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0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00화(300/353)
☆ 제300화 ☆
클라우디아는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더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너무 애써줬는걸.’
클라티에 혼자라면 모를까, 리리엘은 너무나도 위험한 상대다.
혹시라도 클라우디아가 꼬리를 밟히는 순간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른다.
‘아이젤 영애 같은 일은 단 한 번이면 족해.’
그때, 내 주먹 위로 따뜻한 기운이 어렸다.
내 손을 잡은 자스민과 티리엘이 미간을 모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너는?”
“응?”
“왜 자세한 걸 말해주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아. 우리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야. 우리가 위험할까 봐 그런 거지?”
“…….”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
“너도 위험하잖아.”
나는 자스민과 티리엘, 클라우디아를 바라보았다.
섭섭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걱정하고, 내 짐을 나뉘고 싶어 하는 거였다.
아휴, 이 이쁜이들.
누구 친구길래 이렇게 착하고 귀엽고 이쁘지?
“나는 괜찮아.”
“루루.”
“그리고 나 혼자 다 하려는 것도 아니야.”
정말이었다.
‘시드.’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친구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티 나네.”
“무슨 생각하는지 얼굴만 봐도 잘 알겠다.”
“어휴, 그래. 완벽한 남친 있어서 참 좋겠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마주 보며 꺄르르 웃었다.
* * *
“……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아.”
“응.”
“성혼식을 이렇게 빨리 잡다니 정말 급했나 봐.”
보통 황태자의 성혼이라고 하면 1년의 준비기간을 갖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황태자와 클라티에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곧 날짜가 잡혔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때로.
“폐하의 병환이랑 내정 안정 핑계로 대긴 했지만 너무 속 보여.”
“응.”
“어쨌든 우리야 마침 좋은 무대가 생겼으니 잘 됐지.”
황태자와 클라티에의 성혼식.
당연하지만 이걸 내가 그냥 잘 치르게 두고 볼 리는 없지 않은가.
황제는 의식을 차렸지만 정무를 볼 수 없는 상태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황태자가 정식으로 대리청정을 하게 되겠지.’
지금은 황비님께서 공석인 황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황후 대리 권한을 놓고도 알력 다툼이 일어날 터다.
거기다 클라티에는 지금 사이비 교주나 마찬가지였다.
‘클라티에가 진짜 황태자비가 되면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리리엘에게 가는 영향력도 강해질 거고.’
결혼식을 망칠 이런저런 이유가 많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一.
‘재수 없으니까.’
뭐, 왜, 뭐.
원래 로판 독자는 사소한 고구마도 잊지 않는데, 클라티에+리리엘은 나에게 너무나 큰 고구마를 줬다구.
“좋아. 이 계획대로 가자. 성혼식이면 성녀인 내가 큰 역할을 하기도 하고 딱 좋아.”
“응.”
나는 고개를 돌려 시드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게 이상했다.
“왜 그래?”
혹시 계획이 마음에 안 드나? 아니면 별 관심이 없는 걸까.
하지만 관심 없다고 하기엔 시드는 너무나 열렬한 시선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보고 있었던 거야.’
옆에 나란히 앉아있느라 몰랐다.
깊고 진득한 눈빛에 괜히 내 뺨이 뜨거워졌다.
시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어디서 결혼하지?”
“어……?”
갑자기?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식을 올리고 싶다가도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하고 싶기도 해.”
나직한 속삭임.
내게로 기울인 단단한 몸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가 났다.
아니, 분명 익숙하기만 한 향기인데 내가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몸이 긴장하며 드러난 피부 위로 솜털이 바짝 섰다.
뜨겁고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엄지가 쇄골을 따라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움푹 파인 곳을 지그시 누르며 목선을 타고 올랐다.
“…….”
목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끝이 저절로 움찔거린다.
도저히 시드를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눈가가 뜨거웠다.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분명 세상에서 제일 예쁠 거야.”
목덜미에 시드의 숨결이 번졌다. 입술이 닿지도 않았는데도 닿은 것처럼 그의 존재가 느껴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속삭임과 함께 시드의 손이 내 턱을 감싸 쥐었다.
그가 입술을 쓸어내려서 깨물었던 것이 풀려났다.
시드의 시선이 부푼 입술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고개를 틀려는 순간, 시드가 내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
애써 시선을 피하던 게 무색하게도 곧장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시드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든 햇살이 결 좋은 금발과 하얀 뺨, 우아한 눈매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영원과도 같은 찰나.
