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2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7)화(328/353)
외전 7화
보랏빛 눈동자가 선명한 예기를 띄고 나비를 바라보았다.
그 적대감 가득한 시선에 나비 역시 미간을 찌푸린 채 시드리한을 쳐다봤다.
두 남자의 대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주 작은 계기에도 폭발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우와, 잘생겼다!”
긴장된 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드리한의 뒤에서 채리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헤헤 웃으며 시드리한을 올려다보았다.
“그치, 리한?”
시드리한은 대답은커녕 채리아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채리아는 “치.” 하곤 귀엽게 입술을 삐죽였다.
“자자, 이렇게 서 있으면 기운 빠져. 아직도 열이 펄펄 끓고 있잖아. 빨리 가서 누워.”
루아티샤가 나비의 어깨를 가볍게 떠밀었다.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마법처럼 일시에 풀렸다.
시드리한은 언제 발톱을 드러냈냐는 듯 잘 길들여진 온순한 맹수처럼 이빨을 감췄다.
나비는 그런 시드리한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남자군.’
사람이 바뀐 것처럼 순식간에 속내를 감춘 채 온순한 양처럼 구는 꼴을 보라.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안나, 환자가 머물 방은 준비했지?”
“네, 아가씨.”
“좋아. 어서 가서 쉬어. 그 상태로 배 타고 이동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나비는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루아티샤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루아티샤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참으로 태평한 여자애다.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장단을 맞춰 주는 것도 좋겠지.’
나비는 잠자코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루루는 진짜 아는 남자가 많나 봐?”
“음?”
“아니, 난 그냥 신기해서. 또 ‘새로운 남자’를 데려온 것도 그렇고.”
채리아가 루아티샤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악의는 없다는 듯.
“저번에는 또 다른 남자랑 영상 통화? 그런 것도 하는 거 봤어. 주홍빛 머리에 귀엽고 잘생긴 남자애던데.”
“그래?”
“이름이…… 라파엘이던가? 루루랑 어엄~청 친해 보이더라.”
루아티샤는 피식 웃었다.
‘아이고, 이 아가씨야.’
순진한 척 말하면서 힐끗힐끗 시드리한의 눈치를 보는 게 속이 빤하게 보였다.
‘로판 독자에게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란다, 얘야.’
루아티샤가 성큼성큼 채리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틀어쥐었다.
처음 보는 심각한 얼굴.
채리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채리, 이건 꼭 기억해 둬.”
“뭐, 뭐를?”
“잘생긴 남자는 흔치 않아. 그러니까 기회가 올 때 잘 구경해 놔.”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채리아가 멈칫했다.
그러나 루아티샤는 한없이 진지했다.
“괜히 꽁기한 마음에 이렇게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날 상대하는 시간에 잘생긴 남자를 1초라도 더 눈에 담아. 이렇게 주변이 다 잘생긴 남자뿐인 기회가 흔한지 알아?”
“아……. 흔하진 않지. 절대로.”
자기도 모르게 대답한 채리아가 핫,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닌 척 힐끔힐끔 구경하다간 나중에 돌아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 그러니까 볼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봐야 해. 아주아주 소중한 시간이라구.”
“…….”
“내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야. 다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조언이니 새겨들어. 미인들은 안구 건강에 좋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루아티샤가 그렇게 말하니 박력 있었다.
채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티샤는 미소 지으며 채리아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아, 근데.”
멀어지던 루아티샤가 참, 하고 채리아를 돌아봤다.
“시드는 내 거니까 시드는 건들지 말고.”
“뭐, 뭐?”
“구경도 안 돼. 나는 욕심쟁이라서 내 거는 나만 봐야 하거든.”
스윽—.
루아티샤의 뒤에서 뻗어 나온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익숙한 체향.
익숙한 체열.
탄탄한 대흉근이 등에 닿는 느낌에 루아티샤는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들었다.
곧장 시드리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 내 주인님께서도 나만 봐주셨으면 좋겠는데.”
“내가 언제 시드 말고 다른 사람 봤다고 그래.”
“남자가 많다잖아?”
“흐음, 그러고 보니 많은 것 같기도?”
장난스럽게 씨익 웃는 루아티샤의 얼굴에 시드리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면 그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선택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겠네.”
“그럼 날 유혹할 거야?”
“응.”
루아티샤가 몸을 돌리며 시드리한의 목에 팔을 감았다.
“어떻게?”
“이렇게.”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숨결이 입술에 닿았다.
루아티샤가 자연스럽게 그 입술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시드리한이 살짝 얼굴을 물렸다.
기대하고 있던 루아티샤의 두 뺨에 금세 심통이 들어찼다.
“뭐야.”
“애태워야지.”
“무슨 애를 태운다고— 흣…….”
