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화(3/353)
☆ 제3화 ☆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가냘 프게 새어 나왔다.
서글펐다.
서글프고 서럽고 울적했다.
나 혼자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공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기가 차는군.”
울컥.
“아빠잖아!”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솔직히 공작이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아빠라고 느껴질 리가 없다.
그런데…….
“흑……. ”
이 웬수 같은 어린아이 몸 때문인지 진짜 아빠한테 버림받은 것처럼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눈동자가 울먹울먹해졌나 보다.
공작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오히려 그래서 다시 용기가 났다.
딱딱하고 차갑게 굳은 표정이 안 보이니까.
“내 아빠잖아!”
클라티에에게 후작이 있듯이, 나한테는 당신이 있는 거잖아.
“나 집에 갈래!”
굵은 눈물방울이 하염없이 뚝뚝 흘러내렸다. 코가 시큰했다.
나는 작은 두 주먹을 꾹 움켜쥔 채 공작의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아빠, 나 데려가아一!”
* * *
“…….”
“…….”
지나치게 조용했다. 언뜻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던 듯도 했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또로록.
맺혔던 눈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험악한 표정을 지은 것도, 눈가를 일그러트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없이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그런데도 살벌함이 느껴졌다.
딸꾹.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공작이 내게 손을 뻗었다.
‘안 돼! 안 떨어질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찰싹 달라붙었건만 파에라톤 공작은 한 손으로 쉽게 나를 답삭 잡아 올렸다.
예상과 달리 그는 날 내팽개치거나 뿌리치지 않았다.
대신 제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선 노려봤다.
한 뼘 거리에서 빨간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딱 봐도 마음에 안 드는 눈빛이었다.
흥, 나는 뭐 마음에 드는 줄 알아?
여기서 살다간 죽을 게 분명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구!
딸꾹.
당당하게 (속으로) 외친 것과 달리 자꾸만 딸꾹질이 새어 나왔다.
공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 리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를 집어 든 채로.
“각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던 부관이 만류하듯 파에라톤 공작을 불렀다.
“돌아간다.”
하지만 공작은 그 말만 남긴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공작의 허리춤에서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랑달랑 거렸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날 데리고 가는 걸까?’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 끔찍한 곳에서 탈출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문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
불현듯 파에라톤 공작이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러지?’
힐끗 그를 올려다봤지만, 무미건조한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어쩐지 스멀스멀 불안이 발등을 타고 기어올랐다.
출구를 지척에 두고 그가 몸을 돌렸다.
그의 허리춤에 달랑 들려 있는 나 역시 문에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구명줄을 잡듯 공작을 꽈아아악 붙들었다.
‘안 돼! 나 버리지 마!’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무슨……?’
나는 공작의 가슴팍을 붙잡은 채 얼떨떨하게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티, 티에야!”
“아가씨!”
“대, 대체 무슨 일이…….”
사람들이 혼비백산한 틈으로 클라티에의 모습이 보였다.
수놓아진 다이아몬드 가격만 해도 수십억이 될 법한 드레스가 엉망으로 찢겨 있었다.
“내, 내 드레스! 내 드레스가……!”
클라티에는 주저앉은 채 너덜너덜해진 드레스를 더듬었다.
“파에라톤 공작!”
후작이 클라티에의 어깨를 감싼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공작을 불렀다.
‘설마 저게 공작이 한 짓인가?’
공작은 검을 뽑지도 않았고, 클라티에와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타이밍이나 후작의 태도를 볼 때 그가 한 짓인 듯했다.
“분별력이 사라진 건가. 욕심낼 것을 욕심내야지.”
서늘한 파에라톤 공작의 말에 후작이 흠칫했다.
바로 반발하지 않고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나는 놀랐다.
내게는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후작이 이렇게 쉽게 자세를 낮추는 것도 그렇지만一.
‘꼭 찔리는 게 있는 사람 같잖아.’
그게 가장 놀라웠다.
“아, 아빠!”
클라티에가 울음 가득한 얼굴로 후작을 불렀지만, 후작은 그녀를 다독일 뿐 공작에게 더 따지지 않았다.
더 이상 볼 일은 없다는 듯 공작이 몸을 돌렸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매달린 채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행이야. 날 두고 가는 게 아니라서.’
그나저나 후작이 찔려하는 게 대체 뭘까?
그 의문을 뒤로한 채 나는 이 지옥 같은 후작저를 벗어나 파에라톤 공작저로 향했다.
* * *
‘침대 천장이 뭐 저리 화려하지.’
파에라톤 공작저에서 지낸 열흘 남짓 동안 매일 보는 건데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오늘도 놀라며 나는 기지개를 쭉쭉 켰다.
흐아아아암一.
그렇게 잤는데도 아직도 눈에 졸음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몇 시지?’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늦잠 자도 나를 깨우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원하는 대로 실컷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깨어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방에 들어온다.
“기침하셨습니까, 막내 아가씨.”
이렇게.
“네, 좋은 아침이에요.”
내 말에 하녀 언니는 살짝 묵례했다.
나는 세숫물에 손을 담그며 힐끔 실내 장식물처럼 서 있는 하녀 언니들을 살폈다.
‘오늘도 여전히 표정이 없네.’
이곳에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웃기는커녕 미소 짓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말과 대답만 했다.
‘나를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세수를 마치고 나는 낑낑대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여기 침대는 내가 전생에서 흔히 봤던 침대보다 더 높아서 자그마한 몸으로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하긴, 전생에서도 비싼 침대는 더 높다고 했지.
나야 한 번도 침대를 가져본 적 없지만.
