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8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88화(288/353)
☆ 제288화 ☆
“무, 무슨 말씀을…….”
“에스테반 황태자 전하께서 한때 잠깐 파에라톤 공녀께 관심을 내비쳤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다 지난 일이고 그건 딱히 관심이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어……. 거의 십 년가량을 쫓아다녔는데 그게 ‘한때 잠깐’, ‘관심도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영애들의 말에 루아티샤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죠. 영애들이 합심해서 공주를 놀렸다는 게 들키니까 아닌 척 수습하려는 건 알겠지만.”
무슨 소리야!
우린 슈리엘 공주가 황태자비가 될 거라는 걸 자랑한 것뿐이었다고!
당연하지만 ‘공녀’보다 ‘황태자비’가 훨씬 더 높은 존재다.
“이제 다들 자중하세요. 어쨌거나 슈리엘 공주는 황태자 전하께서 초대한 국빈 아닙니까.”
루아티샤가 제법 진중한 태도로 영애들을 타일렀다.
그래, 그 모습은 어디로 보나 진심으로 ‘외국의 공주를 홀대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다.
‘아니, 장난해?’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거야?
그러나 일부러라고 하기엔 루아티샤의 얼굴에 진심이 가득했다.
‘황제 앞에서도 요구할 거 다 요구하는 그 파에라톤 공녀가 이렇게 꿍꿍이 없이 순수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나?’ 하고 놀랄 정도로.
하지만 여기에서 뭐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 우리는 너를 기죽이려고 한 거야.
一라고 구구절절 말해봐야 본인들 꼴만 우스워질 뿐이다.
슈리엘은 깨달았다.
눈치 빠른 자보다 눈새가 훨씬 상대하기 힘들다.
돌려 까도 알아먹질 못하니까 이쪽의 속만 터질 뿐.
‘……차라리 화제를 옮기는 게 낫겠어.’
슈리엘은 목을 가다듬고 찻잔을 들며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오늘 공녀께서는 어떤 분의 에스코트를 받으셨죠? 제가 미처 보지 못해서…….”
“저도 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시드리한 전하께서 에스코트해주시지 않으셨겠어요?”
“어머. 공녀와 시드리한 전하의 사이가 무척 각별한가 봐요.”
슈리엘은 놀라는 척하며 루아티샤의 안색을 살폈다.
에스테반의 견제로 시드리한이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건 그 말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냐.
너 오늘 에스코트도 못 받았지?
니 남친이 내 남친한테 밀려서 궁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풋!
一이라는.
하지만 루아티샤는 왠지 모르게 우쭐거리고 자랑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에이, 그렇게까지 각별하진 않은데. 음, 좀 각별하긴 한가?”
“네……?”
“많이는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시드가 저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하는 정도?”
“예?”
뭔가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게 루아티샤의 지옥의 남자친구 자랑이 시작되었다.
“글쎄, 그걸 깜짝 선물로 주려다가 실패해서 당황한 거 있죠? 귀엽게.”
한참 떠든 루아티샤가 꺄르르 웃었다.
물론 이 테이블에서 웃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보다 못한 영애 하나가 얼굴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황태자 전하께서도 얼마든지 공주님께一.”
“에이. 그래서, 공주님은 그런 선물 받았어요?”
“…….”
“아니, 받았다고 해도 우리 시드와 비교나 되겠어요?”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황태자 전하의 능력을一.”
“시드는 깜짝 선물 성공해도 귀엽고 실패하면 더 귀여워.”
“…….”
“들켜버려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최고야.”
“…….”
“혼자 두근두근하면서 계획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내 안의 폭력성이 일깨워진달까. 다 뿌수고 싶게.”
루아티샤가 몽롱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콰드득.
그녀의 손에서 의자 팔걸이가 괴로운 소리를 냈다.
파에라톤의 피가 딱히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테이블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영애들이 루아티샤가 자랑하고 싶던 것의 실체를 깨달은 것이다.
값비싼 선물이나 로맨틱한 행동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
내 남친 대박 잘생겼다!
‘이건…… 졌다.’
‘질 수밖에 없지…….’
