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2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8)화(329/353)
외전 8화
* *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가족들과 시드를 바라보았다.
“안목이 있긴 하군.”
“맞아. 솜뭉치랑 딱 어울리는 옷을 골랐어.”
가족들은 남부식 실크 드레스를 칭찬하고 있었다.
여기까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저 드레스는 엊그제 나랑 시드랑 단둘이 데이트하면서 산 건데.’
그 사실을 아는 가족들이 저렇게 드레스를 칭찬하다니?!
아니, 사실상 드레스를 고른 시드를 칭찬하고 있지 않은가!
“흠, 그 드레스에 이 신발은 어때?”
“역시 형님의 센스는 탁월합니다. 루루가 형님을 닮았나 봅니다.”
시드가 씨익 웃으며 아레스의 말을 받았다.
시드는 나와 가족들이 닮았다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가족들보다 나랑 더 닮아야지.”
“무슨 소리야. 유전적 형질이 있는데 어떻게 더 닮아. 시드는 질투도 이상하게 하더라.”
“나랑 더 닮는 게 맞아. 부부끼리 제일 닮는다잖아.”
“우리 아직 부부 아닌데요.”
“지금도 닮았는데. 그럼 결혼하면 더 닮겠다. 누가 봐도 부부로 보일 정도로.”
“치.”
그게 이유였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나랑 아레스가 닮았다는 말을 한다고?’
하지만 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형님’이라는 폭탄 발언을 들은 아레스가 그냥 웃은 것이다.
못된 꿍꿍이가 담긴 미소가 아니라 진짜 미소.
“내 동생이 다른 가족들보다 나를 더 닮긴 했지. 내가 생긴 건 외탁이거든.”
“그래, 생긴 건 이나이스를 닮긴 했지. 속은 저 시꺼먼 사위 놈을 닮았고.”
할아버지까지 픽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진짜로 사이가 좋네.’
이런 화기애애한 모습은 처음 본다.
‘시드가 우리 집에서 처가살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함께 지내면서 사이가 점점 더 나빠졌었는데.’
시드는 결혼을 허락 받겠다면서 정말로 우리 집에서 처가살이를 했다.
물론 황제는 핏대를 세웠다.
“어느 황태자가 처가살이를 해! 너, 너 이대로 가면 황태자 위 박탈이야!!”
“하시든가.”
쿨한 시드의 대답에 황제가 뒷목을 잡았던 훈훈한 기억이 있다.
황제는 끝까지 반대를 하려 했지만, 황비님을 이길 순 없었다.
아무튼 시드와 함께 살면서 참 여러 일이 있었다.
‘……정말 엄청난 일들이 많았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PTSD가 생겨 식은땀이 났다.
그걸 고작 ‘여러 일’이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탓에 시드와 가족들의 관계는 최악에 가까웠다.
‘어쨌든 잘된 일이지!’
가족들은 이번에는 남부식 장신구—마찬가지로 데이트 중에 산—를 칭찬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중간중간 나비를 노려보는 거 같긴 한데.’
지금 우리는 파에라톤령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고 있었다.
내 짐을 싸는 것에 가족들이랑 시드가 참견하는 것은 항상 있던 일이라 신기할 건 없었다.
근데 굳이 나비를 불러서 저러는 게 좀 특이하긴 했다.
“저, 루아티샤.”
그때, 채리아가 나를 불렀다.
마냥 해맑았던 평소와 다르게 약간 긴장된 얼굴.
“잠깐 같이 걸어도 될까?”
“응,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채리아와 함께 방을 나섰다.
* * *
쏴아아아아—
파도 소리가 기분이 좋았다.
이 풍경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을 남기며 얼마나 걸었을까.
먼저 걷자고 청했던 것과 달리 채리아는 말이 없었다.
나는 힐끔 채리아를 바라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땅만 보며 걷던 채리아가 어색한 듯 꼼지락거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만 돌아갈—”
“미안.”
채리아가 우뚝 멈춰 서며 말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 너무 들떠있었나 봐. 아니, 들뜬 것도 들뜬 건데. 너무 이상한 일이 일어나니까.”
“…….”
