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0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01화(301/353)
☆ 제301화 ☆
* * *
준비기간이 촉박했던 것과 달리 성혼식은 실내 장식부터 세부적인 단장까지 완벽했다.
에스테반이 황태자라고 하나 지금은 황제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사절단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아름다운 웨딩 홀과 새신부와 새신랑의 결합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다소 부족한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황제, 황후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었다.
의식을 차렸으나 황제는 연회에 참석할 상태가 아니었고, 황후는 불명예스러운 일로 폐후가 된 지 오래였다.
당연히 상석에 황비가 자리해야 했지만 에스테반이 반대했다.
이제는 공식 석상까지 황비를 밀어내려고 한다며 몇몇 사람들이 뒤에서 몰래 수군거렸으나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정권이 바뀌는 순간엔 고개를 납작 숙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요즘 에스테반 황태자와 슈리엘 공주의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찮았다.
아무리 에스테반이 곧 양위 받을 것 같다고 해도 그렇지, 권력에 아첨하는 수준이 아니라 불구덩이라도 대신 뛰어들 것처럼 굴었다.
꼭 광신도처럼.
어쨌거나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슈리엘과 성장(盛裝)한 에스테반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두 사람이 제단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본 순간이었다.
“화, 황제 폐하께서 드십니다!”
다소 당혹한 목소리의 호명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
“황제 폐하께서……?”
조용했던 홀 안에 소란이 일었다.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닫혀 있던 홀의 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탄 황제가 등장했다.
“어머, 정말 폐하셔……!”
“세상에, 안색이 너무 안 좋으셔……. 그 풍채 좋으시던 분이 저렇게 야위시다니.”
황제가 의식을 차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회복한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손에 꼽았다.
“그래도 많이 회복하셨나 봐요.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셔서 거동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휠체어에 의지해서 나오신 걸 보면 아무래도 황태자 전하의 성혼날이라 힘을 내신 거겠죠.”
“황태자비 전하의 간호가 지극정성이었다고 들었어요.”
“오늘 성혼식을 보실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황제 폐하께서는 얼마나 좋으실까. 자신의 뒤를 이을 자식이 자신을 병환에서 구한 공주와 결혼한다니…….”
“따지고 보면 황태자 전하께서 슈리엘 공주님과 연인이 되지 않았다면 폐하께서는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정말 황태자 전하께서는 효자 중에 효자네요.”
“우리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또 어떠시고요. 결혼 전부터 제국의 복이에요.”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슈리엘과 에스테반을 칭송했다.
하지만.
‘어떻게……?’
슈리엘은 당황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황제가 이곳에 있는 거야!’
병상에 누워서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어야 할 자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것인가!
슈리엘이 날카로운 눈으로 측근을 노려봤다.
뒤늦게 쪽문으로 들어온 측근이 고개를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죽고 싶은 건가?’
슈리엘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당장 쳐 죽이고 싶지만一.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이미 자신의 손아귀에 떨어진 인간들은 상관없다.
여기서 황제에게 칼을 꽂아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너무 많은 인간들이 모였다.
다른 날도 아니고 자신이 황태자비가 되는 날이다.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이기도 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루아티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구경거리 삼으려는 속셈도 있었다.
‘거기다 기자들까지…….’
기자들의 손에는 영상석이 들려 있었다.
파사석一.
슈리엘의 손아귀에서 부케가 일그러지며 소리를 냈다.
루아티샤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트리려고 판을 크게 벌였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만약 황제가 여기서 진실을 말한다면一.’
황제를 살피던 슈리엘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풀어졌다.
‘뭐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혀 못 움직이고 있잖아?’
실제로 황제는 눈만 부릅뜬 채 자신만 노려볼 뿐, 신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눈을 감았다 뜨지도 못해서 붉게 충혈된 눈.
“폐하께서 저렇게 눈시울을 붉히시는 건 처음 봐.”
“그야 이 결혼이 얼마나 감동스러우시겠어…….”
멍청한 인간들은 이 결혼식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라며 난리였다.
‘뭐,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사교계에는 자신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운 결과였다.
[안심하지 마. 루아티샤는 독사 같이 영악한 계집이야.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 틀림없어.]‘나도 알아.’