‘다른 것도 아니고 얼굴을…….’
‘얼굴만이야? 몸도 조각상이야…….’
영애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것만 보고 자라서 미적 기준이 엄격한 편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가족들로 조기 단련(?)된 루아티샤의 지독한 심미안을 통과한 시드리한은 이들의 눈에 신이 내린 은총이자 축복 그 자체였다.
에스테반 황태자도 물론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시드리한은 체급 자체가 다르달까.
여기서 ‘에스테반 전하께서도 시드리한 전하만큼 잘생기셨어요!’라고 외치기엔 영애들의 고고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적(政敵)은 정적이고, 미에 대한 기준은 언제나 엄격해야 하는 법.
‘……아까 시드리한 전하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묘하게 의기양양해 하더라니.’
미남을 쟁취한 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였다.
‘……무서운 아이!’
영애들이 긴장한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슈리엘은 어이가 없었다.
‘뭘 또 탄복하고 있어!’
대체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른 거지?
누가 봐도 망신 주려고 물은 건데 왜 남친 자랑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어머나, 저는 아직 시드리한 전하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요. 오늘 공녀의 에스코트를 해주신 거라면 이따 볼 수 있으려나요?”
“아, 아니요. 오늘 에스코트는 제온이 해줬어요.”
걸렸구나.
슈리엘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머, 시드리한 전하가 아니라요? 제온이라면 파에라톤의 소공작이시죠?”
“원래 제 에스코트는 보통 가족들이 많이 해요.”
“아아, 원래 가족분들이 많이 하시는구나~.”
피식.
슈리엘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혹시 제국의 전통인가요? 토렌시아에서는 가족이 아닌 다른 신사분의 에스코트를 받는 게 보통이거든요.”
“제국에서도 그러진 않지요. 나이가 아주 어렸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나이에는…….”
영애들이 눈을 샐쭉 휘며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빠랑 오빠들 손 잡고 입장하냐.
과연 이번에는 루아티샤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표정이 살짝 굳었다.
슈리엘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물었다.
“제온 소공작께서는 막냇동생을 아주 아끼시나 봐요.”
“네, 뭐.”
“하기야. 그러니까 지금 그 나이까지 에스코트해주는 거겠죠? 설마하니 공녀께서 에스코트 상대가 없어서 그럴 리는 없을 테고.”
내 남친이 네 남친을 가두거나 해서 말이야.
“맞아요.”
“그럼 제온 소공작께는 연인이라든지 다른 에스코트 상대는 없는 건가요? 언제까지나 동생 뒷바라지만一.”
“슈리엘 공주.”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제온한테 관심 있어요?”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슈리엘의 입술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어머.”
루아티샤가 감탄을 흘리며 입술을 가렸다.
‘맞구나.’
누가 봐도 그렇게 판단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 아니에요! 왜 그런 생각을……. 저는 절대一.”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이런 데에는 눈치가 또 빠른 편이거든요.”
루아티샤가 뿌듯해하며 뽐내는 얼굴로 말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왔다는 듯한 태도.
“어려서부터 사랑의 짝대기를 기가 막히게 그렸기도 하고. 솔직히 우리 제온 정도라면 첫눈에 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저는 소공작께 관심이一.”
“그런데 어쩌죠?”
루아티샤가 딱하다는 얼굴로 슈리엘을 바라보았다.
“슈리엘 공주는 딱히 제온 취향이 아니에요.”
“네?”
“아니, 취향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음.”
루아티샤는 말을 고르듯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결국 포기하고 헤헤 웃었다.
“차마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엔……. 그냥 공주께서 깔끔히 포기하시는 게 좋겠어요.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잖아요?”
이건 뭐지.
좋아하기도 전에 차인 건가?
의문의 1패를 당한 슈리엘은 기가 막혔다.
물론 제온 같은 사람이 자신의 오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자란 루아티샤보다 뛰어난 자신이 그의 동생인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다 옛날 일이다.
지금은 루아티샤를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파에라톤의 그 잘난 공자들까지 다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외면했던 할아버지까지 포함해서!
“아, 물론 우리 오빠들만한 남자는 잘 없지만…….”
