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0)화(331/353)
외전 10화
당당한 선언에 후원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비가 고개를 왼쪽으로 까딱였다.
“그래서?”
“뭐?”
“얘 남편이어서, 뭐.”
나비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비는 루아티샤의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머리카락에 붙은 나뭇잎을 떼주는 것도 못 참을 만큼 사이가 위태로운가 보지?”
나비가 루아티샤의 머리카락에 묻은 나뭇잎을 떼어내며 피식 웃었다.
“고작 이 정도도 못 참고 분노하는 건 의처증 아닌가?”
“…….”
“얘를 향한 믿음이 고작 그 정도뿐인 건가? 아니면—.”
나비의 시선이 시드리한을 비껴 루아티샤에게로 향했다.
검은 눈동자 안에 놀란 표정의 루아티샤가 비친다.
“그것밖에 안 되는 관계인 건가.”
으득.
시드리한의 잇새에서 살벌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랏빛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감히 루아티샤와 나의 관계에 대해 함부로 입에 담지 마.”
“왜, 찔려서?”
“설마. 더러운 벌레 따위가 내 소중한 부인한테 닿으려 해서 짓눌러 죽이려던 것뿐인데.”
시드리한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내 주인님은 벌레를 혐오하거든.”
“…….”
나비의 눈매가 깊게 가라앉았다.
두 남자가 뿜어내는 기세에 나뭇가지가 부딪치며 위태롭게 우짖었다.
평화로웠던 후원에 불온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아, 이런.’
루아티샤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피부를 찌릿찌릿 자극하는 살기가 장난 아니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아니나 다를까 나비가 이를 드러냈다.
“이런 안락한 세상에서 편하게 살아온 놈 따위가 날 어떻게 한다고?”
“짓눌려 죽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려서 죽여줄까?”
파지직.
나비의 곁으로 작은 번개가 쳤다.
동공까지 훅 좁아진 게 그냥 투닥거림으로 끝날 거 같지 않았다.
루아티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 빡쳤는데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까?’
시드리한은 자신의 말을 잘 듣겠지만, 나비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말을 절대 듣지 않는 사람의 분노를 한순간에 가라앉히는 방법 같은 건 아주 잘 알고 있다구!’
네 살 응애 때부터 해왔던 일이니까!
루아티샤는 멋지게 두 남자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루루 때문에 싸우지 마아!”
루아티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루루가 미안해!!”
루아티샤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얼굴로 눈가를 훔쳤다.
명연기를 펼치는 안면 근육과 달리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루아티샤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이 진짜 나온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울먹거렸다.
“전부 다 루루가 너무 귀여운 탓이야……!”
“…….”
“……!”
“두 사람이 루루를 두고 싸우다니. 루루의 귀여움이 죄야.”
“…….”
“……!!”
나비가 벙찐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수십 번의 회귀로 마모되어 버린 그가 이런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더 황당한 건 시드리한 놈이 두근거리는 얼굴로 심장을 부여잡는 모습이었다.
커플의 공격(?)에 어느새 나비의 주변에 번쩍거리던 번개도 파스스 흩어져버렸다.
‘후후, 성공했군.’
루아티샤는 드디어 쥐어 짜낸 눈물을 뿌듯하게 닦았다.
새끼손가락을 꼿꼿이 든 채.
‘이건 무려 익시온과 아레스에게도 통했던 비기 중의 비기라구!’
바로 어이없음으로 분노조차 잊게 만들기!
진한 현타에 화내는 것조차 바보 같이 느껴지게 만드는, 아주 대단한 기술이었다.
“뭐야, 또라이인가.”
중얼거린 나비가 뒤를 돌았다.
항상 날카롭던 뒷모습조차 어째 어벙해 보이는 것이 충격이 엄청났던 모양이다.
‘흥! 공작성의 평화를 지킨, 나의 눈물겨운 노력도 모르면서!’
루아티샤는 입을 삐죽이곤 나비를 불렀다.
“나비야.”
나비는 무시할 것처럼 계속 걷다가 결국 루아티샤를 돌아보았다.
