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0화(30/353)
☆ 제30화 ☆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픈 목소리였다.
하지만 익시온은 들었다.
우뚝. 시키지도 않았는데 발이 멈췄다.
“고, 고, 고마워…….”
한쪽 다리가 무거워졌다.
아니, 무거울 리 없다.
무게도 안 느껴지는 솜뭉치가 붙잡은 것뿐인걸.
그럼에도 익시온은 뒤를 돌았다.
옷자락을 잡은 아이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를 잡은 손은 축축이 젖은 채 애처로울 정도로 후들거렸다.
“이렇게 무서워하면서.”
그 말에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지.
고맙다니.
이 상황에서조차 입에 발린 말만 늘어놓는 사기꾼.
‘대체 어디까지 나를.’
익시온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약골. 이렇게 무서운 주제에 왜 나를 붙잡아?”
진짜로 죽일까?
익시온의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어린 순간이었다.
“무서웠어!”
루아티샤가 소리쳤다.
흡사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오빠에게, 언니에게 서러운 기억을 쏟아내는 것처럼.
“나 진짜 무서웠어! 무서웠단 말야!”
와앙! 루아티샤가 커다란 울음을 터트리며 익시온에게 꽉 매달렸다.
꼭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익시온은 움직일 수 없었다.
우스운 일이다.
이 솜뭉치가 아무리 매달려봤자 익시온이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그러나 익시온은 여전히 손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왜, 왜 이제 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이 나쁜 놈아! 나쁜 놈!”
솜뭉치가 이제는 팍팍, 자신을 때리기까지 했다.
그제야 마법이 풀린 것처럼 익시온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이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아예 양팔로 목을 꽉 끌어안는다.
조금 전 이 손으로 학살을 저질렀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허어어어엉!”
아이는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익시온의 어깨가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아이가 녹아서 물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작은데 더 울어버리면 다 녹아버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익시온은 천천히 아이의 등을 쓸었다.
토닥토닥.
어색하고 뻐걱거리는 움직임인데도 루아티샤의 울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 * *
파에라톤 공작가는 발칵 뒤집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파에라톤 공작의 막내딸인 루아티샤가 납치당할 뻔한 것이다.
그것도 공작성 안에서.
“이는 사상 초유의 사태입니다!”
“연루된 자는 모두 색출해서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감히 파에라톤의 눈이 닿는 곳에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요!”
가신들은 비분강개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분노해 봤자 파에라톤 공작의 진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경비대부터 시작해 기사단, 가신들과 고용인들까지 모든 이가 공작의 진노를 감당해야 했다.
수백의 목숨이 단번에 날아갈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
“각하, 당연히 유괴에 연루된 자는 일벌백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백이나 되는 사람을 다 벌하기엔…….”
“무고한 이들마저 벌할 순 없지 않습니까. 저들은 업무를 소홀히 한 게 아닙니다.”
“공작성의 방비는 직계의 유괴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진 않습니다.”
파에라톤의 직계들은 모두 마기의 소유자로 강한 힘을 타고났다.
당연히 납치로부터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아레스만 해도 두 살에 몬스터를 도륙했다.
납치를 당할 수도 없거니와,
설령 납치를 시도한다고 해도 결코 은밀할 수 없다.
“공작성에서 납치가 일어날 거라 그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파에라톤의 직계들은 공작성 내에서 특별한 보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루아티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마기가 없었지만 성에 출입하는 모든 이들은 신원을 확인했고, 곳곳에 기사와 병사 들이 있었으니 안전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조사해 본바, 모두 자신의 위치를 지켰고 정해진 시각에 순찰을 돌았습니다.”
잠자코 가신들의 말을 듣고 있던 파에라톤 공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가 하는 말은 내 집에서, 내 딸을 유괴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가.”
낮고 고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들끓고 있는 격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신들은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각하께서는 내 동생의 안전을 지키라 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명을 지키지 못했지.”
항시 사근사근하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아레스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방안을 둘러봤다.
“감히 내 동생을 위험에 빠트린 죄를 어찌 감당하려는 거지?”
그늘진 얼굴에 눈동자가 기묘할 정도로 붉게 빛났다.
가신들은 감히 두 파에라톤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늙은 장로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각하와 도련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하나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우선 범인을 잡아내고 나서도 늦지 않습니다.”