중얼거린 루아티샤가 눈매를 슬쩍 찌푸리며 슈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공주는 황태자 전하의 연인 아니었던가요?”
“네, 저는 에스테반 전하와 특별한 사이라서 파에라톤 소공작께는一.”
“음, 그럼 태도를 확실히 하는 게 좋겠어요.”
“뭐라고요?”
“연인이 있는데도 다른 남자를 궁금해하고 눈독 들이는 거, 좋아 보이지 않아요.”
“허……!”
기가 막혀서 머릿속이 하얘지는 게 바로 이런 걸까.
“난 소공작께 관심 없어요!”
“음……. 그러시겠죠. 그렇게나 끈질기게 계속해서 제온에 관해 물으셨지만, 물론 공주께서는 관심 하나 없으실 거예요.”
슈리엘을 바라보는 루아티샤의 시선이 애잔했다.
저건 연기가 아니다.
진심이다.
“전 그럼.”
루아티샤는 흠잡을 데 없이 가뿐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데 보지 않고 지금 인연과 예쁘고 좋은 사랑하시길 바랄게요. 화이팅!”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
테이블 위에 놓인 슈리엘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푸흡……!”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슈리엘은 휙 옆을 돌아보았다.
주변의 테이블에서 영애들이 입을 가린 채 “크흠, 큼!” 헛기침하며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대놓고 웃지 않을 뿐, 저들이 슈리엘을 어찌 보는지는 확실했다.
‘이 나를 완전히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슈리엘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루아티샤가 먼저 이쪽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끝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루아티샤는 지금 불리한 상황이었다.
물론 영애들은 루아티샤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황제가 쓰러진 이상 에스테반 황태자에게 권력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교계는 정치권력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심지어 루아티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미첼로인과 자신이 손을 잡은 상황.
‘……루아티샤라면 훨씬 더 계산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마치 말에 담긴 속뜻과 주변의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는 것처럼一.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야.’
비록 루아티샤가 사교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슈리엘을 코를 콱 눌러 줬지만.
결국 에스테반이 권력을 잡고 시드리한이 감시당하고 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드리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황제가 쓰러진 것을 틈타 감히 황제의 대행이나 다름없는 황태자에게 반기를 든다며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작정이었다.
그리고.
‘네 옆 사람부터 잘 챙기지 그래?’
슈리엘의 시선이 클라우디아를 향했다.
가만히 잠자코 있던 클라우디아가 그 시선을 느끼고 슬쩍 미소 지었다.
슈리엘의 입가에 비슷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가 생각하는 루아티샤의 옆 사람은 비단 클라우디아만이 아니었다.
‘그 남자.’
그녀의 머릿속에 키가 훌쩍 큰 우아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에 관해서 네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사랑스러운 나의 사촌 동생.’
* * *
나는 하비에르 홀에 딸린 정원을 거닐었다.
그런 내 옆으로 알림창이 함께 움직였다.
[스킬 〈눈새〉가 발동되었습니다.]알림창에 커다랗게 떠 있는 글씨를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에도 딱히 눈새짓 따위 하지 않은 거 같은데.’
아니, 오히려 엄청난 눈치를 발휘했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연애 문제에 관해서는 꽤 눈치 빠르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괜히 내가 로판 독자가 아니지!’
영애들과 영식들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눈짓과 손짓.
그걸 다 캐치해내는 나의 눈치!
마치 로판을 눈앞에서 3D로 감상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달까?
참고로 나는 프로 베댓러였던 만큼, 떡밥 추리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눈새가 되어도 이렇게나 눈치가 좋다니.’
나조차 내가 무서울 지경이다.
‘후우, 이렇게까지 눈치 빠를 필요는 없을 텐데.’
잠시 나의 악마적 재능에 감탄하는 때였다.
내 위로 그림자가 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시드?”
어째서 그가 여기에?
정확히는一.
“앗, 지금은 에첸이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에첸의 모습이긴 했지만.
“내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 에첸이라고 부를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스킬 〈눈새〉가 발동 중이었다.
음.
‘괜찮겠지?’
나는 스킬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눈치가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