그러나 정작 루아티샤는 이곳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황제는 제단 앞까지 다가왔다.
휠체어에 타 핏줄이 자글자글 올라온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는 황제를 내려다보며 슈리엘은 미소 지었다.
‘그래, 이곳에 와 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자신을 겁박하려는 생각인가 본데, 이딴 걸로 위축될 리가 없다.
황제는 이대로 입도 열지 못하고,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남은 생을 살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증거도 없는걸.’
황제에게 먹인 약초가 아시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봤자 소용없다.
구해서 분석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건 인간이 쓸 수 없는 풀이라고.’
“으…….”
황제가 겨우 토해낸 목소리는 목이 꽉 졸린 것처럼 미약했다.
슈리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황제의 곁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우뭇가사리처럼 비쩍 마른 손을 잡고 토닥였다.
“이렇게 힘든 상태에서도 저희를 축복하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폐하…….”
“끅…….”
“걱정 마세요, 폐하. 아드님이신 에스테반 전하는 제가 잘 보필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제국의 황태자비로서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황제의 눈알에 자글자글 올라 온 실핏줄이 터졌다.
슈리엘은 웃었다.
‘후후, 그래. 널 이렇게 만든 원수가 네 아들과 결혼하고 이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는 걸 똑바로 지켜보렴.’
오히려 잘됐다.
저 황제가 루아티샤의 편만 들어주지 않았어도 자신은 그렇게 불행하게 살지 않았을 거다.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그저 전해 듣는 건 약하지.’
자신이 황후가 되고 이 제국을 전부 집어삼켜 불살라 버리는 것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 * *
에스테반의 명에 황제는 비워진 상석에 자리하게 되었다.
황제의 깜짝 등장에 성혼식은 감동까지 주며 진행되었다.
곧이어 성녀가 앞에 나와 황태자 부부를 축복할 순간이 왔다.
“성녀 예하께서 드십니다.”
문이 열리며 햇살이 가득한 가운데 루아티샤가 등장했다.
“와…….”
새하얀 성녀의 예복을 입고 황금빛 관을 쓴 채 성물을 든 루아티샤의 모습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모두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숨죽여 루아티샤의 걸음을 지켜보았다.
탐스러운 곱슬머리가 베일처럼 물결쳤다.
옮기는 발자국마다 빛이 머무는 것처럼 성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주 작정을 했군. 그 천족의 작품인가?’
실제로 루아티샤의 몸에서는 은은한 성화(聖火)가 일고 있었다.
후광이 비치는 듯한 모습에 사람들이 넋을 놓는 게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자신이 루아티샤의 바로 옆에 있는데도.
“성혼을 축하드립니다.”
루아티샤가 생긋 웃으며 속삭였다.
“감사해요.”
슈리엘은 마주 미소 지었다.
‘그래 봤자야.’
루아티샤는 제단 위에 올라가 성사를 읊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아티샤가 마지막 말을 마치며 성수를 에스테반의 이마에 묻히고 슈리엘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이었다.
“하윽……!”
슈리엘이 신음을 흘리며 쓰러 졌다.
“황태자비 전하!”
“전하!”
주변의 사람들이 기겁해서 슈리엘에게 달려왔다.
“슈리엘, 괜찮은가?”
“으, 성녀께서 이마에 손을 대는 순간 가, 갑자기…….”
슈리엘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에스테반의 품에서 흐드러졌다.
슈리엘의 이마에 기묘한 문양이 생겨났다.
“이, 이건……!”
“성녀 예하의 축복이 닿은 곳 아니에요?”
“그럼 설마 성녀 예하께서……?”
“대체 축복을 빌미로 황태자 비전하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마치 짜 맞춰진 것처럼 사람들이 슈리엘을 감싸며 루아티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성녀 예하께서 갑자기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이유가 없잖아요.”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아까 식전에 성녀가 황태자 전하와 둘만 있는 걸 봤어요! 분위기가 심상잖던데.”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만 했다.
“저도 봤어요. 아주 바짝 붙어있더라고요.”
“설마 황태자비 자리가 탐이 나서 그런 거예요?”
