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9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90화(290/353)
☆ 제290화 ☆
* * *
나는 하트가 빵빵하게 채워져 있는 아키투스를 바라보았다.
‘좋아.’
준비는 완벽하다.
무엇보다 잭팟을 터트려가며 소환한 소설이 바로…….
– 소환 중인 소설: 〈폭군의 첫날 밤을 훔치고 달아나 버렸다〉
후후후.
후후후후후!
자랑스럽게 쓰여있는 제목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가슴을 가로지른 레더 아머를 한 번 더 꽈악 조였다.
가벼운 경장 차림이었지만 효과는 꽤 상당했다.
‘파에라톤의 보물고에서 훔쳤으니까.’
나도 파에라톤의 직계고 아무 때나 출입해서 가지고 나올 수 있으니 훔쳤다고 하기엔 뭐하지만.
마지막으로 탁, 한 번 두드리자 가죽에서 찰진 소리가 났다.
나는 몸을 벽에 붙인 채 조용히 읊조렸다.
[스킬 〈은신〉이 발동합니다.]그러자 몸에 기묘한 감각이 깃들었다.
묘하게 몸이 더 가벼워지는 느낌.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처럼.
‘역시 우리 대도(大盜) 언니.’
내가 이번에 소환한 소설 속 여주 언니는 무려 폭군의 첫날 밤을 훔친 사람답게 대도 중의 대도였다.
도둑 신사 뤼팽이나 천사 소녀 네티에 버금가는 대도둑님 이시랄까.
폭군의 침실에까지 숨어들 정도라면 그 실력이 얼마나 대단 한지 알겠는가?
‘이 언니도 완전 짱 센 소드 마스터야.’
비록 길치라서 황실 보물고에 가려다가 폭군의 침실로 가는 불상사를 저질러 버렸지만.
‘하지만 흠칠 건 제대로 훔쳤으니까.’
본디 미남이야말로 나라의 가장 귀한 보물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언니는 진정한 대도였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크레센티오와 클라티에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빙 돌고 있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좌우로 꺾어가며 돌아가고 있었다.
‘설마 내가 따라가는 걸 눈치 챘나?’
아니지. 우리 여주 언니의 능력은 최강이다.
그리고 눈치챘다면 다른 반응이 있었을 것이다.
‘혹시 모를 미행에 대비한 것일지도.’
나는 조금 더 거리를 벌린 채 두 사람을 따라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
불현듯 눈앞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텔레포트?’
하지만 거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는지 별 반응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딱 두 사람이 사라진 지점에 발을 내디딘 순간.
“……!”
나를 반기고 있는 건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왜 그렇게 빙빙 돌아 이곳으로 왔는지 깨달았다.
‘진(陣)이었던 거야!’
그 빙 돌아오던 발자취가 이 진을 열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이곳으로 와야만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역시.’
나는 시드의 추론이 맞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이런 규모라니.
이건 그저 복수심에 불탄 클라티에가 홀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키야스에델을 따르는 사이비가 내 생각보다도 훨씬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무래도 내가 성녀로 즉위한 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나서 생긴 게 아니라一.’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제국의 깊숙한 어둠 속에서 또아리를 튼 채 몸을 도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 *
등 뒤로 석벽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크레센티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방에 키야스에델의 기운이 스멀스멀 흐르고 있었다.
짙고 묵직한 사기.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런 곳으로 안내할 줄은 몰랐는데.”
“신전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크레센티오 신관님께서 이목을 끌면 곤란하시겠지요. 이곳이야말로 은밀하고 아늑한 곳 아닙니까. 비밀 이야기를 나누기 딱 좋지요.”
로브를 벗은 슈리엘이 가늘게 웃으며 크레센티오의 팔에 친밀하게 손을 얹었다.
“또, 저와 이리 가까이 지내는 것을 성녀님이 알면 꽤 슬퍼하실 텐데요?”
“흥.”
크레센티오가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렸다.
과연 그 아이가 신경이나 쓸까?
‘아니, 신경이야 쓰겠지.’
신관이 어떻게 이교도와 함께 은밀한 회담을 갖냐며 어이없어할 거다.
“어머나. 제 말이 신관님의 심기는 불편하게 했나 봐요?”
눈을 가느스름하게 휘며 웃는 여자의 얼굴 위로 그 아이의 얼굴이 겹쳤다.
