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4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25)화(345/353)
외전 25화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에 기도가 바짝 조여들었다.
그리고 저 눈빛.
루아티샤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꼭 시드리한의 시선에 꿰뚫린 것처럼.
주박에 걸린 것 같은 루아티샤와 달리, 시드리한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유려했다.
꼭 어둠 속에서도 조용히, 은밀하고도 정확하게 맹수처럼.
커다란 손바닥이 루아티샤의 손바닥 아래로 파고들었다.
예민하고 연한 손가락 살 틈 사이로 단단하고 커다란 남자의 손끝이 미끄러졌다.
천천히, 느릿하게.
틈 없이 손가락과 손가락이 완전히 맞물렸다.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이 이끄는 대로 속절없이 따라갔다.
시드리한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속삭였다.
“오늘은 주인님이 밀어내도.”
촉,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뜨거운 입술이 손끝에 닿았다.
“울어도.”
이번에는 눈가에.
“애원해도.”
그 말과 동시에 입술이 삼켜졌다.
나른하고 느릿했던 몸짓과 다르게 갈급하고 성마른 키스였다.
끊임없이 루아티샤를 원하고 갈구하는, 만족을 모르는 키스.
그 짙고 깊은 키스에 루아티샤의 손가락 끝이 오므라들었다.
파르르, 희고 가는 목덜미가 떨린다.
“흣, 시드…….”
평소라면 이쯤에서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드리한은 입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탐욕스럽게 그녀의 모든 것을 요구하며 몰아붙였다.
숨결 하나라도 아쉽다는 듯이.
길고 짙은 키스 끝에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아쉽다는 듯이 천천히 떨어지는 입술을 느끼며 루아티샤는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곧장 시드리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탐욕이 어둡게 일렁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시드리한은 루아티샤의 젖은 눈가를 매만지며 말했다.
“벌이니까.”
루아티샤는 멍하니 시드리한을 바라보다 입술을 달싹였다.
“시드…….”
“그렇게 불러도 안 돼.”
“난-.”
루아티샤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턱,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자세가 바뀌었다.
등에 닿는 푹신한 침대.
눈앞에 보이는 천장.
어느새 완전히 누운 루아티샤의 위로 시드리한이 엎드렸다.
시드리한은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제 침대에 누워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아티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아니면 보채는 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 체향이 가득한 침대에 그저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루아티샤는 그에게 너무나 자극적이었으니까.
루아티샤가 손을 들어 시드리한의 목에 팔을 감았다.
“글쎄, 어느 쪽 같아?”
그 작은 속삭임에도 머릿속이 헤집어진 것처럼 아찔해져서.
“하.”
시드리한은 그대로 루아티샤의 입술을 삼켰다.
* * *
달칵.
루아티샤는 천천히 시드의 방에서 나왔다.
발은 허공에 붕 떠 있고, 얼굴은 몽롱했다.
걷는 게 아니라 꼭 꿈결 속을 부유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빨리 결혼해야겠다.’
루아티샤는 생각했다.
‘진짜 빨리 결혼해야지. 당장 결혼해야지. 오늘 밤이라도 결혼해야지.’
오직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시드랑 둘이서만, 둘만-.’
루아티샤는 코를 감싸 쥐었다.
“휴, 코피 날 뻔.”
신혼 생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코로 피가 몰렸다.
이게 다 시드가 지나치게 섹시한 탓이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섹시할수가 있지?
‘우리 시드는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해.’
“아무튼 어서 신혼을 즐겨야지. 아무 방해 없이 둘이서만 매일…….”
그때였다.
“신혼?”
“신혼을 즐긴다고?”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복도 건너편.
가족들이 똑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벌써 신혼 이야기를…….”
“방해 없이 매일 둘이서만 있겠다니.”
“……설마 우리가 방해라는 건 아니겠지.”
마지막 말에 다섯 남자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서슬 퍼런 가족들의 모습에 루아티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이, 내 말은, 그게 그러니까-.”
도도도 가족들에게 달려가 변명하려던 루아티샤가 멈칫했다.
‘내가 왜 변명해야 하지?’
시드리한과 약혼한 지도 3년.
루아티샤는 이제 진짜로 결혼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시드리한은 결혼하기 전부터 혹독한 처가살이를 견디지 않았던가!
“그래! 나 빨리 결혼해서 아무 방해도 없이 시드랑 신혼을 즐길 거야!”
눈을 부릅뜨고 당당히 외치자 익시온이 어이없어했다.