“난 이런 위험한 일 같은 거, 겪어본 적 없거든. 엄청 사랑 받고 자랐고 다들 날 좋아했어. 난 너처럼 이런 무서운 일에 익숙하지 않아.”
“…….”
“그러니까, 내가 일어난 모든 것이 다 특별하고 근사한 일이라고…….”
다시 고개를 숙인 채리아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나는 몬스터한테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운명의 상대와 영화 같은 첫 만남을 한 거라고.”
“…….”
“그게, 날 구해준 리한은 멋지고, 잘생겼고, 완벽하잖아. 그냥, 이 모든 게 날 위해 마련된 거라고 느꼈어.”
나는 가만히 채리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리아는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그렇게 느끼고 싶었던 거다.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낯선 세상에 떨어져서 죽을 뻔했다.
그렇게라도 현실 도피를 한 거다.
“시드가 좀 로맨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이긴 하지.”
내 말에 채리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응! 진짜 그렇잖아! 그 반짝반짝한 금발이랑! 신비한 보랏빛 눈동자랑!! 그래서 막 리한이 내 운명의 상대라고—.”
“그건 진짜 아니야.”
난 딱 잘라 말했다.
채리아의 상황을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채리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 정말 시드를 좋아하는구나?”
“응. 좋아해.”
“나는…… 솔직히 널 사랑의 방해꾼처럼 생각했어.”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항상 나오거든. 특별한 여주인공과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남주인공. 그 사이를 방해하는 이물질 같은 악역.”
“……너도 참 대단하다.”
로판 독자인 내게도 참 익숙한 레퍼토리지만, 나는 채리아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계약을 통해 환생했고, 이게 로판을 참고한 세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이세계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여주인공이고 모든 남자들이 날 사랑할 거야~! 다른 여자는 이물질!!’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아무리 현실 도피라고 해도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이걸 이물질 취급당한 내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까지도.
“하지만 루아티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나?”
“응.”
순간 채리아에게 해줬던, 진심 어린 조언이 떠올랐다.
“이렇게 시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날 상대하는 시간에 잘생긴 남자를 1초라도 더 눈에 담아. 이렇게 주변이 다 잘생긴 남자뿐인 기회가 흔한지 알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정성 있는 조언이 채리아의 심금을 울린 게 분명했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조언 덕분에 정신 차렸다니 다행이야. 하긴, 미인들을 눈에 담을 땐 정신을 집중해야 하니까.”
“아, 그것도 그런데—.”
채리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보단 키갈이 너무.”
“……어?”
채리아가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배배 꼬았다.
“어후, 장난 아니더라. 그걸 눈앞에서 보고 나니까. 어후! 난 그런 건 진짜 처음 봤어!”
“…….”
“너네 진짜 핫하더라! 어떻게 그렇게까지……. 그걸 보니까 갑자기 강제로 정신이 번쩍 들던데?!”
“…….”
얘, 나한테 사과하겠다고 불러낸 거 맞지?
근데 왜 쪽팔림만 얻어가는 거 같지.
* * *
대륙 북부의 파에라톤 공작령.
남부 해변의 온화한 기후와 달리, 이곳의 공기는 깨끗하고 쨍한 게 피부로 느껴졌다.
나비는 마차 창밖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다른 세상이 맞긴 한가 보군.’
루아티샤가 지도까지 보여줬지만 나비는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었다.
다른 사람의 말보다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니까.
‘이런 대단위 인프라를 꾸며낼 순 없지.’
잘 정돈된 길은 습격의 흔적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거리 곳곳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공공시설이 마나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종말이나 재앙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먼, 이상적인 세계.’
심지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을 보라.
아비규환 속에서 서로를 죽이던 자신의 세계와는 천지 차이였다.
질서정연한 게 아주 상식적이고 멀쩡해 보였—
“꺄아아아아! 공녀니이이이임!!”
“성녀님께서 이 땅에 돌아오셨도다!”
“우리 치킨교는 언제나 성녀님을 환영합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두 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 사이로 번쩍번쩍 빛나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
분명 멀쩡해 보였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쓰레기조차 버리지 않는, 양식 있고 교양 넘치는 시민들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미친 사이비 광신도가 되어버렸잖아?’
