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9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98화(298/353)
☆ 제298화 ☆
“뭐라고?”
황제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미첼로인 후작이 벌떡 일어났다.
‘황제가 깨어났다니!’
루아티샤 역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다행이다…….’
황제가 깨어난 이상 에스테반이 지금처럼 활개를 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나 정정하시던 분이 그렇게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 진짜 이유도 밝혀지겠지.’
그러나 이어지는 집사의 말은 루아티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슈리엘 공주께서 폐하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뭐?
루아티샤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슈리엘 공주가?”
“그렇습니다, 공녀님.”
확인 사살에 루아티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 * *
황제가 깨어났다고, 그게 전부 토렌시아의 공주인 슈리엘 덕분이라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꼭 일부러 퍼트린 것처럼.
소문의 끝은 슈리엘에 대한 찬양으로 끝났다.
나는 몇 번이나 알현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체시아 백작이 난감한 얼굴로 내게 귀띔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저 역시 폐하를 독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최측근인 궁내부 장관마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나는 언질도 없이 불시에 황제의 궁에 찾아갔다.
황실 기사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뭐야. 기사가 왜 이렇게 많아.’
아무리 황제가 병중이라고 해도 이상했다.
기사단장이 정중하게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공녀님, 폐하께서 알현을 허하시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폐하께서 내게 내리신 특권 중 하나가 내가 원하는 때 언제든지 폐하를 뵐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 명, 자작께서 폐하께 직접 들었나요?”
“그건…….”
역시.
“나는 파에라톤 공녀가 아니라 성녀로서 이 자리에 온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 뒤에 시립해 있던 신관들이 나섰다.
“가장 낮은 곳이든 가장 높은 곳이든 가리지 않고 신의 손길은 닿는 법. 지금 병자에게 축복을 내리고자 하는 예하의 발걸음을 막는 겁니까.”
“이는 신의 발걸음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기사단장은 조금 망설이더니 내게 길을 비켜주었다.
“잠시 잠깐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지나쳤다.
지나칠 때 보이는 기사단장의 옆얼굴은 무척 불안해 보였다.
‘……체시아 백작도 그렇고 기사단장도 그렇고. 황제궁을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세력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세력이 누군지는 예상 가능했다.
황제는 거대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의식을 차리지 못했을 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폐하.”
조심스러운 부름에 감겨 있던 황제의 눈이 뜨였다.
나를 눈에 담은 황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루…… 으, 아…….”
“폐하?”
황제의 손이 움찔거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잡았다.
“으, 끅…….”
황제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 했다. 꼭 온몸이 굳은 것처럼.
붙잡은 손은 마른 나무토막처
럼 딱딱하고 버석버석했다.
의식을 차렸음에도 어째서인지 의식이 없었을 때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사기의 기운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아.’
음독도 아니고 사기를 사용한 술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클라티에와 리리엘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인가?
고민하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황제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감기지 않는, 찢어질 듯 부릅뜬 눈.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말들.
판단은 빨랐다.
“폐하,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예요. 맞으면 눈을 한 번, 틀리면 두 번 깜빡이세요.”
깜……빡.
잘 움직이지 않는 듯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 번 깜빡였다.
“혹시 지병이 있으셨나요? 갑자기 쓰러지신 게 병환 때문이 맞는지 여쭤보는 거예요.”
본디 황제의 건강 상태는 기밀이다.
깜빡, 깜……빡.
황제의 대답은 ‘아니다’.
그렇다면一.
“폐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혹시 슈리엘인가요?”
황제가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공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황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천천히, 황제가 눈을 떴다.
한 번.
‘한 번 깜빡였어.’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클라티에가 범인이다.
“폐하께서는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공녀.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와서一.”
“성녀로서 폐하의 안위를 위해 기도를 올렸을 뿐이에요.”
나는 황제의 곁에서 몸을 일으켜 클라티에를 돌아봤다.
