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3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8)화(339/353)
외전 18화
소환의 빛이 사그라들었는데도 남자에게서는 여전히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이목구비.
매끄럽고 결점 하나 없는 피부.
헤일로처럼 신성한 백금발.
기묘한 빛을 띠는 은회색 눈동자는 세상의 비밀을 감춘 듯 신비로웠다.
‘아니, 크레센티오이긴 한데……. 맞긴 맞는데…….’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차원이 달랐다.
‘알고 봐도 진짜 ‘누구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네.’
처음 크레센티오를 만난 건 길바닥에서였다.
그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내 싸인을 원하는 행인1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크레센티오가 신관 행세를 했을 때도 반응이 장난 아니었지.’
신전 예배 참석률이 단번에 압도적으로 올라갔었으니까.
‘왜 그랬는지 약간 이해할 거 같기도……?’
확실히 크레센티오에게는 인간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단순히 천사님다운 미모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스럽고 고결한 품위.
거기에 절제되고 금욕적인 분위기까지.
‘음, 아프타네스가 로판을 많이 봐서 그런가.’
역시 맛잘알이다.
내가 로판 독자로서 크레센티오의 미모를 한창 감상하고 있는 때.
“넌 정말이지 여전하군.”
크레센티오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팍 찌푸렸다.
“더러운 냄새나 또 풀풀 풍기고 있고.”
“아…….”
나는 탄식을 흘렸다.
맞다, 얘 이런 애였지.
‘재수탱이.’
정결한 천사의 미모에 그렇지 못한 성격.
아니나 다를까, 크레센티오는 나를 노려보며 재수 없게 말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물론, 그냥 재수탱이로 치부하기엔 나도 예전보다 크레센티오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
“삐졌어?”
“삐지긴 누가……!”
‘삐졌네.’
나는 팔짝 뛰는 크레센티오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천족들보다 마족들이랑 가깝게 지낸다고 그렇게 틱틱거리면서, 뒤로는 날 도우려고 혼자 적진에 잠입해서 위험해질 거잖아.”
“무슨……!”
“물론 새빨간 사기에 휘감긴 채 신음을 흘리는 모습은 꽤 인상 깊었지만.”
“…….”
“새하얀 날개가 꺾인 채 몸부림치는 장면은 소녀들의 심금을 울릴 만했어.”
“너, 너는……!”
크레센티오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입을 꾹 다문 그가 고개를 팩 돌렸다.
“……네 취향은 아니라고 했으면서.”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취향은 아냐.”
“……하, 진짜.”
“성스럽고 고결한 금욕 절제남인데 알고 보니 새침하고 부끄럼 타는 성격인 것보다-.”
“뭐, 뭐?!”
“요망하고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섹시하고 때로는 청순한…… 팔색조 같은 남자가 취향이거든.”
완전 내 취향의 스트라이크존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줄만 알았던 우리 시드가 알고 보니 위압적인 카리스마까지 갖춘 거!”
나비에게서 나를 가로채듯 품으로 끌어 당기던 손길이 아직도 생생했다.
“멋대로 나 말고 다른 남자 손 잡지 마.”
“하아아, 진짜 박력 넘쳤어!”
“…….”
“나는 그런 건 취향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드가 하니까 진짜 설레더라.”
“…….”
크레센티오가 나를 묘한 눈길로 쳐다봤다.
어딘지 익숙한 눈빛이었다.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깨달았다.
‘우리 아빠가 나 자랑할 때, 내가 아빠를 바라보던 눈빛이잖아!’
내가 우리 아빠 같은 팔불출 짓을 하다니……!
“크흠, 흠!”
쪽팔려서 헛기침하는데 크레센티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쨌든 예전과는 다를 거다.”
“음?”
“그때는 힘을 온전히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계승자인 네가 나를 소환한 게 아니었으니까.”
“…….”
“이번에야말로 더럽고 추잡한 마족 따위보다 천족이 네게 더 도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다.”
“…….”
‘마족을 더 빨리 불렀다고 삐진 거 역시 맞잖아.’
크레센티오도 참 부끄럼쟁이였다.
나는 그 말을 하는 대신 빙그레 웃었다.
“그럼 잘됐네. 소환하자마자이긴 하지만, 일하자.”
“이번에는 또 나를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크레센티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이번에도 날 미끼용 꽃으로 쓸 생각은 아니겠지.”
“에이, 아름다운 꽃에 소녀들이 홀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걸.”
“……말은 잘하는군. 너는 아니면서.”
크레센티오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크레센티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어쨌든 걱정 마. 이번에는 얼굴로 호객하라는 거 아니니까.”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에서 싱긋 웃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내 미소에 크레센티오는 더 불안해했다.
* * *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채리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근래 채리아는 시간과 관계없이 잠에 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
뒤척임 하나 없이 자던 채리아가 경기를 일으키듯 깨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던 채리아가 순간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내 몸…….”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제 손가락을 움직이곤 몸을 더듬는다.
그러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어서 루루한테 알려야-.”
다급하게 중얼거리며 침대를 빠져나오려던 채리아가 멈칫했다.
‘루루한테 알려서, 뭐. 걔가 뭘 할 수 있다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울렸다.
‘걔는 그냥 운 좋게 부잣집에서 태어나 사랑만 받고 큰 공주병일 뿐이잖아. 걔가 알아서 뭘 할 수 있는데?’
“아니, 그래도 도움을…….”
‘걔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뭐가 특별해서?’
“내, 내 상황을 알면-.”
‘특별한 건 나잖아. 차원을 넘어 이세계에 오고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
“나는…….”
‘루아티샤는 오히려 날 방해했어. 차원을 이동한 내가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를 훔쳐 갔다고!’
