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5)화(336/353)
외전 15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신경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그 살기를 직통으로 받은 카인은 물론 아주 짜릿해 했다.
“아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살의야. 이만한 살기를 뿜어내는 건 역시 시드밖에 없어.”
카인이 나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몸짓을 따라 잘 조여진 근육 위로 장미꽃이 흐드러졌다.
‘진짜…… 꼴값이네.’
카인이 치명적인 자태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뻔하잖아? 단둘이 밀실에서 보자고 달링이 내게 밀어를 속삭였어.”
“단둘이 보자고 안 했어! 밀실이라고도 안 했고!”
시드가 오해할세라 나는 서둘러 진실을 말했다.
“달링, 부끄러워하는 거야? 수줍어하는 모습도 귀여워.”
“꺼져!”
“그나저나 나와의 밀회에 다른 남자를 데려오다니……. 서운한데.”
카인이 길게 쭉 찢어진 동공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래도 시드니까, 뭐. 언제나 말했잖아. 난 셋이 즐기는 것도 좋—.”
카인의 말은 끝까지 다 이어지지 못했다.
내게로 뻗어진 카인의 손이 새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카인이 히죽 웃었다.
“나름대로 손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시드, 더 강해졌구나?”
새빨간 사기가 얼어붙은 손 주변으로 날름거렸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우와, 꿈쩍도 안 하네.”
“더러운 마계 구석에서 처박혀 쥐 죽은 듯 살아가야 할 새끼가 왜 인계에 있는 거지?”
“그야 달링이 보고 싶다면서 날 불렀기 때문이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시드에게 말했다.
“혹시 사기가 있을지 몰라서 소환했어. 마족은 사기 전문가니까.”
“……사기?”
시드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보랏빛 눈동자에는 어째서인지 반가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 새끼한테서 사기가 느껴졌어?”
“그 새끼?”
“나비인지 제비인지 하는 놈.”
……나비가 제비과는 아닌데.
오히려 카인이 더 제비 느낌이지.
“나비는 사기랑 상관 없어.”
시드의 눈동자에서 반가움이 사라졌다.
아니, 그게 반가워할 일이었냐고.
“아무래도 클라티에의 영혼이 채리한테 빙의한 거 같아.”
“뭐?”
“아직 증거는 없지만.”
“주인님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확실하겠지.”
시드가 내 어깨를 감쌌다.
“진작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내 힘은 주인님을 위해 있는 건데.”
“나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서…….”
알게 된 직후에 묘하게 시드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고.
“일단 나가자.”
“음? 왜 나가?”
“둘만 있고 싶어서.”
시드가 내 머리칼을 넘겨주면서 낮게 속삭였다.
어쩐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얘는 어떻게 이 각도에서도 이렇게 잘생겼지?
향기는 또 왜 이렇게 좋아?
“자, 잠깐만! 그대로 가버리는 거 아니지? 나 얼음 땡 해줘야지!”
등 뒤에서 누군가가 절박하게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새로운 플레이야? 그런 것도 좋지만 피부가 괴사하고 있는데? 대체 얼음에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지만 내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저기, 달링?”
쿵.
문이 닫히자마자 시드가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입술을 맞부딪쳐 왔기 때문이다.
아주 뜨겁고 아찔하게.
* * *
“그래서?”
친구들이 턱받침을 만든 채 얼굴을 들이댔다.
“어제 연회장을 황급히 나가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무슨 일은……. 별일 없었어.”
나는 친구들의 시선을 피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별일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건데!!”
“입술도 번지고!”
“번졌다고? 다 수정했는—.”
말을 하다 아차 했다.
친구들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
“입술이 다 번질 짓을 했구나?”
“그게 대체 무슨 짓이었을까아~?”
“뭘 먹어도 깔끔하게 먹는 애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
완전히 말려들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씨익 웃었다.
“끝내주는 짓을 했지.”
