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9)화(330/353)
외전 9화
말이 저절로 통하는 것처럼 이곳의 글자 역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클라티에.”
이름을 정확히 읽은 채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 같은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누구지? 여기에서 일하는 하녀의 이름인가?”
하긴, 고용인 숙소도 성 안에 있을 정도니 그럴 수 있다.
“근데 일기장이 왜 여기 있지? 하녀가 청소하다가 잠깐 두고 잊었나?”
채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채리 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채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안나가 도톰한 외투를 든 채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채리아는 저도 모르게 일기장을 뒤로 숨겼다.
“여기 계셨군요. 북부의 바람은 날카로우니 방심하면 안 됩니다.”
“고마워.”
“감사 인사는 아가씨께 드리세요. 채리 님께서 성에서 길을 잃거나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 말에 채리아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루루는 리한이랑 잘 놀고 있어?”
“……네, 아주 행복해 보이십니다.”
그렇게 말하는 안나의 얼굴에는 아주 따스한 미소가 가득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채리아가 입을 열었다.
“근데 안나.”
“네, 채리 님.”
“혹시 클라티에라는 사람 알아?”
멈칫.
안나의 발걸음이 멎었다.
채리아를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은 항상 온화했던 것과 달리 차가우리만치 날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
“그 이름을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어? 어— 그냥 여기에 오면서? 북부까지 오는 길에 얼핏 들었던 거 같기도 해서…….”
채리아는 몸을 움츠리며 변명했다.
안나가 이런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당황했다.
“……그렇군요. 그 이름은 언급만으로도 입이 더러워지니 그냥 잊는 게 좋겠습니다.”
“으응…….”
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티에라는 하녀가 뭐 도둑질 같은 거라도 해서 쫓겨났나?’
엄청 비싼 물건— 예를 들면 공작가의 가보를 훔치다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날카로운 반응 아냐?’
아까는 정말 취조라도 당하는 줄 알았다.
‘……대체 뭘까.’
채리아는 외투 안에 감싼 딱딱한 일기장의 감촉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 * *
“……해서 구휼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응, 좋아. 내 휴가 동안 다들 고생 많았어.”
루아티샤는 흐뭇하게 자신의 보좌단을 바라보았다.
디에르 자작과 옐로체, 그륀드 그리고 피안크.
‘다들 일 하나는 확실하게 잘한다니까.’
“그렇다면 상으로 아가씨와 함께 휴가를 갈 수 있는 특권을—.”
“안 돼.”
디에르 자작의 주접을 칼차단한 루아티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 하나는, 말이지.’
그나저나 간만에 레드와 옐로, 그린과 핑크를 보고 있자니 어딘지 허전했다.
그 마음을 읽은 것처럼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녀님.”
칸도르 백작이 아들인 아즐과 함께 들어왔다.
루아티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느슨해진 전대물에 블랙과 블루의 등장이라.
오랜만에 완전체가 다 모였다.
“어서 와, 칸도르 백작. 맡긴 일은?”
“여기 보고서입니다.”
루아티샤는 빠르게 보고서를 읽어내렸다.
칸도르 백작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공작성에 특이한 일이 벌어졌더군요.”
“특이한 일?”
“황태자뇜과 가족분들의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방금 ‘황태자님’의 발음이 좀 이상하지 않았어?”
“착각이시겠지요.”
칸도르 백작이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했다.
원래부터 기백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 루아티샤도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시드랑 우리 가족들이랑 사이좋으면 좋은 일이지. 특이한 일이라고 할 것까지 있어?”
“공작 각하께서 황태자뇜한테 성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공녀님과 황태자 놈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었던 적까지 있지 않습니까.”
“……역시 ‘황태자님’ 발음을 이상하게 하고 있잖아! 거기다 은근슬쩍 ‘황태자 놈’이라고 했지!”
루아티샤가 버럭 성을 냈다.
“이 늙은이가 이제 기력이 다 쇠해서 발음조차 새나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칸도르 백작의 허리는 꼿꼿하다 못해 나무토막 같았다.
