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3)화(334/353)
외전 13화
루아티샤는 놀라서 채리아를 다시 보았다.
채리아의 머리카락은 평소처럼 검은빛이었다.
아까 그 반짝임은 햇빛이 만들어 낸 신기루였다는 듯.
루아티샤와 눈이 마주친 채리아가 표정을 바꿔 투정 부리듯 말했다.
“루루, 네 친구들 사이에 나만 혼자 두고 나오면 어떡해. 어색해서 혼났잖아.”
가까이 다가온 채리아가 힐끔 라파엘을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날 버리고 나왔나 했더니 이 남자 때문이었어?”
“…….”
“루루, 너도 참 대단하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데…….”
라파엘이 미간을 찡그리며 ‘얘 뭐야?’하는 눈빛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아티샤의 두 눈은 여전히 채리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파라이바빛 눈동자가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채리아의 얼굴을 훑었다.
채리아가 왜 그러냐는 듯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내가 잘못 봤나?’
루아티샤가 채리아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라고 넘어가면 로판 독자가 아니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릇 로판 독자라면 사소한 떡밥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잘못 봤겠지, 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면 나중에 더 큰 고구마로 돌아온다는 말씀!’
루아티샤는 채리아에게 물었다.
“채리, 나한테 이상한 거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
“전에 이상한 책 같은 거 발견했다고 했잖아.”
“아…….”
채리아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그냥 내 착각이었어.”
“착각? 이상한 책이 아니었다는 거야?”
“응, 책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할 일이 뭐가 있겠어.”
“그럼 일단 책이 있다는 거네?”
“……!”
채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루아티샤가 씨익 웃었다.
“나도 한 번 그 책 좀 볼 수 있을까?”
채리아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루아티샤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어차피 그 책 네 거 아니잖아.”
“뭐?”
“이곳에 진짜 네 것은 하나도 없잖아? 입고 있는 옷, 먹는 거, 지내는 방. 전부 다 내 것이지.”
“…….”
“그렇지?”
루아티샤가 생긋 웃었다.
채리아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그 말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 *
시드리한의 방.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은 어두침침했다.
모두 다 방의 주인이 뿜어내는 진득한 기운 때문이었다.
바렌과 네미스는 서로 눈치만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들은 오랜 기간의 학습으로 이럴 때 시드리한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시드리한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시드리한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역시 단 한 사람뿐이었지만.
바짝바짝 말라오는 신경줄을 견디다 못한 바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단 편 들어주고 보자!
“에잇! 이번에는 공녀님이 잘못하셨소! 어떻게 전하께 이럴 수 있단 말이오!”
“그래도 오해일 겁니다. 공녀님께서 부정을 저지를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소! 다른 남자가 좋아졌으면 제일 먼저 전하를 뻥! 찼겠지! 시원하게!!”
“…….”
시드리한의 눈동자가 바렌을 향했다.
껄껄 웃던 바렌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네미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사내, 강적이긴 했소.”
“전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공녀님의 허리를 끌어안는 게 여간 요망한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다른 남자들은 전하의 앞에서 얼굴도 못 들었던 걸 생각하면…….”
시드리한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나비를 죽일 기세였다.
“안 됩니다, 전하.”
네미스가 황급히 시드리한을 말렸다.
“그 남자가 다치면 오히려 공녀님이 돌봐주게 될 겁니다.”
“그리고 공녀님은 사람을 팬 전하에게 실망할 거요.”
“이럴 땐 상대를 조지는 게 아니라—.”
“더 유혹해야 하오!”
네미스와 바렌이 열변을 토했다.
“저희가 알려드린 대로 잘 하고 계셨겠지요?”
“……요망하게 유혹하면서 안달 나게 애 태워야 한다고 했지. 절대 내 욕심대로 행동하면 안 되고.”
“예, 잘하고 계십니다. 식장에 들어갈 때까지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한데 이상하군.”
바렌이 턱을 쓸었다.
“전하의 얼굴과 몸으로 그렇게 유혹하면 공녀님께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해야 하는데.”
딴 남자를 간호할 정신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어쨌든 더 꼬셔야 합니다.”
“상대 남자를 해코지하는 게 아니라, 공녀님이 먼저 다가올 수밖에 없도록. 요망하고 아찔하게.”
네미스와 바렌이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싫어.”
시드리한이 딱 잘라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싫……으시다고요?”
“공녀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싫다고.”
“무, 물론 화가 나셨겠지만, 그래도…….”
시드리한이 누군가.
루아티샤 없이는 못 사는 남자 아닌가.
시드리한은 아직도 그 엉성한 꽃다발을 별의별 미친 수를 써서 시들지 않게 돌보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루아티샤를 꼬시라고 말하는 것도 전부 시드리한을 위해서였다.
시드리한은 루아티샤와 떨어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나 이제 그런 거 안 해.”
싸늘하게 말하는 시드리한을 보고 네미스와 바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진짜 공녀님한테 화가 나셨나?’
‘설마 이대로 헤어지시려는 건…….’
‘에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은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루아티샤의 일에 이렇게 냉정한 시드리한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 *
그 시각, 채리아의 방.
“자.”
채리아가 루아티샤에게 책을 건넸다.
루아티샤가 책을 펼쳤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데.’