러그 위에 두 발로 착 선 다음 콩콩 제자리걸음을 해보았다.
‘좋아, 다리도 안 아파.’
상처 탓에 종아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느낌도 없었다.
감기 역시 똑 떨어진 지 오래였다.
파에라톤 공작저에 온 뒤로 내 건강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묵은 때를 박박 벗기고 매일 밤 따뜻한 이불에서 자니, 오히려 앓기 전보다 더 상태가 좋았다.
‘공작은 한 번도 오질 않네.’
빠른 속도로 치료됐다고 해도 열흘 넘게 지났다.
그동안 나는 공작의 머리카락 한 올 볼 수 없었다.
‘딱히 와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태도를 보아 나를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에 반해 나는 아빠라고 매달렸었고.
그때 생각을 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전생에서도 고아였던 나는 떼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으, 창피해.
‘아냐, 이것도 배부르고 등 따시니 할 수 있는 생각이지.’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감정은 통증과 고통, 굶주림 앞에서 사치였다.
‘쭉 여기서 지내고 싶다.’
그 생각이 가슴 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아직 이곳에 계속 있어도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흠, 그전에 우선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파악해야지.’
척 봐도 공작은 정의, 수호, 평화 뭐 이런 좋은 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악당 같달까.’
내 오랜 로판 경력으로 볼 때, 악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타렌카 후작같이 패야 할 악당.
2. 악당이고 폭군이고 흑막인데 사실은 (여주 한정) 좋은 사람.
2번이면 내가 참 좋아하는 캐릭터 속성이다.
흐름 상 공작은 반드시 2번이다! 이 주식, 나는 성공했다!
드디어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一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환생한 후 평생토록 악마 놈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살아왔다.
지난번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왔다며 환생 계약을 했을 때, 날 맞이한 건 이전보다 더한 시궁창이었다.
‘그놈이 말한 것 중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어. 방심할 순 없어.’
자, 그럼 이걸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단 밥값 해야지.’
나는 공작에게 말했다.
밥값 할 수 있으니 데려가 달라고.
후작처럼 처음부터 무리인 일을 시키는 게 아닌 이상 웬만한 건 자신 있었다.
전생에서도 애기 때부터 일해 왔으니까.
열심히 밥값하고 공작의 반응을 살펴보자.
공작이 1번이면 납작 엎드려서 튈 준비를 하고, 2번이면 내 인생은 핀 거나 마찬가지!
‘좋아, 일하러 가자!’
나는 조그마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마, 막내 아가씨…….”
“이런 건 저희가…….”
파에라톤 공작저의 고용인들은 항상 딱딱했다.
자로 잰 듯한 움직임에 기척도 없어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표정 없는 그 들이 드물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일단 손에 드신 것부터 저희에게 주시지요.”
“내가 해야 해요.”
나는 간단하게 대꾸한 뒤 쓱싹쓱싹 열심히 창틀을 닦았다.
“하지만…….”
“이렇게 일하기로 하고 여기 온 거예요.”
“예?”
내 말에 하녀 언니들이 아까보다 훨씬 더 당혹스러워했다.
잠시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아가씨께서는 파에라톤 공작가의 막내 따님이신데, 일하러 오셨다니요.”
“내가 이 집 막내 아가씨라서 여기 살 수 있었다면 진작 여기어 지냈겠죠.”
타렌카 후작저가 아니라.
“제 아비에게도 버림받은 사생아 년이 주제를 모르고!”
후작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따끔따끔 박혀 있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몇 번이나 부정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버림받았다.
열 밤만 자면 데리러 올게.
一라고 말한 부모가 다시 오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하물며 파에라톤 공작은 내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버림받은 자식은 절대로 다시 자식이 될 수 없어.’
전생의 내 눈앞에서 차갑게 닫혔던 철문이 유리창에 비쳐 보였다.
“막내 아가씨, 그건…….”
하녀 언니가 뭐라 입을 열었지만, 다른 사람이 말리듯 그녀를 붙잡았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환상을 지워내려는 것처럼 그 위를 박박 닦았다.
* * *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등 뒤에서 들린 서늘한 목소리에 나는 창문을 닦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오후의 햇살 아래, 한 폭의 그림 같은 미남자가 보였다.
서류상의 내 부친인 파에라톤 공작이었다.
‘오늘은 드물게 일찍 돌아온 모양이네.’
이곳에서 지내면서 몇 번이나 그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때마다 부재중이라는 답만 돌아왔었다.
“저 청소 잘해요.”
원래 깨끗하긴 했지만 이제 유리창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투명해졌다.
나름 자신 있었다.
그런데 공작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누가 네게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라고 했지.”
쓸데없는 짓.
“밥값, 하겠다고 말씀을一 꺅!”
“아직도 비쩍 골았군.”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파에라톤 공작이 나를 달랑 들어 올렸다.
마뜩잖은 것을 마주하듯 날 보더니 그 상태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대번에 불안해졌다.
설마 쓸모없다고 이대로 나를 내다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다.
“먹어라.”
안 먹으면 죽이겠다.
그런 협박이 들리는 듯한 어조였다.
간이 콩알처럼 작아져서 나는 허겁지겁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공작은 식사一라고 해야 할지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지一를 하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안 먹으면 내쫓는 게 아니라 진짜로 죽일지도 몰라!’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빵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것밖에 못 먹는 건가?”
내 손이 멈추자마자 공작이 물었다.
뼛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한번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입에 음식을 넣진 못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더 먹을 수 있을 텐데?”
협박인가.
배를 터지게 해서 날 살해할 생각인가!
‘이, 이 확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