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1)화(332/353)
외전 11화
“루루는 리한이랑 약혼한 사이라고 하잖아.”
“…….”
“물론 당황스럽겠지. 약혼자까지 있으면서도 루루는 너한테 지나치게 친밀했잖아?”
채리아가 나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근사근 속삭였다.
“루루는 원래부터 잘 그랬대.”
“……뭐?”
“원래부터 이 남자, 저 남자한테 좀.”
“……네가 어떻게 알아?”
의심 가득한 나비의 눈빛에 채리아는 울컥했다.
‘나는 도와주려는 건데! 꼭 질투해서 거짓말 지어내는 사람 보듯이……!’
“전부 다 적혀 있었어! 일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울컥해서 와다다 쏟아내던 채리아가 멈칫했다.
크흠, 하고 헛기침한 그녀가 이어 말했다.
“괜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다간 너만 다칠 거야.”
“다친다고? 내가?”
나비가 픽 비웃음을 흘렸다.
채리아는 굴하지 않았다.
루아티샤와 달리, 자신은 진심으로 이 남자를 도와주려고 하고 있으니까.
“괜히 루루의 어장에 농락당해서 마음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야.”
나비는 어이가 없었다.
이 여자애는 무슨 치정 싸움이나 상상하고 있는 건가.
한숨이 나올 정도로 평화롭고 온건한 망상이었다.
그딴 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
“솔직히 옆에서 보면 보이는걸. 너 루루한테 관심 있잖아. 그런 애를 사랑할수록 너만 다쳐.”
채리아가 진심 어린 가련한 눈으로 나비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왜 너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지?”
나비가 싸늘하게 말했다.
한가한 망상이나 하고 있는 여자애한테 일일이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나비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사랑이라고?’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딴 시시하고 하찮은 감정 놀음에 발목이라도 잡힐 것 같나?’
몇 번이고 시간을 반복하면서 나비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사랑 같은 건 그저 이기심의 한 발로다.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서 아닌 척 다른 이름을 붙였을 뿐인.
‘내가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건 그딴 것 때문이 아니야.’
나비는 앞일을 다 알았다.
수십 번이나 회귀를 반복하다 보면 앞일 따위는 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알아? 앞으로 네 앞길에도 꽃길이 가득할지?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앞일은 또 모르는 거잖아?”
단 한 번.
그 수많은 회귀 중에서 오직 이번만은 달랐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한 여자가 나타났다.
꽃잎처럼 부드러운 분홍색 머리카락.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깔의 푸른 눈동자.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그래서.
“인간형 마물인가?”
“이눔아, 할미 보고 마물이라니!”
그만큼 같은 삶을 반복했으면서도 앞일은 또 몰랐다.
그리고 그 유일한 변수는—
‘루아티샤.’
나비는 수십 번의 반복 끝에 겨우 발견한 이 변수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뿐이다.
그때였다.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구나.”
등 뒤에서 채리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째서인지 아까와 달리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꼭 힘이 실린 것처럼.
나비가 미간을 찌푸리고 뒤를 돌았다.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채리아가 활짝 웃으며 나비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는 너랑 같은 이방인이니까. 널 돕고 싶어. 응?”
채리아에게서 달큰한 향기가 풍겼다.
그녀가 몸을 나비 가까이 붙였다.
부드러운 살결과 나긋한 손길.
그녀가 나비의 팔을 끌어안는 순간.
타악—!
“꺅!”
거친 손길에 밀려난 채리아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든 채리아가 흠칫했다.
“……!”
“날 돕는다고. 네까짓 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는 꼭 무저갱 같았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대로 아득히 추락할 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눈동자.
나비는 바들바들 떠는 채리아를 벌레 보듯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뚜벅, 뚜벅.
그가 멀어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그러나 채리아는 밀쳐진 그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
고개 숙인 그녀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너무하네.”
고개를 든 그녀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래도 어차피 넌 내 뜻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어.”
키득 웃는 채리아의 갈색 홍채에 연둣빛 안광이 어렸다.
* * *
“그래서.”
아빠가 내 몫의 케이크를 잘라주며 말씀하셨다.
“황태자 전하와 그 손놈이 혈투를 벌였다던데.”
손놈은 나비를 말하는 거였다.
