 나도 함께一 으, 진짜 너 왜 자꾸 기분 나쁜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거야?”
내게 바짝 다가왔던 카인이 몸을 물렸다.
아니, 얘는 또 이러네?
“원래 네 냄새가 얼마나 좋은데. 계속 맡고 있고 싶을 정도로 황홀하다고. 그런데 어째서 이딴一.”
휘익!
“읏차!”
카인이 재빨리 몸을 물렸다.
“방금 진짜로 나 죽이려고 했지?”
“꺼져.”
언젠가 본 것과 똑같은 광경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째 성장이 없냐.
나는 상황을 정리할 겸 카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카인, 혹시 황궁 내에서 사기가 느껴져?”
“사기? 아니, 딱히. 나한테서 느껴지는 것뿐이야. 겉으로 내뿜고 있는 게 아니라서 인간들은 못 느끼겠지만.”
“그래?”
“왜?”
사기라는 말에 모처럼 카인의 얼굴도 진지해졌다.
“황제의 용태가 수상해. 병도 아니고 음독 당한 것도 아니야. 사기 때문인가 했지.”
내 말에 카인이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일단 사기는 안 느껴져. 너도 이제 느낄 수 있지 않아? 적게나마 파사의 힘을 의지대로 다룰 수 있으니까.”
“나도 안 느껴져서 너한테 물어본 거야.”
카인도 못 느낀다면 정말 사기가 아니었던 걸까?
“……에스테반의 곁에 클라티에가 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토렌시아의 공주인 슈리엘이라고 말했지만 아니야. 그 여자는 클라티에야.”
“뭐, 그게 누군진 몰라도 네 의견이 정답이겠지.”
카인이 으쓱했다.
“그나저나 슈리엘이라…….”
“이름도 수상해. 여태까지 리리엘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름은 끝이 ‘리엘’로 끝났거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이라기에는 100퍼센트의 확률 아니던가.
“그건 힘을 이어받기 편하기 때문이야.”
카인이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며 말했다.
“이름에는 힘이 깃들기 쉬우니까. 원형을 똑같이 유지하면 보다 수월하게 힘을 나눌 수 있고 통제할 수도 있어.”
“그 말은一.”
내 말에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히도 비슷한 이름일 수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여자 역시 키야스에델과 관련 있다고 봐야겠지.”
“…….”
“사기가 느껴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만.”
그때, 잠자코 있던 시드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알 것 같은데.”
“정말?!”
나는 깜짝 놀라 시드를 바라보았다.
시드가 나를 보더니 웃고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그의 말이 다 끝난 순간.
방안에는 짙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루루.”
시드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걱정하는 눈동자.
그렇게 볼 필요 없는데.
왜냐하면一.
“오히려 잘됐어.”
나는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