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1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13화(313/353)
☆ 제313화 ☆
“뭐……?”
에스테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도…… 안돼.”
황가의 피를 짙게 타고난 존재를 죽이면 저주받는다는 건 절대 진리 아니던가.
인간을 넘어선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던 클라티에조차 그게 두려워 황제를 아예 죽이진 못했다.
에스테반은 어쨌든 황가의 피를 짙게 타고났다.
‘저건 허세야.’
에스테반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허세여야만 했다.
하지만一.
‘어째서……?’
시드리한의 몸에는 그 어떤 저주의 증표도 나타나지 않았다.
멀쩡하다 못해 오만하리만치 깨끗한 얼굴.
피부가 썩는다거나 팔다리가 뒤틀리지도, 하다못해 각혈하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자신의 몸은 썩은 부분이 점점 바스라지고 있었다.
“왜……?”
버석 마른 입술을 타고 쥐어 짜낸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이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는데, 시드리한은 자신의 목숨을 건 저주마저 피해갔다.
왜 저놈은 항상 모든 것을 쉽게 갖는 거지?
왜 세상은 저 녀석 편만 드는 거야?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천지에 메아리쳤다.
“시드리한 전하 만세!”
“역시 시드리한 전하! 저주마저 이겨내셨다!”
“저주를 이겨낸 사랑!”
먹먹하게 들리는 환호 속에서 에스테반은 피눈물을 흘렸다.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몸을 살피며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루아티샤는 반대로 시드리한의 몸을 걱정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그런 서로를 자각하곤 웃는다.
다정하게 웃고 있는 두 연인.
에스테반은 웃는 루아티샤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마비된 팔다리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손 하나 까딱할 수도 없는 상태.
“루…….”
쇠에 긁힌 것 같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에스테반은 마지막 순간까지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 * *
“일부러지?”
루아티샤의 질문에 광장에 설치된 단상에서 내려오던 시드리한이 그녀를 돌아봤다.
“아빠랑 오빠들의 공격이 에스테반의 사인(死因)이 되지 못하도록 빠르게 중독시킨 거잖아.”
시드리한은 가만히 루아티샤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을 꾹 잡았다.
“가족들이 아프면 네가 슬퍼할 테니까.”
루아티샤의 눈동자가 크게 부풀더니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고마워.”
자그마한 목소리에 담긴 감정에 시드리한은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루아티샤는 형제를 죽이게 만들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럴 필요 없는데.’
에스테반을 형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음험한 눈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는 것을 볼 때면 언제나 그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루아티샤가 굳이 형제를 운운하지 않은 마음 역시 알 것 같아서, 시드리한은 말을 삼키고 미소 지었다.
‘하여간 루루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시드같이 배려심 깊고 착한 사람은 본 적 없어.”
생각과 동시에 튀어나온 루아티샤의 말에 시드리한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시드리한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왔다.
“착해……?”
“저 녀석이?”
비딱한 음성.
루아티샤의 뒤를 따라 내려온 익시온과 제온이 차가운 눈으로 시드리한을 노려봤다.
“순진한 내 동생을 꼬드기지 마.”
뒤이어 생긋, 어두운 웃음을 짓는 아레스까지.
루아티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들 그래. 시드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다들 저주에 걸렸을걸.”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손을 꽉 맞잡았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나랑 우리 가족들을 생각해주다니. 그 게 배려심 깊고 착한 게 아니면 뭔데?”
“그건一.”
“오빠들 전부 시드에게 빚을 진 거야. 시드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구.”
제온과 아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루아티샤의 말은 사실이긴 했다.
시드리한의 의도는 다소 불순할지 몰라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덕분에 황가의 저주를 피해 갔으니까.
‘여기서 괜히 뻗댔다간 내 동생의 미움을 받겠지.’
‘……쓰다듬어 달라고 하면 한숨 쉴까?’
하지만 익시온은 달랐다.