나는 아빠가 잘라주신 케이크를 냉큼 받아먹으며 답했다.
“안 벌였어요.”
이번엔 익시온이 음료를 밀어주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가 그놈을 완전 묵사발 만들었다던데?”
“안 만들었어.”
“황태자 전하는 입이 귀에 걸린 채 다니고 있어. 손놈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고.”
제온이 내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주며 말했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 명확하잖아?”
“역시 황태자 전하께서는 이 나라를 이을 재목이시군.”
“그래, 괜찮은 남자가 없긴 하지만 그나마 눈에 차는 건 역시 황태자 전하뿐이지.”
“……?”
할아버지와 아레스까지 합세해서 시드를 칭찬하다니?
‘함정 같은데.’
무엇보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황태자 전하’라고 존칭을 꼬박꼬박하는 게 진짜로 수상했다.
그간 시드가 처가살이하면서 받았던 특별대우(?)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는 사이에도 가족들은 여전히 시드 편을 들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의 완승이로군.”
“묵사발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조져놨어!”
‘……설마 이거 시드가 폭력적이라고 몰아가려고 밑밥 까는 건가?’
웬만큼 편들어야 사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꿍꿍이가 있는 거다.
‘솔직히 우리 가족들은…… 시드에게 박한걸.’
“안 싸웠다니까요. 시드가 애도 아니고 왜 손님이자 환자를 상대로 싸워요.”
그러자 가족들이 멈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특히 익시온과 아레스의 표정이 볼만했다.
‘후훗, 꿍꿍이를 들킨 자들의 반응이군! 하지만 난 이미 완벽하게 간파했다구!’
그런데.
“……싸웠을 텐데? 솜뭉치가 ‘루루가 귀여운 탓’이라면서 두 사람을 말렸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 내 동생이 나와의 소중한 추억을 다른 놈팡이들로 채웠을 리가 없잖아.”
익시온과 아레스가 동시에 날 향해 물었다.
“그렇지?”
“…….”
침이 꼴깍 넘어갔다.
위험 경보가 땡땡땡 울렸다.
나는 본능에 몸을 맡겼다.
“……시드랑 나비는 피의 사투를 벌였어!! 그야말로 피의 잔혹사였지!!!”
“역시 그렇지?”
“응!!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지고 피바람이 폭풍처럼 불었어!!!”
“저런. 큰일이었겠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절대! 절대 말리지 않았으니까!!!”
아레스와 익시온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머머머머!”
문간에서 엄청나게 즐거워하는 탄성이 들렸다.
돌아보니 광대를 한껏 올린 낸시와 틸다, 로라가 서 있었다.
“아가씨를 두고 두 남자가!!”
“세상에, 세상에!!”
“이런 적은 처음이지?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들이나 황태자 전하께서 쳐다만 봐도 꼬리 말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무려 피의 사투를!!!”
“엄머머머머!!”
꺅꺅 세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은 채 티룸을 나섰다.
“아니, 그거 아니야!”
내가 뒤늦게 손을 뻗었으나 세 사람은 이미 복도 저 끝을 향해 달려간 후였다.
곧이어 복도 저 끝에서 꺅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로판 세계의 하녀들답게 다들 러브 스토리에 환장을 했다.
특히나 삼각 관계라면 사족을 못 썼다.
“삼각형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도형이랍니다!”
몽롱하게 말하던 언니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물론 로판 독자인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뭐, 됐나.’
언니들이 잠시라도 즐거워하면 그걸로 됐다.
어차피 헛소문이라 곧 사라질 테니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자리에 앉았다.
당 충전이나 하자.
이때의 나는 전혀 몰랐다.
나의 안일한 대응이 불러올 엄청난 후폭풍을.
* * *
티타임을 마치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퀘스트창을 열었다.
지난번 채리아가 나한테 디에르 자작이 노예냐며 운운할 때 받았던 돌발 퀘스트였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독자님!
지금 설마 로판 독자로서 아무런 위화감도 못 느낀 건 아니겠죠?
꼬아서 듣지 말라고 하지만 꼬아서 안 들어도 그냥 시비인데요?
지금 독자님한테 수준 이하의 상식 없는 짓 한다고 하는 거 맞죠?
한 번 꼬지도 않은 완전 돌직구인데?
