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4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21)화(341/353)
외전 21화
채리아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시드리한을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던 시드리한이 채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루아티샤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두 사람의 입술이 가까워진다.
루아티샤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루아티샤가 주먹을 꽉 틀어쥔 순간.
“……!”
커다란 손이 루아티샤의 손을 감싸 쥐었다.
“하지 마.”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나비가 물었다.
“왜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
나비가 투박한 손길로 루아티샤의 주먹을 폈다.
어찌나 세게 틀어쥐었는지 루아티샤의 손바닥 안에는 손톱자국이 찍혀 있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가련한 여자.’
검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희고 고운 손에 박힌 붉은 자국.
나비는 그 상흔에 미간을 찌푸렸다.
“널 괴롭게 만든 것들을 원망하고 탓해야지.”
“나비야.”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게 아니라.”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고?”
나비가 루아티샤의 손을 휙 들어 보였다.
루아티샤가 스스로의 손을 볼 수 있도록.
루아티샤의 푸른 눈동자가 가련하게 떨렸다.
“정말로 그런 게 아니라…….”
그때였다.
“누가 마마를 개빡치게 해써!!!!”
우렁찬 목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피와 살육에 대한 마마의 갈망이 니케를 불러따!!!!”
늠름한 외침과 함께 귀염뽀짝한 환수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비가 고개를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
루아티샤는 왠지 모를 쪽팔림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와 살육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루아티샤의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챈 니케가 당차게 외쳤다.
“너희냐? 마마를 개빡치게 한 존만들이!!!”
그리고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니케의 눈이 흔들렸다.
“파, 파파?!”
니케의 파파가 외간 여자를 끌어안은 채 서 있던 것이다.
곧 입이라도 맞출 듯이.
“니케의 파파가, 니케의 파파가…… 어떻게…….”
니케의 커다란 두 눈이 충격으로 울망울망해졌다.
그리고.
“파파 미워!!!! 이제 니케 파파 아냐!!!!!!”
빠악!
두툼한 앞발이 시드리한을 후려갈겼다.
그 모습을 본 루아티샤는 충격 받은 와중에도 생각했다.
‘니케한테 잘해야겠다.’
환수는…… 사람을 찢어…….
* * *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겨우 니케를 진정시키고 나자, 그 다음은 가족들 차례였다.
“내가 말했지. 내 동생 눈에서 눈물이라도 맺히는 날에는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하게 해주겠다고.”
“네 녀석을 믿은 내가 어리석었어.”
“……그냥 죽일까?”
아레스, 익시온, 제온이 시드리한을 압박했다.
황태자를 죽인다는 말에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파에라톤 공작이 루아티샤를 불렀다.
“루루.”
“……난 괜찮아요, 아빠.”
루아티샤가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 힘없는 미소에 파에라톤 공작은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 같았다.
“진짜로 괜찮으니까, 다들 잘 다녀와. 내일 축복식 때문에 황궁에 가야 하잖아.”
“하지만-!”
“괜찮아, 익시온.”
익시온이 더 뭐라 말하려는 순간, 파에라톤 공작이 앞으로 나섰다.
“루아티샤.”
“잘 다녀오세요, 아빠.”
루아티샤가 웃었다.
아주 오래 전,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딸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딸아이는 이렇게 웃고 있었다.
“그, 그래도- 그래도 저를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새파랗게 질려서는 억지로 괜찮은 것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몸.
그때와 똑같다.
아니, 다르다.
“아빠잖아!”
울컥해서 화를 내면서도 제 다리를 끌어안던 그때와 달리, 루아티샤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화조차도 못 내고, 그렇다고 끌어안지도 못한 채, 그저-
“돌아오면서 에클레어 사다 주세요.”
절박하게.
“……다녀오마.”
파에라톤 공작은 딸아이의 머리를 꾹 누르곤 방을 나섰다.
아직 할 말이 한참 남은 듯한 아들들을 데리고서.
달칵.
문이 닫혔다.
이제 방 안에 남은 사람은 루아티샤와 채리아 그리고 시드리한뿐이었다.
“미안해, 루루.”
채리아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시드리한의 곁에 꼬옥 붙어 있었다.
“그치만 원래 사랑은 움직이는 것잖아.”
“…….”
“시드는 이제 나를 사랑하는 것뿐인걸.”
“……넌 진짜 여전하구나.”
루아티샤의 말에 채리아가 피식 웃었다.
“나를 탓하는 거야? 여기서 굳이 잘못한 사람을 따지면 너지.”
“…….”
“시드가 나를 사랑하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하지 그랬어. 그럼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
“아니, 애초에 주제도 모르고 욕심부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 너한테는 무리려나?”
킥킥 웃은 채리아가 시드에게 기댔던 몸을 세웠다.
“그래도 나는 루루한테 정이 있거든.”
‘그것도 아주아주 깊은 혈육의 정이.’
“둘이서 정리할 시간을 줄게. 네가 아무리 애써도 어차피 시드는 나를 사랑하니까.”
채리아는 루아티샤를 향해 가볍게 웃어주고는 방을 나섰다.
* * *
방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시드, 왜 그래.”
“…….”
“……이제 내가 싫어진 거야? 나한테 이러지 마…….”
루아티샤의 처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채리아는 그 목소리를 음악처럼 감상했다.
‘버러지처럼 매달리는 꼴이라니.’
언제 어디서나 짜증 날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루아티샤가 저렇게 구는 건 처음 본다.
‘아, 아까 루아티샤의 얼굴은 영상석으로 찍어놔야 했는데.’
절망으로 텅 비어버린 루아티샤의 눈동자.
만약 그대로 시드리한과 키스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 건방진 환수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환수가 방해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들려온 목소리에 채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나비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너야말로 계획대로 안 움직이고 뭘 한 거야?”