“……왜.”
“내가 저번에 말했지? 혹시라도 나한테 집착하면 안 된다. 나는 임자 있는 몸이거든.”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팔짱을 척 꼈다.
“의처증 걸린 여우 같은 남편 달래주는 게 내 삶의 낙이라서.”
시드리한이 감동 받은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뺨을 수줍게 붉히고 눈빛은 멍한 게 누가 봐도 다시 반한 것 같았다.
“……진짜 미쳤나.”
나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놈은 방금 내가 의처증 운운할 때 불같이 화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대체 왜 설렌 거지?
아니, 이유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역시 이 세계는 다른 의미의 종말을 맞은 게 분명해.’
나비는 못 볼 걸 봤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았다.
그냥 무시하고 가던 길이나 갈걸.
* * *
(염병질에 질려버린) 나비가 떠나자 후원에 남은 건 (염병) 커플뿐이었다.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의 팔근육을 느끼며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얘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섹시하냐. 힘주지도 않았는데 근육 딱딱한 것 좀 봐. 손등에 핏줄도 진짜 좋다…….’
팔짱 낀 김에 열심히 사심이나 채우는데 어째 시드리한의 눈빛이 이상했다.
“왜 그래?”
“혼날 줄 알았어.”
“나한테?”
“응.”
“……? 왜?”
시드리한은 의문 가득한 루아티샤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내뱉었다.
“환자랑 싸웠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상식적인 이유에 루아티샤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었다.
“말했잖아. 의처증 걸린 여우 같은 남편 달래주는 게 내 삶의 낙이라고.”
“……널 믿지 않는 게 아니야.”
‘그게 신경 쓰였구나.’
항상 여유 있는 시드리한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시드리한이 여유를 못 부리는 순간은 언제나 같았다.
바로,
“알아. 질투하는 거잖아.”
질투할 때.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귓가에 비밀처럼 속삭였다.
“난 시드가 질투할 때 너무 귀엽더라.”
물론 두 번 질투했다간 후원이 날아가다 못해 초토화되었겠지만.
“넌 정말…….”
시드리한이 중얼거리며 루아티샤의 어깨에 머리를 푹 기댔다.
마치 투정 부리는 듯한 애교에 루아티샤는 가슴이 간질거렸다.
평소 시드리한이 잘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나비를 신경 써?”
“……나랑 비슷하기도 하잖아.”
나비도, 자신도 상처 입은 채 루아티샤에게 구해졌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 채 날을 세우면서도, 루아티샤의 온기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것까지 전부 똑같다.
‘물론 너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루아티샤는 워낙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이라 누구한테든 품을 내어준다.
나비에게도 마찬가지다.
다친 데다가 아무 연고도 없으니 그냥 도와줄 뿐이다.
‘……나를 그 지옥 속에서 구해줬을 때도 아무 뜻도 없었고.’
그때는 루아티샤의 저의가 뭘까 의심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루아티샤에게 흑심이 있어서 자신을 구해준 거였으면 좋겠다고.
‘만약 저 새끼가 저주에라도 걸려 있었다면…….’
시드리한은 고개를 들어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곧장 눈이 마주친다.
그 투명하고 맑은 푸른 눈동자.
‘너는 성심을 다해 그 저주를 풀어주려고 했겠지.’
그냥 아파하니까.
고통스러워하니까.
안쓰러워서.
고작 그런 이유로.
‘나한테 그랬듯이—.’
“비슷하다고?”
루아티샤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고운 이마가 살짝 찡그려진 채다.
“너랑 쟤랑?”
“…….”
“비슷하다니, 대체 어디가?”
루아티샤는 진짜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단 하나의 공통점도, 티끌만 한 유사성도 찾지 못했다는 듯이.
그녀에게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행동의 의미도, 거기에 담긴 마음도.
전부.
‘아.’
이럴 때마다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이 여자는 알까.
“내 주인님.”
이러니까 루아티샤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내 멋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복종할 수밖에 없다.
단 한마디로 자신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는 여자.
