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2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320화(320/353)
☆ 제320화 ☆
문득 파에라톤 공작의 눈에 딸아이에게 주렁주렁 엉겨 붙어 있는 아들들의 모습이 들어 왔다.
‘저 자식들이.’
보기만 해도 아까운 막내딸이건만.
“나 황실의 시종이 될까? 낯선 곳에서 내가 솜뭉치 챙겨줘야지.”
“나는 궁내부장관. 황궁에서 가장 좋은 건 내 동생에게 다 몰아줘야지.”
“나는 호위 기사.”
“앗, 내가 호위 기사 할래!”
투닥거리는 오빠들을 보며 루아티샤는 결국 푸하하, 웃었다.
장난스레 말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오빠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앞으로 막내랑 떨어져서 어떻게 살지?’
一하는.
루아티샤는 흠흠, 하며 입을 열었다.
“시드와 결혼하고 싶다는 건 진짜예요.”
오빠들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귀가 추욱 쳐졌다. 엉덩이의 꼬리도 마찬가지.
슬쩍 보니 아빠와 할아버지의 귀와 꼬리도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 말에 가족들의 귀가 쫑긋 섰다.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
이번엔 꼬리가 훅 올라가더니 살랑살랑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니, 살랑살랑이 아니라 프로펠러 같은데.
시드리한과의 결혼은 단순한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다.
직책과 신분이 하나 추가되고 권리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늘어난다.
물론 황태자비라는 직책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잘해보고 싶고 나름대로 직접 추진해보고 싶은 정책도 있었다.
수로 사업과 파에라톤 영지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은걸.’
황태자비의 신분으로 황궁에서 살면 하기 힘든 일들.
파에라톤령의 영지민들이 그녀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만큼, 루아티샤 역시 영지민들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국무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껏 여행도 다녀 보고 싶고, 아무것도 안 하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一.
루아티샤의 푸른 눈에 가족들의 모습이 비쳤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
그건 분명 설레고 멋진 일이다.
결혼한다고 해서 가족들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역시 지금 이 삶을 온전하게 누리고 싶어.’
충분히 누린 후에 다음 단계를 밟아도 좋지 않을까?
“지, 진짜지?”
“언제? 언제 결혼할 건데? 10년 후? 20년 후?”
아니, 그건 좀.
“그런 거 묻지 마. 너무 빨리 대답하면 어떡하려고.”
반짝반짝한 눈으로 난리를 치는 오빠들을 보며 루아티샤는 푸스스 웃었다.
이렇게까지 한결같이 반응하는 것이 대단하달까.
하지만 만약 니케가 어느 날 갑자기,
“마마, 니케 이제 결혼할래. 옆집 영수가 이쁘더라. 니케는 이제 결혼해서 독립할 거예요. 바이 바이, 마마.”
一라고 말한다면…….
‘절대 안 돼!’
루아티샤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있지도 않은 옆집 영수에 대한 적의를 불태웠다.
갑자기 가족들의 반응이 너무 잘 이해됐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찡하기도 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막내를 제대로 보듬어주지도 못했는데, 벌써 품을 떠나 멀리 가버리는 기분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옆에서 더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돌봐주고 싶겠지.
그러니까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시간을一.
‘아니, 그게 아니야.’
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一.’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혹은 가족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쉬워!’
루아티샤가 시선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열린 창밖에서부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커튼이 부드럽게 휘날리고 가을볕이 집무실 바닥에 반쯤 고인 가운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친숙한 풍경.
고개를 들기만 하면 가족들이 자신을 마주 보는 일상.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물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이 별것도 아닌 게 사실은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 잘 알아서.
“나는 우리 아빠랑 할아부지랑 오빠들이랑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
루아티샤는 활짝 웃었다.
* * *
황궁의 내궁, 유란테스 궁.
평범한 귀족들은 들어갈 수조차 없는, 소수의 인원만을 위한 갈란테 회의장.
보통은 전시에나 열리던 문이 오늘 열렸다.
