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1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11화(311/353)
☆ 제311화 ☆
“……다른 이야기라니?”
“클라티에를 황궁으로 끌어들이고 도와준 사람은 다름 아닌 황태자 전하시죠.”
“…….”
“클라티에가 사교 활동을 할때도 누구보다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주셨고요.”
“나 역시 그 책임을 통감하는 바다.”
에스테반이 침중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그 악독하고 간악한 역적에게 속다니…….”
“속으셨다고요?”
“그래.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황태자로서 이에 대한 책임은 내가 달게 질 것이다.”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책임을 지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황태자로서’라고 운운하는 의도가 뻔했다.
내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요? 그럼 황태자 전하께서는 속았을 뿐, 슈리엘 공주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르셨다는 거네요.”
“그래. 성혼식날 그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충격적이다 못해 비참한 기분이지만, 사감은 접어두어야겠지. 내게는 책무가 있으니까.”
에스테반이 미간 찌푸렸다.
‘와……. 저 표정 따로 연습했나?’
나는 감탄했다.
그럴 만큼 저 우수와 회한에 잠긴 표정은 진심 같았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
“그럼 그날 황태자 전하께서는 대체 뭘 하셨죠?”
이미 대중들의 마음은 시드리한에게로 완전히 기운 뒤였으니까.
원래도 사람들은 에스테반보다 시드리한에게 더 호감을 내비쳤었다.
‘그럴 만도 하지.’
뼈 빠지게 일해 세금 내며 사는데, 내 세금을 좋게 잘 써줄 황제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시드리한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으면서도 완전히 박힌 돌이었던 에스테반의 입지를 단번에 뒤흔들 정도의 능력자였다.
이권 다툼에 예민한 귀족들마저 그 능력을 인정할 정도였는데, 권력과 관계없는 사람들 눈에는 어떻겠는가.
‘그리고 우리 시드가 훨씬 더 잘생겼고.’
힐끔 시드의 얼굴을 훔쳐보는데 바로 눈이 마주쳤다.
그가 미소를 지어와서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괜히 뺨이 뜨거워졌다.
‘흠흠.’
어쨌든 기존에도 사람들은 은근히 시드리한을 더 지지했는데, 성혼식날의 참극이 있고 나서는 완전히 시드리한에게로 무게가 쏠렸다.
그런 상황에서 별 도움도 안되었던 에스테반이 아련하고 애틋한 분위기를 잡으며 책임을 통감한다, 어쩌고 하고 있으니…….
‘여기가 지구였으면 악플 세례받았다.’
자기가 연관된 위기 상황에서 국민 따윈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간 정치인이 위기 다 수습되고 난 뒤에야 얼굴 들이밀며 저런 쇼 하면 나라도 빡치지.
“뭘…… 했냐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에스테반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했다.
대중들이 이런 식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확실히 평민이 감히 황태자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건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지.’
사람들은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일을 겪었다.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거기다 방금 있었던 클라티에 처형식의 흥분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클라티에를 비난하던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해주셨어요!”
“시드리한 전하가 없으셨다면 나는 이 자리에 나오지도 못하고 이미 죽었을 겁니다!”
사람들의 뇌리에는 그날 시드리한의 모습이 영상석처럼 박혀 있었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걸출하고 늠름하고 위엄있는 모습.
그에 반해 에스테반은 어디로 꽁지 말고 도망갔는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황태자 전하께서 클라티에를 데려오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책임을 통감한다면 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세요!”
“우리는 시드리한 전하를 지지합니다!”
“시드리한 전하께서 온몸을 바쳐 우리를 구해주시는 동안 대체 황태자라는 분은 뭘 하셨죠?”
에스테반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여기서 기사들에게 방금 발언한 자들을 잡아들이라고 명하면 안 된다는 이성은 있었다.
그는 애써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이는 곳에서 생색내며 나서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날 제국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중요한一.”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들과 마물들을 처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요?”
“그 중요한 일이 대체 뭐였죠?”
사람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에스테반이 울컥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말을 빙빙 돌려서는 절대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황제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주시 중이었다.