순식간에 입술이 먹혀들었다.
뜨거운 호흡과 함께 젖은 숨이 서로를 침범했다.
아주아주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곳까지.
루아티샤의 손에서 시드리한의 셔츠가 볼품없이 구겨졌다.
루아티샤의 허리를 끌어안은 시드리한의 팔에 힘줄이 선명하게 돋아났다.
모든 것이 아득해져 가고 새하얗게 지워진다.
그 공백에 자리 잡은 것은 오로지 이 열기와 그 열기를 가득 품은 연인뿐이었다.
이 세상에 꼭 서로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
아무런 전조도 없이 커플질을 직관하게 된 채리아의 표정이 볼 만해졌다.
‘염병…….’
* * *
남자—나비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밖으로는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탁 트인 풍경.
부드럽고 온유한 바람결에 흩날리는 쉬폰 커튼.
햇볕 냄새가 잔뜩 나는 뽀송뽀송한 침구.
그리고…….
‘왜 저딴 정신 사나운 인형들이 한가득 있는 거냐.’
방 안 곳곳에는 동물 인형 친구들이 한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침대를 중심으로.
루아티샤가 심신의 안정에 좋다며 놓고 간 것이었다.
“동물 친구들은 심신의 안정에 좋아. 이는 과학적 그리고 경험적으로 증명된 일이야.”
“……경험적?”
“응, 우리 오빠들의 예를 보면 확실해.”
“…….”
그때만큼은 나비도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순간 감히 상상조차도 두려운 장면이 머릿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토끼 인형을 든 익시온.
양 인형을 든 아레스.
병아리 인형을 든 제온.
(왜 하필 저 동물들로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솜인형을 끌어안고 꽁냥꽁냥 힐링하는 세 남자…….
“왜 그래? 아파? 왜 토할 거 같은 얼굴이야?”
“……왜겠냐.”
하여간 그 여자는 신기한 재주를 지녔다.
표정을 짓는 법 따위 잊어버려서 ‘무면귀’라는 별명까지 지닌 그가 표정을 짓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
무해하고 말랑말랑한 얼굴로 사람 복장은 다 뒤집어 놓는다.
나비는 한숨을 쉬며 가까이 있는 햄찌 인형을 꾹 눌렀다.
‘꼭 지 같은 것만 갖고 다니는군.’
인형들이 정신 사나웠지만 나비는 애써 무시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있다고?’
루아티샤는 이곳이 다른 세계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비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다.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겪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옛날.
그때는 동료라고 불린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 죽었지.’
마물에게 당해서 죽은 건 차라리 나았다.
대부분이 배신해서 그의 손에 죽었다.
남자는 습관처럼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질척이는 검붉은 피가 환상처럼 흘러내렸다.
그게 마물의 피인지, 인간의 피인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이든 상관없지.’
남자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진득한 피조차 아무 의미도 되지 않았으니까.
남자는 상념에 잠기는 대신 해야 할 일을 했다.
오랜 습관이었다.
저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인형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마쳤다.
방 안의 모든 기물에는 딱히 수상한 점이 없었다.
‘그러면 정말로 나를 치료해 주겠답시고 자리를 내준 건가? 무슨 꿍꿍이지?’
그는 이용 가치가 높았다.
차라리 그를 ‘사용’하려고 했다면 상황 파악이 빨랐을 것이다.
그는 햄찌 솜인형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방심할 순 없지. 저렇게 보여도 강자다.’
루아티샤는 강하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 역시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노려볼 뿐,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비야.”
예의 그 복장 터지는 호칭과 함께 루아티샤가 활짝 웃으면서 들어왔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비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햄찌 인형이 마음에 든 거야?”
“뭐?”
“난 나비는 고양잇과라고 생각했는데. 햄찌도 어울리나?”
“무슨…….”
나비는 그제야 자신이 햄찌 인형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도.
“오, 오해다! 이건 그저 너를—.”
“나를?”
“……윽.”
루아티샤가 알겠다는 듯이 흐흐흥, 하고 웃었다.
“내 생각하면서 햄찌 인형을 봤어? 곤란하네.”
“무슨 개소리를…….”
“후우, 너도 남주과니? 구해준 사람에게 집착하는 스타일? 인생에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껴버렸어?”
“그딴 거 느꼈겠냐.”
루아티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넌 로판 남주라기보다는 판타지 남주 같으니까.”
“…….”
“하지만 경고해 두는데, 나한테 집착하면 안 된다?”
나비는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
‘나는 왜 이 여자 말에는 계속 평정심을 잃는 거지?’
루아티샤가 피식 웃으며 협탁 위에 가져온 트레이를 놓았다.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아?”
그렇게 묻는 파라이바빛 눈동자는 티 없이 깨끗하고 밝았다.
