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2)화(333/353)
외전 12화
* * *
‘대체 어떻게……?’
열린 문 앞에 서 있는 건 공작성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티리엘과 자스민, 클라우디아와 카멜리아.
아쉘타인의 쌍둥이들과 라파엘까지.
거기에—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
시드리한의 부모님까지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공작성에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거지?
그것도 응접실이 아니라 왜 이곳에—.
흔들리는 눈으로 사람들을 담는 루아티샤와 달리.
나비의 눈동자는 오직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시드리한.
온갖 감정으로 얼룩진 보랏빛 눈동자를 본 나비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어쩐지 거슬렸던 게 조금, 아주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다.
그때, 루아티샤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비는 반사적으로 그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았다.
“헉…….”
경악에 찬 신음성이 친구들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루아티샤가 당황해서 나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비는 루아티샤를 놓아주지 않았다.
“대체,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결국 분노에 찬 황제의 노호가 쩌렁쩌렁 울렸다.
힘으로 나비의 손을 떨쳐낸 루아티샤가 황급히 일어났다.
“폐하, 오해이십니다.”
그러나 황제의 눈에는 이미 보이는 게 없었다.
황제는 길길이 날뛰었고,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그 가장 뒤.
채리아가 남 일처럼 소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결국 내 뜻대로 움직여주잖아.’
논란의 주인공이 된 루아티샤를 보며 채리아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 * *
황제의 진노는 엄청났다.
대응접실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고성이 끊이지 않았다.
“내 아들과 함께 사는 집에 다른 남자를 불러들여 놀아나다니……!”
“……딸이 놀아나진 않았습니다. 딱히 즐거워 보이지 않았는데.”
“짐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헐벗은 남자와 침대 위에 함께 누워 있는 것을!!”
“……함께 누워 있진 않았습니다.”
“하! 그래! 누워 있는 남자를 루아티샤가 덮치는 모습이었지!!!”
파에라톤 공작의 사실 정정은 황제의 분노를 더 부추길 뿐이었다.
원래 파에라톤은 대화에 소질이 없긴 했다.
“이 꼴을 보게 하려고 내 아들을 처가살이시켰소?!”
“처가살이를 시키진 않았습니다. 본인이 하겠다고 한 거지.”
“제발 좀 조용히 하시오, 파에라톤 공작!”
“크흠, 공작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
황제는 어이없는 눈으로 타렌카 후작을 바라보았다.
사회성 없는 파에라톤 공작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정치 사교술이 뛰어난 타렌카 후작마저 이런단 말인가.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그렇지!
“손녀딸은 그저 환자를 치료했을 뿐입니다.”
“그게 치료하는 자세였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결국 황비가 중재에 나섰다.
“폐하, 일단 진정하시지요. 아가가 그럴 아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아이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미 그러지 않았소!! 내 아들을 두고 딴 놈이랑, 어?!”
“일단 아가의 말을 들어보고 난 뒤에—.”
“황비께서는 가만히 계시오! 다른 누구도 아닌, 황비와 짐의 아들에 대한 일인데 다른 이의 역성을 드는 것이오?”
황비의 눈이 샐쭉해졌다.
‘언제부터 아들을 그렇게 아꼈다고.’
후사를 두고 정치질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고 있는 게 어이가 없었다.
황비는 차분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생각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놈이 나타난 거야.’
* * *
소응접실.
루아티샤의 친구들은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재잘재잘 떠들며 까르르 웃던 것과 달리, 지금 소응접실 안은 조용했다.
모두 차만 꼴깍꼴깍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루아티샤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친구들의 눈치를 보았다.
‘다들 시드의 프러포즈를 도와줄 만큼 우리 사이를 응원해줬는데.’
친구들은 언제나 자신의 편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분히 상식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봐도 루아티샤가 부정을 저지른 상황.
‘친구들이 나를 멀리해도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역시 이런 오해 때문에 친구들을 잃고 싶진 않았다.
황제처럼 되지도 않는 변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 저기……!”
탁!
찻잔을 내려놓는 날카로운 소리가 루아티샤의 말을 막았다.
루아티샤가 흠칫하며 클라우디아를 바라보았다.
클라우디아는 미첼로인 후작가의 영애다운 고상한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역시 황태자 전하 편.”
“으으음, 나는 그래도 새로운 남자가 좀 더 끌리는데.”
“그치? 나도 황태자 전하 편이긴 한데, 또 새로운 남자가 궁금하긴 해.”
“너희 너무 줏대 없는 거 아니야? 당연히 황태자 전하 편을 들어줘야지!”
티리엘과 자스민의 갈대 같음에 카멜리아가 화를 냈다.
아쉘타인 쌍둥이들이 차에 설탕을 퐁당퐁당 넣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남자한테 관심 있어.”
“맞아. 왠지 연구 대상의 향기가 나거든.”
“물론 우리 루루보다 흥미로운 연구 대상은 아니지만.”
“혹시 손톱이랑 머리카락을 좀 더 얻을 수 있을까요?”
