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4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29)화(348/353)
외전 29화
“어, 어어?”
채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사냥꾼의 욕망 어린 눈빛에 움츠러든 아기 사슴처럼 겁먹은 얼굴이었다.
나는 아차 했다.
19금에 눈 벌게져서 달려들지 말고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는데.
“아, 그게, 내 말은-.”
“작가님이라니! 후훗, 내 소설이 그렇게 재밌어? 처음 써본 건데. 난 천재일까?”
채리아가 콧대를 세우며 머리카락을 멋지게 쓸어 넘겼다.
촤라라락! 검은 머리카락이 샴푸 광고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이 세계에 온 건, 어쩌면 개쩌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
아, 맞다.
쟤 원래 이런 애였지.
‘이 세계에 온 게 시드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던 때보단 낫지만…….’
“어쩐지 영감이 막 떠오르는 거 있지?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우후훗!”
저 모습을 보니 왜 떨떠름해지는 걸까.
하지만 채리아가 쓴 글이 재밌는 건 사실이었다.
‘여주가 빙의했는데 시한부이면서 악녀이기까지 하고, 달라진 모습에 15명의 남자들과 썸을 타고, 그 와중에 계약 결혼한 남주를 처제가 유혹하고,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니…….’
어디에도 없는 짬뽕 막장인데, 이걸 또 잘 끓이네.
“잠깐. 여주한테 접근하는 남자 중에 남편의 동생도 있잖아? 처제에 이어 시동생까지…….”
“아아, 익시온이 내게 영감을 주었지.”
“……남의 오빠 가지고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다시 보니 여주와 썸을 타는 15명의 남자들도 어딘지 익숙했다.
‘이 남자는 라파엘. 얘네는 아즐이랑 펠릭스……. 잠깐, 디에르 자작이랑 그륀드, 피안크도 있잖아? 여기 캉돌 백작은 설마 칸도르 백작인가?!’
나이 차이가 몇인데……!
물론 소설 속 칸도르 백작은 물의 요정님과 로맨스를 찍었을 때처럼 젊었다.
“설마 남주네 아빠가 우리 아빠야?!”
“에이, 공작님은 아니고. 공작님께서 영감을 주셨지.”
“……야.”
어이가 없었다.
아빠와 익시온뿐만 아니라 아레스와 제온 그리고 할아버지도 있었다.
심지어 카인과 크레센티오까지 나왔으니…….
“남주를 제외하고 15명이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잖아!”
“그, 그래도 리한은 너랑 이어줬어! 여기 루아샤티랑.”
“루아샤티가 나였어? 엄청 싸가지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크흠!”
채리아가 찔리는 얼굴로 헛기침했다.
‘하……. 그나마 여주와 19금 격정 로맨스를 찍는 남주는 순수 창작 캐릭터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채리아가 말을 돌렸다.
“사실 여주인공 이름을 고민 중이었거든.”
그러고 보니 소설 내에서 여주는 ‘여주인공’ 혹은 ‘그녀’라고만 적혀 있었다.
채리아가 내게 물었다.
“여주 이름으로 체리엘 어때? 귀엽지!”
“……뭐요?”
최악의 이름이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채리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채리.”
“응?”
“여주 이름에 네 이름이 들어가는 것까진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끝에 ‘리엘’은 절대 붙이지 마.”
“왜……?”
“아무튼 붙이지 마.”
소설이 강령술도 아니고 불러내선 안 될 것을 소환할 것 같단 말이야.
탁!
나는 이 찝찝한 책을 덮고 채리아에게 말했다.
“채리, 이거 말고 다른 소설을 써볼 생각 없어?”
“다른 소설?”
“흠흠, 예를 들면 남주가 여주의 능력 때문에 둘이 된다거나.”
“같은 사람인데 둘이 된 거야?”
“응! 반드시 여주의 능력 때문에!”
채리아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봤다.
“그런 막장을 어떻게 써.”
이딴 마라맛 막장을 써놓고 그러기냐!
* * *
국제 정상회담 뺨치는 협상 끝에 채리아와 루아티샤는 극적인 타협을 했다.
여주인공의 능력으로 남주를 둘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쓰지 않으면서!
“재밌어 보여서 쓰겠다는 거야. 절대 이런 물질적인 보상에 넘어간 게 아니야.”
“응, 그래그래.”
루아티샤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채리아는 만족해서 보석을 한 보따리 들고 사라졌다.
“시드는?”
복도로 나온 루아티샤가 안나에게 물었다.
“공작 각하와 후작님 그리고 도련님들과 함께 계세요.”