거기다 치킨교는 또 뭔가.
그가 들어본 종교 중에 가장 하찮고 비정상적이었다.
나비가 떨떠름해 하는 사이, 마차는 시가지를 지나 공작성을 향해 달렸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각하.”
즐비한 고용인들이 성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안색이 좋아 보였다.
공포심이나 두려움에 굴종하는 자세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자부심마저 보이는 것이…….
‘정말로 멀쩡한 세계군.’
나비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냥 아까 본 사이비 광신도들이 이상한 거였나. 하긴, 사람이 여럿 모이면 이상한 자들이 나올 수도…….’
소수라기엔 조금 다수였지만.
조금 다수라기엔 거의 전체였지만.
나비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아가씨의 첫 번째 종! 이 레디안 디에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갑자기 웬 미친놈이 등장했다.
휘리리릭 돌며 멋진 포즈로 루아티샤의 앞에 선 붉은 머리가 외쳤다.
“아가씨의 이 가련한 첫 번째 종에게 아가씨의 머리를 열두 갈래로 땋아 빙빙 돌려 꽃처럼 묶은 후, 나머지 머리에는 아가씨를 생각하며 만든 이 보석 머리핀을—.”
“응, 안 돼. 돌아가.”
“너무해애애애애!”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댕미친놈이었다.
‘……이 세계, 정상적인 세계가 맞는 건가?’
다른 의미의 종말이 찾아온 세계가 아닌지.
나비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 * *
그날 밤.
파에라톤 직계들의 귀환을 기념해 만찬회가 열렸다.
가신을 비롯한 파에라톤의 가솔들 모두가 이날 이때만을 기다린 모양이다.
만찬회가 아니라 황궁의 파티 같았다.
“이거 진짜 맛있다.”
채리아는 초콜릿 퍼지를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아티샤가 흐뭇하게 웃으며 푸딩 접시를 밀어주었다.
“그치? 이 푸딩도 먹어 봐.”
“와, 이렇게 맛있고 탱글한 푸딩은 처음이야. 나 푸딩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푸딩을 좋아해서 아빠가 황금 레시피를 개발했거든.”
“고, 공작님께서?”
채리아는 놀란 눈으로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보았다.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압살시킬 것처럼 카리스마 있는 남자.
저런 남자가 푸딩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질투 나네. 왜 이 초콜릿 퍼지에 대해선 안 말해줘?”
그때, 시드리한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초콜릿 퍼지는 내가 주인님을 위해 개발한 레시피인데.”
“시드도 참. 어휴, 그래. 아주아주 달콤한 게 진짜 최고야.”
루아티샤의 말에 시드가 미소 지었다.
“더 달콤한 것도 줄 수 있는데.”
“새 레시피 만들었어?”
“응.”
대답과 동시에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입술에 쪽, 하고 입술을 부딪쳤다.
그러곤 살짝 입술을 떼더니 눈매를 가늘게 휜다.
“주인님 한정 스페셜 레시피.”
“야.”
루아티샤가 새빨개진 얼굴로 시드리한을 밀어냈다.
하지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정말 저 커플질은…….’
채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번이나 직관했지만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나름 보기 좋네.’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의 키갈 충격요법으로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루아티샤와도 사이가 꽤 좋아졌다.
색안경을 벗고 보니 루아티샤는 제법 괜찮은 여자애였다.
친구하고 싶을 정도로.
‘후, 친구를 위해 자리를 피해줘야지.’
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살짝 취기가 올라서. 바람 좀 쐬게.”
“같이 갈까?”
루아티샤의 물음에 채리아는 고개를 젓곤 속삭였다.
“넌 남친이랑 있어. 나 일부러 자리 피해주는 거니까 마음 놓고 키갈해.”
루아티샤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채리아는 피식 웃고 만찬회장을 나왔다.
달빛이 아스라하게 회랑을 비췄다.
술기운도 알딸딸하게 올라서 찬 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넓고 아름다운 파에라톤 공작성은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한참 구경하던 채리아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이건 뭐지? 책?”
책보다는 직접 쓴 일기장 같았다.
표지를 넘기자 일기장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