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9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96화(296/353)
☆ 제296화 ☆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이름에 내가 더 놀랐다.
그러나 내뱉고 나자 더 확신이 들었다.
“누구지?”
그가 휘장을 걷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아래에서 생명이 피어나고 꺼지는 것 같았다.
기묘한 느낌.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인간이 있을 줄은一.”
내 얼굴을 본 그가 우뚝 말을 멈췄다.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 지었다.
굉장히 슬프면서도 기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미소였다.
“……그렇군. 너로구나.”
스르륵一.
그가 고개를 숙이자 은빛 머리카락이 햇살에 반짝이며 내 앞에 드리웠다.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는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손이 내 뺨을 쓸었다. 조금만 힘주면 깨지는 유리를 다루듯이 애틋하게.
“나의 마지막一.”
불현듯 말을 멈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어린데.”
‘……그렇게까지 어리진 않은데.’
나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아프타네스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15금 소설 따위에 일일이…… 음, 감사하면서 읽는다.
“하지만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뭐를요?”
내 물음에 아프타네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것도 말해주지 않았느냐.”
“음, 그쪽 수하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사기 계약을 쳐서 나를 부려 먹고 있거든요.”
“사기 계약…….”
아프타네스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상사한테 꼰지르고 나니 조금 양심에 찔렸지만, 악마 녀석이 나한테 한 짓에 피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얼마 전엔 시드와 모처럼 분위기 잡고 있는데 알림을 보내서 산통 깨지 않았나.
“……그래도 용서해주렴. 어쩔 수 없었을 게야.”
그 상사에 그 부하라더니.
‘지금 자기 부하라고 감싸는 건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계약 사기 쳤다는데.’
아프타네스가 뚱한 표정의 나를 보더니 웃었다.
참 이상한 웃음이었다.
분명 환하게 웃고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해져 오는 웃음.
“왜 너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구나.”
“…….”
“너여야만 했을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라서 나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이겠지.”
나는 가만히 아프타네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솔직히 아프타네스라는 존재가, 신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신전의 모든 기록에서조차 이름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신의 힘은 신앙심이나 교세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래서 아프타네스의 대리자인 내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그가 힘을 되찾는 구조 아니던가.
‘그리고 되찾은 힘을 다시 또 내게 내려주고.’
어쨌든 이름조차 잊혀진 신이니 당연히 온전할 리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세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저라는 대리자를 세운 이유가 뭔가요?”
키야스에델은 여러 재해까지 일으키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아프타네스는 너무 뒷짐 지고 있는 거 아닌가.
“인과율 같은 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예전에 악마 녀석이 나보고 인과율이 정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곳에 있는 나는 과거의 편린일 뿐이다.”
“편린?”
“내 기억과 사념을 그대로 봉인해 만들어진 환영.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내 모습은 실체가 아니다. 그저 과거의 잔상일 뿐이지.”
“그렇다면 이곳은…….”
“그래. 나의 일부가 봉인된 내 유산이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제약이 많아 가주조차 함부로 쓸 수 없는 위대한 성물이자 기물.
과거 미첼로인 가의 사람들이 만들어냈다면 어째서 현재의 미첼로인이 그 이상의 기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경험과 지식이 그보다 훨씬 더 축적된 상태인데.
하다못해 걸려 있는 제약의 일부를 해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애초에 미첼로인이 만든 게 아니었던 거야.’
신의 유산.
미첼로인은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냥 평범한 지식 보고가 아닐 거라곤 생각하지만…….”
“지식 보고? 내 안에 깃들어 있는 지식의 극히 일부를 인간들이 꺼내서 썼나 보구나.”
“…….”
“하지만 한계가 컸을 거다. 허락받지 못한 인간은 이곳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
“…….”
“무엇보다 내가 내어준 적도 없는 지식이니 별로 쓸데없는 내용이었겠지.”
쓸데없다니.
미첼로인은 몇 번이나 인류사에 깊은 족적을 만들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해왔다.