“설마 또 새로운 전술을 시험하겠다고 시드를…….”
처가살이 내내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루아티샤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그냥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계시니.”
“와, 최근 부쩍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오붓하게 술잔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긴, 이제 진짜로 한 가족 아닌가.
“나도 가서 합류할까.”
루아티샤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
.
그러나 루아티샤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녀의 상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루아티샤를 보고 놀란 가족들.
멀쩡한 가족들과 달리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소파에 기대어 있는 시드리한.
그리고 시드리한의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빈 술병.
루아티샤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지금 시드한테 억지로 술 먹인 거예요?!”
“……억지는 아니고-.”
“얼마나 먹였으면 애가 술에 떡이 됐어요! 술 취하지도 않는 애가 이렇게까지……!”
“미쳤나.”
“……?!”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루아티샤는 고개를 돌렸다.
시드리한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게 시드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루아티샤가 굳어 있는 사이, 시드리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미쳤나 봐.”
확인 사살이었다.
루아티샤의 입술이 멍하니 벌어졌다.
‘시드가, 나한테 미쳤다고 말한 거야? 술에 취해서……?’
충격적이었다.
시드리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루아티샤에게로 손을 뻗었다.
“화내는 모습도 예뻐.”
……예?
“찡그린 미간도 엄청 귀여워.”
“…….”
“놀란 얼굴은 토끼 같아.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
“…….”
“아. 얼굴 빨개졌다.”
새빨개진 루아티샤의 얼굴보다도 시드리한의 손이 더 뜨거웠다.
술기운에 열감 가득한 손바닥이 루아티샤의 뺨을 완전히 감싸 쥐었다.
“키스하고 싶은데.”
숨결에 섞인 쌉싸름한 위스키 향.
평소와 달리 약간 젖은 채, 몽롱한 눈동자.
발긋한 뺨.
약간 느릿한 발음.
“해도 돼?”
루아티샤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술 취한 남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섹시하지?
뺨을 감싸던 긴 손가락이 루아티샤의 귓불을 스쳐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스르륵, 루아티샤의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들려는 순간.
“잠깐, 잠깐, 잠깐!”
루아티샤는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그대로 말려들 뻔했다.
‘시드는 술이라도 마셨지, 난 멀쩡한데!’
시드리한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제 얼굴을 막은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입술이 닿았다.
루아티샤는 화들짝 놀랐다.
“가, 가족들 다 보는 앞이잖아!”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뺨을 잡고 돌렸다.
시드리한의 얼굴이 가족들을 향했다.
깜빡, 깜빡.
장인어른과 할아버님 그리고 형님들을 담은 눈이 몇 번 깜빡였다.
제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이윽고 시드리한이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까?”
“……?”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내 주인님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
“진짜 예뻐요. 엄청 귀여워.”
“…….”
“제가, 말씀드렸습니까?”
“…….”
“내 주인님은 세상에서-.”
“데리고 가라.”
파에라톤 공작이 루아티샤에게 말했다.
“저놈 아까부터 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어.”
익시온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 지난 세월도 있고. 아슬아슬하지만 내 동생의 짝으로 합격점을 줄까.”
“막내 눈에서 눈물 나게 하는 순간 합격 취소야.”
“그야 당연하지! 솜뭉치가 조금만 눅눅해져도 가만 안 둬.”
아레스와 제온, 익시온의 말에 타렌카 후작이 픽 웃었다.
“어쨌든 내 사위 놈보다는 낫지.”
파에라톤 공작이 움찔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딸아이를 불렀다.
“루루.”
“네, 아빠.”
“그 녀석이라면 네가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네?”
새삼스러운 말에 루아티샤는 고개를 갸웃했다.
파에라톤 공작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내가 한 말을 주워 담지 못해서 네 결정을 지지한 게 아니다.”
“……!”
‘나에게 떠밀리듯 결혼 허락하신게 신경 쓰이셨구나.’
파에라톤 공작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아직도 그런 말이 세간에 떠돈다.
다 알지 못해 하는 소리다.
‘진짜 아빠는 이렇게 다정하고 세심하신걸.’
마지못해 허락한 결혼이라고 딸이 속상할까 봐 이렇게 말해줄 정도로.
루아티샤는 어릴 때처럼 달려가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탐탁지 않은 사위라고 하지만, 나에게 아빠는 최고의 아빠예요!”
파에라톤 공작의 눈동자가 떨렸다.
“……내가 네게 많이 부족했는데도?”
“오히려 차고 넘쳤죠.”
“…….”
“떨어져 있을 때도, 아빠는 날 위해 전장에서 목숨을 걸었잖아요.”