회의장 안의 분위기는 아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흡사 나라의 명운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아니, 이 분위기는 논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을 앞둔 전사가 투기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잡아당기면 툭, 끊어져 버릴 실처럼 회의장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대체 무슨 일 때문일까.
설마 국가 보안상 비밀로 하고 있지만, 다시 키야스에델이 살아 돌아온 것일까?
“절대 안 됩니다!”
위엄 넘치는 황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결혼을 미루다니요!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았고, 결혼을 약속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미루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황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황비의 말이 옳소. 제국에 황태자비 자리가 비어 있는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아도 황후도 없는 상황이라 손이 부족한데一.”
“지금 제 딸아이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파에라톤 공작이 눈을 번뜩였다.
황제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다들 원하지 않는가? 그리고 루아티샤도 야무지고 일도 잘하고…….”
보통은 얼른 황태자비 혹은 황후가 되어서 국무에 손을 대고 싶어 하는데.
루아티샤가 워낙 일을 잘하니 수습 기간 없이 곧바로 국무를 맡기겠다는, 나름의 특혜를 주겠다는 어필이었다.
“폐하! 너무 하십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 힘든 아이입니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일을 시키겠다니요!”
“화, 황비. 나는 그대를 위해서…….”
황비의 부담도 줄여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신혼입니다! 신혼! 신혼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둘이서만 알콩달콩 지내도 시간이 부족하단 말입니다!”
“하, 하지만一.”
“하기야, 폐하께서 그걸 아시겠습니까.”
황비가 흥, 하고 부채를 펼치며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말한 건데 오히려 혼났다.
황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들 권력을 위해 황태자비 자리를 노린다.
물론 파에라톤 공작가는 딱히 권력을 더 탐낼 위치도 아니고, 루아티샤 역시 그것 때문에 시드리한과 결혼하는 건 아니지만一.
‘그래도 국무에 손을 대는 게 훨씬 이득이잖아?’
이건 뭐, 황제 위에 올려놓고 국정을 안 맡기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황비와 파에라톤 공작, 파에라톤 소공작과 타렌카 후작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황태후마저.
‘당연한 상식인데 왜 이 자리에선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거 같지?’
“황비 전하께서는 오는 봄에 결혼식을 열자고 하셨지요.”
타렌카 후작의 말에 황비가 미소 지었다.
“가장 성대한 결혼식이 될 거예요. 이날을 위해 몇 년을 준비해왔으니까.”
“황태자의 성혼식에는 절차와 예법이 있습니다. 제대로 지키려면 몇 개월 안 남은 내년 봄은커녕 내후년의 봄이어도 촉박할 겁니다.”
“그런 허례허식 따위 굳이 지킬 필요 없겠지요. 중요한 건 결혼식이니까.”
“황비의 신분으로 황실의 예를 허례허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본디 낡은 관습은 시대에 따라 쇄신하기 마련이고, 황실의 예법 역시 예외는 아니지요.”
“이 경우에는 맞지 않은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만. 다른 것도 성혼식입니다. 그 절차를 생략하다니요.”
“과거에나 다 지켰지 현대로 올수록 조금씩 생략하는 추세입니다.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一.”
“하나 절차를 생략한 폐태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처럼 근본도 없는 자나 이런 중요한 예를 생략하기 마련이지요.”
“……!”
에스테반의 일을 예시로 들자 할 말이 없어졌다.
황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늙은 능구렁이! 어떻게 모든 절차를 다 지켜서 최대한 결혼식을 늦게 할 생각이야.’
그녀는 다른 쪽으로 공격하기로 했다.
“아가는 실리를 추구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절차를 다 지키려고 할까요? 그것보다는 빠르게一.”
“글쎄.”
우아한 목소리가 황비의 말을 끊었다.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에는 비뚜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묘하게 여유로운 데다가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얼굴.
황비는 불안감을 느꼈다.
‘막내딸의 결혼 논의에 가장 불쾌해하고 있을 그가 어째서……?’
“황비 전하의 생각과 다르게 내 딸은 결혼을 늦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만.”
뭐……?
황비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벌어져 흔들렸다.
“늦……게?”
씨익.