“시드, 오늘 왜 그래? 묘하게 애교가 많네.”
루아티샤가 자신에게 맞붙어 오는 시드리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시드리한은 눈을 감으며 그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을 때마다 기분 좋으면서도, 발밑에서부터 음험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당장 루아티샤의 허리를 낚아채 그녀를 깊게 느끼고 싶다.
이곳이 탁 트인 후원이라는 것도 잊은 채, 오직 이 여자만으로 감각을 채우고 싶다.
“귀여워.”
루아티샤는 그런 제 생각도 모른 채 말갛게 웃었다.
‘……여기서 그 새끼가 나뭇잎 떼줄 때 왜 놀란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냐고 물으면 질릴까.’
아무래도 의처증인 게 분명하다.
루아티샤는 이렇게 투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단 한 번도 헷갈리게 한 적 없는데도.
‘부족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권력이나 재물, 황태자위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저 루아티샤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용병단에 있을 때 네미스와 바렌은 그에게 제발 욕심 좀 가져보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루아티샤에게만은 언제나 끝 모를 욕심이 인다.
아무리 루아티샤가 올곧은 마음을 내보여도 갈증이 난다.
더 바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 여자의 가장 깊은 곳까지.
“그나저나 시드.”
루아티샤가 살짝 몸을 떼며 물었다.
“아까 은근슬쩍 내 남편이라고 한 거야? ‘주인님의 남편’이라니! 우리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날 유부녀로 만들고!!”
“너도 날 남편이라고 했잖아. 날 유부남 만들었으면서.”
“그거야 네 편 들어준 거지!”
루아티샤가 툴툴거렸다.
“근데 주인님이랑 남편이라는 말이 한 데 묶이니까 좀 이상했어. 부부는 동등한 사이잖아.”
“그래서 싫어?”
시드리한의 말에 루아티샤가 입을 다물었다.
약간 침묵한 그녀가 새침하게 말했다.
“짜릿하다는 뜻이었어.”
흰 뺨이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설마 눈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있었던 게 내가 했던 말 때문이었나.’
그 새끼한테 설렌 건가 싶어서 질투했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시드리한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루아티샤가 변명을 했다.
“내 취향이 이상한 게 아니라, 원래 그, 어? 원래 상반된 것이 합쳐질 때 오는 매력이 있어. 내가 이상한 게 절대 아냐!”
“빨리 결혼하고 싶다.”
시드리한이 루아티샤를 푹 끌어안고 속삭였다.
“남편으로서 취향 이상한 주인님 만족시켜드리게.”
“…….”
루아티샤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먹음직스럽게 붉어졌다.
시드리한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뭘 상상한 거야?”
* * *
나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감이 예민하게 발달한 그로서는 한참 멀어진 후에도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의 염병첨병 커플질 소리가 들렸다.
‘아주 요망하게 구는군.’
루아티샤가 왜 여우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나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딴 여자, 뭘 하든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때였다.
후원 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를 발견한 여자가 반가운 얼굴로 쪼르르 다가왔다.
“너도 산책 중이야?”
“…….”
“우연이네. 나도 산책 중이었거든.”
“…….”
“이렇게 둘만 있는 건 처음이지? 왠지 어색하다. 헤헤.”
채리아가 멋쩍게 웃었다.
그녀는 열심히 나비를 따라서 걸었다.
“그래도 우리 둘 다 이곳이 낯선 타지 사람이잖아.”
“…….”
“잘 지내보자. 난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져서 무서웠거든.”
“…….”
나비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채리아는 씩씩하게도 기죽지 않았다.
‘원래 사람을 곁에 두는 성격이 아니라고 들었는걸.’
시중을 들기 위해 말을 건 고용인들조차도 나비에게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 점도 묘하게 매력적이구.’
나비는 시드리한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독한 늑대 같은 면모가 있었다.
힐끔 그를 바라본 채리아가 입을 열었다.
“근데, 루아티샤한테는 그만 관심 갖는 게 좋겠어.”
멈칫.
그 말에 나비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이제야 날 보네.”
채리아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