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1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17화(317/353)
☆ 제317화 ☆
* * *
“루루!”
마차에서 내리는데 저 멀리서 티리엘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 옆에 자스민과 클라우디아 그리고 살짝 어색한 표정의 카멜리아까지 보였다.
카멜리아는 다소 겸연쩍어 보이긴 했지만 두 뺨이 조금 상기된 게 기분은 꽤 좋은 듯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카멜리아는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지.
‘그래도 보기 좋네. 네 사람이 이렇게 친해진 거.’
클라우디아야 워낙 우아하고 지적인 스타일이고, 자스민과 티리엘은 예의를 잘 차리는지라 아무래도 카멜리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카멜리아와 친구가 되었다고 해서 굳이 안 맞는 사람들을 억지로 맞출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딱히 함께 만나고 그런 적도 없는데一.
어느 순간 서로 길게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티파티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키야스에델을 족치기 전, 내가 사교계에 잘 나가지 않았던 시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뭐, 좀 말투가 특이해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더라고.”
“솔직히 그 사이비 교도들이 설치고 다닐 때 답답해 죽는 줄 알았는데 쟤가 하는 말 들어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가슴이 뻥 뚫린 느낌? 엄청 시원한 샴페인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야.”
음.
내 친구들도 톡톡 튀는 탄산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군.
그렇다.
지옥의 주둥아리는 남의 편일 때는 재앙 같지만, 내 편일 때는 이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다.
사이비 교도들이 클라티에를 우쭈쭈 해주며 난리 칠 때 카멜리아가 띠껍다는 얼굴로 뭐라 했을지 보지 않아도 다 상상이 됐다.
안나가 풋맨과 함께 짐을 위에 올려놓겠다고 해서 나는 친구들과 곧장 정원의 가제보로 향했다.
“그나저나 나도 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으응?”
“어, 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자스민과 티리엘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뭘 그렇게 당황해.”
“당황은 무슨.”
“와, 여기 너무 좋다.”
가제보 옆에는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과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는 정원수,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아낸 연못까지.
바람은 선선했고 독특한 양식의 가제보는 운치가 있었다.
“그치? 일부러 휴양지로 여행을 가도 이런 곳은 찾아보기 힘들걸?”
“제도 근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나도 깜짝 놀랐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니까?”
카멜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너희 조부님께서 빌려주신 거 아니야?”
포셰트 후작가가 소유한 별장이라고 들었는데.
“어? 아, 그치.”
카멜리아가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도 와본 건 처음이라서.”
“그렇구나.”
그렇게 안 봤는데 포셰트 후작님, 의외로 쫌생이인가?
“그러고 보니 여기 별장 중앙 지붕이 다 유리로 되어 있더라.”
“밤에 보면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인대.”
“오, 그럼 우리 그 밑에서 모여서 잘까?”
“좋아!”
우리는 재잘재잘 떠들며 차와 디저트를 먹었다.
삼단 트레이에 가득 담긴 색색 마카롱과 에끌레어, 과일을 듬뿍 넣은 아펠슈트루델, 진하게 혀에 감기는 자허 토르테.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데 입 안에 넣자 머리끝까지 짜릿해졌다.
‘아, 역시 당은 옳아.’
설탕과 밀가루와 크림, 그리고 초콜릿의 조합은 언제나 행복을 보장한다.
거기다가 눈이 확 트이는 풍경과 곁에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들까지 있으니.
‘좋다…….’
어느새 내 얼굴에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여유롭게 쉬어본 적이 언제지?
친구들과 파티에서 수다를 떨긴 했지만,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 데다가 주변에 사람들도 많아서 은연중에라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책임과 의무를 벗어던지고서 또래 친구들과 이렇게 아무래도 좋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재잘거리고 있으니 마음이 편한 것을 넘어 들떴다.
장장 네 시간이 넘는 수다를 떤 후 우리는 가제보에서 일어났다.
당에 취해버린 걸까.
우리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꺄르륵 웃으며 다섯 명이서 나란히 팔짱을 끼고 걸었다.
‘이거 완전 길막인데.’