“그러다 폐하의 용태가 안 좋아지면 예하께서 괜한 소리 듣지 않겠어요?”
“무슨 뜻이죠?”
“오해하지는 마세요. 물론 저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一.”
클라티에가 픽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요? 내가 듣기로는 좀 다른데.”
이딴 도발에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여유롭게 받아치며 클라티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공주가 폐하께서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던데.”
“감시라니! 나는 황제 폐하를 치료한一.”
“어머. 헛소문이야 언제나 항상 도는 거잖아요.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혹시……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요?”
나를 바라보는 클라티에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분기를 못 참은 시선.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나는 생긋 웃고는 클라티에를 지나쳤다.
나는 문을 반쯤 열고는 나가지 않고 멈춰 섰다.
문밖에는 아직도 신관들과 황실 기사들이 대치 중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 듣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폐하의 용태는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변함이 없네요. 지금 공주의 눈에도 보이겠지만. 그러니 혹시라도 제가 나간 뒤에 폐하께 이상이 생긴다면 그건 폐하와 둘이 남은 공주의 탓이겠죠?”
그러니까 개수작 부리지 말렴.
나는 클라티에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침전을 나섰다.
* * *
와장창一!
국보 중 하나인 화병이 슈리엘의 손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루아티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 잘난 척하는 얼굴을 보면 속이 뒤틀렸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토록 여유로운 얼굴이라니!
행복했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망쳤으면서!
‘가해자 주제에 뻔뻔하게……! 네가 행복하면 안 되는 거잖아!’
슈리엘은 까드득 이를 갈았다.
‘반드시 네년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고야 말이겠어.’
그때, 침전의 문이 열리고 시종과 몇몇 귀족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엉망이 된 황제의 침전을 보고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중하게 슈리엘을 향해 고개를 숙일 뿐.
슈리엘은 시종에게서 약을 받아들였다.
“폐하.”
그녀가 짙은 미소를 지은 채 황제에게 다가갔다.
“자아, 약 드실 시간이에요.”
황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아니, 혼신의 힘을 다해 반항하고 있지만 뻣뻣하게 굳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동자는 압력에 붉게 충혈되고 얼굴에는 핏대까지 올라왔다.
입을 열지 않으며 거부하는 황제의 모습을 본 슈리엘이 쿡쿡 웃었다.
“쓰다고 안 드시면 어떻게 해요. 잘 드셔야 기운 차리셔서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죠.”
그 말에도 황제는 형형한 눈으로 슈리엘을 노려볼 뿐이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슈리엘이 황제의 턱을 강하게 잡아챘다.
그녀는 강제로 황제의 입을 벌리고 그대로 약을 들이부었다.
“커헉……! 꺽!”
황제가 꺽꺽거리며 목 안으로 약을 삼켰다.
턱을 부술 듯 틀어쥔 손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몸은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비참한 것은一.
황제의 시선이 슈리엘을 지나 그 뒤로 향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자신의 시종과 귀족들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탁.
빈 약병을 내려놓은 슈리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귀족들을 추궁했다.
“왜 루아티샤가 황제와 독대하고 있었던 걸까요. 분명 내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기사단장이 섣부르게 판단해서一. 딴에는 잡음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진작 기사단장을 우리 쪽 사람으로 바꿔야 했어요.”
“하지만 최근 황제궁 주변의 인력이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에스테반 황태자의 명이라고 해도 아무 이유 없이 인력을 교체하면 반발이…….”
“이유가 없다뇨?”
슈리엘이 미소 지었다.
“사람이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가 비면 새 사람이 오는 수밖에 없겠죠?”
슈리엘의 뜻을 알아들은 귀족이 그녀를 칭송했다.
“과연 영민하십니다!”
그 대화를 다들은 황제가 입을 벌렸다.
“끄…… 아, 으…….”
그러나 나오는 것은 꺽꺽거리는 소리일 뿐.
아까보다 몸이 더 굳었다.