“…….”
“내게 돌아오기 위해.”
‘아.’
파에라톤 공작은 신음하듯 생각했다.
어떻게 이 아이는 항상 자신을 구원해주는 것일까.
“……고맙다.”
공작이 미소 지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자신을 숨 쉬게 하는 딸아이를 향해서.
* * *
“아, 밀지 마세요.”
“그 자리 내 자리야!”
“난 새벽부터 와서 자리 잡고 있었다고!”
“난 어제 저녁부터 있었어!”
북적북적.
경건하고 엄숙한 디비니타스 홀은 평소와 달리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자자, 좋은 날 싸우지 맙시다.”
“그래, 좋은 날인데 소란 피우면 안 되지. 미안합니다.”
“흠흠, 과자 드실래요? 날이 날인 만큼 나누려고 집에서 쿠키를 구워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오오, 이 쿠키 모양 설마 황태자 전하와 성녀 예하입니까?”
“어쩜! 웨딩 드레스와 예복을 입고 있네요!”
“맞아요. 결혼식을 축하하려고 만들었어요.”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의 결혼식 날이었으니까.
디비니타스 홀의 광장만큼이나 건물 안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날씨 진짜 좋다. 햇빛은 쨍쨍한데 바람은 선선하고.”
“그야말로 신께서도 축복하는 결혼식이네.”
자스민과 티리엘의 말에 루아티샤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신의 축복이 맞긴 하지.’
아프타네스가 이번엔 진짜 잘해보라고 사랑의 시련까지 줄 정도였으니까.
‘하긴, 아프타네스 입장에서는 몇천 년 동안 커플이 이어지지 않는 고구마였던 건가.’
루아티샤와 시드리한 둘 다 아프타네스가 최초로 만든 인간이었으니.
“하아, 공녀님 너무 예뻐요. 오늘은 유난히 머리카락이 반짝거리네.”
“반짝거리는 김에 따악 열 가닥만 주시면…….”
“둘 다 결혼식 날까지 그래야겠어요?”
“그치만 클라우디아라면 우리의 학구열을 이해할 거 아니야.”
“학구열이 아니라 변태력이겠죠.”
클라우디아와 아쉘타인의 쌍둥이들이 아웅다웅거렸다.
루아티샤는 카멜리아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카멜리아는 답지 않게 멀찍이 떨어진 채 주저하고 있었다.
“왜 그래, 카멜리아?”
“……황태자비가 되면 이제 라이벌 못 해?”
“뭐?”
“황족이 되는 거잖아. 할부지가 그랬어. 이제 루루한테 예를 잘 차려야 한다고.”
루아티샤는 픽 웃었다.
“그런다고 네가 예를 잘 차리겠어?”
“뭐?”
“예는 내가 성녀가 되었을 때부터 잘 차려야 했어. 근데 넌 안 그랬잖아?”
“그야, 친구니까.”
“그래. 친구니까.”
루아티샤의 미소에 카멜리아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좋다’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결혼식 날, 사랑하는 여자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다.
“뭘 그렇게 감격한 얼굴을 하고 있어?”
“라파엘.”
“뭐, 일단은 축하한다.”
“일단이 뭐야.”
라파엘이 습관처럼 루아티샤의 머리를 꾹 누르려다 멈칫했다.
루아티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교육의 효과가 있네. 드디어 내 말을 듣는구나.”
“뭐래. 결혼식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나가면 체면 상할까 봐 신경 써준 거지.”
“네가 그런 것도 신경 쓸 줄 알았어?”
라파엘이 머리 대신 루아티샤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오늘은 이걸로 참아줄까.”
“넌 날 건들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돋냐?”
“……행복해라.”
라파엘이 중얼거렸다.
언뜻 보인 그의 표정이 이상해서 루아티샤가 고개를 드는 순간.
“뭐, 안 행복하면 빨리 이혼하고.”
라파엘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혹시 아냐? 눈이 삐어서 네가 이혼해도 좋다고 데려갈 놈 있을지.”
“야, 넌 결혼식 날…….”
루아티샤가 입술을 삐죽였다.
라파엘은 통통해진 뺨을 보고 미소 지었다.
“저게 귀여우면 진짜 눈 삔 놈인 거지.”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웨딩 드레스를 입은 걸 보고도.
“‘저게’라니. 너 지금 나 욕하냐?”
전혀 알아듣지 못해 심통 내는 얼굴이 사랑스럽다면.
“난 간다.”
라파엘이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친구들도 나가고, 곧 루아티샤는 혼자가 되었다.
예기치 못한 손님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