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9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92화(292/353)
☆ 제292화 ☆
그 말을 들은 리리엘이 생긋 웃었다.
“뭐, 나도 너랑 조금 더 놀아주고 싶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이 떨렸다.
심상치 않은 떨림.
루아티샤가 긴장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은 힘들 것 같네.”
그 말만 남기고 리리엘의 몸이 그대로 흩어졌다.
“……!”
루아티샤가 흩어지는 리리엘의 신형을 쫓으려는 순간.
“위험하다, 짹!”
에르메스 짹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조그마한 날갯짓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날갯짓의 바람이 무너지던 천장을 날려 버린 것이다.
루아티샤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이 상황에서 리리엘을 쫓는 건 무리다.
무엇보다 아직 크레센티오의 몸 안에 있는 사기가 다 정화되지도 않았다.
“부탁할게!”
“맡겨둬라, 짹!”
에르메스 짹이 뚫린 천장 위로 높이 비상하더니 고점에서부터 수직 하강하기 시작했다.
마치 맹금류와 같이 위엄 넘치는 모습.
정령의 기운이 휘몰아치며 공간에 방어진을 형성하는 것을 느끼며 루아티샤는 크레센티오에게 다가갔다.
“안 쫓아가도 되나?”
“더 중요한 게 있잖아.”
거기다 어차피 쫓아갈 수도 없었다.
이곳은 사기가 너무 짙어서 리리엘의 흔적을 쫓기 힘들었다.
루아티샤가 크레센티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가만있어.”
그 말과 동시에 루아티샤의 손에서 파사의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제 안에 깃드는 힘을 바라보던 크레센티오가 입을 열었다.
“……리리엘을 죽이기 위해 남겨둔 힘이 아니었나.”
“리리엘이 나타난 순간 빡쳐서 파사의 힘을 좀 쓸까 하긴 했지만. 우선은 널 위해서 남겨 놓은 게 맞아.”
“…….”
“왜 그렇게 쳐다봐? 나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거든?”
파사의 힘을 극으로 사용하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지친다.
크레센티오를 지키고 회복시키는 게 우선인 만큼 파사의 힘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어야 했다.
‘……역시 쉽지 않네.’
루아티샤는 입을 다물고 파사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몰두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한 오러를 날리며 싸울 때보다 더 집중한 모습.
‘……그 우선순위에 내가 있었다고.’
크레센티오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목 안에 무언가가 걸린 듯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그걸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한 채 그저 머금었다.
몸 안을 뒤틀고 헤집던 사기가 청량한 기운과 함께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가슴에 닿은 루아티샤의 손만큼이나 보드랍고 여리면서도 강인한 기운이었다.
크레센티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딱히 날 희생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
“이대로 가다간 이 세계는 멸망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 뿐이야.”
“…….”
“딱히 널 위해서 뭔가를 한 것도 아니야. 그저, 파사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네가 유일하니까.”
결국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고 크레센티오를 마주 봤다.
“왜 자꾸 변명해?”
“변명 아니야.”
“그래, 그래.”
“진짜 아니야.”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루아티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혀 있는 것을 본 크레센티오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넌 역시 짜증 나는 인간이야.”
“그래.”
“내가 말했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진짜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 아니잖아.”
“진짜 싫은 거 맞아.”
루아티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기를 정화하는 데에 집중할 뿐.
크레센티오가 그런 루아티샤의 손을 홱 잡아챘다.
어쩐지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루아티샤의 몸이 크레센티오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깜짝 놀라 크게 뜨인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 초조함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듯했다.
“너一.”
루아티샤를 바라보는 크레센티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一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
크레센티오가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이 루아티샤의 얼굴을 가렸다.
루아티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만 손가락 틈새로 보이는 파라이바빛 눈동자가.
“…….”
크레센티오는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가장 높은 하늘처럼, 가장 맑은 바다처럼一.
