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9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94화(294/353)
☆ 제294화 ☆
한동안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공간에 울렸다.
왼쪽 무릎에 자그마한 무게와 온기.
크레센티오는 가만히 시선을 내렸다.
조그마한 정령새를 품에 안고 눈을 감은 채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아이의 모습.
그의 시선이 차근히 루아티샤의 얼굴을 훑었다.
작고 오밀조밀한 코.
돌돌 말린 귀밑머리.
살짝 눌린 뺨.
모닥불이 일렁일 때마다 긴 속눈썹 아래로 생긴 그림자가 너울졌다.
‘……이렇게 생겼었군.’
새삼스레 확인했다.
천계에서 이 아이의 행적을 항상 주시해왔지만 그 ‘본다’는 행위는 인간이 보는 것과 조금 달랐다.
항상 궁금했었다.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을지, 목소리는 어떨지, 어떻게 웃고 어떻게 화를 낼지.
직접 만나게 된 아이는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一.
“…….”
루아티샤의 몸을 덮은 날개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저 녀석이 그랬지. 이 땅에 직접 강림할 줄은 몰랐다고.’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보이는 게 이 아이밖에 없으니 마음이 가는 수밖에 없다.
이 아이에게는 반드시 천족의 힘이 필요하다.
아이가 먼저 찾아와주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제약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이 먼저 찾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넌 제약이 생겼지?”
카인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나는 딱히 없는데. 루아티샤가 먼저 마계에 왔었으니까. 이건 루아티샤가 천계보다 마계를 선택했다는 증거 아니겠어?”
“닥쳐.”
“계승자가 탄생하면 천족을 가장 먼저 찾을 거라고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해대더니.”
“닥치라고 했을 텐데. 마족 따위 지금 이 자리에서 뭉개버리고 싶은 걸 참는 중이니까.”
“무서워라~. 천족의 질투는 참으로 추하군.”
으득.
크레센티오의 턱에 꽉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저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크레센티오의 손이 루아티샤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얼마나 바라왔던가.
‘……우리들은 언제나 너를 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네가 나타날 날만을 기다리면서.
긴 기다림 끝에 나타난 네가 천계로 통하는 게이트를 넘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계승자가 탄생하든 말든 상관없다며 하품이나 하던 영수와 먼저 만났을 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수는 영수계와 인계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까 만나기도 쉽겠지, 하고.
비록 계승자를 기다리지도 않던 영수가 널 보자마자 태도를 돌변해서 관심을 보인 건 배알이 꼴렸지만.
‘그런데 너는一.’
게이트를 넘어서 마계로 가질 않나.
심지어 몇 년이 넘도록 계속 마계와 통하는 게이트를 열려고 애쓰며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천계가 얼마나 애타는 고통 속에서 너를 바라봤는지.
종래에는 인계로 넘어온 마족 놈과 노닥거리며 마계와 우호적 관계를 맺기까지 했다.
그때의 좌절감과 실망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영수계에 이어 마계와 우호 관계라니.
그런데 천계에는 관심 한 톨 갖지 않다니.
온 천계가 깊은 시름에 잠겨 천족들의 자랑인 새하얀 날개마저 잿빛으로 물들 지경이었다.
“음…….”
루아티샤가 뒤척여서 크레센티오가 조심스레 반대편의 날개를 움직였다.
커다란 날개가 루아티샤의 감은 눈 위로 슬며시 그림자를 만들었다.
한결 편안한 얼굴로 다시 수마에 잠긴 루아티샤를 보며 크레센티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 참. 내가 알던 그 천족이 맞나 싶군.”
“제멋대로인 마족들과 달리 우리는 이 아이의 소중함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줄 뿐이다.”
“우리도 계승자를 기다리고 있었어. 신경 안 쓴 건 영수들이었다고. 그놈들은 환수만 기다렸지.”
“마족들이 이 아이를 기다렸다고? 우리가 공들여 이 아이를 맞이할 준비하고 있었는데 먼저 채간 주제에 말이 많군. 마계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대했지?”
“사기 때문에 마계가 난리여서 크게 신경 쓸 수 없었을 뿐이야. 그때는 우리도 제대로 인지할 수도 없었고. 뭐, 결과적으론 다 잘됐잖아?”
크레센티오의 눈가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꿈틀했다.
‘저딴 변명이나 일삼는 마족 놈을 우리보다 먼저 선택하다니.’
만약 이 아이가 천계로 왔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저런 놈이 도움이 된다고?’
그렇게 말할 때 루아티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 속이 상해서 이 아이에게 조금 까칠하게 군 게 있기도 했지만.
본디 천족은 마족처럼 경박하게 굴지 않고 무게를 지켜야 하는 법이다.
이 아이가 먼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손을 내밀며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무척 기뻤다.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런데 기껏 신성력까지 사용해서 시선을 끌어줬더니 저 마족 나부랭이와 만나고 돌아오질 않나.’
환히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던 루아티샤의 몸에 가득 묻었던 마족의 흔적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크레센티오는 싸늘한 눈으로 카인을 노려봤다.
“뭔지 모르지만 또 쫌생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본데. 천족은 하여간 그래서 문제야.”
“단순한 너희와 달리 고등한 우리는 복잡한 사고를 할 뿐이다.”
“복잡한 사고 좋아하시네. 편견에 찌든 주제에.”
“더럽고 추잡한 것과 타협하지 않을 뿐이다.”
“아아, 참으로 고결하고 고매하셔라.”