아무리 황제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쳐도 방 안에 있는 누구도 황제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슈리엘이 흐트러진 황제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폐하는 아직 살아계셔야 하거든요. 갑자기 서거해서 에스테반이 황제 위에 오르면 잡음이 꽤 생길 테고. 뭐, 이제는 얼추 밑작업이 끝났으니 이만 편히 쉬셔도 되지만一.”
슈리엘이 생긋 웃었다.
“나는 꽤 자비롭거든요.”
연둣빛 눈동자는 광기로 얼룩져 있었다.
“비록 당신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루아티샤의 편을 들어서 나를 귀족 사회에서 내쫓고 성마저 못 쓰게 만들어서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지만.”
“끄으…….”
“다 용서해줄게요. 이제 곧 있으면 그이와 내가 결혼할 테니 우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요?”
툭툭.
슈리엘이 황제의 뺨을 살짝 치며 짙게 미소 지었다.
“그쵸, 아바마마?”
“아, 으, 너, 너어……!”
황제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어떻게든 소리치려고 애썼다.
“바둥거리는 꼴이 꼭 버러지 같네요, 아바마마.”
슈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가의 피에 걸려 있는 가호 때문에 함부로 죽이기도 힘들어서 살려둔 게 가장 컸지만, 이제 보니 그러길 참 잘했다.
침전을 나서기 전, 슈리엘은 황제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만수무강하소서, 황제 폐하.”
오히려 죽는 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테니까.
* * *
“이게 그 약초다.”
아빠가 내 앞에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내려놓으셨다.
나는 서둘러 상자를 열었다.
‘이게 클라티에가 사용한 약초.’
클라티에는 원래부터 약제술에 조예가 깊었다고 말하며 토렌시아에서만 나는 약초로 황제를 치료했다고 인터뷰했다.
‘흥, 치료는 개뿔.’
이제 이 약초를 조사해서 황제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응?’
약초 상자 위로 짙은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드니 아빠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계셨다.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묘하게 섭섭한 티가 나는 것이…….
“와아, 고마워요!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야!”
나는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최고?”
“응, 최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
“세상에서 제일……?”
“응!”
아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놈보다 더?”
“에이, 아빠도 차암!”
아빠의 농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약초를 자세히 살펴보는데도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전에 아리엘이 가짜 엘릭서를 만들었을 때처럼 사기를 썼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네.’
흠……?
‘약초라……. 흑사병 치료제를 만들었을 때의 능력이 아직 남아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전설의 풀 타입!〉은 딱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능력이었다.
‘일단 마법부에 분석을 맡기고 어떤 능력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 * *
파에라톤 공작은 금세 생각에 빠진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약초만 뜯어보고 있다.
생색을 내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약초는 쉽게 구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 반응이 전부라니.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는 울적한 눈으로 한참 동안 딸아이를 바라보다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로 나가자 세 아들들이 서로 견제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꺼져.”
“내가 먼저 들어갈 거다.”
“누구 마음대로?”
각자 손에 상자를 들고 있는 것이…….
‘약초를 구해왔군.’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 역시 파에라톤 공작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설마 벌써?”
“공작씩이나 되시는 분이 참으로 치사합니다.”
“혼자서 막내의 사랑을 독차지하다니.”
“……딱히 독차지하지 않았다.”
그 말에도 아들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볼 뿐.
“그런 식으로 뒤에서 호박씨 까면一.”
“그게 아니다.”
떠오르는 기억에 파에라톤 공작이 이를 사려 물었다.
“그 새끼보다 더 좋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더군.”
“그 새끼?”
“설마 그 새끼?”
“……시드리한 황자.”
세 공자들의 표정이 한없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들은 영민한 머리로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약초도 구해오지 않은 주제에 감히 막둥이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니!
안 그래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파에라톤의 남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달리 서로를 향한 견제심은 없었다.
오히려 우호적인 시선.
‘공동의 적부터 처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