“아닌 척하더니, 결국 귀족 사회 내에서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생기는 걸 보지 못하겠나 보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루루는 황태자 전하 엄청 싫어해요!”
카멜리아의 외침에 에스테반이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카멜리아가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그녀는 꿋꿋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루루가 얼마나 똑똑한데 이렇게 바로 범인으로 몰릴 짓을 저지르겠어요?”
“이렇게 티 낼 생각은 없었겠죠. 살짝 저주를 걸어서 시름시름 앓게 할 생각이었는데 감정이 들어가서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억지로 끼워 맞추는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다수의 귀족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살을 덧붙이고 있었다.
카멜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도 못할 정도였다고?’
그다지 머리 쓰는 취미가 없는 자신조차 알 수 있는건데…….
그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커다란 목소리가 소란을 일시에 잠재웠다.
“동부 자이렌스령에서 대형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수해라니요! 자이렌스령이라면 3대 강 중 하나인 아크란 강을 끼고 있는데, 그럼…….”
“지금 예상만 해도 수 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거라고 봅니다!”
연이은 불상사에 사람들이 크게 동요했다.
“대체 왜 자꾸 이런 일이……. 그것도 이 좋은 날에요.”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요? 자연재해야 사람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지만 너무 잦잖아요.”
“그런데, 재해가 이렇게 발생하기 시작한 시기가 참 묘하지 않아요?”
“성녀가 즉위한 다음부터였잖아요. 참 공교롭게도.”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정말 성녀 맞아요?”
“가짜가 성녀 행세를 해서 신께서 진노해서 이런 재해가 일어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진짜 성녀라면 황태자비에게 저주를 걸지도 않았겠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성녀 예하께서는 파사의 힘을 지니셨습니다! 저주를 건 사람이 성녀 예하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신관들이 무어라 항변했지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신전에선 가짜 성녀를 진짜 성녀로 추대한 적이 있지 않나요? 우리가 어떻게 믿죠?”
“파사의 힘을 직접 봤음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글쎄요. 또 무슨 음습한 술수를 벌였을지도 모르죠.”
“신전이 믿는 신도 가짜 신 같던데.”
“진짜 성녀라면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성녀님이 고귀하게 희생하지 않나요?”
“그러게요. 정말로 신의 선택을 받은 성녀 예하시라면 그 고귀한 한 몸을 희생해서 이 재앙을 멈출 수 있을 텐데.”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인류를 구원하고 수호하는 게 성녀님의 역할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거잖아요.”
날 선 시선이 루아티샤에게 꽂혔다.
슈리엘은 가련하게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저는…… 성녀 예하께서 저를 저주하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루아티샤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성녀 예하의 고결한 뜻을 믿습니다.”
한마디로 진짜 성녀라면 인류를 위해 희생해서 이 재앙을 멈추라는 말이었다.
만약 그럼에도 재앙이 멈춰지지 않는다면 감히 성녀 행세를 해 온 세상을 기만한 희대의 마녀로 역사서에 이름이 적힐 터였다.
리리엘처럼.
슈리엘이 짙게 미소 짓곤 루아티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맛보았던 지옥, 너도 맛봐야지.”
“…….”
“그래야 공평하잖아?”
슈리엘이 루아티샤를 꽉 끌어안았다. 다정하게, 애정이 담긴 것처럼.
“우린 가족이잖아.”
움찔.
‘가족’이라는 말에 루아티샤가 몸을 굳혔다.
슈리엘을 쿡쿡 웃으며 고개를 들어 루아티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때?’
이렇게 여론을 이용하고 항상 함정을 파서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건 항상 네가 했던 짓이잖아.
‘역으로 당해보는 기분이 어떨지 참 궁금하네.’
그런데.
‘……웃어?’
루아티샤는 웃고 있었다.
슈리엘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어딜 보는 거지?’
루아티샤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다. 빗겨 나간 채 뒤를一.
그때였다.
“그 재해라는 것. 진짜 신이 진노해서 일어나는 게 맞기나 한 건가?”
“……?!”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슈리엘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깔린 융단 위를 시드리한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으로 툭, 던졌다.
“저게 뭐지?”
“보석……? 보석은 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한 슈리엘의 얼굴은 하얗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