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0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02화(302/353)
☆ 제302화 ☆
* * *
피를 머금은 듯 붉디붉은 보석의 정중앙에는 기묘한 문양과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슈리엘은 긴장한 채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이게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거기다一.
‘분명 시드리한이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사람을 붙여서 감시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방법이 있었다.
나비를 통해 봤을 때 시드리한은 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화가 번질까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물며 저 보석一핵은 평범한 인간들은 절대 찾을 수 없었다.
몇 중이나 되는 결계로 은폐해서 눈에 보이지도, 핵의 힘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게 뭔지 너는 알겠지.”
지척까지 다가온 시드리한이 슈리엘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 루비 아닌가요?”
“재해가 일어난 곳마다 이게 묻혀 있더군. 그게 뭘 의미할까.”
슈리엘의 침묵에 루아티샤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재해를 일으켰다는 것을 뜻하겠지. 루비로 착각하는 건 너무 억지 아니야? 딱 봐도 마석 종류인데.”
비꼬는 말에 슈리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언젠가는 알아낼 줄 알았다. 다만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몰랐을 뿐.
‘그건 칭찬해주지.’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슈리엘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클라티에도, 리리엘도 이미 루아티샤에게 당해 재기 불능으로 떨어진 전적이 있었다.
‘설마하니 이번에도 안일하게 아무런 준비도 안 했을 리가 없잖아?’
핵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루아티샤나 파에라톤 공작 일가, 시드리한의 행적을 살펴봐도 불가능한 게 맞았다.
‘하지만 찾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항상 예상을 뛰어넘어 자신을 공격해왔으니까.
그래서 찾아내기 전에 오늘 루아티샤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트릴 생각이었지만一.
‘오히려 핵이 있어서 더 극적일 거 같네.’
슈리엘은 한순간에 표정을 바꿨다.
충격과 당혹감, 두려움으로 얼룩진 얼굴.
“세상에……! 그게 정말이에요?”
“흠, 술법에 사용된 핵이 맞습니다. 아직도 그 힘의 잔재가 남아있군요.”
황실 수석 마법사 베르텐 자작이 조심스럽게 핵을 확인하고 말했다.
그가 작은 마법진을 펼쳐 손을 뻗자 핵의 주변으로 작은 파동이 일었다.
챙?!
핵에서 방출되는 힘에 마법진이 깨어져 나갔다.
“꺅?!”
사람들이 기겁해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베르텐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시드리한 황자 전하께서 안정화를 아주 잘하셨군요. 다만 보셨다시피 아직도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잔재가 이 정도라면 필시 엄청난 규모의 술법에 사용되었을 겁니다. 재해라면 맞아떨어지는군요.
“그, 그럼 여태까지 일어났던 그 모든 재해가 사실은 누가 일부러 만들어낸 짓이라는 건가요? 끔찍해라……!”
슈리엘이 희게 질린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루아티샤가 한심하단 얼굴로 “쇼를 하네.” 하고 중얼거리는 게 보여서 짜증이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최후의 승자는 자신일 터.
그때 얼마든지 거 건방진 얼굴을 깔아뭉개줄 것이다.
슈리엘은 참혹한 진실을 마주한 사람처럼 가련하게 속눈썹을 떨었다.
“그렇다면一 역시 그게 사실 이겠군요. 제 오해이길 바랐는데…….”
“뭔가 짚이는 것이 있나?”
“그게…….”
“괜찮으니 말하도록.”
에스테반의 재촉에 슈리엘이 진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사실 저 핵에서 나오는 힘과 똑같은 힘을 본 적이 있어요.”
“뭐라고?”
에스테반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에게서 술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똑같은 힘이라니……?!”
“어디서 본 거죠? 재해를 일으킨 범인에 대한 단서 아니에요?”
“오해이길 바랐다는 걸 보니 비 전하께서는 범인도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슈리엘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사실, 이건 신전의 내부 고발로 인해서 알게 된 거예요.”
“신전? 그럼 신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가?”
“그럼…….”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성녀인 루아티샤는 신전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신전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가짜 신을 따르고 있고, 약해진 진짜 신을 죽일 생각이라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최근 그런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잖아요? 그래서 신관들의 신성력도 그렇게 약한 거라고.”
이미 사교도에 심취한 귀족들이 슈리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녀 예하께서 가짜 신을 내세우기 위해 사특한 짓을 꾸밀 리가 없잖아요.”