루아티샤는 눈을 깜빡이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이 반응은 뭐지?
“그래도 의리를 생각해서 황태자 전하를 지지해 드려야지!”
“아니, 전하를 지지하긴 지지하는데. 살짝 궁금해할 순 있잖아.”
“맞아. 솔직히 새로운 남자를 궁금해하는 건 여자의 본능이야.”
“루루랑 전하는 연애를 오래 했잖아.”
“그러니까 새로운 남자가 궁금한 거지!”
“그러니까 전하를 지지해야지!”
친구들이 열변을 토했다.
얼굴만 보면 다들 진지하게 사회 문제를 토론하는 것 같았다.
비록 내용은 이상했지만.
그제야 루아티샤는 상황을 깨달았다.
말 한마디 안 한 채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게 전부—
‘—삼각관계에서 누구를 응원할지였어?!’
어쩐지 긴장이 확 풀렸다.
친구들에게는 애초에 루아티샤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때였다.
“미안!”
채리아가 루아티샤를 향해 두 손을 모으며 외쳤다.
“내가 일을 곤란하게 만든 거 같아. 진짜 미안해, 루루.”
“……? 무슨 말이야?”
“나는 멀리서 온 루루의 손님들이라기에 빨리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 방에 같이 갔던 건데.”
채리아가 가련한 얼굴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설마 나비랑 둘이 침대 위에서 그러고 있을 줄은 몰라서…….”
“…….”
“워낙 리한이랑 사이가 좋았으니까. 나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어. 나비랑 루루랑 둘만 있을 때는 많았지만, 항상 치료한다고 생각했지 그럴 줄은…….”
“…….”
“진짜 미안! 내가 타이밍을 못 맞춘 거 같아. 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들켜서 루루가 곤란할 일도 없었을 텐데.”
채리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루아티샤의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 당황한 기색을 읽은 채리아가 숙인 고개 아래로 피식 웃었다.
‘미꾸라지처럼 어딜 빠져나가려고?’
이렇게 분위기 타서 어물쩍 넘어가는 꼴은 못 보지.
대놓고 루아티샤가 약혼자를 두고 꼬리친 사실을 짚어줬으니 이제 영애들도 실망할 거다.
“야.”
아니나 다를까,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채리아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너 뭐야?”
‘거봐.’
아까와 말투부터가 달라졌다.
하긴, 바람이나 피고 남자한테 꼬리치는 애랑은 누구라도 친구 하기 싫겠지.
“지금 나 무시하냐? 너 뭐냐고.”
자신을 밀치듯 건드는 손길에 채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노란 눈을 가진 붉은 머리의 여자가 코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냐니까?”
“어, 어?”
“뭔데 끼어드냐고. 진짜 기분 잡치게.”
포셰트 후작가에서 실제로 공주님 엄마를 두고 공주님처럼 큰 카멜리아는 할 말 못 할 말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그런 카멜리아를 말렸을 클라우디아가 이번에는 역으로 가세했다.
“당신, 말을 이상하게 하네? 꼭 루루가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그게, 사실이긴 하잖아요. 루루가 리한을 두고 다른 남자를 덮치고 있었으니까.”
“뭔 소리야?”
“루루가 그럴 리가 없잖아.”
“당연히 오해지?”
친구들의 두 눈동자에는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오해 따윈 하지 않은 것이다.
‘다들…….’
루아티샤는 괜히 가슴이 간지러웠다.
‘한결같이 나를 믿어주는—’
“쟤는 어떻게 황태자 전하를 어흥! 하고 덮칠지만 고민하는 애인데.”
‘……야.’
루아티샤는 뚱한 얼굴로 티리엘을 바라보았다.
감동이 다 날아갔다.
“하, 하지만 아까 다들 봤잖아요. 루아티샤가 나비를 덮치고 있는 걸!!”
“뭐, 삐끗하는 바람에 그런 포즈가 나왔거나 그렇겠지.”
“연구하다 보면 그런 우연은 심심찮게 나오지. 예를 들면 루루의 머리카락이 우연찮게 고대 성물에 들어간다거나.”
‘아니, 그 우연에는 확실히 의도가 있었잖아. 그냥 집어넣었으면서.’
루아티샤가 뚱한 얼굴로 우연인 척하는 쌍둥이들을 바라보았다.
채리아는 당황했다.
“아니, 그런 장면이 우연히 나오는 거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그것도 남자가 헐벗고 있었는데!!”
“야. 티 나니까 그만해.”
“그래.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단 말이야.”
“넌 대체 뭐야? 갑자기 루루의 친구라면서 공작가 사람도 아닌데 우리를 안내할 때부터 이상했는데.”
“좋았던 분위기에 훼방이나 놓고.”
짜증 내는 영애들의 모습에 채리아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뭐야. 다들 바보야?’
이렇게 떠먹여주는데도 루아티샤의 편을 들다니!
“그 남자 역시 루루를 좋아하는 거 같지?”
“아까 허리 안 놔주는 거 봤어? 막 황태자 전하 노려보면서.”