“당장의 벌을 면피하려 얕은 수를 쓰는군.”
공작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도 우선순위를 혼동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좋아. 일단 그 찢어 죽여도 부족할 놈부터 찾아내야지.”
“예, 각하. 납치범들의 신원을 조회한바, 의뢰를 받고 일하는 암흑 길드의 조직원들이었습니다.”
“누군가 이들에게 아가씨의 납치를 의뢰한 듯한데, 문제는 전부 죽어서…….”
익시온에 의해 납치범들은 모두 현장에서 도륙 났다.
안타깝게도 의뢰인이 누군지 증언해줄 가장 중요한 증인이 다 죽어버린 것이다.
“우선 공작가의 경비를 파악 하고 있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큽니다.”
가신들과 경비대장, 기사단장이 서로 의견을 내던 차였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인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 모든 논의의 주인공인 파에라톤의 막내 공녀.
루아티샤 파에라톤이었다.
* * *
“루루.”
나를 부르는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은 걱정과 피로 탓에 까칠했다.
어제 밤새도록 아빠는 내 곁에 있었고 조금 전에야 조사를 위해 회의실에 드셨던 참이다.
“네가 왜 이곳에 온 거지? 방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는데.”
“다 쉬었어요. 이제 나 괜찮아요.”
쪼르르 다가가자 아빠가 날 안아 들었다.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밀어내는 말이었지만, 내 등을 토닥이는 손길은 따뜻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빠, 왜 나를 탓하지 않아요?”
“너를 탓할 일이 뭐가 있지? 집에서 잘 놀고 있던 것뿐인데.”
나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럼 왜 내게 묻지 않아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괴한들이 다 죽은 지금, 유괴범을 색출하는 데에 당사자인 내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아빠가 내 이마를 톡 쳤다.
“루아티샤.”
“네.”
“이 일에 네 잘못은 없다.”
“…….”
“그리고 네게 굳이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걸 단서 삼을 정도로 네 아빠는 능력 없지 않아.”
아주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아빠가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가 최고다!
“그럼 방으로 돌아가렴.”
“아니에요! 나 괜찮아요! 나도 파에라톤이니까!”
“루루.”
“게다가 날 이렇게 걱정해 주는 아빠가 있으니까!”
내가 유괴당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서 힘들어할까 봐, 내게 당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는 멋진 아빠가 있는데 뭐가 두려울까!
거기다…….
나는 스윽 퀘스트창을 바라보았다.
〈원수 갚는 까치(1)〉
독자님!
납치는 사실 로맨스 판타지에서 단골 소재입니다.
여자주인공, 남자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까지.
다양한 자들이 납치되지요.
이때 독자가 원하는 건 다양하지만 결국 한가지입니다.
납치범 완벽하게 조지기.
특히 이 경우는 더 흉악합니다.
어린아이 납치라니요!
어린아이 유괴라니요!
아동 범죄!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권선징악! 권선징악!
강력한 처벌을 요구합니다!
– 조건: 납치범 색출
– 보상: 5000캐시 뽑기권, 파에라톤 공작가 내 영향력 증가, 연계 퀘스트〈???〉진행
– 퀘스트 수락 혜택: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패널티가 해제됩니다.
‘나는 누가 납치범인지 알 거 같거든.’
납치를 당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네 살 애기였지만, 지금 나는 완벽한 환생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아빠, 나한테 익시온의 수련장으로 가라고 한 사람이 있어요.”
“그게 누구지?”
“디에르 아저씨요.”
나는 손가락을 뻗어 디에르 자작을 가리켰다.
타렌카 후작저에 나와 함께 갔던 그 가신 아저씨였다.
“디에르 자작이?”
“디에르 자작은 특히 막내 아가씨를 아끼지 않았나.”
“아낀다 뿐인가. ‘루.사.모.’의 임원인데……. 설마 그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디에르 자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 아가씨! 제가 어찌 아가씨를 해하려는 계획을 세우겠습니까! 저는 아가씨를一.”
디에르 자작의 말은 더 이어 지지 못했다.
새까만 마기가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 이상 내 동생에게 다가오면 자작의 목숨을 장담해줄 수 없어.”
아레스가 나른하게 눈매를 접으며 말했다.
언제나 다정하고 상냥해 보였던 아레스의 새로운 모습에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 아레스는 웃고 있는데도 함부로 말 걸기조차 힘든 날 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디에르 자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곤 양 손바닥을 보였다.