‘사촌이라고 알고 있는데.’
하나도 안 닮았다.
이 여자는 뱀과 같았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간교한 눈동자.
그에 반해 그 아이는一.
구름처럼 부드러운 분홍빛 머리카락이 환상처럼 시야 속에서 흐트러졌다.
자신만만한 눈동자.
조금 짓궂은 미소.
빨리 일하라며 쪼는 목소리.
‘……확실히 그 애도 마냥 착하진 않지.’
하지만.
가끔씩 보이는 말간 웃음이.
후두둑, 코피를 흘리고서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닦는 모습이.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이 마음이 쓰여서一.
‘기분이 나빠.’
크레센티오의 미간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슈리엘의 손을 떼어내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내게 길을 다 알려줘도 되는 건가? 아니면 ‘열리는 길’이 때에 따라 변하는 건가.”
“어머나, 나를 떠보는 건가요?”
“…….”
“뭐, 상관없어요. 이곳으로 안내한 건 제가 보이는 성의라고 하지요.”
“성의라.”
“이제 그쪽에서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하는데.”
건너편에 앉은 슈리엘이 테이블 위에 팔을 얹은 채 크레센티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크레센티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아프타네스의 성물이다.”
“흐응…….”
슈리엘이 성물을 들어 살펴보며 불쾌하다는 얼굴로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그 더럽고 기분 나쁜 아프타네스의 흔적이 느껴지는군요.”
“…….”
“이걸로 아프타네스의 힘을 역이용하면 아주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겠어요. 성녀님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일을 벌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까?”
“그걸 이용해 흉계를 꾸미고 성녀에게 덮어씌울 생각인가?”
“후후, 글쎄요. 어쨌든 이거면 나와 손을 잡겠다는 신관님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증거로 충분하죠.”
“그건 다행이군.”
“한데 신기하네요. 보유한 신성력이 역대 최고라는 당신이 나와 손을 잡는다는 게.”
“……오히려 이쯤 되니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게 보이더군. 살아남기 위해선 줄을 잘 잡아야지.”
“어머, 정말 옳은 판단이에요.”
이미 세상은 오래전부터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그 관성에 따라 파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물며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슈리엘이 손을 쓰고 있지 않은가.
“아프타네스의 대리자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봤자 제방에 난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죠.”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구멍은 점점 커질 것이고 종래에는一.
“결국 제방은 무너져 내려 온 몸을 바쳐 구멍을 막던 이부터 죽겠죠.”
슈리엘이 품 안에 성물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잘됐어요. 신관님 역시 키야스에델 님께 보탬이 되길 바랐다니.”
슈리엘의 손에 붉은 사기가 맺혔다.
“그 소원을 이뤄드릴 수 있겠네요!”
사기가 크레센티오에게로 뻗어져 나가는 순간, 크레센티오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쩌엉一!
응축된 신성력과 사기가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고막이 먹먹하게 막히며 공간이 뒤흔들렸다.
두 힘 모두 상대를 정화하거나 파쇄하는 성질은 없다.
순수한 힘과 힘의 세기 대결.
결과는 비등했다.
“흐음.”
슈리엘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기습 공격이었는데 이렇게 바로 반응하다니.
“내가 이럴 줄 알고 있었나 봐요? 우리 좋은 분위기였던 거 같은데.”
“키야스에델을 믿느니 오늘은 일찍 퇴근시켜주겠다는 그 녀석의 말을 믿지.”
“역시. 처음부터 나와 손을 잡을 생각 따위 없었군요? 실망이에요.”
“손을 잡는 척하면서 공격한 상대에게 실망이라는 말을 듣긴 싫은데.”
“공격이라니. 나는 그저 소원을 들어드리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슈리엘은 생글생글 웃었다. 꽤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곤란한데.’
크레센티오의 한쪽 눈매가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이곳엔 사기가 가득해서 저쪽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자신은 인과율의 영향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내가 불리해.’
크레센티오의 손을 타고 은빛 신성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쿠웅!
크레센티오의 몸이 석벽으로 끌려가 거칠게 처박혔다.
“쿨럭!”
제대로 신성력이 발하기도 전에 벽에서 뻗어져 나온 붉은 사기가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석벽 전체에는 붉은 선이 살아있는 것처럼 날름거리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벽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레센티오의 몸 위로 붉은 사기가 꾸물꾸물 기어 다니며 그를 포박했다.