주변의 풍경이 흐릿해지고 정원의 풍성한 소리조차 멀어졌다.
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몸을 숙이는 순간.
“뭐, 뭐래! 나는 너랑 결혼한다는 말도 안 했는데.”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시드의 가슴을 확 떠밀었다.
시드는 떠밀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안 할 거야?”
아니, 저 말은 왜 또 저렇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는 거야.
사람 마음 약해지게.
“너 하는 거 봐서.”
“내가 진짜 잘할게.”
“그건 봐야 알지.”
“진짜 잘할게. 나랑 결혼해주면 매일 과일 깎아주고 다리 마사지 해줄게. 아니다. 그냥 걷지 마. 내가 안고 다닐게.”
아니, 그건 좀 쪽팔릴 거 같은데…….
“귤 먹을 때 하얀 거 하나하나 다 떼줄게. 아예 귤 막까지 다 까서 얼려줄게. 나는 바로 얼릴 수 있어.”
오.
이건 좀 솔깃하다.
‘근데 왜 과일 깎아준다고 하지?’
보통 귀족들은 자기 손으로 과일 깎아 먹는 일이 없었다.
‘……우리 가족들은 예외적으로 나한테 직접 깎아주긴 하지만.’
시드는 그런 거 모를 텐데.
어쨌거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아빠랑 오빠들이 남자 말은 쉽게 믿지 말라고 했어.”
특히 결혼하면 어떻게 해준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만 남기고 새침하게 돌아섰다.
비밀통로를 통해 시드의 궁에서 나와 집에 돌아왔다.
“왔니, 루루?”
“볕이 좋은데 내 동생 산책할래?”
“그래, 간만에 이 할아비랑 같이 걷자꾸나.”
“솜뭉치가 좋아하는 디저트 사 왔어.”
“쓰다듬어줘.”
나는 방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누웠다.
꼬물꼬물 배를 타고 기어오르는 니케를 꽉 끌어안았다.
‘시드랑 결혼하면一.’
두근두근.
심장이 자꾸만 크게 뛰었다. 뺨에서 김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시드와 결혼한 후의 모습이 눈앞에서 계속 떠올랐다.
“으아, 어떡해……!”
“꺄웅?!”
나는 니케의 통통한 배에 얼굴을 묻고는 허공에 발을 동동동 굴렸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겨우겨우 진정이 됐다.
“휴…….”
그러고 보니 집에 들어올 때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인사도 안 했네.’
나한테 뭐라고 말 걸었던 것 같기도 한데…….
‘에이, 중요한 일이면 다시 말해주겠지.’
나는 몸에 힘을 쭉 빼고 누웠다.
루아티샤는 알지 못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파에라톤 남자들과 타렌카 후작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줄은.
아빠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클라티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아름다워.’
궂은일을 하며 사느라 상했던 손, 퉁퉁 부었던 다리, 퍼석퍼석했던 피부와 머리카락은 전부 매끄럽게 윤이 났다.
사람들이 자신을 칭송하면 칭송할수록, 영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얼굴에서 빛이 났다.
리리엘은 이것이 키야스에델 님께서 내리신 힘이라고 했다.
‘그래, 이게 원래의 내 모습이야.’
본래 그딴 궂은일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루아티샤의 몫이었지.’
옛날에 루아티샤가 타렌카 저에서 얹혀살 때 했던 일 아니던가.
“황태자비 전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클라티에는 고개를 돌렸다.
내로라하는 영애들과 귀부인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황태자비 전하.”
“정말 역대 결혼식을 다 떠올려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신부가 있을까 싶네요.”
“전하께는 황태자비 위에 어울리는 고귀함과 위엄이 있으시네요.”
사람들의 아부를 들으며 클라티에는 미소 지었다.
‘그래, 이걸 바랐어.’
나는 원래 이런 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모든 이들의 선망과 동경, 경외.
다른 이들 전부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굽히는 삶.
‘루아티샤 그것 때문에 다 어그러졌었지만, 결국 돌고 돌아 다 제자리를 찾은 거야.’
원래대로라면 이제 파에라톤 공녀인 루아티샤마저도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성녀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니.’
아프타네스, 그 거지 같은 신.
‘왜 그딴 년을 선택해서!’