슈리엘은 호소력 짙은 눈동자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간 성녀 예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위해 애써오셨나요? 저는 그런 예하를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었는데. 그게 전부 거짓이라니……!”
차마 견딜 수 없다는 듯 무너진 슈리엘이 에스테반의 품에 안겼다.
가련하게 떨리는 신부의 등을 황태자가 조심스레 보듬어주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쩜……. 황제 폐하를 간호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셨을 텐데 저런 고민까지 하신다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셨을까.”
“그런데 정말 성녀 예하께서 그런 짓을 벌이셨을까요? 사실 재해 수습하느라 예하께서 고생하신 걸 지켜본 입장에선…….”
“그걸 노린 거죠. 자기가 재해 일으키고 자기가 수습하고. 그러면서 민심을 얻으려 했던 거예요.”
“세상에, 완전 짜고 친 포커잖아요?”
수군대던 사람들이 샐쭉한 눈초리로 루아티샤를 바라봤다.
그들은 루아티샤가 부정하거나 당황하거나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루아티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별 꼴값을 다 떠네’ 하는 표정으로 슈리엘을 바라볼 뿐.
“크흠, 공녀께선 뭐 하실 말씀 없나요?”
“말 같지도 않은 말에는 대꾸할 가치도 못 느껴서요.”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루아티샤를 보고 슈리엘이 눈물 젖은 눈으로 말했다.
“이제라도 인정하고 죄를 덜어내세요. 끝까지 부정하면 더 추해질 뿐이에요.”
“혹시 본인한테 하는 말이에요?”
“크레센티오 신관님께서 직접 제게 해주신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벗어나려고 하지 마세요.”
그 말에 사람들이 또 수군거렸다.
“내부 고발자가 크레센티오 신관님이셨어?”
“과연 부패한 신관들과 다르게 홀로 진짜 신을 따라서 그렇게 강력한 신성력을 지니고 계셨던 거구나.”
왜 크레센티오의 이름을 팔았는지 빤히 보여서 루아티샤는 피식 웃었다.
“그런 식으로 내부 고발자의 이름을 이야기해도 돼요? 보통 신변 보호를 위해 숨기지 않나?”
“공녀께서 크레센티오 신관님을 해하지 못하도록 제가 막을 거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도저히 못 참겠군. 누가 뭘 말해? 마족의 손을 잡는 한이 있어도 너의 그 더러운 손을 잡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말씀하셔야 하는 상황이 너무 슬프네요. 협박받으신 거겠죠.”
슈리엘이 눈짓하자 측근이 공손한 태도로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저건…… 신전의 성물 아니에요?”
“맞아요. 성녀 즉위식에서도 공녀가 들고 있었잖아요.”
슈리엘은 사람들이 잘 보도록 성물을 높게 들어 올렸다.
아프타네스의 성물.
크레센티오가 슈리엘에게 믿음을 사기 위해 건넸던 물건이었다.
‘이거라면 완벽하게 루아티샤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어.’
리리엘의 목소리에 클라티에게 킥킥 웃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눈으로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저 핵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열쇠라고 생각하고 신나서 가져왔을 텐데. 어쩌나?’
[열심히 찾아낸 나의 약점이 내가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의 숨통을 끊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지.]저 핵과 이 성물이 증거가 되어 루아티샤의 심장에 칼을 꽂을 때, 시드리한이 과연 어떻게 절망할지 궁금했다.
슈리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커다란 노성이 홀 안에 벼락처럼 울렸다.
모두 믿기지 않는 얼굴로 그 목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폐, 폐하!”
“폐하께서……!”
휠체어에 앉아있던 황제가 두 다리로 일어나 슈리엘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몸이 비쩍 마르고 뺨이 움푹 패였지만, 허리는 꼿꼿했으며 두 눈에서는 정광이 흘렀다.
“네년이 감히 짐을 해하고 겁박한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제국을 구한 성녀마저 해하려 해?”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떨리는 눈동자가 황제를 흝었다.
‘일어나긴커녕 눈조차 마음대로 깜빡일 수 없어야 하는데……!’
분명 아까 이 홀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러지 않았던가.
“지금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 거지?”
“황태자비 전하께서 폐하를 해하고 겁박했다고?”