“저주 따위가 뭐라고. 난 그딴 거 걸려도 이겨낼 수 있는데.”
툴툴거리는 익시온을 보고 루아티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파에라톤 공작가의 특성상 보통 사람들보다 저주에 대한 내성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황가의 저주는 다른 저주와 달라. 쉽게 끊어내지 못해.”
“흐응, 난 솜뭉치한테 간호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一 아야!”
따콩!
까치발을 든 루아티샤가 익시온에게 꿀밤을 먹였다.
“아프잖아!”
인상을 쓰며 소리친 익시온이 멈칫했다.
루아티샤가 입술을 꾹 깨문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익시온은 그제야 제 실수를 깨달았다.
만약 루아티샤가 아파도 좋다고, 저주받아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했으면 기분이 어땠을까.
“……잘못했어.”
“…….”
“미안해. 다시는 그런 소리 안 할게.”
익시온이 루아티샤를 향해 손을 뻗는데一.
스윽.
루아티샤가 몸을 물려 그 손길을 피했다.
“루아티샤……?”
충격받은 익시온의 얼굴을 보고 루아티샤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말 한 벌이야.”
“너무해!”
발을 동동 굴리며 소리치는 익시온의 시야에 시드리한이 들어왔다.
시드리한은 익시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저게……!’
익시온이 뭐라 하려는 순간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어깨를 감쌌다.
“나는 괜찮아. 딱히 인정받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니까.”
“시드…….”
루아티샤가 ‘어쩜 세상에 이런 천사가 다 있지?’ 하는 얼굴로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익시온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뭐라고 해봤자 화풀이하는 걸로밖에 안 보일 테니.
“여우.”
“그것도 꼬리가 아홉 개는 달렸네.”
양옆에서 중얼거리는 제온과 아레스의 말을 들으며 익시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짜증 나!”
파에라톤 공작은 꿍얼거리는 아들들을 무시한 채 딸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루루.”
머리를 꾹 누르는 기분 좋은 무게감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아빠.”
“이제 좀 쉬거라.”
나직한 한마디에 루아티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쉬지 못했지.’
루아티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상 너머로 끝없이 이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 감정이 뒤얽힌 얼굴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감정은 ‘끝났다’라는 기쁨이었다.
주모자들을 낱낱이 밝혀 처벌했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쁨.
그 모습을 보자 루아티샤 역시 새삼 실감이 들었다.
‘……아직 수습해야 하는 일들은 많지만.’
아쉽게도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이 모든 일은 현실이었다.
클라티에와 키야스에델이 벌인 여러 재해부터 시작해서 성혼식날의 침공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병동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인 데다가 신전 역시 병자들로 바빴다.
‘그나마 천족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천족들은 놀라운 힘을 발휘해 사람들을 치유했다.
‘약간 성격은 이상한 것 같지만.’
치유하고 보호하는 걸 보면 보통 생각하는 천사들이 맞긴 한데, 영…….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아가 많이 생겼다.
왜 어른들의 사망률이 아이들보다 훨씬 많을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만은 살리고 싶었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행정이지.’
그리고 루아티샤는 성녀로서 이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었다.
‘……어째 성녀가 되고 다른 활동보다 행정업무를 더 많이 본 느낌이지만.’
로판 성녀 언니들처럼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들을 치유하는 건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뭐, 그래도.’
루아티샤는 파에라톤 공작을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상태를 살펴주는 아빠가 있어서 힘든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힘내고요.”
* * *
황궁의 베르타인 홀.
수십 년 만에 개방된 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바로 키야스에델의 침략을 막아낸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나는 샴페인 잔을 들고 구석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는 풍채 좋은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고마워요, 차임베르크 공.”
내 말에 차임베르크 공이 힐끗 나를 바라보았다.
“단지 제국의 안녕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차임베르크 공 같은 사람이 첩자 노릇이라니.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몇 번 에스테반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긴 했지.”