그때였다.
흠칫!
카인과 크레센티오는 말을 멈춘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는 강대한 힘.
‘이건…….’
콰광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석벽이 산산이 조각났다.
가공할만한 위력.
조각난 석벽 사이로 통통한 젤리가 달린 앞발이 두둥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엄청난 앞발 후려치기였다.
용케도 둥지를 건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마마!”
“루아티샤!”
이윽고 집채만한 환수와 그 위에 올라탄 시드리한이 홀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예상과 달리 평화로운(?) 광경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시드리한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정확히는 크레센티오의 무릎을 벤 채 꿀잠을 자고 있는 루아티샤를.
크레센티오는 갑작스러운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루아티샤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시드리한은 루아티샤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과 그녀의 몸을 덮고 있는 날개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의 시선이 크레센티오를 향했다.
꿀꺽.
크레센티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째서일까?
사기에 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보다도 더 오싹한 한기가 들었다.
* * *
“마마!”
몸을 살살 흔드는 익숙한 발 길(?)에 나는 손을 뻗었다.
폭신폭신한 털이 만져진다.
나는 대강 니케를 토닥이며 다시 잠들려고 했다.
할짝할짝.
니케가 어서 깨어나라는 듯 내 뺨을 핥았다.
“우응, 니케. 엄마 진짜 피곤해……. 조금만 더一.”
파사의 힘을 사용한지라 몸이 정말 피곤했다.
그나마 크레센티오가 신성력으로 몸을 회복시켜주었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그게 아니었으면一.
‘응?’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마!”
조그마한 니케가 내 품에 답싹 안겨왔다.
“어, 니케.”
나는 반사적으로 니케를 끌어 안으며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내가 깜빡 잠든 사이에 니케가 왔구나.’
니케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마마, 왜 더러운 것들이랑 같이 있오?”
……더러운 것들이라니.
‘원래 영수와 정령은 사이가 좋지 않지.’
니케를 키우면서 에르메스 짹과 얼마나 사고를 쳤는지 모른다.
천족과 마족끼리 또 사이가 안 좋지만, 영수는 딱히 둘에 관해 별생각 없을 텐데.
“근데 니케는 왜 다 싫어하지?”
혼잣말이었는데 여기저기에서 답이 돌아왔다.
“환수잖아.”
“환수는 원래 성깔이 엄청 더러워.”
“환수는 원래부터가 인성파탄이다, 짹!”
아니, 다들 어떻게 우리 애한테!
고개를 드는데 이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시드?”
시드가 미소 지으며 나를 토닥였다.
잠자리가 묘하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드가 내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너 어떻게 여기에…….”
카인을 봤지만 그는 자신은 진짜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왜? 내가 있으면 안 돼?”
“어? 그게 아니라…….”
묘하게 날카로운 시드의 반응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시드는 웃고 있지만 어쩐지 그 미소가 묘하게一.
“극상의 기쁨. 환희.”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시드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심통 난 얼굴.
“바람둥이.”
아니, 저기요?!
* * *
음.
어째서인지 시드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엄청나게 경계심 어린 눈으로 카인과 크레센티오를 노려보았다.
꼬오오옥.
‘……질투하는 모습이 조금 귀엽긴 하지만.’
“진짜 오해야.”
“……내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오해다.”
“맞아. 쟤한테는 마족의 페로몬도 안 통하고.”
“마족 따위의 말을 믿을 순 없어.”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이번에는 진짜다.”
“네 녀석 말도 마찬가지다. 신관이면 본분에만 충실할 것이지.”
“……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계속 밖에 있으면 어떻게 해. 만약에 에스테반이 너한테 갔다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구.”
“상관없어.”
시드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한텐 네가 더 중요하니까.”
나를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가 우주와도 같았다.
솔직히 좀 더 뭐라고 해야 하는데.
“뭐야 그게.”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힌 채 시드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너무 잘생겼잖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꼴값이군.”
“그렇군. 이게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꼴값인가.”
[꼴값입니다.]닥쳐.
하여간에 이놈들 때문에 연애도 제대로 못하겠다.
나는 시드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이야기를 하더라도 여기어 나가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우리는 비밀통로를 통해 시드의 궁으로 돌아왔다.
불시에 시드를 찾아도 우리만 몸을 숨기면 되니까.
나는 품에 숨기고 있었던 초소형 영상석을 꺼냈다.
저번 리리엘 때처럼 클라티에의 본모습을 담아 고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나도 저장되지 않았잖아?”
영상석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뿐.
“조처를 했겠지. 같은 수에 두번 당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쉽게 끝나지는 않겠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여주는 게 빠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으니 나는 일단 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시드의 말이 맞았어.”
일전에 시드가 내게 말했었다.
분신이 살아있는 한 리리엘은 죽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달리 말하자면 분신 자체가 본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메바처럼.
“리리엘이 옥사에 갇혔을 때 작은 분신을 만들어 냈고, 그 분신을 탈출시켜서 명맥을 유지했다……라는 시나리오.”
“분신을 이용해서 티리엘을 괴롭혔던 것처럼?”
“그래. 하지만 작은 분신이니 한계가 있었겠지. 그래서 너를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찾아낸 거고.”
“그렇게 융합했다?”
그리고 오늘 일로 이 추측이 사실이라는 게 확인되었다.
리리엘과 클라티에의 합체라니.
정말 끔찍한 혼종이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었다.
[지금 레벨 업하시겠습니까?]나는 떠오른 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