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4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20)화(340/353)
외전 20화
* * *
제도의 파에라톤 공작저.
오페라 하우스에서 귀환 후, 채리아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후후, 진짜 짜릿해!’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공연 시작 전, 펠릭스가 안 보여서 찾으러 나갔더니…….
‘루아티샤와 단둘이 있었지.’
그 순간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혹시 자신이 역으로 함정에 빠진 걸까 봐.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불러내지 마. 귀찮고 거슬려. 무엇보다-”
“…….”
“-채리가 오해하니까.”
“와우.”
분명히 들렸다.
펠릭스와 루아티샤가 주고 받는 말이.
‘하긴, 이 힘이 안 통할 리도 없잖아?’
펠릭스가 젊은 천재라고 해봤자 파사의 힘이나 마기도 없는 평범한 인간.
키야스에델의 힘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루아티샤의 얼굴이 진짜 끝내줬는데 말이야.’
떨떠름하다 못해 떫은 표정으로
“와우.”
하고 중얼거리던 얼굴.
‘애써 쿨한 척, 감탄하는 꼴이 더 애잔하달까?”
킥킥 웃던 채리아가 일기장을 내려다 봤다.
표지의 일곱 개 보석 중 여섯 개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 개만 남았어.”
슬슬 움직일 때였다.
채리아는 일기장을 안은 채 방을 나섰다.
* * *
나비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상대를 보고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채리아가 볼을 부풀렸다.
“너무 싫은 티 내는 거 아니야? 그래도 한배를 탄 사이인데 너무하네.”
“……용건만 말하고 꺼져.”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 너랑 나는 이곳에서 단둘뿐인 이방인이잖아.”
채리아가 나긋한 몸짓으로 나비의 팔을 감았다.
나비는 채리아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더니 말했다.
“네가 정말 이방인이었을 때의 이야기겠지.”
“……뭐?”
뜨끔한 채리아가 나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비의 시선은 이미 그녀를 향해 있지 않았다.
“설령 네가 진짜 이방인이라고 해도 내가 너 따위와 동질감을 느낄 일은 없어.”
채리아의 팔을 쳐낸 나비가 멀찍이 떨어진 채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채리아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이 녀석한테는 이 힘이 안 통한단 말이지.’
원래 있던 차원에서 대체 어떤 존재였는진 몰라도 성가셨다.
‘펠릭스처럼 내 꼭두각시로 삼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비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맹수 같은 매력이 있었다.
제도에 올라온 후,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하는 채리아와 달리 나비는 사교계에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작성에 방문했던 사람들 덕분에 나비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다.
채리아에게도 나비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내가 얘까지 거느리고 다녔으면……?’
더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비의 힘도 이용할 수 있었을 거고.
‘뭐, 그게 아니어도 이 녀석의 힘을 이용할 수 있지만’
채리아가 씨익 웃으며 나비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우리가 한배를 탄 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계획대로 잘해.”
채리아가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일기장에서 솟구쳐 오른 새빨간 힘이 허공에 또아리를 틀며 넘실거렸다.
“이 힘을 이용하면 루아티샤를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어.”
“…….”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고,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손에 넣고. 우리 둘 다 좋잖아?”
채리아가 굳은 나비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물론 한 번 가져보면 그게 얼마나 볼품없고 조잡한지 알게 될 테지만.’
지금 나비가 루아티샤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의 것이어서.
갖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손에 들어오지 않아서.
아직 못 가져봐서.
‘루아티샤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정복욕을 채우고 싶은 것뿐이지.’
“난 너와 한배를 탄 적 따위 없어.”
나비는 차갑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붉게 또아리를 튼 힘이 그의 손에 감겨들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그러면서도 내 힘은 받아들이네?”
“내게 충고할 시간에 네 일이나 잘해. 계획에 차질 없으려면.”
그 말만 남기고 나비는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채리아는 씨익 웃었다.
‘그래, 넌 루아티샤를 갖게 될 거야.’
갈색 눈동자가 싯누런 연둣빛으로 빛났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라도!’
* * *
서쪽 후원의 가제보에서 봐♡
시드리한이 들고 있는 쪽지를 힐끔 본 바렌이 물었다.
“이야, 공녀님이 보내신 거요?”
“그렇게 보여?”
시드리한의 물음에 바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공녀님 필체 아니요? 단장에게 이런 내용을 보낼 사람도 공녀님뿐이고.”
시드리한이 미소 지었다.
그는 쪽지를 움켜쥔 채 자리를 떴다.
등 뒤로 바렌과 네미스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엽게 비밀 쪽지를 주고 받다니. 진짜 단장이랑 안 어울려.”
“공녀님이랑 연애할 때 보면 완전히 딴 사람 같긴 하지.”
시드리한은 그 소리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가 서쪽 후원의 가제보에 도착했을 때였다.
가제보 기둥 사이로 살짝 나온 드레스 자락이 보였다.
시드리한은 천천히 그 드레스 자락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막 기둥의 모퉁이를 돈 순간.
“왔어?”
기둥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몸을 돌려 그를 맞았다.
“리한.”
채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시드리한을 올려다보았다.
시드리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듯 뒤로 물러났다.
“왜 네가 여기 있지?”
“왜라니.”
벌어진 거리만큼 채리아가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그보다도 더 가까이.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칠 정도로.
“다시 날 봐봐.”
채리아의 목소리가 들척지근하게 귓가에 달라붙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게 싫어?”
“…….”
채리아의 팔이 뱀처럼 시드리한의 목에 감겼다.
평소였다면 그 팔이 제게 닿기도 전에 쳐냈을 것이다.
하지만 시드리한은 굳은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응? 시드.”
보랏빛 눈동자가 떨렸다.
꼭 루아티샤를 바라볼 때처럼.