친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갈 준비해야지. 시간 다 됐어.”
“뭐어? 무슨 끝내주는 짓을 했는지는 말해줘야지!”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를 기다리게 할 셈이야?”
내 말에 친구들이 마지못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서 말해줘. 날 두고 두 남자가 사투를 벌였다는 건 헛소문이라고.”
“흐응? 완전히 헛소문은 아닌 거 같던데?”
“그래. 어제 연회장에서 직관하니까 재밌더라.”
친구들의 놀림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들 이대로 돌아가는 게 서운한지 한마디씩 했다.
“아쉽다. 좀 더 있다가 가고 싶은데.”
“너무 아쉬워하지 마. 나도 곧 제도에 올라갈 거거든.”
“정말?”
“응, 신전에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고.”
행정형 성녀는 할 일이 참 많았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제도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거든.”
“……?”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해주지 않고 싱긋 웃었다.
“근데 나비라는 그 남자도 제도에 함께 오는 거지?”
……응?
“꼭 같이 와야 해.”
“그래, 간만에 임자 없는 잘생긴 남자를 보니까 눈이 행복하더라.”
“무엇보다 그 남자는 연구 대상의 향기가 나거든요.”
“……너희들.”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쉬운 게 아니라 나비를 못 보는 게 아쉬운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말이야.”
티리엘이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간밤에 언뜻 뒷모습이 카인 님과 비슷한 분을 본 거 같았는데.”
“차, 착각이겠지! 그런 뒷모습 흔하잖아!”
내 말에 티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흔하다니……. 그 완벽한 뒷모습을 착각하기도 쉽지 않은데…….”
“카인 님 하니까 크레센티오 님도 생각나네.”
“하아, 두 분 다 보고 싶다.”
나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카인에게 내 전용 휴게실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도 전부 다 이것 때문이었다.
연회장에 카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순진한 친구들이 또 마족에게 홀릴 테니까!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정문에 도착했다.
때마침 아빠와 할아버지가 황제 부부와 함께 나오셨다.
나를 발견한 황제가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루아티샤.”
“네, 황제 폐하.”
“그, 크흠, 미안했다.”
황제가 쑥스러운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짐이 괜한 오해를 했어. 네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에요.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 당연히 그러실 수도 있죠.”
“지, 짐은! 그렇게까지 팔불출은 아니다! 그렇게 병적으로 심하진 않아! 짐은 절대 파에라톤 공작보다……!”
황제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외쳤다.
“……?”
너무 화들짝 놀라서 변명하는 거 아닌가?
의아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는데 황비님이 나를 불렀다.
“아가.”
“황비 전하.”
“황궁에 아가를 위한 꽃이 활짝 피었단다. 아가가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도 싹 다시 했고, 몸만 오면 되도록 옷과 장신구도 다 마련해 놨어.”
“……그 인테리어는 매년 하시는 거 같은데요.”
황비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황궁은 언제나 아가에게 열려 있단다.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게 걸리는 거라면 우리가 비켜줄 수도 있어.”
그 말에 황제가 기함했다.
“무슨……! 대체 황제와 황비가 황궁을 두고 어디에 간다고!!”
“폐하께서는 좀 조용히 하세욧!”
단칼에 황제를 조용히 시킨 황비님이 나와 진지하게 눈을 맞췄다.
“그 남자보다 우리 시드가 훨씬 더 낫다.”
황비 전하께서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신신당부하고는 우아하게 마차 위에 오르셨다.
“아참, 아가. 이건 선물이란다.”
떠나기 전, 황비 전하께서 내게 상자를 건네주셨다.
상자를 열어보니.
〈신혼의 즐거움〉
〈완벽한 신혼 여행지 추천서〉
〈성녀 루아티샤 훈장 활용법 – 심화편〉
“…….”
정말 여러모로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 * *
친구들과 황제 부부를 배웅하고 난 뒤.