루아티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 가족들이랑 시드는 남부에서부터 사이가 좋았어.”
“그게 정말입니까?”
무뚝뚝한 피안크까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하긴, 루아티샤 본인도 가족들이랑 시드랑 잘 지내기 시작할 땐 얼마나 놀랐던가.
“응, 드디어 내가 독립할 때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러니까 사위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거고.”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루아티샤는 수군거리는 보좌들의 반응을 대강 넘기며 보고서의 페이지를 훑었다.
보고서에는 채리아와 나비의 발견 지점에 대한 조사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흠.”
루아티샤가 다 읽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에 칸도르 백작이 말했다.
“차원 이동이라는 것부터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신원미상의 존재와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뭐 그렇게 가깝게 지냈다고.”
“아즐이 그러던데요. 아가씨께서 직접 병간호를 하시고 심신의 안정을 위한 인테리어도 꾸며주셨다고.”
“……동물 인형 몇 개 가져다 놓은 것 가지고 인테리어라니…….”
어이가 없었다.
루아티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알아? 이 세계를 구할 용사가 차원을 이동해서 나타난 것일지?”
“아니,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제 겨우 상황을 판단해 가는 것 같던데.”
“상식적으로 그렇게 적응 기간이 필요한 자들이 이곳에 대해 뭘 안다고 세계를 구원하겠습니까.”
“아가씨는 가끔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신다니까요.”
“…….”
보좌들의 말에 루아티샤는 입을 딱 다물었다.
어쩐지 시드리한이 노예로 이곳에서 처음 지냈을 때가 생각 났다.
“혹시 망국의 왕자인 거 아니야? 아님 타 대륙 황자라거나?”
“아니, 왜 왕자나 황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암시장 경매에 나옵니까.”
“아가씨는 가끔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신다니까요.”
그때도 정확히 같은 말을 들었다.
루아티샤가 입술을 삐죽였다.
“시드가 황자라는 건 내가 맞았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아닐 겁니다.”
옐로체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륀드가 장난스레 윙크를 하며 그 말을 받았다.
“우리의 세계는 공녀님께서 구하셨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루아티샤의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신뢰 가득한 눈빛.
루아티샤가 볼을 긁적였다.
“……뭐, 나 혼자 구했나. 다 같이 구한 거지.”
머쓱하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당차게 굴 때는 그렇게나 자신만만해하시면서.’
‘막상 이렇게 칭찬받으면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이 어렸을 때와 똑같네.’
“그으럼요! 아가씨께서 ‘힘을 합쳤다’고 인정하신, 아가씨의 첫 번째 종, 이 레디안 디에르! 언제나 아가씨를 도와서, 아가씨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흥분한 디에르 자작이 멋진 포즈를 취하는 때였다.
“으아, 저게 바로 변태?”
문간에서 채리아가 기겁한 얼굴로 디에르 자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리, 무슨 일이야?”
“아, 내가 이상한 걸 발견해서…….”
“뭔데?”
“이상한 책인데…….”
루아티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채리아에게로 다가갔다.
채리아가 묘한 얼굴로 속삭였다.
“근데 저 사람은 잘생긴 얼굴을 대체 왜 저렇게 쓰는 거야?”
“으응, 변태라 그래.”
“너무햇!”
디에르 자작이 원망스러운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차가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아가씨도 멋지십니다.”
“…….”
괜히 아레스가 두 살 때 마물을 잡았다며 설레 했던 사람이 아니다.
루아티샤는 변태에게 더는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근데 저 사람 진짜로 노예야?”
“응?”
“아니, 내가 살던 곳에는 노예나 종 같은 건 없었거든.”
채리아가 루아티샤와 함께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사람은 모두 평등한데 노예 취급하다니 끔찍해.”
“디에르 자작은 그런 게 아니라—.”
“리한도 루루의 노예였다며? 루루가 불법 암시장에서 경매로 사 왔다고.”
