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0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09화(309/353)
☆ 제309화 ☆
‘프라이버시가 없어!’
집에 있어도 고통, 밖에 나가도 고통이었다.
수르아의 모습으로 변장한 채 시침을 뚝 떼도 이 거머리 같은 천족, 마족, 영수들은 찰싹 달라붙었다.
그럼 사람들까지 ‘대체 누구길래 천사들이랑 악마들이랑 영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 하고 내 주변에 기웃대고…….
‘수르아의 얼굴까지 팔리는 줄 알았다고!’
로브를 뒤집어쓴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이 상황.
“집에 안 가세요?”
“모처럼 영역 밖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시간을 아이와 보내고 싶구나.”
“제약을 걱정해주는 건가? 이 얼마나 선량하고 어진 기상이란 말인가. 하긴, 그렇기에 저 추잡한 마족 놈들까지 품는 것이겠지.”
“흐응, 결벽증 샌님들이 주제도 모르고 또 설치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네 덕분에 우리에게 걸린 인과율이 사라진 상태라 이곳에 있는 게 전혀 힘들지 않으니.”
“그래요?”
좀 힘들었으면 좋겠는데.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집에 좀 가라는 뜻이야.
눈치 챙겨.
나는 뚱하게 입을 내밀었다.
“후후, 그냥 아예 여기서 살림 차릴까?”
섹시한 마족 언니가 내 뺨을 스윽 훑으며 윙크를 했다.
“카인 혼자 이 좋은 걸 독점 하고. 앞으로는 내가 여기 있을래. 내가 카인보다 훨씬 더 잘하거든.”
그러면서 입술을 혀로 날름 훑는데.
‘살려주세요…….’
왠지 소름이 쫙 끼쳤다.
그때였다.
“와, 진짜. 한눈을 못 팔겠네. 가뜩이나 조질 게 많은데. 너네 동생이 아니라 내 동생이거든?!”
“내 동생한테서 좀 떨어지시지?”
“비켜.”
오빠들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살았다!’
“어우, 저 귀찮은 것들 또 왔어!”
“나의 인간과 은밀한 이야기 좀 나눠보려고 했더니!”
귀찮은 건 우리 오빠들이 아니라 너희들이야!
“아잇, 정마알!”
마기를 요리조리 피하던 마족이 결국 날개를 쫙 펼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왜 우리 집은 쓸데없이 넓고 층고까지 높은 걸까.’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방 안에서 공중묘기를 선보이며 마기를 피해 다녀서 더 정신없어졌다.
그렇게 난장판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지금 남의 집에서 뭐 하는 짓거린가! 너희는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건가?”
할아버지의 근엄한 호통에 천족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태어난 아해가 감히 누구에게 훈수냐.”
“잠깐. 저 사람, 인간 나이로 노인이야.”
“노인? 노인이라고?”
웅성웅성거리던 천족들이 곱게 물러났다.
“……노인은 공경해야지.”
“노인의 말은 들어야 해. 어쩔 수 없지.”
‘…….’
천족들은 참 뭐라고 해야 하나.
깐깐하고 보수적이고 질서를 잘 지키는데一.
‘허당이야.’
할아버지의 뒤로 아빠가 나타났다.
아빠가 눈을 번뜩이자 공중제비를 하던 마족들이 얌전히 내려왔다.
“흠,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 보도록 하지.”
“하는 수 없지. 가족들이랑 싸우면 나의 사랑이 진심으로 싫어할 테니까.”
아빠의 어깨 위에 니케까지 등장하자, 영수들이 스윽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천족들은 아쉬운 눈초리로 나를 보더니 “내일 다시 찾아오마. 아직 인과율의 제약이 적용되지 않았으니.” 하며 손등에 키스를 했다.
천사들이 눈부신 순백의 날개를 일제히 펼쳐 날아가는 광경은 기적과도 같았다.
음.
지금 깨달았는데.
‘천족들 날개에서 깃털 엄청 빠진다.’
조류 알러지 있는 사람은 천사들이랑 가까이 지내지도 못하겠어.
그때, 창을 타고 무언가가 휙휙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털뭉치?’
정원을 바라보자 니케의 눈초리에 밖으로 나간 영수들이 다시 본체화하고 있었다.
퐁퐁, 하고 변하는 영수들의 주변에 털이 뭉쳐서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렸다.
봄날에 쏟아지는 송진 가루도 이보다는 낫겠다.
엉망이 된 정원을 바라보다 나는 한마디 했다.
“창문 닫자.”
치대면서 귀찮게 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천족들과 영수들에게선 현실적인 문제가 가득했다.
‘판타지스럽게 저런 건 좀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구!’
적어도 로판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장면에는 깃털 날림과 털 날림 따윈 없었다.
‘내 판타지를 돌려줘!’