세상의 모든 풍파 따위 다 이 여자애를 비켜 간 것 같았다.
티끌만 한 흠집조차 생기지 않도록.
“일단 거동은 확실히 좋아진 거 같네. 상처도…… 응, 잘 낫고 있고.”
상냥하고, 평화로운— 악의라고는 전혀 모르는 세상.
그 안에서도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온 얼굴.
그걸 보고 있자면 배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망가트리고 싶을 정도로.’
나비의 눈동자가 짙게 물들었다.
서늘한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드리우는 순간.
“……!”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잠시 깃든 서늘함 따위 곧장 녹일 정도로 포근한 손길.
흠칫, 몸을 굳히며 고개를 들자 곧장 루아티샤의 얼굴이 보였다.
드리운 그림자 따위 지워버릴 정도로 환한, 태양 같은 미소.
“이제 열은 다 내렸네.”
그의 눈동자에서 일렁이던 흉포한 기세가 점차 잦아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청명한 루아티샤의 푸른 눈동자가 맑은 하늘이라도 된 것처럼.
“……진작 다 나았다. 전부터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었어.”
“무슨 소리야. 어제까지만 해도 계속 열이 펄펄 끓고 있는 상태였는데.”
“병환을 핑계로 나를 가둬둘 생각이라면—.”
나비의 말이 우뚝 멈췄다.
루아티샤가 약을 바르면서 상처 부위를 꾸욱 누른 것이다.
나비의 반응에 루아티샤가 이마를 찡그렸다.
‘뭐야, 왜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아.’
나비는 잠깐 말을 멈췄을 뿐.
미간을 찌푸리지도, 밭은 숨 한 번 내쉬지도 않았다
그게 이 남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프면 아프다고 해.”
“…….”
“이 상태로 뭐가 괜찮다는 거야.”
왜 나비가 ‘진작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는지 알겠다.
계속 아픈 상태였어서.
그래서 고통조차 무뎌져서.
그게 당연한 ‘평소’가 되어버려서.
“이제 거동해도 상처가 덧나거나 불편하진 않을 거야. 슬슬 이동하자.”
“이동? 날 어디에 사용할 생각이지?”
“사용이라니?”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는 내 별장이라서 사람을 치료하기엔 썩 적합하지 않거든.”
예상치 못한 말에 나비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 집에 가면 훨씬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왜 네 집에—.”
“가기 싫으면 빨리 낫든가? 그러려면 잘 먹어야겠지?”
싱긋 웃은 루아티샤가 나비에게 포리지를 떠 주었다.
“자, 아~ 해.”
“치워.”
“에이, 몇 번이나 받아먹었으면서 새삼 왜 이래. 빨리 먹어. 자, 빨리! 빨리!!”
“됐다고—.”
“씁! 가만히 있어!!”
자신에게 무언가를 먹일 때 루아티샤는 묘하게 박력이 있었다.
두 눈이 열망인지 모를 무언가로 바짝 타오르는 게…….
“어서! 입! 빨리!! 당장!!!”
결국 나비는 입을 벌려 포리지를 받아먹었다.
루아티샤는 그걸 보며 힐끗 시선을 돌렸다.
〈나비〉를 잘 간호해 주었습니다.
1000캐시 증정!
‘좋아, 좋아.’
루아티샤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떠올랐다.
직접 병간호를 해주는 것은 다 캐시를 벌겠다는 어마무시한 계략이 있기 때문이었다.
‘후후, 내 캐시 자판기.’
나비는 흑심 가득한 루아티샤의 눈빛을 보고 흠칫했다.
‘설마 이 녀석…….’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다.
다만 그에게는 아득한 감각이라서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뿐.
오래된 관념 속이나 어린아이의 동화책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나를 좋아하는 건가?’
* * *
루아티샤의 가족들은 이를 갈며 상대에 대한 살기를 불태웠다.
목숨을 건 전쟁이라도 앞둔 것처럼 기세가 장난 아니었다.
문제는…….
‘저놈이, 나도 받은 지 오래된 병간호를……!’
막내가 봉사 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언제든 요격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때, 나비의 손이 루아티샤한테 닿았다.
“저 처죽일 놈을 당장!!”
“저 새끼…….”
풀숲에서 파다닥 일어나던 가족들이 멈칫했다.
뒤에 “저 새끼”라고 읊조린 건 그들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시선이 일시에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마찬가지로 풀숲에서 일어난 시드리한이 있었다.
“…….”
“…….”
여섯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했다.
이심전심!!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드리한과 파에라톤 공작가(+할부지).
결혼하려는 자와 결혼을 막으려는 자.
창과 방패, 불과 기름 같았던 둘의 관계.
그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처음으로 동맹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