“이 쬐깐한 솜뭉치가 벌써부터!”
반면 아레스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렇게 음험한 것도 미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일단 미소가 맞긴 했다.
“내 동생,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막내는 나랑 결혼한다고 했는데…….”
“윽…….”
시무룩한 제온의 얼굴까지 눈에 들어오자, 루아티샤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이대로 약해지면……!’
루아티샤는 발끝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나 시드랑 지금 당장 결혼할 거야!”
“……!”
“……!!”
“……!!!”
세 남자의 얼굴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파에라톤의 세 공자들이 누군가.
세상이 멸망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오연히 서 있을 남자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개복치처럼 충격받았다.
목숨의 위기였다.
“겨, 겨, 결혼이라니…….”
그야 사랑하는 막내가 언젠가 결혼할 거라는 건 그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고(?) 강경하게(?) 말할 줄이야.
결혼하면…….
‘우리랑 안 살 거잖아!’
그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버지!”
익시온이 다급한 얼굴로 파에라톤 공작을 불렀다.
이럴 때 막내를 말릴 수 있는 건 역시 아빠밖에 없다.
파에라톤 공작이 딸아이의 머리를 꾹 눌렀다.
“……루루, 네가 원한다면 당연히 결……해야지.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의 눈매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그놈이 감히 널 두고 다른 여자를…….”
으드드득!
파에라톤 공작의 잇새에서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난 절대 그런 놈은 허락 못 한다.”
루아티샤는 아빠가 뭘 이야기하는지 곧장 깨달았다.
시드리한이 클라티에에게 세뇌 당한 척 했을 때를 말하는 거다.
“그건 다 작전이었어요.”
“아무리 작전이었다고 해도 솜뭉치 앞에서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남자야!”
“적어도 내 동생이 충격 받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뒀어야지.”
“나는 연기라도 막내 앞에서 그런 짓 못해.”
마지막 말에 루아티샤는 흐린 눈으로 제온을 바라보았다.
‘제온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세뇌당해서 날 못 알아봤으면서.’
하지만 말하는 순간 제온이 울 것 같았다.
오빠의 눈물에 약한 루아티샤는 팩트 폭행 대신 침묵을 지켰다.
“괜찮은 척해도 아빠는 다 안다. 그때 진심으로 상처받았잖아.”
“아, 그거요…….”
루아티샤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때는 사실 시드가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시드인 척하는 카인이었다.
그래서 아까 카인이 시드인 척하면서 유혹할 때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엄청 충격 받긴 했다.
시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시드와 똑같이 생긴 가짜가 다른 여자랑 붙어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지끈거려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클라티에가 키스해달라면서 안길 때는 진짜 작전이고 뭐고 머리에서 깡! 소리 나도록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뭐,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시드리한이 아니었다고.”
“시드가 작전으로라도 다른 여자랑 살갗이 닿는 건 싫다고 해서.”
“…….”
“반경 10m 안에 같이 서 있기도 싫다는 거 억지로 달래느라 힘들었어요. 축복식에선 진짜 시드였으니까.”
“…….”
파에라톤 공작은 침묵했다.
시드리한의 말과 행동 모두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럼 허락하신 거죠? 아까 제가 원하면 결혼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고 멋지고 훌륭한 아빠라서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니까!”
“…….”
파에라톤 공작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루아티샤가 배시시 웃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멀어지는 딸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토닥토닥.
타렌카 후작이 조용히 사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힘내게. 그래도 이나이스가 결혼하겠다면서 짐 싸 들고 가출했을 때보다는 나아.”
“…….”
“그러고 보니 그 원흉이 자네였군.”
타렌카 후작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심지어 자네는 내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딴 감정은 모른다고 차갑게 말했던 그 시절의 파에라톤 공작.
그 모습을 떠올리며 타렌카 후작은 쌩하니 자리를 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며,
“자네에 비하면 황태자 전하께선 백배 천배 낫지.”
파에라톤 공작은 그제야 웬 놈팡이한테 딸아이를 빼앗긴 타렌카 후작의 심정을 깨달았다.
지난날의 업보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아부지는 업보가 있다고 쳐도 우리는…….”
“무슨 죄로 내 동생을 뺏겨야…….”
“……놈팡이.”
제온이 부친을 향해 작게 읊조렸다.
패륜에도 파에라톤 공작은 침묵한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르켈 자작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공작님이 아가씨께 말려든 거 같은데.’
역시 아가씨의 계략은 피가 튀고 살이 찢겼다.