빈 책은 조금 화려한 공책 같았다.
루아티샤는 책 위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기감을 집중했다.
딱히 느껴지는 힘은 없었다.
‘사기도 없어…….’
채리아가 그거 보라는 듯이 당당한 얼굴로 물었다.
“진짜 별거 없지? 평범한 공책이야.”
“잠깐.”
루아티샤는 파사의 힘을 책에 불어넣었다.
거대한 기운이 책에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왔다.
‘……파사의 힘에 반응도 없어.’
힐끗 채리아를 보니 아까보다 더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루아티샤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게. 별거 아닌 평범한 공책이야.”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날 믿지도 않고 너무해.”
채리아가 루아티샤의 손에서 책을 빼 갔다.
생각과 다른 결과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루아티샤는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채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쿡, 하고 웃었다.
‘내가 바보니? 들킬 짓을 하게.’
이상한 책이 있다고 언급한 것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이걸로 루아티샤는 의심을 완전히 걷었을 것이다.
직접 파사의 힘까지 써서 확인했으니까.
‘그 말은 즉, 이 몸은 영원히 내 것이라는 뜻이지.’
자신이 힘을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루아티샤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나중에 완벽히 각성한 상태에서 재회할 날이 너무나도 기대됐다.
‘그때 날 보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얼마나 불쌍하고 웃길까.’
채리아가 킥킥 웃었다.
* * *
탁.
등 뒤로 방문이 닫혔다.
“루아티샤.”
고개를 드니 라파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쟤 조심해.”
“응?”
“아니, 네 판단을 믿지만 말이야. 내가 살펴봤을 때도 그 책인지 뭔지 아무 이상 없었고.”
라파엘은 무려 최연소 소드 마스터셨다.
아닌 척 오러를 돋워 살펴보는 건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라파엘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말하는 게 재수 없으니까.”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라파엘. 나는…….”
“그래. 걱정하지 마.”
나른한 목소리가 나와 라파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내 그림자에서 검은 인영이 솟아올랐다.
“달링의 곁에는 내가 있으니까.”
카인이 내 어깨 위에 턱을 올려 놓으며 히죽 웃었다.
내가 어깨를 털기도 전에 라파엘이 카인을 쳐냈다.
카인이 느긋하게 몸을 피하며 윙크했다.
“흠, 너도 우리 사이에 끼고 싶어서 그래? 나는 시드까지는 괜찮은데 너는……. 오, 그래도 꽤 강한 인간이네? 괜찮을지도.”
“됐고. 어땠어?”
내 물음에 카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달링이 본 그대로야. 사기는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게 없다는 뜻은 아니지.”
“빙고.”
카인이 윙크했다.
“무엇보다 본인 입으로 실토했으니까.”
“실토했다고?”
라파엘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공책을 보여주면서 굳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거, 이상하잖아? 별거 없는 게 아니라 꼭 별거 있는 것처럼.”
“아, 확실히!”
“게다가 내가 파사의 힘을 썼을 때 하나도 놀라지 않았어.”
“……!”
당연히 나는 채리아의 앞에서 파사의 힘을 써본 적이 없다.
쓸 일이 없었으니까.
채리아는 그런 힘이 내게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야 한다.
“놀라긴커녕 오히려 더 당당해졌지.”
“꼭 네가 뭘 했는지 아는 것처럼.”
내가 사기를 못 느꼈으면서도 굳이 파사의 힘을 쓴 이유가 이거였다.
채리아의 반응을 보기 위해.
“무엇보다 지금 채리는 내가 아주아주 잘 아는 누군가랑 너무 닮았거든.”
채리아의 성격이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이 음습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진짜 네 것은 하나도 없잖아? 입고 있는 옷, 먹는 거, 지내는 방. 전부 다 내 것이지.”
‘내 거’에 발작하던 표정은 확실히 내가 잘 아는 얼굴이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내 사촌 언니.’
채리아는 클라티에가 아니다.
그리고 로판 독자인 내게는 이 상황이 익숙했다.
‘이제 와서 악녀 빙의물이라니.’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내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알림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나는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고 씨익 웃었다.
“우선 공작성에 손님들이 많이 왔으니 환영 파티부터 열어야겠네.”
* * *
파에라톤 공작성의 대연회장.
루아티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드는 안 보이네.’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시드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이상한 게 아니지. 날 피하고 있는 게 분명해.’
재차 한숨이 나왔다.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서 오해를 풀어야…….’
그때였다.
나비가 루아티샤에게로 다가왔다.
루아티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또 시드가 오해하면 어쩌려구!”
“오해해서 자기 여자도 외면하는 놈은 왜 신경 써?”
“…….”
“여기는 여자를 혼자 두는 게 실례라며.”
나비가 손을 내밀었다.
루아티샤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리 가.”
“내가 네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
그 말과 함께 나비가 루아티샤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녀의 파트너는 자신이라는 듯.
그때였다.
누군가 루아티샤의 손을 잡아채 제 품으로 확 끌어당겼다.
“……!”
익숙한 품과 익숙한 체향.
그러나 처음 보는 거친 태도.
루아티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멋대로 나 말고 다른 남자 손 잡지 마.”
으르렁대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
시드리한의 보랏빛 눈동자가 뜨거운 열기를 품고 루아티샤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