“걔는, 나를 도와줬, 어. 내가 잘 적응할 수, 있게…….”
‘나비한테 관심 있는데 나비만 챙기면 속이 뻔히 보이니까 그런 거지. 걔는 남자만 밝힌다고!’
“아니야…….”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걸? 내 상황을 알면 자기가 해결해 준 척하면서 또 위대한 성녀님이라고 추앙받을 거야! 실제로는 해결도 못 하는 주제에!’
“으윽……!”
‘이건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주인공이니까 특별한 힘이 있을 거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동시에 머릿속에는 온갖 말들이 한 가득 떠올랐다.
‘루아티샤가 목숨처럼 생각하는 시드리한을 뺏어버려. 루아티샤를 고립시켜. 처절하게 혼자가 되도록.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아프타네스의 목숨줄과도 같은 그년을 말라비틀어 죽여버려!!!’
뇌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다.
채리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뻗었다.
매끄러웠던 아까의 움직임과 다르게 힘겨운 몸짓이었다.
“어서, 불러야…….”
떨리는 손이 막 설렁줄에 닿은 순간.
툭-!
마치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채리아의 팔이 내려갔다.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의 절박하고 괴로웠던 표정과 달리,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건방진 년이……. 껍데기 주제에 감히 나한테 반항해?”
채리아는 커다란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뺨을 톡톡 두들긴다.
“반항하지 말라고. 너한테도 좋잖아.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거라고.”
그래도 놀랐다.
이세계에서 와서 결속이 약한 영혼 따위, 찍어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아직 제정신을 차릴 만한 기운이 있을 줄이야……. 아니, 내 힘이 약한 건가.”
채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도 분위기를 좀 살펴보고 움직이려 했는데…….”
공작성에 방문했던 여자애들이 루아티샤를 싸고도는 것을 보고 좀 더 은밀하게 행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계획을 앞당겨야겠어.”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채리. 아직도 자?”
살짝 열린 문틈으로 루아티샤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루, 루루?”
채리아가 당황해서 루아티샤를 돌아봤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루아티샤가 조금만 일찍 들어왔으면…….’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혔다.
‘설마 뭔가를 눈치채고 온 건 아니겠지.’
저 약삭빠른 계집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채리아가 경계하는 사이, 루아티샤는 해맑게 웃었다.
“중정에서 티타임할 건데 같이할래? 공작저의 중정도 엄청 예쁘거든.”
“응, 좋아.”
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집 자랑하려고 온 거였어?”
아무렇지 않게 제 팔을 잡아끄는 태도를 보니 이상한 점 따위 못 느낀 거 같다.
‘멍청하긴.’
안심한 채리아가 피식 웃는 순간이었다.
루아티샤가 막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우리가 참석할 사교모임 말이야.”
“어, 어?”
뜨끔한 채리아가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커티스 부인의 티파티에 가는 거 맞지? 이제 답장 보내려고.”
“아, 그거……. 생각해 봤는데 다른 데가 좋을 거 같아.”
“그래?”
“응, 미첼로인 가의 이브닝 파티가 좋겠어.”
그 말에 루아티샤가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클라우디아랑은 한 번 봤으니까 그게 좋겠다.”
그 모습을 보며 채리아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어떻게 참석할 파티를 바꾸나 했는데. 먼저 나서서 날 도와주네?’
말도 먼저 꺼내주고, 알아서 납득도 해주고.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헛똑똑이라니까.’
물론 그래서 고맙지만.
채리아가 킥킥 웃었다.
* * *
며칠 후.
미첼로인 가의 이브닝 파티.
미첼로인 후작 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루아티샤 일행을 맞았다.
“제 파티에 성녀님께서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그것도 제도에 올라오고 처음으로 참석하시다니요.”
“저야말로 훌륭하신 미첼로인 부인의 파티에 초대받아 영광입니다.”
“어머, 내가 아니라 내 딸 때문에 이 파티를 선택한 게 아니었니?”
“물론 제가 클라우디아를 엄청 좋아하긴 하지만-.”
루아티샤가 개구지게 웃었다.
“오늘은 아니에요. 부인의 뛰어난 식견을 존경하기도 하니까요.”
“어머나.”
미첼로인 부인이 즐거운 듯 후후 웃었다.
“역시 루루는 당해낼 수 없구나.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저쪽에 널 기다리는 영애들이 많으니 재밌게 놀렴.”
채리아는 루아티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입을 삐죽였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내가 선택해서 온 거면서. 재수 없어.’
무엇보다 더 재수 없는 건 이 파티가 루아티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성녀님!”
“정말 뵙고 싶었어요, 성녀님.”
“그간 제도에 없으셔서 얼마나 서운했는지요.”
영애들은 어떻게든 루아티샤와 한 번이라도 더 말을 섞으려고 난리였다.
물론 채리아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혹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어도…….
“아, 성녀님께서 데려오신 분이라고요?”
“성녀님과 어떻게 알게 되셨는데요?”
“성녀님이랑 그럼 같이 지내시는 거예요?”
‘루아티샤가 데려온’ 손님이라는 점에만 반응할 뿐이었다.
‘흥, 그래도 상관없어.’
곧 모든 것이 달라질 거니까.
그때였다.
“어머? 어머, 어머!”
파티장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백장미의 귀공자셔!”
“오늘 파티에 오시다니?”
“와, 오늘은 정말 사교계에서 보기 힘든 분들을 만나네.”
“설마 성녀님을 보러 오신 건가?”
백장미의 귀공자, 펠릭스 카이셴.
제온 파에라톤과 동갑으로, 한때 사교계 인기를 양분하던 남자.
그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친 채리아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