* * *
“아우, 진짜 피곤해 죽는 줄 알았네.”
나는 가족들과 식사를 마치고 니케를 달랑 안은 채 내 방으로 돌아왔다.
기지개를 쭈욱 펴니 온몸이 삐걱거렸다.
“진짜 마족이고 천족이고 영수고 하나 같이 왜 저렇게 난리인 거람.”
“그야 당연하지 않겠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소파를 바라보았다.
카인이 나른하고 퇴폐적인 자세로 내 소파 위에 누워있었다.
참고로 내 소파는 커다란 가리비 모양이었다. (내가 자라며 아빠가 가리비 모양의 커다란 소파를 새로 사주셨다.)
‘멀쩡한 다른 소파도 있는데 왜 하필 저기에서 저러고 있담?’
나는 질색한 눈으로 인어 왕자마냥 조개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카인을 쳐다보았다.
“……시각 공격이라는 게 바로 이걸 말하는 건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크레센티오가 의자一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화려하고 커다랗고 고풍스러운 의자였다.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셨다一에 앉은 채 미간을 꾹 누르고 있었다.
“흥, 나의 매력에 질투하는군. 천족들은 언제나 그렇지.”
“나는 천박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다 좋은데 왜 둘은 자연스럽게 내 방에 있는 건데?
어이가 없었다.
“당연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키야스에델의 죄업으로 인해 천계, 영수계, 마계 할 것 없이 다들 수천 년을 고통받았다.”
“그 굴레를 끊어준 이에게 호의를 품는 것은 당연하달까?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간이기도 하고.”
“친숙? 자기들 일에 바빠 계승자를 제대로 신경 쓰지도 않았던 마족 주제에 잘도 말하는군.”
크레센티오가 신랄하게 말하더니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천족은 입바른 말만 하는 마족들이나 자기 외의 종족을 배척하는 영수들과 다르다. 우리는 언제나 너를 기다리며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음, 천계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내가 본 알림은 그랬다. 그 알림이 천족들의 반응 일부를 편향해서 알려준 거 같긴 하지만.
크레센티오는 당혹스러운 듯 얼굴을 굳혔다.
“그건一.”
“천족들은 원래 쫌생이들이야.
아무것도 안 해도 자기 혼자 잘 삐진다니까?”
음.
천족들이 혼자서 잘 삐진다는 거에는 동의를 하지만.
‘솔직히 크레센티오가 카인한테 삐지는 건 대부분이 카인이 먼저 놀려서잖아.’
카인은 능글능글거리는 말투로 크레센티오의 신경을 긁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 그게 네 녀석이 할 소리인가?”
“아아, 이거 미안하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멋짐이 널 자극했나 봐.”
“상대할 가치도 없군.”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박수를 짝, 쳤다.
“뭐, 그래도 이번엔 둘이 협력해서 잘됐잖아.”
천족들이 형성한 결계가 안전지대를 만들고 마족들이 사기를 제어하고 마물과 괴물들을 몰아냈다.
공격과 방어의 합이 좋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정말 피해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을 거야.”
“…….”
“…….”
인정하기 싫은지 둘은 입을 고집스럽게 꾹 다물었다.
“거기다 슈리엘의 정체를 밝혀낸 것도 두 사람의 합작이잖아?”
사실, 황태자 성혼식날 만인의 앞에서 슈리엘의 정체를 폭로 한 건 전적으로 크레센티오 덕분이었다.
내가 클라티에의 손에서 크레센티오를 구출했던 날.
그가 말했다.
“슈리엘에게 아프타네스의 성물을 주었다. 그걸 이용해서 네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뒷공작을 할 셈인가 보군.”
그 말에 대번에 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천족들은 도움이 안 된다니까. 가만히 있기나 하지. 괜히 나서서 위험에 처하기나 하고 성물까지 뺏기고. 슈리엘이 루아티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본 거야?”
“이래서 멍청한 마족과는 상종도 못 하겠군.”
크레센티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내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성물을 넘겼을 거라고 생각하나? 애초에 내가 왜 제약까지 감수해가며 인계까지 온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아프타네스가 천족에게 부여한 신성한 샘.
그 샘의 힘은 맑은 샘물처럼 모든 것의 진실을 비춘다.
크레센티오는 성물에 그가 천계에서 가져온 천계의 신성한 샘물을 그대로 담았다.
“아프타네스의 성물은 모든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니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슈리엘 역시 자신이 사용하는 힘一정제된 사기一을 담을 수 있다는 거다.
아무래도 성물에 자신의 힘을 담은 후, 성물의 주인인 내게 덤터기를 씌울 생각인 듯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슈리엘이 아니라 내가 그 힘의 주인처럼 비칠 테니까.
“슈리엘이 성물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밀어 넣는 순간 샘물의 힘이 터져 나올 거다.”
“그럼 그 샘물은一.”