차임베르크 공의 말에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가 이런 농을 던지다니?
내 시선에 차임베르크 공이 피식 웃었다.
“괴물들이 날뛰었던 날은 정말 그냥 모르는 척 한 대 후려갈기고 기절시킨 다음에 감옥에 처넣을까 생각했소.”
“용케 참으셨네요.”
“내가 맡은 소임이 있으니. 에스테반에게 더한 죄나 비밀이 있다면 게 있다면 그날 드러났을 테니까.”
위기의 순간에 에스테반이 준비해놓은 마지막 한 수가 있나 확인하려 한 것이다.
“사람들이 괴물에게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나서지 않고 뒤로 빠지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그 대가 잘 해결해줄 거라 믿고 있었소.”
차임베르크 공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나야말로 감사하오.”
가벼운 묵례임에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게 연륜이라는 걸까.
“이제 다시 영지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이곳에서 내 맡은 소임을 다 했으니까. 폐하께서 오늘 파티까지 남아달라고 하셔서 남아있는 것일 뿐.”
차임베르크 공은 여상한 듯 말했지만, 나는 내심 감탄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는 그야말로 그린 듯한 정결한 기사였다.
예전에 내가 그를 포섭할 때도 그랬다.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황제가 주선했고, 마땅히 그래야 할 명분과 이유가 내게 있으니 협력한다는 자세였다.
“나 외에도 그대를 만나고 싶은 자가 있는 것 같군.”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라파엘이 거리를 둔 채 서 있었다.
나는 차임베르크 공을 향해 무릎을 굽혔다.
“항상 가장 맑은 축복이 공과 함께하길.”
“성녀 예하의 가호를 가슴에 새기겠소.”
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깔끔한 인사.
다만一.
“……어렸던 그대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그 순간을 함께 해서 영광이었소.”
스쳐 지나가며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에 나는 놀라 뒤를 돌았다.
“루아티샤?”
곁에 다가온 라파엘이 의아하다는 듯 나를 불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장 인정받기 힘든 사람한테 인정받았구나 싶어서.
라파엘은 의아한 듯 한쪽 눈썹을 올렸지만 더 묻지 않았다.
“오, 라파엘. 좀 멋진데?”
라파엘 역시 당연히 오늘 공치사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드물게 성장(盛 裝)한 모습이었는데 꽤 그럴듯했다.
나한테는 앞섶 다 풀어 헤치고 땡땡이치던 모습만 익숙한데.
“흥. 그걸 이제야 알았냐?”
라파엘이 피식 웃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너도 뭐, 나쁘진 않네.”
그가 고개를 슥 돌리며 중얼거렸다.
얘는 진짜 사람 칭찬하는 걸 어색해한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가슴을 내밀었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예쁜 거지.”
유트라가 오늘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준 드레스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공녀님이시니까요! 물론 저에겐 언제나 공녀님이 주인공이셨지만!”
유트라는 그렇게 외치며 마지막 손질을 해준 후 기절했다.
“그래, 그래. 어련하시겠어.”
“너도 이제 그만 나의 미모를 인정하렴. 난 우리 엄마를 닮아서 예쁘거든.”
“자꾸 그렇게 외간 남정네한테 예쁜 거 알아달라고 하면 쩌어기 있는 신사분이 질투한다?”
갑자기 끼어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티리엘과 자스민, 클라우디아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파엘이 무슨 외간 남정네야.”
“난 얘 여자로 보지도 않거든?”
라파엘과 내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왁왁거렸다.
“글쎄?”
“우리야 알지만 쩌어기 신사분은 다르게 생각할걸?”
“그것도 엄청 다르게.”
저기 신사분?
돌아보니 저 멀리 사람들 틈에 있는 시드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거리가 있고 인파가 많은데도 시드의 모습은 단번에 찾아내다니.
‘잘생겼어.’
귀족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래도 딱히 질투하는 거 같진 않은데……. 이야기하느라 바쁜걸.’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