적어도 파에라톤 공작의 마음이 찢기고 피가 철철 나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 * *
어둑한 방안.
나비는 그 안에서 고요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
콰과과과광!
시뻘겋게 타오르며 해일 같이 밀려오는 힘을 가르고 선봉에 서 있던 루아티샤.
흩날리던 꽃잎 같은 머리카락과 거침없이 뻗어지던 가녀린 팔.
그 손에서 피어나던 힘.
‘그 압도적인 힘.’
루아티샤의 손에서 발휘되던 특유의 힘은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몇 번이나 생을 반복한 그조차도 신경이 찌릿찌릿 울릴 정도로.
나비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때의 루아티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이 짜르르 울렸다.
어째서인지는 그도 몰랐다.
수십 번의 회귀.
강력한 적은 몇 번이나 만났다.
그러나 이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쉬지 않고 떠올라 그의 정신을 잡아채는 사람은…….
“루아티샤 파에라톤.”
나비는 가만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오로지 그 여자애뿐이었다.
그때였다.
“우와, 오늘 무슨 날인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돌아다니던 여자애가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
“왜 다들 어둡게 하고 있지?”
루아티샤가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오후의 황금빛 태양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나비에게까지.
“나비는 환자니까 어둡게 하고 있으면 안 돼. 아프면 쉽게 마음이 어두워지기 마련이거든.”
루아티샤가 나비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녀의 머리 뒤의 태양 때문일까.
나비는 어쩐지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다.
“자, 이리 와. 왜 불편하게 그러고 있어.”
루아티샤가 싱긋 웃었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였다.
한심할 정도로 평화롭고 순해 빠져서 바보처럼 느껴지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 같은 미소.
제 손을 잡는 손은 그저 부드러웠다.
조금만 힘주면 부서질 것처럼.
가냘프고 연약한 여자.
하지만 이제 나비는 안다.
이 보드라운 손에는 압도적이라만치 폭렬한 기운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왜.”
“응?”
“왜 그렇게 웃는 거지?”
루아티샤는 어이없는 눈으로 나비를 쳐다봤다.
얘는 진짜 웃는 얼굴에 침을 잘 뱉는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정성을 쏟았던 사람이 죽고 온갖 비난을 받았지.”
“…….”
“사람이 괴물로 변하고 재앙이 닥쳤어.”
“…….”
“그런데 왜 그렇게 웃냐고.”
루아티샤가 고개를 기울였다.
“으으으음, 생각해 보니까 내가 겪은 일들이 보통이 아니긴 했지?”
“…….”
“그래도 뭐, 그보다 더 좋은 일들이 많았으니까.”
나비가 입술을 달싹였다.
할 말이 많았으나 정작 나오는 말은 없었다.
재앙을 겪어본 그가 가장 잘 알았다.
그건 그냥 ‘그래도 좋은 일도 있었다’며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이 여자애가 겪은 재앙 역시 마찬가지일 터.
“더…… 좋은 일들이 많았다고?”
“응.”
“그날 대응이 물 흐르듯 일사불란했어. 네가 전황을 통제하지 않아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지. 마치 몇 번이고 이런 일을 겪어본 것처럼.”
“어, 고마워?”
나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겪은 수많은 일들이, 그저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시드를 만났거든.”
“……뭐?”
“아빠랑 오빠들도 만나고, 아즐이랑 칸도르 백작도 만나고. 라파엘이랑 자스민, 티리엘, 클라우디아, 카멜리아 그리고 아쉘타인 쌍둥이들까지…….”
“…….”
“뭐, 좀 아니꼽지만 카인이랑 크레센티오도 끼워줄까.”
“…….”
“너무나도- 너무나도 그리운 내 소중한 친구, 오필리아도 만났고.”
오필리아 아이젤.
되뇌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미는 이름에 루아티샤가 웃었다.
나비가 처음 보는, 애처롭고 애달픈 미소였다.
눈 한 번 깜빡하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그래서 나는 다 좋았어.”
그러나 다음 순간, 루아티샤는 평소처럼 환하게 웃었다.
꾸며낸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아.’
나비는 어쩐지 압도 당하는 것을 느꼈다.
루아티샤가 발휘했던 강력한 무력을 목도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더-.
‘강하다.’
이 세계는 그의 생각처럼 평온하고 안온하지 않았다.
이 여자애는 상냥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란 게 아니었다.
그저.
“나비, 널 만나서도 좋았고.”
강할 뿐이다.
세계를 구할 정도로.
그때였다.
루아티샤의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세계를 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