“허락받지 못한 인간이라면
“네가 아닌 모든 자들.”
내가 아닌……?
“이곳은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마련해둔 안배일 뿐이니까.”
아프타네스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네가 이곳을 찾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저를요?”
“그래. 아직 천 살도 안 되었을 정도로 어린데 벌써 천계와 마계, 영수계의 협력을 받아내었구나.”
아니, 백 살도 아니고 천 살이라니요.
아프타네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기다 파사의 힘을 A급으로 다루다니.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이르렀구나. 인간이 파사의 힘을 이만큼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네가 해냈어.”
아프타네스는 마치 물구나무를 서서 재주넘기를 하는 신생아를 바라보듯 놀랍고 대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구나. 그동안 힘들었지?”
음.
솔직히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기쁜 일들도 정말 많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거기다가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기도 하는가 하면 내 일을 자신의 일처럼 두 발 벗고 나서주는 친구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서 결실을 맺고, 그걸 또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게 절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기적 같고 소중하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운 좋고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 부침도 있었지.’
이러다 죽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고, 대신 아프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정말 화가 나는 순간들도 많았다.
그래서 가끔씩 악마 녀석에게 속았다면서 투덜거리지만一.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이 삶을 선택할 거야.’
다른 삶에 그 어떤 혜택을 덧붙여도, 몇 번을 물어도.
아니, 이 삶에 더한 악조건을 붙여도.
지금 이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고생이 많았다.”
투욱.
커다란 손이 내 정수리에 얹어졌다.
그 무게감이, 스미는 듯 나직한 목소리가.
눈앞의 상대가 신이라서 그런가?
절대자의 위엄 때문일까.
왜 그 말을 듣는데 이렇게나…….
나는 눈을 부릅떴다.
절대 눈물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프타네스를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렇죠? 내가 생각해도 좀 대단하긴 해요. 아주 로판 여주 감이야.”
아프타네스가 나를 바라보더니 웃었다.
“강인하구나.”
그가 내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결정했다. 원래는 다른 것을 네게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아프타네스의 거대한 힘이 피어올랐다.
아직 그 힘이 형체도 못 잡힐 정도로 온전히 꺼내지도 않았는데 숨이 막히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왔다.
“너라면, 네 그릇 정도라면 내 신격(神格)을 능히 감당해 담을 수 있을 터다.”
귓가에 이명이 울리고 시야가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지길 반복했다.
새까만 기운이 아프타네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내가 가장 기다려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야.”
다음 순간, 나는 그 암흑에게 삼켜졌다.
‘이게, 고작 편린, 이라고……?’
힘에 담긴 엄청난 압박감에 영혼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기억이 내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 * *
아프타네스는 가만히 서서 어둠에 삼켜진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점점 더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아이에게 주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현재의 나를 모른다.”
이곳에 갇힌 채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는 알겠구나.”
루아티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애쓴 흔적이 가득했다.
“왜 현재의 내가 너를 그렇게나 아끼는지도.”
그건 아마一.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원래부터 루아티샤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힘을 타고났다.
아주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여 루아티샤가 망가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킨 것일 터.
그럼에도 신격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할 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라면.’
이제 육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천 년의 세월이 한순간에 끝나는 중이었다.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단다. 네가 해낼 것을 믿으니까.’
* * *
아프타네스에게는 가장 아끼는 피조물이 있었다.
가장 처음 만든 피조물이기에 애착이 있었고, 가장 불완전하기에 애틋했다.
키야스에델.
그러나 키야스에델은 그 불완전함만큼이나 욕심이 많았다.
“저는 영수보다 약하고 정령보다 무력해요.”
“천족들은 굉장한 생성력을 가졌고 마족들은 넘치는 파괴력을 가졌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왜 저는 저런 힘이 없는 거죠?”
“제가 실험 삼아 만든 존재라서 그런 건가요?”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만들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아프타네스는 자신의 첫 번째 피조물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부족해요.”