“아가씨께 겁을 줄 생각은 결코 없었습니다. 다만 억울해서……. 제가 얼마나 아가씨를 좋아하는지는 아가씨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감정에 호소하지 마, 아저씨.”
아빠 무릎 위에 앉아있는 모양새라 멋이 안 살겠지만, 나는 최대한 엄중하게 말했다.
“이럴 땐 아주 단순해. 사실관계만 명확히 하면 답은 간단하게 나오거든.”
나는 취조를 시작했다.
“디에르 아저씨, 어제 나한테 익시온이 수련장에 있을 거라고 했어. 그치?”
“예, 아가씨께서 셋째 도련님이 어딨는지 아느냐고 여쭤보셔서 그리 답해드렸지요.”
“아가씨, 그것만으로는 자작이 범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듣고 있던 다른 가신이 끼어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질문에 답해 준 것뿐 인걸.
“사실 확인.”
내 말에 익시온의 보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가씨. 도련님께서는 어제 오후에 수련장에 계셨습니다. 디에르 자작이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닙니다.”
“디에르 아저씨, 익시온이 수련장에 있다는 걸 언제 알았어?”
“아마 세 시를 조금 넘은 시각일 겁니다. 세 시에 회의를 끝내고 아가씨께 가는 길에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럼 내가 아저씨한테 익시온이 어딨냐고 물은 건 몇 시였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네 시는 되었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이 수련장에 있다는 걸 아가씨께 가는 길에 알았고, 아가씨와 간식을 먹은 후에 여쭤보셨으니까요.”
나는 익시온의 보좌에게 물었다.
“익시온이 수련장에 얼마나 오래 있었어?”
“10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수련이라기보단 그냥 화풀이하러 가신 거였거든요.”
보좌의 말에 디에르 자작이 당황했다.
“저는 몰랐습니다! 도련님이 계속 수련장에 계실 줄一.”
“익시온은 변덕쟁이야. 정해진 일과 따윈 없지.”
그건 익시온을 졸졸 쫓아다닌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런데 계속 수련장에 있을 줄 알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 아저씨는 수련장 쪽으로는 가지도 않잖아.”
사람을 싫어하는 익시온의 성격 탓에 그의 수련장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파에라톤의 혈족 혹은 익시온의 보좌.
당연히 디에르 자작은 어느 쪽도 아니다.
“우리가 간식 먹고 있었을 때, 익시온은 이미 본성에 있었다고 하더라.”
“저는 몰랐습니다. 도련님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아가씨께서 저와 함께 있지 않으셨습니까?”
“응, 당연히 우린 보지 못했지. 본성 안이 아니라 동쪽 정원의 가제보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으니까.”
“…….”
“평소대로 내 방이나 온실에서 먹었다면 분명 익시온과 마주쳤을 거야.”
어제 익시온이 내 방과 온실에 왔었다고 들었다.
“가제보에서 수련장으로 가는 길과 본성에서 수련장으로 가는 길은 전혀 다르지.”
사방이 조용했다.
“익시온이 본성과 수련장을 오가더라도 날 발견할 순 없었을 거야. 동선이 안 겹치니까.”
웅성거리던 가신들은 어느새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제보에서 수련장으로 가는 길은 나를 유괴하기 최적의 장소였을 거야.”
“……그랬겠죠.”
“거기다 가제보에 있으면 익시온과 절대 마주칠 수 없고, 익시온의 소재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없지.”
동선부터 장소까지.
범죄를 위해 유도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왜 나를 그런 곳으로 안내했어?”
“아가씨…….”
“응, 이제 말해줘.”
디에르 자작이 나를 쳐다봤다. 아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누구야?”
나는 그를 향해 물었다.
“나를 유괴하려고 한 범인.”
순간, 회의장 안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짧은 정적이 끝나고.
“……예?”
“디에르 자작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자작이 아가씨를 범행 장소로 유인한 게 분명한데?”
어리둥절한 표정의 가신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짝, 짝, 짝.
느릿한 박수 소리가 울렸다.
“감탄했어.”
불빛이 아레스 얼굴에 베일처럼 드리웠다.
살짝 쳐진 눈매 속 붉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나를 응시했다.
“내 동생, 정말 똑똑하네.”
아레스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