모든 것을 담을 듯 넓고 모든 것을 비출 듯 깨끗하다.
새하얀 손이 크레센티오의 손 등 위로 겹쳐졌다.
루아티샤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크레센티오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냥 고맙다고 해.”
크레센티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왜 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게 날 위해서라는 건 알아.”
“……!”
“뭐,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앞으로도 내가 지켜줄게.”
루아티샤가 씨익 웃었다.
“너는 약하니까.”
그 말에 크레센티오가 입을 벌렸다.
“그건……! 나는 절대 약하지 않다!”
“그래, 그래.”
“강제 현신하느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다! 마족 나부랭이와 달리 나는 인간으로서의 배경도 만들었고! 거기에는 지금도 고도의 정밀한 신성력이 소모되고 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아까처럼 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구나~.”
“나는 절대一.”
크레센티오는 말을 멈췄다.
“그런 녀석과 함께하는 것이 이 세상을 종말에서 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물었을 때, 루아티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설마 다른 사람이 카인의 정체를 알 줄 몰라서 당황했을 뿐, 카인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왜 약점이 될 걸 알면서도 그를 곁에 두는 거지?”
마지막으로 붙잡듯 물었지만.
“그야 그 약점을 상회하는 장점이 있으니까.”
“당연히 도움 되지. 적어도 당신보다는 훨씬 도움 돼.”
루아티샤는 단호했다.
‘……이로써 더 확실해졌군. 나보다 마족 따위를 더…….’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린 크레센티오를 루아티샤는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러지?’
그때 크레센티오가 루아티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강력한 신성력.
루아티샤는 제게로 스미는 따스한 힘을 느꼈다.
욱신거렸던 팔다리가 가벼워지며 상처 역시 흔적도 없이 말끔히 나았다.
뿐만 아니라 배 속이 따뜻해지며 마음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타인의 몸과 마음에 즉각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힘이 어딨을까.
‘……이게 천족의 신성력.’
과연 엄청난 힘이었다.
크레센티오는 여전히 루아티샤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였다.
루아티샤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인사했다.
“고마워.”
멈칫한 크레센티오가 결국 고개를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늘 한 점 없이 해사하고 말갛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애초에 왜 저렇게 다친 건데.
“……짜증 나는 인간.”
“짜증 나는 건 너다, 짹!”
단단한 둥지를 완성한 에르메스 짹이 뺙뺙거리며 크레센티오의 정수리를 쪼았다.
“거슬리는군.”
크레센티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에르메스 짹에게 신성력을 쐈다.
둥지를 만드느라 지쳤던 에르메스 짹이 행복해하며 신성력 안에서 노곤노곤 풀어졌다.
“오해하고 있으니 확실히 말해두지. 나는 절대 널 위해서 움직인 게 아니다.”
루아티샤는 에르메스 짹의 깃털을 긁어주며 옅은 한숨을 내 쉬었다.
‘아무래도 키야스에델을 상대하려면 천족의 힘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런 일까지 같이 겪었으면서 이렇게 까칠함을 고수할 건 뭐란 말인가.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천계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내 행보에 실망했다고 했었지.’
슬쩍 크레센티오를 바라보니 눈이 새침했다.
‘아니, 왜 이렇게 토라진 거야.’
천족은 고고한 자존심을 지녔다더니 그래서인가.
도와주면 오히려 자존심 상해서 호감도 마이너스를 찍는 유형?
‘천족이면 천사잖아. 천사님이라면 자상하고 다정하고 착하고 소원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까다롭기가 무슨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완두콩 한 알 있어서 잠을 못 자는 공주님 같다.
‘나도 흥이다.’
루아티샤가 입을 삐쭉이며 고개를 돌린 때였다.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샤샤샥, 샤샤샥.
혐오스럽게 움직이는 긴 더듬이.
그러고 보니 여기 무너진 건 물이었지.
“바퀴벌레다!”
“어, 어디?! 으아아아아악!”