채리아가 몸을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루루, 이건 내가 친구라서— 널 좋아해서 하는 말인데. 꼬아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
“그렇게 다른 사람을 노예 취급하는 거, 우리 세상에서는 진짜 상식 이하의 수준 낮은 짓이야.”
루아티샤가 빤히 채리아를 바라보았다.
채리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루아티샤의 시선이 묘하게 자신을 비껴 나가 있었다.
“내 말 이상하게 들은 건 아니지? 근데 잘못한 건 고치는 게 맞는 거니까. 모두가 평등한데 자신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더 없어 보이는 짓이니까…….”
채리아가 멍한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루아티샤의 눈은 그녀를 살짝 비낀 채였다.
[돌발 퀘스트 발생!]루아티샤가 보고 있는 건 허공에 나타난 메시지창이었으니까.
* * *
북부 특유의 높은 하늘이 유독 맑고 화창했다.
루아티샤는 나비의 등을 꾹꾹 밀었다.
“자, 산책 시간이야. 매일매일 산책하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자자, 산책하면서 바람도 쐬어야 완쾌할 수 있어.”
“……하아, 그만 밀어. 내가 알아서 걸을 테니까.”
나비의 말에 루아티샤는 눈을 반짝 떴다.
또 한참을 씨름해야 겨우겨우 나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웬일이지?
〈나비〉를 산책시킵니다.
1000캐시 증정!
루아티샤는 흐뭇하게 알림창을 바라보았다.
슬슬 나비가 산책에 익숙해질 때도 되긴 했다.
“오늘은 동쪽 후원으로 가자.”
루아티샤는 동쪽 후원으로 가서 열심히 나비를 산책시켰다.
“이 꽃은 흑사병 치료제의 원료야.”
“이딴 풀떼기가?”
나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대꾸도 안 했을 텐데.’
몸뿐만 아니라 마음 속 화도 가라앉은 모양이다.
완전 억지로 나온 티 팍팍 내며 싫은 기색 풀풀 풍겼던 전과는 달랐다.
지금은 툴툴거리고 안 내키는 척하면서도 루아티샤의 말에 다 대답하지 않는가.
‘역시 동물 친구들 인형이 큰 역할을 해준 걸까?’
문을 열 때마다 햄찌 인형을 안고 있었던 거 보면 의외로 그런 걸 좋아할지도 모른다.
‘……물론 안고 있었다기엔 햄찌 인형이 좀 많이 짜부되긴 했는데.’
“이 꽃의 이름은 뭔데?”
어쨌든 나비가 먼저 이런 걸 묻다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꽃지난.”
“꽃지난?”
“꽃길이 지나쳐서 난감하다.”
“……?”
나비가 해괴한 것을 들은 표정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루아티샤는 피식 웃었다.
“혹시 알아? 앞으로 네 앞길에도 꽃길이 가득할지?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
나비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하긴, 수십 번의 회귀를 반복하며 온갖 절망만 겪었던 그에게 꽃길이라는 말은 허황되게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앞일은 또 모르는 거잖아?”
루아티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비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이 머리가 꽃밭인 여자애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이딴 위로조차 안 되는 허접한 말 따위, 짜증만 불러일으킬 뿐인데.
하지만, 수십 번의 회귀를 반복해도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다.
이 여자애를 만날 것도 몰랐다.
전혀.
“너.”
나비가 루아티샤에게 다가갔다.
그의 발 아래에서 파삭거리며 꽃잎이 뭉그러졌다.
달콤한 꽃향기가 물씬 풍겼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나비가 루아티샤에게 허리를 굽혔을 때였다.
콰앙!
차디찬 얼음 장벽이 나비를 밀쳐냈다.
“너, 뭐냐?”
시드리한이 차가운 얼굴로 나비를 노려봤다.
순간적인 기습에도 안정적으로 착지한 나비가 싸늘한 얼굴로 시드리한을 노려봤다.
“너야말로 누군데?”
“나?”
시드리한이 픽 웃었다.
“주인님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