하지만 여기엔 우리밖에 없는데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별장 안으로 들어가려니 문 폭이 좁아서 팔짱을 풀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는 또 팔짱을 절대 풀지 않고 옆으로 살금살금 걸어서 문을 통과했다.
다 통과하고 나니 우리가 하는 꼴이 좀 웃겨서 또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안쪽에서 나오던 안나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쪽에 왜 저렇게 큰 침대가 있나 했더니 아가씨들을 위한 거였군요. 열 명도 누울 수 있겠던데.”
“정말?”
“그런데 그렇게 많이 드시고 나중에 저녁은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당연하지!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
“그럼 식사는 조금 늦게 준비하라고 할게요.”
“응!”
우리는 서둘러 커다란 침대를 향해 달려갔다.
막상 가보니 침대가 얼마나 큰지 침대라기보다는 거대한 원형 매트 같았다.
매트라기엔 또 침대처럼 두껍고 푹신했지만.
우리는 다이빙하다시피 그 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뒹굴뒹굴거리면서 또 수다를 떨었다.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 걸까?
따지고 보면 별말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물개 박수까지 치면서 맞장구를 놓게 된다.
그때 티리엘이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물었다.
“그런데 루루.”
“응?”
“왜 아직도 황태자 전하께 결혼 승낙을 안 해주는 거야?”
“어……?”
나는 조금 당황했다.
“황태자 전하랑 결혼하긴 싫은 거야?”
“연인으로선 괜찮은데 결혼 상대로는 별로?”
친구들이 다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면 결혼 생각이 없어?”
“하긴, 요즘에는 일찍 결혼하지 않는 추세기도 하고. 결혼은 많은 걸 바꾸니까.”
“상대가 황태자면 더 고민이 많겠다.”
‘그런 거 아닌데. 그냥 대답할 타이밍이 좀 애매해졌을 뿐인데…….’
나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
시드는 아주 자연스럽게 결혼을 입에 담았다.
내 아내, 운운했던 것도 그렇고 결혼하면 뭘 하자 했던 것도 그렇고.
처음엔 불시에 훅 들어와서 당황했다.
떨리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래서 괜히 안 할 건데? 하고 튕겼다가 진지하게 대답할 타이밍을 잃었다.
시드는 만날 때도, 영상석으로 통신할 때도, 편지에서도 결혼 이야기를 하는데一.
이제 와서 갑자기 ‘그래, 하자.’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달까?
“아니, 고민이 많은 건 아니야.”
솔직히 시드에게 ‘네가 황태자라서 결혼 상대로 고민돼.’라고 말하는 순간 시드는 황태자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 같고.
“그럼 왜?”
그냥 한 번 튕겼다가 지금까지 그걸 수습 못 하는 중일 뿐 인데.
‘一라고 어떻게 말해!’
헤비 로판 독자로서 자존심이 있지!
여주 언니들의 연애를 볼 때는 ‘확 밀어붙여 버려?! 어서 결혼해서 애기까지 낳아버려?!’라고 외쳤건만.
내 일이 되니 타이밍 하나 잡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결혼을 늦게 해서 행복한 꿈을 꾼단 말이야.’
대체 왜 그런 꿈을 자꾸 꾸는지.
이게 바로 예지몽?
아니면 누가 나 잠자는 동안 귓가에 결혼을 늦게 해야 행복하다고 염불을 외우나?
“어쨌거나 황태자 전하랑 결혼하기 싫은 건 아니네?”
“당연하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얼굴이 옆에 있다고 생각해 봐.”
내 말에 친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주 중요한 요소지.”
“하루의 시작이 달라지네.”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날 하루를 결정한다던데.”
“성공한 하루가 쌓여 성공한 삶을 사는 거지.”
“역시 남편 얼굴은 삶의 격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야.”
역시 내 친구들답게 다들 똑 부러졌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이 어느새 밖은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불이 들어온 별장은 또 다른 운치가 있었다.
중앙 지붕을 유리로 했다더니 별장 곳곳에는 유리를 활용한 인테리어가 가득했다.