* * *
그 무렵, 루아티샤의 방.
“별일이네. 나비가 날 먼저 찾아오고.”
루아티샤가 붕대를 정리하며 말했다.
항상 루아티샤가 쳐들어갔는데 오늘은 모처럼 나비가 먼저 루아티샤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제 좀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탈출해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었어?”
“……하.”
“미아냥이가 세상의 온기 맛을 본 것 같아서 기뻐.”
나비는 기가 막혀서 머리를 쓸어올렸다.
루아티샤는 그러든 말든 콧노래를 부르며 약상자를 닫았다.
나비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왼팔에 휘감긴 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힘을 이용하면 루아티샤를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어.”
루아티샤는 언제나 그렇듯 무방비했다.
지금 이 힘을 써도 아무런 저항도 못 할 것이다.
나비는 루아티샤를 향해 왼팔을 들어 올렸다.
그때,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비는 여기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았어?”
“……너 같은 애가 들어봤자 좋을 게 없을 텐데.”
대답하면서도 나비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루아티샤가 보기 전에 팔을 내린 것인지.
꼭 숨기는 것처럼.
“이득이나 보겠다고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게 아니잖아. 애초에 너는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어. 너 빈털터리야.”
“…….”
“땡전 한 푼 없는 완전 상거지.”
“…….”
쟤는 진짜 뭐지.
나비는 어이없는 눈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세계였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죽이고, 힘 없는 자는 힘 있는 자에게 기생했지.”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다 죽이는 암담한 세상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루아티샤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거 말고, 네 가족들은? 너한테도 가족이 있었을 거 아니야.”
가족.
아주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그의 세계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말.
나비는 오히려 나은 경우에 속했다.
세상이 멸망할 때 가족들이 전부 죽었으니까.
“……없다.”
“그래도 네 가족이 널 생각해서 붙여준 이름은 있잖아.”
“……이게 본론이었군.”
루아티샤가 멋쩍은 듯 웃으며 물었다.
“슬슬 멀쩡한 이름 두고 나비라고 불리는 게 지겨워질 때 아냐?”
“그렇게 부르는 장본인인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그거야 나비가 이름을 안 알려 주니까 그렇지.”
나비는 침묵한 채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는 항상 가명을 썼다.
그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정체를 남에게 내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무 이름이나 지어서 대면 귀찮게 묻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일까.
이 여자애한테는 가짜 이름을 대고 싶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내리쬐는 햇살 같은 여자애.
이 여자애의 앞에 있으면 어느새 자신을 질척하게 적셨던 피가 다 말라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망가트리고 싶어.’
행복하고 완벽한 온실 같은 세계에서 소중하게 가꿔진 여자애를.
티 없이 맑고 따뜻하기만 한 이 여자애를 엉망으로 망가트리고 싶다.
어쩌면 그래서 채리아의 제안을 바로 내치지 않은 거일 수도 있다.
“나비야?”
“……!”
루아티샤의 부름에 나비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그는 왼손으로 루아티샤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가냘픈 어깨는 한 줌도 되지 않았다.
두근 두근.
엄지에 닿은 목덜미에서 심박이 느껴졌다.
그 애처롭고 연약한 박동.
나비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까부터 자신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건 그답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가졌다.
세상을 파괴해서라도.
후우욱-!
그의 손에서 붉은 힘이 일었다.
* * *
‘흥, 그렇게 튕기더니. 결국엔 내 말대로 움직이잖아.’
채리아는 저택 안에서 나비에게 준 힘이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나비가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아아, 불쌍한 내 사촌 동생. 하지만 걱정하지 말렴.’
채리아가 씨익 웃었다.
‘네 영향력은 언니인 내가 다 가져가 줄게.’
그렇게나 대단한 파에라톤 공작가 남자들도.
별것 아닌 이유로 자신을 외면했던 할아버지도.
사교계에 명성이 자자한 루아티샤의 친구들도.
전부 다.
‘내 것이 되어 내 영향력을 부풀려줄 인형이 될 거야.’
채리아가 시드리한의 품에 더 바짝 안겨들었다.
‘그 첫 번째로, 네 소중하디소중한 연인부터 가져줄게.’
“시드.”
채리아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붉은 입술이 유혹적으로 내밀어졌다.
시드리한의 시선이 그 입술로 향했다.
그때였다.
“시드!”
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채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루아티샤?!’
루아티샤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분명 아까 힘을 느꼈는데.’
지금쯤 루아티샤는 나비의 손아귀에 떨어졌어야 했다.
‘……루아티샤를 묶어두기엔 약했나?’
아니, 그렇진 않을 터였다.
채리아는 루아티샤가 지닌 파사의 힘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채리아가 불안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는 사이, 루아티샤는 지척으로 다가왔다.
“시드!”
루아티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됐다.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지.’
이미 늦었으니까.
‘오히려 잘 됐어.’
채리아가 웃으며 시드리한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시드, 쟤가 부르잖아. 무시하면 안 되지.”
채리아의 채근에 시드리한이 루아티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루아티샤가 담겼다.
“……시드?”
그 시선을 받은 루아티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드리한을 불렀다.
시드리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불쾌감 어린, 혐오감이 가득 배어 있는 시선.
열 마디 말보다도 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히는 눈빛.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봐?”
루아티샤가 멍하니 물었다.
그러나 시드리한은 충격받은 연인의 모습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 불쾌해할 뿐.
‘당연하지.’
채리아는 씨익 웃었다.
‘지금 시드리한의 눈에는 네가 나로 보이니까.’
채리아는 이 순간을 즐겼다.
루아티샤의 그 맑디맑은 푸른 눈동자가 절망으로 까맣게 물들어 가는 순간을.
채리아가 시드리한의 뺨을 감쌌다.
“키스해줘, 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