루아티샤는 지체 없이 발로 바퀴벌레를 콱 밟아 죽였다.
확인 사살까지 마친 그녀는 멈칫했다.
방금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그리고 내 등 뒤에 딱 달라 붙어 있는 이 거대한 몸은 뭐지?’
크레센티오가 루아티샤 뒤에 숨은 채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 잡았어?”
“……응.”
그 말에 크레센티오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차올랐다.
루아티샤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흡사 생명의 은인이자 세상을 구한 영웅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아까 클라티에의 손에서 구해줄 때보다 더 감격한 거 같은데?’
그때였다.
루아티샤의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 * *
[천계에서 독자님의 용맹한 무위에 감탄합니다!]예?
[천계에서 악명높은 B 선생의 하위 버전을 단숨에 처치! 천계가 감동합니다!] [천계에서 독자님께 커다란 호감을 보입니다!] [앞으로 천계는 독자님의 든든한 우방이 되어줄 것입니다!] [천계에서 독자님께 확신을 갖습니다.] [천계: B퇴치자가 마족을 좋아할 리 없어! 우리가 오해했던 거야!] [여기서 간단 상식!] [천족 공식을 알려드립니다.] [B=더럽고 불결하고 추잡한 것=마족]“…….”
어이가 없었다.
내가 크레센티오를 구했을 때는 가만히 있었으면서.
바퀴벌레 하나 처치했다고 이런 반응이라고?
[바……를 잡아주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다른 벌레도 아니고 바……인 걸요!]‘너도 바퀴벌레 못 잡아? 무서워해?’
[으아아악!] [그것의 풀네임을 부르지 마세요!]‘…….’
이게 무슨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도 아니고.
텍스트로도 질색 팔색하는 게 느껴졌다.
‘왜 내 주변 사람一은 아니지만一 여튼 주변 생명체들은 다 이런 걸까?’
루아티샤는 의문과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역시 정상인은 나뿐인가.’
그때였다.
[중요!] [천계·마계·영수계 전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들이나 독자님의 뜻이라면 결국 힘을 합칠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최초의 위대한 업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특성을 레벨 업하실 수 있습니다!]‘레벨 업!’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였다.
“이야一.”
이곳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대단하네.”
뒤돌아보니 카인이 미소 지은 채 나른하게 짝, 짝, 짝 박수를 쳤다.
“천족씩이나 되시는 분이 고작 바퀴벌레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꼴이라니.”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뿐이다.”
크레센티오가 오만한 얼굴로 짓씹듯 말했다.
“우리는 마족 따위와 달리 그런 혐오스럽고 더럽고 추잡하고 불결한 것과는 멀리하는지라.”
“하아? 적어도 위선 떨며 멋대로 내려다보는 개자식들보단 낫다고 생각하는데. 우린 본능에 솔직한 것뿐이라고.”
파지직.
마족과 천족 사이에서 불꽃이 튀겼다.
‘우와, 예상은 했지만 진짜 사이 안 좋네.’
“카인.”
“응, 반가워.”
내 부름에 카인이 실실 웃으며 내게 몸을 붙였다.
내 목에 코를 묻은 그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 나쁜 냄새 나.”
“기분 나쁜 건 너다.”
크레센티오가 나를 잡아당겼다.
“헤에, 기어코 죽고 싶은가 보네?”
“어디 한 번 해볼까. 누가 죽는지.”
음.
“그 전에 둘 다 내 손에 뒤진다.”
나는 두 사람한테 꿀밤을 멕였다.
따콩, 따콩!
사이좋게 이마에 커다란 혹을 매달고 나자 평화가 찾아왔다.
좋아.
“너 여긴 어떻게 왔어?”
내 질문에 카인이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여자 꼬셨는데.”
“…….”
“술술 불던데?”
“……더러운 놈.”
크레센티오가 불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는 이번에는 카인에게만 꿀 밤을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