“아직 부족해요.”
키야스에델의 요구는 끊임이 없었다.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더 우월한 힘을 지니게 되었음에도.
“키야스에델, 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지 않았느냐.”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게 많아요.”
아프타네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키야스에델의 비교 대상이 다른 피조물이 아니라 신인 자신이라는 걸.
그의 피조물이 감히 신격을 탐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이 불쌍한 아이를 내칠 수도 없었다.
키야스에델이 이렇게 된 것에는 자신의 탓도 있었다.
“그렇게 비교해서는 너만 불행해질 뿐이란다.”
그렇게 타이를 뿐, 아프타네스는 키야스에델을 벌주지 않았다.
그렇게 키야스에델의 탐욕을 그저 묻어준 순간, 이미 미래의 비극은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키야스에델은 아프타네스가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피조물을 싫어했다.
인간들.
“나약하고 한심한 인간들 따위!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죠?”
“인간들에게 내릴 축복을 내게 내렸으면……!”
사실 인간들은 키야스에델이 신경 쓸 개체가 아니었다.
인간들은 그녀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으며, 너무나도 쉽게 죽었다.
홀로 서지도 못하고 뭉쳐야 하는 존재.
그런데도 키야스에델이 그렇게나 신경 쓰고 싫어한 것을 보면 어쩌면 본능적으로 안 것일 수도 있다.
아프타네스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피조물을 만들어냈는지.
혹은 전혀 몰랐을 수도 있다.
그건一.
“다 당신 때문이야.”
푸욱一!
시뻘건 사기로 이루어진 창이 아프타네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미 신격(神格)은 손상되었다.
탁하게 변질된 사기에 갉아먹힌 신체(神體)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키야스에델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어리석구나, 아프타네스, 나의 창조주여.”
“인간을 만들어내지만 않았다면 너는 내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가 너를 의지하고 믿고 찬양하였을 것이니 내가 아무리 갖은 술수를 썼어도 감히 네게 닿지 못하였겠지.”
“하지만 어떻지? 지금 네 모습을 보아라.”
“인간들은 너에 대한 감사를 잊었다. 그들의 탐욕과 교만이 너를 약한 존재로 만들었지. 네가 나한테 당할 정도로 땅에 떨어진 것은 모두 인간들 때문이다!”
“그딴 피조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너 따위에게 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걱정하지 마. 네 힘을 모조리 흡수해 이제는 내가 진정한 신으로서 이 세상에 군림해줄 테니.”
아프타네스는 힘에 대한 탐욕에 깃들어 광기에 휩싸인 키야스에델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키야스에델, 나의 첫 번째 아이야.”
“여전히!”
키야스에델이 이를 까드득 갈았다.
“이 상태가 되어서까지 그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냐! 현실을 직시해! 이제 나는 너 따위보다 훨씬 강해!”
푸욱!
배신의 칼날이 아프타네스의 심장을 갈랐다.
푸욱! 푹! 푹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안타깝구나, 키야스에델.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게다.”
“닥쳐!”
“너는 가장 증오하는 나로부터 태어나 가장 혐오하는 인간들의 손에 스러지겠구나.”
“닥쳐!”
서걱.
창끝이 아프타네스의 입을 베었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인간들 따위 너를 끝장내고 쓸어 버리면 그만이야!”
키야스에델은 아프타네스를 아흔아홉 갈래로 찢어 죽였다.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다시는 신격을 되찾지 못하도록.
절대 명맥이 유지되지 못하도록.
모든 인간들의 기록에서 아프타네스의 이름이 사라졌다.
키야스에델은 만족했다.
드디어, 드디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키야스에델이 간과한 게 있었다.
살신의 죄는 그 어떤 굴레보다 더 강하게 키야스에델의 육체와 영혼을 속박했다.
그녀는 모든 힘을 빼앗긴 채 깊은 수렁 속에 잠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씩 힘을 되찾아 다시 이 땅에 기어 올라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