유리 조각에 비친 불빛이 일렁이는 게 꽤 낭만적이었다.
“큰일 났다. 이제 슬슬 저녁 먹을 때인데 생각보다 배가 안 꺼져.”
“진짜? 난 배 완전 다 꺼졌는데.”
단 걸 먹었으니 이제 고기가 땡겼다.
하지만 나 빼고는 다들 아직도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우리 소화도 시킬 겸 저녁 먹기 전까지 숨바꼭질할래?”
자스민이 눈을 반짝이며 하는 제안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숨바꼭질?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왜, 좋잖아.”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해.”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좋네.”
차분한 클라우디아까지 하고 싶어 했다.
하 참.
이 나이 먹고 숨바꼭질이라니.
유치하게, 진짜.
“안 내면 술래! 가위, 바위, 보!”
선수필승!
나는 재빨리 외치며 주먹을 내밀었다.
“야!”
친구들은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손을 내밀었다.
“…….”
“…….”
그런데 어째서 다들 보자기를 낸 거지……?
“푸하하하하!”
“아니 어떻게 첫판에 딱 술래가 정해지냐. 다섯 명이서 가위바위보 하는 건데.”
“그것도 자기가 먼저 가위바위보 하자고 했으면서!”
친구들이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
나는 황망한 얼굴로 내 주먹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거 나 빼고 짠 거 아니야?”
“짜긴 뭘 짜. 네가 갑자기 안 내면 술래라고 시작했으면서.”
“그럼 루루가 술래지?”
“눈 감고 백까지 세!”
“아니다. 별장이 넓으니까 천 까지 세!”
“천이라니……! 그러다 날밤 새우겠다!”
“그럼 오백까지는 세!”
쳇.
나는 침대에 팍 엎드려 눈을 감았다.
“일! 이! 삼!”
“야! 예고는 좀 해야지!”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부산스레 푸다닥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숫자를 세며 입술을 삐죽였다.
‘흥, 애도 아니고 숨바꼭질 따위에 진심이 될 리가 없잖아.’
이건 그냥 내가 놀아주는 것뿐이다.
카멜리아를 빼고는 다 나보다 나이가 살짝 많지만, 전생까지 합치면 내가 제일 언니니까.
‘……하.’
내가 술래라니.
‘다 뒤졌어!’
절대, 절대 숨바꼭질이 재밌어 보인다거나 진심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니까!
* * *
‘나만 진심인 게 아니었던 거야……?’
솔직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나는 커다란 옷장 문을 휙 열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여기도 없다.
‘……소드 마스터의 기감을 사용하면 반칙일까?’
솔직히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 능력을 사용하는 건데 문제될 건 없지 않나?
약간 꼼수를 부린다는 찝찝함은 있지만…….
‘에이, 그냥 꼼수 쓰지 말고 찾자!’
나는 애써 유혹을 이겨냈다.
구석구석 살펴보며 걸음을 옮기는데 탁 트인 홀이 나왔다.
“와…….”
저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불빛이 들어온 정원의 풍광이 보였다.
낮에도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밤의 정원은 꼭 마법처럼 아름다웠다.
물결을 따라 주홍빛 불빛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중앙 지붕 밑이구나.
주홍빛에서 핑크빛으로 또는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하늘.
나는 친구들을 찾는 것도 잊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유리를 이용해서 무슨 장치를 한 건지, 일몰의 빛이 자연스럽게 한곳에 모여 안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데一.
“……?”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뒷모습에 나는 멈칫했다.
다른 누구와도 착각할 수 없는 뒷모습.
“시드?”
혼잣말 같은 나지막한 부름에 시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영화처럼 그 모습이 느릿하게 보였다.
노을에 붉게 물든 금발이 나붓이 살랑인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순간마다 빛이 그의 얼굴에 다른 음영을 수놓았다.
이윽고 마주한 두 눈이 나를 바라보았을 땐一.
“…….”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조차 멈춘 듯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야.’
말도 안 돼.
두근두근두근一.
온몸이 울릴 정도로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 소리만이 세상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잘생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