“너……!”
크레센티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부터 방 전체에 술법을 걸어놨을 줄이야.
“푸훗!”
슈리엘은 웃음을 흘리며 크레센티오를 향해 걸어갔다.
또각또각.
“꽤나 그럴듯한 광경이네. 잘 생겨서 그런 건가? 아니면一.”
연둣빛 눈동자가 마치 예술품이라도 감상하듯 크레센티오를 위아래로 훑었다.
“一천족이라서 그런 걸까.”
“……!”
“왜 그렇게 놀라? 날 무슨 바보천치로 안 건가? 정말로 네 녀석이 천족이라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크레센티오가 이를 악물고 슈리엘을 노려보았다.
“애초에 인계에 오지 않고 천계에 얌전히 있었으면 그냥 세상이 멸망할 때 편하게 죽었을 텐데. 그 애 때문에 괜히 와서는.”
“…….”
“탓하려면 그 아이를 원망하도록 하세요.”
그에게 바짝 다가선 슈리엘이 손끝으로 크레센티오의 뺨을 쓰다듬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희생이야. 그 주제도 모르는 미천한 계집은 네 녀석이 스스로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도우려고 하는 걸 알기나 할까?”
슈리엘의 손가락이 크레센티오의 뺨을 꾸욱 눌렀다.
붉은 사기가 목을 타고 올라 뺨에까지 기어올랐다.
슈리엘의 눈동자가 노랗게 물드는 순간,
“커헉……!”
반파된 석벽 조각이 우수수 흘러내리며 크레센티오의 몸이 석벽에 더 깊게 파묻혔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그의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뻗어져 나왔다.
그 흠 하나 없는 순백의 날개 위로 붉은 사기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날개가 파르르 떨며 사기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머, 처절해라.”
슈리엘이 안타까운 한숨을 흘렸다.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몸부림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네요.”
그녀가 떨어진 날개의 깃털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 아이가 죽어가며 발버둥 칠 땐 또 어떨까. 하아, 벌써부터 너무 기대가 되네.”
“너……!”
크레센티오의 동공이 훅 좁아지며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슈리엘이 깜짝 놀라 방어막을 쳤지만 살짝 늦었다.
붉은 핏방울이 그녀의 뺨에 맺혔다.
슈리엘은 베인 뺨을 슬쩍 만지곤 피식 웃었다.
“아직 그 정도의 힘이 남아 있을 줄이야. 이거 정말로 많은 인간들을 죽여서 공들여 만든 술법인데.”
무려 천족을 잡는 술법진을 대충 만들 리가 없다.
재해로 죽인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을 갈아 넣었거늘.
신성력이 몸을 포박한 사기를 밀어내려고 하는 것을 보며 슈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쓸데없는 데에 힘을 쓰는 거죠?”
슈리엘이 크레센티오의 뺨을 꾹 눌렀다.
날카로운 손톱이 매끄러운 그의 뺨에 상처를 냈다.
슈리엘에게 난 상처와 똑같은 곳이었다.
“그건 신성력으로 끊을 수 없어. 넌 여기서 죽는 거야.”
오히려 더 형형하게 불타오르며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에 슈리엘은 짙게 미소 지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그 애는 꽤 주변 사람들을 아낀다고 하더라고요. 내 생각엔 본인만 아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애인데. 뭐, 어쨌든 리리엘은 그러더라고요?”
“……설마!”
“이렇게 괜찮은 껍데기인데 힘만 흡수하고 사라져버리는 건 아쉬워서. 껍데기만 남은 몸은 내가 잘 써줄게. 그 애가 좋아하겠지?”
슈리엘의 손끝이 기묘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크레센티오는 이를 악물고 발버둥쳤지만 사기가 더 강하게 옥죄여올 뿐이었다.
문양이 완성될수록 그 중심으로 사기가 스멀거리며 기분 나쁘게 뭉쳐 들었다.
문양이 완전해져 크레센티오에게 낙인이 찍히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두꺼운 석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무슨……?’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순식간에 문양에 맺힌 사기가 흐트러진다.
아니,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사그라들고 있다.
‘이건……!’
파사의 힘!
슈리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뒈지는 건 너인 거 같은데?”
퉤.
루아티샤가 침을 탁 뱉으며 검을 어깨 위로 비딱하게 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