에스테반의 턱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때.
“그에 대한 답은 제가 할 수 있겠군요.”
목소리에서부터 꼿꼿함이 느껴졌다.
차임베르크 공이 노구를 일으켜 앞으로 나섰다.
에스테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려서부터 그의 검술 선생이었던 동남부의 지배자는 언제나 에스테반의 든든한 방어벽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황태자인 자신이 곧 제국의 미래라며 자신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차, 차임베르크 공?!”
에스테반이 당황한 목소리로 차임베르크 공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그 발언의 여파는 걷잡을 수 없었다.
“뭐? 혼자서만 안전한 곳으로 도망갔다고?!”
“아니, 황제 폐하께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건만!”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가장 위험한 곳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지키셨잖아요!”
“다른 사람보다 본인이 제일 책임져야 하잖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속았다는 에스테반 황태자의 말은 거짓입니다!”
소란 위로 차임베르크 공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번 고발이 불러온 파장은 아까보다 더 거셌다.
“뭐……라고?”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황태자 전하!”
“황태자 전하께서 그 괴물들의 침략에 가담한 것입니까?!”
귀족들이 들불같이 들고 일어나 에스테반을 비난했다.
에스테반은 거기에 대답하지 못한 채 믿기지 않는 눈으로 차임베르크 공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저런 눈치로 어떻게 황제가 되겠다고.’
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차임베르크 공이 에스테반의 검술 선생이 된 시기는 참으로 공교로웠다.
황후가 인장을 사사로이 사용한 죄로 금족령을 명 받아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때였으니까.
‘뮤리엘까지 황후를 손절해서 연락조차 닿지도 않았을 정도니.’
아마 에스테반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심각한 위기였겠지.
그런데 황제는 갑자기 에스테반에게 차임베르크 공을 검술 선생으로 붙여준다.
차임베르크 공은 노회한 소드 마스터로, 제국의 동부 국경을 지키는 자였다.
그리고 동남부의 젖과 꿀이 흐르는 드넓은 초원을 보유한 대부호!
제도에 잘 올라오지 않고 중앙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그를 황제가 직접 불러들이는 것은 의미가 컸다.
‘그럴 때 생각을 해봤어야지. 왜 황제가 차임베르크 공을 에스테반에게 붙여주었을까.’
애초에 당시 황제는 황후의 세력을 낮추기 위해 에스테반을 홀대하는 중이었고, 대놓고 시드를 지지하며 밀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탠스를 바꿔 에스테반의 기반을 단단히 해 주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그렇게 넝쿨째 행운이 굴러 들어오면 의심하는 게 보통 아닌가?’
하지만 황제가 그래도 성장 과정을 모조리 지켜본 아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고 넘어갔다.
‘바보 같아.’
황제는 아비이기 전에 황제였다. 그것도 지극히 계산적인 황제.
황후가 벌였던 일로 황제는 에스테반에게 자신의 눈을 붙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더불어 황후와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으면 더더욱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차임베르크 공을 불러들인 거지.’
중앙 정치와 담을 쌓은 데다가 신의와 실력을 겸비한 자.
무엇보다 에스테반이 황후의 품에서 나와 더 의지할 만한 지위를 갖춘 존재.
‘그리고 황후가 시드에게 금제를 건데다가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걸 알고 나서는 아예 나와 차임베르크 공을 연결해주었지.’
정확히는 내가 황제에게 시드의 과거에 대해 따졌던 날, 황제에게 요구한 것 중 하나였다.
“……무얼 원하는 거지?”
“제가 이 일을 터트리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드릴게요.”
“…….”
“폐하께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어차피 황비 전하를 막으실 수 없다면, 조금 더 터트리기 쉬운 판을 짜는 게 폐하께도 이득일 테니까. 국정 혼란, 최소화시켜드리겠다는 거잖아요?”
가만히 있으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차임베르크 공을 무슨 의도로 붙였는지 아니까 나와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그때부터 차임베르크 공은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무기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약점을 단번에 폭로할 무기.