“그니까. 진짜 재밌더라. 새벽 축제 때도 생각나고. 왜, 그 이후는 가족들의 견제가 너무 심해서 영식들이 루루한테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했잖아.”
심지어 ‘중요한 이야기’라는 게 저딴 거였다.
채리아가 이를 갈든 말든 소녀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루아티샤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루루.”
“진짜로 그 잘생긴 남자애랑 썸 타는 거야?”
“몸도 엄청 좋더라. 복근이 그렇게 선명한 건 처음 봤어.”
“그 짧은 시간에 용케도 다 봤네. 역시 내 친구야.”
“나는 결혼하기 전에 살짝 다른 남자랑 놀아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초롱초롱한 친구들의 눈빛에 루아티샤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야. 뭔 썸. 그럴 시간에 시드 자빠트릴 궁리나 하지.”
“에이, 재미없게.”
“두 남자가 피의 사투를 벌였대서 기대했는데.”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지고 피바람이 폭풍처럼 불었다고 했지?”
“엄청난 삼각관계를 기대하고 왔건만. 떼잉, 쯧!”
친구들이 김샜다며 입을 내밀었다.
반면 루아티샤는 가슴이 선득해졌다.
“잠깐. 너희가 그걸 어떻게 알아?”
“……?”
소녀들이 의아한 눈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몰랐어? 사교계가 그 소문으로 아주 난리인데?”
“내기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어.”
“……뭐?”
“당연하잖아. 황태자 전하와 파에라톤 공녀의 열애설인데.”
“넌 무려 성녀이기까지 하잖아?”
소외된 채 질린 얼굴로 소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채리아가 얼굴을 확 굳혔다.
‘……성녀.’
어쩐지 견딜 수가 없었다.
루아티샤가 성녀라고 불리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슬렸다.
* * *
“하아…….”
루아티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소응접실을 나왔다.
친구들은 신나서 자기들끼리 열렬히 토론 중이었다.
‘다들 내가 시드를 좋아하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농담 삼아 저러고 노는 거겠지만.’
그래도 신경 쓰였다.
시드가 오해하진 않겠지만.
‘속이 상했을 텐데.’
황비 전하와 황제 폐하가 그 모습을 본 것도 걱정이었다.
아들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랑 그러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빠가 어떻게든……은 못하시겠군.’
아빠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일단 시드부터 찾자.’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 때였다.
“그러다 땅 꺼지겠다.”
들리는 목소리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주홍빛 머리카락의 청년이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뭐야, 라파엘. 너도 피의 사투 소문 듣고 치정 싸움 구경하러 왔어?”
탁.
라파엘이 가볍게 루아티사의 옆에 착지했다.
“그딴 시시한 싸움 구경하러 온 건 당연히 아니고.”
“그럼?”
초록빛 눈동자가 가만히 루아티샤를 담았다.
“……?”
“—확인하러 왔지.”
시드리한과 루아티샤의 사이에 어떤 남자가 끼어들었다는 말을 듣고, 둘 사이에 조금이나마 틈이 생겼을까 봐.
헛소문이라는 건 듣는 순간 알았으면서.
혹시, 어쩌면— 하는 마음이 도저히 사라지지가 않아서.
가라앉은 라파엘의 눈빛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루아티샤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그 모습 보고 실망했어? 다 오해야. 나는 절대—”
“실망 안 해.”
그 말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라파엘은 푸른 눈동자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실망도 기대가 있어야 하지.”
“뭐어?”
“기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실망하냐?”
그래, 절대 기대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틈이 생길 거라고.
어쩌면 루아티샤가 제게 그 틈을 내줄지도 모른다고.
“내가 그렇게 바람둥이로 보였어?!”
차라리 바람둥이였으면 싶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니가 별의별 짓을 하는 걸 다 봤잖냐.”
라파엘이 루아티샤의 머리를 꾹 눌렀다.
“난 너한테 절대 실망 안 해. 이미 본 게 너무 많아서.”
“…….”
“그러니까 안심해. 난 니가 무슨 짓을 하든— 양다리가 아니라 열다리를 걸쳐도 여전히 옆에 있을 거야.”
“……너,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말했지.”
루아티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여자애 머리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지.”
라파엘이 씨익 웃으며 손을 뗐다.
“걱정 마. 좋아하는 애한테는 안 그럴 테니까.”
“나한테도 그러지 말라고, 나한테도!”
따지던 루아티샤가 흠칫했다.
등 뒤에서 찌릿할 정도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뒤돌아본 루아티샤가 흠칫했다.
누군가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채리아?’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채리아가 어떤 의미로 대단한 성격이긴 했지만, 본인피셜 루아티샤를 이물질 취급했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은 없다.
깔보고 업신여기면서도 질시하는.
꼭 자신의 것을 다 빼앗아 갔다는 듯이…….
채리아에게서는 처음 보지만, 어쩐지 익숙한 표정.
햇빛 때문일까.
순간 채리아의 검은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꼭 금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