[아프타네스는 언제나 그랬어. 항상 잘못 선택했지. 그딴 신은 죽는 게 나아. 그래야만 우리가 완전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어.]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리리엘의 목소리에 클라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타네스를 죽이려면 대리자인 루아티샤를 없애야 해.]‘알고 있어. 이제 곧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여유가 찾아왔다.
지금 당장 루아티샤가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루아티샤는 내 앞에 무릎 꿇게 되어 있으니까.’
그것도 오늘, 이 성혼식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때, 한 영애가 해맑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참 좋으시겠어요. 성혼식에서는 본디 교황의 축복을 받지만, 전하께서는 무려 성녀 예하의 축복을 받잖아요?”
클라티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영애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했는지 더 활짝 웃으며 재잘거렸다.
“너무 부러워요. 성녀의 축복을 받고 결혼한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一.”
“영애!”
“네?”
“대체 뭐가 부럽다고 그러는 건가요?”
“성녀가 제대로 된 성녀 역할도 하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성녀 입장에서 황태자비 전하의 성혼식에 얹혀갈 수 있어서 더 행운이겠죠.”
“죄송합니다, 황태자비 전하.”
다른 사람들이 당혹한 표정의 영애를 끌고 나갔다.
대기실에 혼자 남은 클라티에가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아직도.’
손톱이 손바닥의 피부를 파고
들어 새하얀 레이스 장갑에 붉은 자국이 번지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까지……!’
루아티샤 파에라톤.
지긋지긋하게 끈질긴 년!
파사삭!
클라티에에게서 터져 나온 사기에 거울이 깨어져 나갔다.
클라티에는 조각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하지만 오늘로 끝이야.’
이미 승기는 자신에게 기울고 있었다.
루아티샤가 꼬리 말고 도망가 두문불출하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까.
클라티에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끝없이 이어진 마차의 행렬. 그리고 저 밖의 광장에는 평민들 역시 몰려있을 터였다.
‘오늘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기 이 성혼식이 네 무덤이 될 거야.’
* * *
“루아티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갈등했다.
그냥 무시할까?
그러는 사이 에스테반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따라잡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는 척을 했다.
“……황태자 전하.”
에스테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무릎을 굽혔다.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전 이만.”
그를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
“후회하나?”
“네?”
“네가 내 손을 잡았다면 오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건 너였어.”
와,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못들은 걸로 할게요.”
절로 냉랭한 목소리가 나갔다. 나는 그대로 에스테반을 지나쳤다.
‘별 또라이 다 보겠네.’
그때였다.
탁.
에스테반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화났어?”
“제가 왜 화가 나요?”
에스테반이 내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개를 숙인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그렇게 말하는 에스테반의 청회색 눈동자는 아련하고 애틋한 것이一.
“야.”
진짜 짜증 났다.
나는 거칠게 에스테반의 손을 털어내곤 짝다리를 짚고 섰다.
좋은 말로 해선 안 될 놈이네.
“꺼져라, 좀. 너 결혼식 날인데 이러고 싶냐? 니가 신랑이야.”
“……많이 화났군.”
“어, 그래. 빡쳤다. 솔직히 슈리엘이 상처받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너랑 내가 무슨 사이라고 이렇게 기분 나쁘게 질척거리는데? 진짜 꼴불견이야.”
“이상하군. 다른 사람이 이렇게 굴었으면 당장 황족 모욕죄로 감옥에 처넣었을 텐데.”
에스테반이 내 턱을 움켜쥐며 미소 지었다.
“너는 역시 이런 모습도 좋아.”
미친.
이거 변태 새끼 아냐?
“지금은 기다리지.”
에스테반이 내 얼굴을 놓았다.
“원래 나는 가장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거든.”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았다.
성혼식을 위해 입은 예복 자락이 에스테반의 걸음을 따라 무겁게 흔들렸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별 미친 새끼 다 보겠네. 그냥 죽이고 감방 갈까?’
순간 그런 충동이 들었지만 로판 독자다운 인내심으로 참았다.
‘어차피 오늘이야.’
성혼식을 위해 개방된 아칼란테스 궁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가득했다.
단기간 내에 이 정도로 준비한 게 참으로 대단했다.
오직 오늘의 주인공인 새신랑과 새신부를 위한 가꾸어진 장소.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새신랑과 새신부를 맞이하는 건 축복이 가득한 결합이 아니라一.
‘파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