“차임베르크 공!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내가 언제 그런一. 부황 폐하, 이건 뭐 함입니다!”
에스테반이 희게 질린 얼굴로 부정했다.
“글쎄. 과연 모함일까.”
시드리한이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이며 물었다.
“너……! 네가 차임베르크 공까지 매수한 거지!”
에스테반이 벌게진 눈으로 시드에게 달려들었다.
시드는 그를 가지고 놀 듯 여유롭게 피하곤 황제에게 입을 열었다.
“폐하, 현명하신 판단을. 제가 아는 에스테반의 죄만 해도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라……. 말해 보거라. 네가 아는 가장 심각한 죄부터.”
“에스테반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권위와 신분을 이용해서 상대가 싫어하며 완강히 거부하는데도 곁을 맴돌며 집적거렸습니다.”
……응?
“또한 상대가 예의 있게 행동했을 뿐임에도 그걸 자신의 편의대로 확대해석하여 자신의 언어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에스테반이 나한테 한 짓 이야기 같은데……?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교계에서 영애들이 난감해하는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국에 만연한 범죄지만 어느 누구도 그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제국의 황태자가 가장 앞장서서 그런 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요. 저는 자신의 권위나 신분을 이용하거나 상대가 예의 차리는 것을 역이용해 스토킹하는 범죄는 이제 엄격히 단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거 말고 네가 당했던 부당한 대우를 말해야지! 그게 훨씬 심각하잖아!’
하지만 정작 시드는 가장 중 차대한 문제를 말한 것처럼 개운한 얼굴이었다.
“뭐, 그래도 왕재(王才)라는 건가. 틀린 말을 하지는 않는군.”
“확실히 에스테반과는 비교가 안 돼. 물론 내 손녀의 짝으로는 한참! 부족하지만.”
아빠와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듣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그런데.
“맞아요! 진짜 저런 경우 스트레스 엄청나요! 밖에 나가기도 싫어지고……. 사소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요!”
“감히 우리 두목님을 스토킹해?!”
“두목님이 사교계에 잘 나오지 않으셨던 것도 전부 황태자 때문이었나?!”
“그러고 보니 성혼식날에도 두목님 보고 황태자한테 집적거린다고 뭐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 반대였다니!”
“감히 우리 두목님께……!”
광장에 몰린 사람들이 잔뜩 성난 얼굴로 발을 굴렀다.
‘어……. 이걸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근데 왜 사람들이 나를 두목님이라고 부르는 걸까?
어디서부터 뭘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
“루아티샤, 이 문제에 관해 할 말 없느냐.”
황제의 물음에 나는 헛기침하며 앞으로 나섰다.
“크흠, 물론 제가 받은 스트레스는 상당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큰 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죄?”
“예, 황제 폐하께서 와병 중이실 때 시드를 궁에 가둔 채 감시하고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혈안이었습니다.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이 부당하게 일어난 일이었고, 당시 에스테반 황태자가 휘두르던 권력에 다들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폐하가 병중임을 이용한 월권입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을 시작한 에스테반 황태자의 소행에 폐하의 병과 그가 관계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여기, 차임베르크 공께서는 확실하게 관여되었다고 말씀해주셨고요.”
차분하게 쭉 말하는데 어째서인지 황제의 표정이 이상했다.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것이一.
“하하!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시드리한은 공녀에게 지은 죄가 가장 크다고 하고, 공녀는 시드리한에게 지은 죄가 가장 크다고 하니…….”
황제의 말에 사람들이 잇몸을 보이며 미소 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진짜로 심각한 죄라고 생각해서 말한 거라구!
“으흥흥!”
뭐야, 그 웃음!
진짜인데!
진짜인데!
* * *
에스테반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웃어……?’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농담과 웃음이 나오는가?
주변 상황은 그를 빼고 흘러가는 듯했다.
자신은 없는 사람처럼,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을 중심으로.
루아티샤가 발갛게 얼굴 붉힌 채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울컥 무언가가 치솟았다.
‘시드리한만 없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