나는 내 방에 들어왔다.
카인이 답지 않게 뚱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미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손이랑 발을 완전히 잘라낼 뻔했다고.”
카인을 얼려놓고 완전히 잊은 바람에 정말 큰일 날뻔했다.
시드의 얼음은 보통 얼음이 아니니까.
“미안해.”
도움 받으려고 소환한 입장인지라 미안하긴 미안했다.
카인도 얼마나 놀랐으면 평소의 유들거리는 태도를 버리고 이렇게 화를 낼까.
“그래, 당연히 미안해야지.”
“응, 미안.”
“나보다는 달링 스스로에게 가장 미안해야 해.”
……응?
“내 손을 아껴줘야지. 달링을 아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손인데.”
얜 진짜 지치지도 않나.
나는 내 허리로 파고드는 카인의 손을 쳐냈다.
카인이 나른하게 웃었다.
“물론 색다른 경험이라 짜릿하긴 했어. 무시 당하면서 방치되는 즐거움이 이런 건가.”
“그럼 한 번 더 해줄까. 이번엔 그 숨통까지 얼려줄 수 있는데.”
그 말과 함께 시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는 라파엘도 함께였다.
의외의 조합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둘이 함께 오네?”
“이 녀석이 따라온 거야. 왜 제도로 안 돌아가는 거지?”
“친구 곁에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 돌아갈 순 없지.”
일전에 카인과 채리아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라파엘도 있었다.
그랬던 만큼 걱정된 모양이었다.
“고마워, 라파엘.”
“고마우면 위험한 짓이나 하지 마.”
라파엘이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곧장 시드에게 제지 당했지만.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드와 카인 그리고 라파엘.
‘모두 능력으로 따지자면 이보다 더 출중할 수 없어.’
세 사람 모두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라파엘이 물었다.
“그런데 공작님이나 소공작님한테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가족들한테는 웬만하면 말하고 싶지 않아.”
“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새삼스레?”
“절대 걱정 안 끼칠 거야. 내가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언제나 안심할 수 있도록.”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을 끝내고 나면 나는—.’
나는 힐끔 시드를 바라보았다.
곧장 눈이 마주쳤다.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고 날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은 얼굴.
그 얼굴 위로 결혼식 예복을 갖춰 입은 모습이 겹쳐 보였다.
“루아티샤?”
“아무튼! 가족들 모르게 처리하고 싶어.”
화끈.
나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클라티에 이야기부터 하자!”
* * *
“클라티에가 채리아의 몸에 빙의한 거라면 사기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어.”
“예전에도 그랬잖아.”
슈리엘이 그랬다.
아메바처럼 쪼개진 리리엘의 분신과 클라티에가 융합한 결과물이었던 슈리엘.
그때도 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사기가 약할 거라는 거야. 더 감지하기 힘들지.”
“리리엘이 아니라 클라티에가 빙의한 거라면 더더욱 사기를 잡아내기 어려워.”
“사기를 잡아내지 못하면—.”
시드의 말을 내가 받았다.
“—채리아와 클라티에를 분리할 수도 없어.”
“…….”
“…….”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채리아를 떠올렸다.
클라티에가 빙의한 채리아가 아니라, 진짜 ‘채리아’를.
걔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였다.
갑작스럽게 큰 위험에 빠져 로맨틱한 상상으로 회피했다가도, 그걸 되돌아보고 바로 잡을 줄 아는.
조금 머리가 꽃밭이긴 하지만, 그게 또 긍정적이고 활달한 여자애.
아주아주 평범한 여자아이.
“하는 수 없네.”
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이 뭔지 알아챈 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돼. 안 돼.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냥 그 여자애를 죽이면 되잖아?”
나는 카인의 개소리를 가볍게 무시했다.
“크레센티오를 불러오는 수밖에.”
나는 고고하면서도 새침하고 부끄럼을 잘 타는 천사님의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