물론 내가 시비 터는 걸 못 느꼈을 리가 없다.
내가 채리아보다 로판 영애 화법에 능통할걸?
하지만 채리아는 얼마 전 독자님께 솔직한 사과를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비라니.
혹시 채리아는 이중인격자일까요?
오락가락하는 게 뒤늦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맛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요?
독자님께서 알아내 주세요!
-조건: 채리아의 정신 상태 체크하기
-보상: 5000캐시 뽑기권, 연계 퀘스트 〈???〉
“흠……. 아까 정원에서 채리아가 나비에게 접근했다고 했지?”
내 물음에 아무도 없었던 허공에 무언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응, 접근했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른하고 나긋한 목소리.
길고 견고한 팔이 야생의 표범처럼 우아하게 움직여 내 턱을 틀어쥐었다.
“이렇게, 아주 끈적하게.”
스륵, 키가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내 몸이 온통 그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세로로 길게 쭉 찢어진 동공이 가느스름하게 웃는다.
“나와 달링 사이처럼.”
“떨어져.”
나는 남자, 카인의 팔을 탁 쳐냈다.
카인이 억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해! 나는 달링의 부탁을 받고 알려준 건데!!”
“이런 걸 부탁하진 않았어.”
“그냥 그때 상황을 재현해줬을 뿐이야.”
“채리가 나비의 턱을 붙들고 귓가에 끈적하게 속삭였어?”
“아니? 이건 내가 달링한테 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카인이 윙크했다.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달링은 역시 내가 좋은 거구나.”
“아닌데.”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몸은 솔직하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재수 없는 영수도, 싸가지 없는 천족도 아닌 날 부른 걸 보면 분명해.”
“……니가 입을 열수록 후회만 되니까 그만 닥쳐.”
“음, 그 입술로 내 입술을 막아주면 닥칠지도?”
카인이 입술을 핥았다.
진짜…… 짜증 났다.
“주먹으로 막아줄까?”
“오, 그런 취향이야? 나는 시드 놈이랑 셋이 즐겨도 좋아.”
하.
진짜 후회되네.
‘하지만 사기를 체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채리아는 무슨 수를 써도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단 하나, 키야스에델이 소멸하기 전에 수를 쓴 게 아니라면.
해서 사기 전문가인 마족을 부른 거였다.
‘나비를 간호하면서 모은 아까운 캐시를 이놈 불러들이느라 털어 넣은 게 억울하긴 하지만.’
캐시야 나비자판기를 통해서 또 모으면 된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카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알아봤어?”
* *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비는 침대 위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뜬 채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랑 약혼한 사이라고.’
루아티샤 본인 입으로 남편이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약혼 사이라고 말했으니 틀림 없었다.
물론 그건 나비에게는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그는 윤리 의식이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아비규환 속에서 수십 번 생을 반복했다.
도덕적 관념 따위 다 사라졌다.
기실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에 비해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빼앗는 것 따위는 너무나도 온건한 행동이었다.
다만.
‘거슬려.’
이 여자한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 약혼자를 바라보던 얼굴이.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나비야, 팔 좀 들어 봐. 붕대 새로 감게.”
루아티샤는 무척 열심히 자신을 간호하고 있었다.
나비는 그 집중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알겠다.
이 얼굴은 아무런 사심도 없는 얼굴이다.
시드리한을 바라보는 눈빛과는 전혀 달랐다.
‘……정말 거슬려.’
루아티샤의 손이 나비의 겨드랑이와 옆구리를 스쳤다.
스친지도 모를 정도로 가벼운 손길이었다.
끈적하고 질척하게 달라붙던 채리아와 전혀 다른.
채리아가 건드릴 때는 그렇게나 불쾌했는데.
지금은 왜.
루아티샤의 손길이 멀어지려는 순간.
나비가 저도 모르게 루아티샤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
“아……!”
루아티샤의 몸이 반사적으로 그에게 기울었다.
놓친 붕대가 허공을 핑그르르 돌았다.
루아티샤가 겨우 침대를 짚고 몸을 지탱한 때.
“세상에……!”
열린 방문으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루아티샤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방문 앞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가족들과 시드리한, 공작성의 가신들, 하녀들뿐만 아니라—
‘티리엘? 자스민?’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야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자세가 꼭 헐벗은 나비를 덮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