사람들의 중얼거림이 귓가를 스쳤다.
슈리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상석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찍고 있었다.
‘어서 황제의 입을 막아야 해.’
슈리엘의 눈짓을 받은 광신도들이 서둘러 황제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스윽, 파에라톤 공작이 황제의 곁에 붙어 섰다.
공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파에라톤 공작과 공자들의 눈을 피해일을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들키는 순간 공격할 빌미를 주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
슈리엘은 하는 수 없이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폐하, 이렇게 건강을 되찾으시다니. 정말 기쁩니다.”
“하! 나를 해친 장본인이 잘도 그딴 말을 입에 담는구나.”
“저는 온 정성을 다해 폐하를 치료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폐하. 황태자비 전하께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폐하의 병환을一.”
“악화시켰지.”
루아티샤가 말을 툭 끊었다. 그녀의 손에는 에델의 풀이 들려 있었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 풀이 있는지는 몰랐어. 그러니 다들 아시카 약초라고 착각했지.”
‘……저걸 손에 넣었다고? 하지만 인간이 다룰 수는 없을 텐데?’
“아시카라고 착각했다는 건 전혀 다른 약초라는 말씀입니까?”
기자의 질문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정확히는 약초가 아니라 독초죠.”
“독초라니……!”
“그럼 황태자비 전하가 황제 폐하께 독초를 먹여 왔다는 거야?”
“그래서 폐하께서 그런 말씀을…….”
“이거 혹시 토렌시아에서 제국을 집어삼키려고 꾸민 음모 아니에요?”
“하, 하지만 음독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독이 아니니까요.”
루아티샤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독은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그 어떤 독보다 훨씬 치명적인 힘.”
“설마…… 사기?”
“빙고.”
루아티샤가 생긋 웃었다.
“……!”
“사, 사기라니!”
“하지만 딱히 사기가 느껴지지 않는걸요.”
사기의 힘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벌레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느낌을 주는데 어떻게 모를 리 있겠는가.
예전에 리리엘에게서 사기가 뿜어져 나올 때도 다 느끼지 않았던가.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에 내재되어 있으면 못 느끼죠. 거기다 한 번 정제 과정을 거치면 더 알아채기 힘들어요. 다른 힘처럼 느껴지니까.”
에델의 풀을 물약처럼 만드는 과정이 곧 정제 과정이었던 것이다.
“지금 궁지에 몰리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어내는군요! 그런 풀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루아티샤는 자신을 노려보며 바락바락거리는 슈리엘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한 번 시약을 만들어 볼까요? 그리고 진짜 아시카 약초라면 몸에 나쁠 게 없잖아요.”
‘설마 에델의 풀을 다루는 방 법까지 알고 있다고?’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루아티샤가 아프타네스의 대리자여도 그렇지, 인과 때문에 아프타네스는 제대로 답을 알려줄 수도 없을 텐데……!
“저 반응을 보니 진짜인가 본 데요?”
군중 속에서 들린 목소리에 슈리엘이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아까 폐하께서 일어나셨을 때도 못 볼 걸 본 것 같은 표정이었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황태자 비 전하께서는 폐하를 구하셨다고요!”
“하지만 폐하께서 아니라고 하시는걸요.”
“그건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
사이비 교도들이 언성을 높였지만, 이 자리에는 너무나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사교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했다.
“이건 모함이에요! 폐하의 곁에 있는 파에라톤 공작이 보이지 않나요? 지금 폐하께서는 파에라톤 공작에게 협박을 당하고 계신 거예요!”
슈리엘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바뀌고 있었다.
“솔직히 토렌시아에서 제국을 좌우하려는 목적으로 폐하를 해하고 에스테반 황태자에게 접근했다는 게 더 일리 있는 거 같아요.”
“아까 성녀 예하를 생각한 척 눈물 흘리는데 가증스럽더라고요. 예전에 사교계에서 예하께 시비 걸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에게 꽂히는 비난의 눈초리에 슈리엘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그때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비난했었다.
‘그건 전부一 루아티샤 때문에!’
자신을 노려보는 슈리엘을 보며 루아티샤가 피식 웃었다.
‘벌써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는데.’
아직 남았거든.
‘대체 내가 왜 가만히 네가 하는 꼴을 지켜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 클라티에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그 무덤 안에 추라티에와 리리엘을 곱게 처넣어주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