파에라톤 공작의 입술이 딸아이와 똑같은 미소를 그렸다.
“아빠와 좀 더 함께 있고 싶다고.”
그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오만하게 말했다.
이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제온이 지지 않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큰오빠랑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했죠.”
“이 할아비랑 매일매일 산책하고 싶다고도.”
“…….”
세 남자가 똑같이 우쭐거리며 황족들을 바라봤다.
황제는 허어, 하면서 기막힌 숨을 내쉬었지만一.
“아가가……?”
황비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거짓말!’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다른 것도 아닌, 딸 아이를 놓고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크윽…….’
아가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서두르고 싶다고 해서 아가의 뜻을 무시할 순 없지 않은가.
파에라톤 공작은 완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얹었다.
“혼담을 넣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절차를 다 치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2, 3년은 훌쩍 지나겠군요.”
그렇다.
루아티샤의 가족들은 루아티샤가 말한 ‘나중에 결혼하겠다’라는 시기가 6개월 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런 밑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나 언제인지 물었다가는 진짜 저런 말을 들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 묻지도 못하고.
“그, 그럼 약혼식이라도……. 절차상 약혼식은 그래도 빠르게 열지 않던가요?”
“약혼식을 해야겠지만, 이쪽의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니. 이미一.”
“절차를 제대로 지키자는 게 조건은 아니죠. 당연한 거지.”
“아무래도 성혼식을 올리기 전에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보다 안정적인 결혼…… 으득, 생활을 위해서.”
잠깐 이 가는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숙려 기간이라니?”
황제의 말에 제온이 답했다.
“결혼 직전에 일정 기간 동안 파에라톤령에서 지내며 서로가 얼마나 결혼 상대로 적합한지 알아가는 시간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황제가 입을 떡 벌렸다.
결혼 직전이니, 숙려 기간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결국一.
“그건 신혼 때 황태자를 처가살이를 시키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 말에 파에라톤 공작과 소 공작, 타렌카 후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혼 때라니요. 아직 결혼도 안 한 시기인데.”
“제 딸을 얼렁뚱땅 며느리로 만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제 손녀가 탐이 난다고 해도 선을 넘으셨습니다.”
‘아니, 내 말의 요지는 그게 아니라고!’
어이없어서 황제가 할 말을 못 찾는 사이, 황비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합시다.”
“황비!”
황제의 외침에도 황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숙려 기간 때문에 성혼식이 더 미뤄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건 기회야.’
저 숙려 기간을 미리 맛보겠다는 핑계로 시드리한이 파에라톤령에 뻔질나게 드나들 수 있지 않은가.
‘혹시 성혼 절차를 밟는 그 긴 시간 동안 아가가 영지로 내려가 버리면 큰일이야.’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시드리한이 파에라톤령에 내려가서 아가의 마음을 꽉 붙들어 놓아야 한다.
원래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 아니던가.
‘그리고 그 김에 나도 내려가 볼 수도 있는 거고.’
“흐음, 본후 역시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느껴지는군.”
황태후까지 동의를 했다.
황제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황비와 황태후를 바라보았다.
“지금 황태자의 처가살이를 동의한다는 거요?!”
황비가 싸늘한 눈으로 황제를 돌아보았다.
“폐하, 아들 혼삿길 막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계세요. 평생 짝이 없는 황제로 역사서에 이름 박히게 하지 마시고.”
결국 황제는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 * *
시드리한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생토록 자신의 생김새나 겉모습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런 소소한 것을 신경 쓰기에 그의 삶은 절망과 좌절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 진짜 좋은 여자 만나서 꼭 애를 열둘은 낳아야 해.”
“최소가 열둘이야. 할 수 있는 한 많이 낳아. 그게 네가 인류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잘생긴 미모를 꼭 잘 유지해야 한다고 그 아이가 신신당부 했을 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에.
그 아이가 밉다고 생각했을 때조차.
“아님 예쁘장한 얼굴이니 남들이 부러워하도록 시중을 들게 해도 괜찮겠어.”
시드리한은 처음으로 자신의 겉모습에 신경이 기울었다.
아마도 그건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