상황이 더 좋게 흘러가긴 했지만, 아까는 정말 아찔했다.
시드리한을 완전히 장악하고 난 다음에 루아티샤가 나타나서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일찍 왔다면…….
“난 계획대로 움직였어. 네가 준 힘이 문제였지.”
“뭐?”
“그 힘을 써도 별 효과가 없던데?”
채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비가 자신을 속이는 건 아니었다.
분명 그때 나비에게 준 힘이 풀려나는 것을 느꼈으니까.
‘칫, 루아티샤의 정신을 묶어두기엔 부족했나.’
파사의 힘은 정말이지 성가셨다.
“뭐, 그래도 루아티샤한테서 연인은 사라졌잖아? 잘해 봐.”
“…….”
“이번에야말로 네 것으로 만들어 보라고. 원래 상대가 약해졌을 때가 기회 아니야?”
나비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싫으면 억지로 가져도 좋고. 이를테면…….”
채리아의 손끝이 나비의 가슴을 두드리며 올라갔다.
“죽여서라도?”
채리아가 나비의 뺨에 손을 얹은 채 씨익 웃었다.
타악-!
나비가 채리아의 손을 쳐냈다.
채리아는 후후 웃으며 순순히 물러났다.
“잘해 보라고.”
채리아는 몸을 돌려 회랑을 걸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루아티샤에게 힘이 먹히지 않았지만 차질은 없다.
‘어차피 루아티샤 꼴을 보니 완전히 넋이 나갔고.’
루아티샤는 다른 데 신경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영악하고 약삭빠른 게 항상 자신을 방해했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그렇게 계속 절망 속에서 울고나 있으라고.’
시드리한에게 매달리며, 다른 것은 그 무엇도 생각도 못 한 채 충격 속에서 허우적거리라지.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원래의 자리를 찾을 거야.’
더러운 아프타네스의 성녀 따위 사라지고, 모두가 자신을 진정한 신의 대리자로 우러러볼 것이다.
‘내일 열리는 성녀의 축복식에서!’
채리아가 일기장을 끌어안은 채 달콤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 성녀의 축복식.
오랜만에 제도에 귀환한 루아티샤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열리는 행사였다.
사람들은 들뜬 얼굴로 모여들었다.
“보통 제도에 오셔도 이렇게 축복식까지 열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혹시 중대 발표라도 하시는 거 아니야?”
“중대 발표?”
“우리가 그렇게나 바라 마지않던 2세 소식이라던가.”
“……허억!”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
“언제 황자님이랑 황녀님 탄생연회 열릴까? 일정 다 빼놔야겠다.”
“……일단 결혼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닐까.”
이윽고, 축복식이 시작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의아해졌다.
“어라?”
“왜 성녀님 혼자……. 황태자 전하께서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이 딱딱하게 굳었다.
“채, 채리?”
“채리랑 황태자 전하가 왜 같이…….”
“그것도 저렇게 찰싹 붙어서.”
친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시드리한에게 달라붙어 있는 채리아를 보고 다들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단장 진짜 왜 저래?”
“어제까지만 해도 공녀님 쪽지 받고 좋아서 나가더니……. 이건 전혀 단장답지 않아.”
바로 바렌과 네미스였다.
말하던 네미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쪽지 받았을 때도 단장답지 않았어.”
“뭐가? 공녀님 쪽지에 희희낙락거리던게 딱 단장인데.”
“그 쪽지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었던 거지?”
“……!”
바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원래 공녀님한테서 온 편지나 쪽지 내용 같은 건 우리가 절대 보지 못했잖아.”
“그래, 어찌나 지랄 맞게 지 혼자 보려고 하던지. 예전에 수르아 편지인지도 모르고 집었다가 손목이 짤릴 뻔했다고! 그 극성맞은 독점욕!”
“그 정도로 자기 혼자서만 보려고 했잖아. 그런데 어제는…….”
“그냥 다 볼 수 있었지. 눈깔이 파이거나 손목이 잘릴 뻔하지도 않고.”
왜지?
두 사람의 의아한 시선이 시드리한을 향했다.
그때였다.
대신관이 축복에 사용할 성물을 들고 나왔다.
루아티샤가 성물을 받아 들기 직전.
“후후, 내 힘을 가져와 줘서 고마워. 루아티샤.”
채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슈우우우욱!
성물에서부터 새빨간 힘이 뿜어져 나와 채리아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책으로!
“이, 이건……!”
“사기! 사기야!”
사람들이 놀라 외쳤다.
그중에는 루아티샤도 있었다.
“채리아, 너……!”
어둑하게 가라앉아 움직이는 인형 같던 루아티샤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그녀가 빠르게 파사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제야 눈치챈 모양인데 이미 늦었어.’
채리아는 픽 웃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시드리한의 목을 감싸안으며 속삭였다.
“시드, 저 못된 애가 나를 죽이려고 해.”
“…….”
“시드가 쟤를 죽여줘. 날 위해서, 응?”
시드리한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루아티샤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시드, 아니지? 설마 나를 공격할건…….”
그러나 시드리한은 차가운 얼굴로 루아티샤에게 다가갔다.
채리아가 깔깔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할래? 이대로 시드의 손에 죽을래? 아니면 살기 위해 네 손으로 그렇게나 사랑하는 연인을 죽일래?’
어느 쪽이든 재밌을 것 같았다.
때마침 시드리한이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루아티샤의 목을 조를 것처럼.
“……!”
시드리한의 손길에 중심을 잃은 루아티샤의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겹쳤다.
시드리한이 얼굴을 살짝 뗀 채 루아티샤에게 물었다.
“어땠어?”
“진짜 짜증 났어.”
“그럼 내 주인님,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겠네.”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쳤다.
뜨겁게.
채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뭐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