“슈리엘의 진짜 모습을 비추겠지.”
“……!”
솔직히 놀랐다.
사실 크레센티오가 나타나서 한 일이라곤…….
1. 내게 까칠하게 굴기.
2. 잘생긴 외모+뛰어난 신성력으로 신도들 늘리기.
이 두 가지였으니까.
내심으로는 천사들이 젤 별 볼 일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계획을 세웠을 줄이야.
감탄하는 나를 보고 크레센티오가 은근슬쩍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 잠깐!”
카인이 기가 막힌 얼굴로 외쳤다.
“슈리엘이 그 안에 담긴 천족의 힘을 몰라봤을 리 없어. 분명 그걸 숨기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을 텐데…….”
“흠, 내게 감사해도 좋다. 부족한 마족의 몸으로 이 원대한 계획에 먼지만큼이나마 일조하게 되었으니.”
“나, 나는 네 녀석한테 내 사기를 넘겨준 적이 없는데?!”
“머리카락에도 힘은 깃들어있지.”
“이 자식이……! 내 머리카락 뜯은 게 그거 때문이었냐!”
그 후로 아주 난리가 났다.
카인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합작? 하압자악?!”
나를 바라보는 눈이 벌겠다.
“시비 걸려서 머리카락 쥐어뜯긴 것도 억울한데! 뜯어간 머리카락을 저렇게 사용한 걸 합작이라고 부르나?”
“흥, 그런 이유가 아니면 내가 왜 마족 따위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겠나. 몸싸움은 천박한 행 위다.”
크레센티오는 그렇게 말했지만 묘하게 고소해 보이는 미소가一.
‘카인 머리카락 쥐어뜯으면서 제대로 희열을 느꼈나 보네.’
흠.
나는 크레센티오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다.
어쨌든 크레센티오의 암약 덕분에 계획을 세우기 쉬워졌다.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건 곧 재앙을 인위적으로 일으킨 증거가 있다는 뜻이야. 그 증거와 성물을 연관시키려는 거지.”
“내가 그 증거를 찾을게.”
“시드.”
“에체시스 용병단은 에스테반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움직이기 쉬워.”
단호한 시드의 눈을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시드와 에체시스 용병단원들을 믿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내 믿음에 제대로 답해주었다.
‘만약 하나라도 어그러졌다면 그대로 내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게 되었겠지.’
그러면 더 큰 참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재앙의 배후가 되면 사이비가 아니었던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정체가 드러난 슈리엘이 그런 난장을 피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끝이 났다.
“이리 와. 이번에는 그 잘난 머리카락을 내가 쥐어 뜯어줄 테니.”
“대의를 위해서였다. 다 끝난 일에 사감을 섞다니 역시 마족은 어쩔 수 없군.”
나는 아웅다웅하는 마족과 천족을 바라보다가 결국 미소 지었다.
“둘 다 고마워.”
내 말에 둘이 싸움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둘이 아니었으면 더 힘든 싸움이 되었을 거야. 정말로 고마워.”
카인과 크레센티오는 한참 동안 가만히 미소 짓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게 도움이 되기 위해 준비해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에 딱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크레센티오가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조금은 차갑게까지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의 눈 밑은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솔직하지 못하긴.’
“뭐, 이 몸께서 좀 많이 도움이 되긴 했지?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을 거야. 오죽하면 머리카락마저 도움이 되었겠어!”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카인이 은근슬쩍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오늘 밤, 마족의 진가를 네게 가르쳐一.”
퍼억!
그리고 니케의 앞발 후려치기에 날아갔다.
“흥! 파파가 감시 잘하랬어!”
콧김을 거칠게 내뿜는 니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일.
내일이 바로 클라티에의 공개 재판이었다.
* * *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영상석이 아니라 직접 보았다네!”
“나도 마찬가지야. 하, 진짜 장난 아녔지. 하늘에서 빛이 비치며 성녀 예하께서 환수와 함께 등장하시는데……!”
“천사들이 강림하는 건 보았나? 내 살아생전 천사들을 보게 될 줄이야!”
“성녀님의 부름에 응답해서 온 거라던데?!”
“나는 처음에 검은 날개를 지닌 악마들이 나왔을 때는 이제 다 끝났구나 싶었다니까?”
“그런데 악마가 왜 우리를 구해준 거지?”
“나도 잘 모르지만 신문에서는 성녀님이 악마들마저 굴복시켰다던데?”
“하긴, 괴물들 후려 패는 걸 보니 그럴 만도 했어.”
“그럼 그 많은 영수들까지 두목 성녀님의 부름을 받고 온 건가?”
“역시 우리 두목 성녀님……!”
“세계 최강의 깡패一 아니, 성녀님!”
신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모습에 사람들은 흥분한 채 떠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악랄한 것만 아니었어도!”
클라티에.
오늘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