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4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30)화(349/353)
외전 30화
풀밭을 맨발로 걸을 때처럼 싱그러운 냄새가 방 안에 물씬 퍼졌다.
깨끗하고 달콤한 꽃향기.
루아티샤는 이 향기를 잘 알고 있었다.
“돈 냄새!”
향긋한 자본의 향기였다.
“돈 냄새라니……!”
반가움에 외쳤건만 곧장 핀잔이 돌아왔다.
동시에 빛이 모이더니 하나의 인영이 되었다.
흔들릴 때마다 싱그러운 꽃향기가 나는 긴 머리카락.
달의 신처럼 신비롭고 요요한 분위기의 섬세하고 차가운 미남.
인간화한 대영수 악트셰라켄이었다.
“자연의 일부를 관장하는 대영수에게 그런 세속적인 향이 난다는 게 얼마나 큰 모욕인지 모르는 거냐?”
샤이렌 평원의 주인에게서 샤이렌 꽃 향기가 나는 건 당연했다.
다만 샤이렌 꽃을 통해 석유…… 아니, 검은 황금을 만들어 내다 보니…….
루아티샤에게 샤이렌 꽃 향기는 향긋한 돈 냄새 그 자체였다.
“그만큼 좋다는 뜻이에요. 돈 냄새만큼 좋은 냄새라는 거죠. 전 돈 냄새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여전히 말은 잘하는구나. 하나 내가 그런 통속적인 핑계에 기분이 좋아질 것 같으냐?”
기분 좋아 보이시는데요.
그것도 무척.
루아티샤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다른 걸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영역을 떠나서 오시다니.”
“하…….”
악트셰라켄이 어이없다는 듯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왜겠냐.”
“……설마 제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거예요?”
“영수들에게 인간들처럼 성혼에 대한 감각은 없지만 하나는 알지.”
악트셰라켄이 미소 지었다.
“네가 바라 마지않은, 네게 중요한 날이라는 것.”
“와……. 감사해요.”
루아티샤는 순수하게 감동했다.
마족이나 천족과 달리 영수는 인계에 머무를 수 있지만, 그것도 제 영역 안에 한정된다.
악트셰라켄이 영역을 벗어나 친히 이곳에 오기까지 적지 않은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 모든 고생을 감내하다니, 이것이 종족을 뛰어넘은 우정인가?
“……흥, 그런데 왜 왔냐는 소리나 하고 있고.”
악트셰라켄은 투덜거리면서 힐끔 루아티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일렁일렁하고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게 진짜 감동한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 싸움을 일삼던 여자아이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
온갖 미사여구 가득한 감사의 인사보다 더 마음이 느껴졌다.
‘뭐, 저 얼굴을 봤으니까 됐나.’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보람이 있군.’
자기가 대표로 성혼식에 가겠다는 영수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악트셰라켄의 손에서 빛으로 짜인 꽃송이가 피어올랐다.
명절에 손주에게 먹을 것을 싸주는 할머니처럼 영수들이 바리바리 싸준 축복이었다.
“영수들의 축복이다. 한데.”
루아티샤의 곁에 다가간 악트셰라켄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게서 마족과 천족의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
“아, 그게-.”
“설마 잔치에 우리 영수는 쏙 빼놓고 마족과 천족만 불렀을 리는 없고.”
“그게 그러니까…….”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마족과 천족을 직접 불렀나 보네? 아니었으면 아니라고 팔짝 뛰었을 성격이니까.”
“그,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흐음, 더 이상 샤이렌 꽃은 필요 없겠군. 필요하면 마족이나 천족이 구해줄 테니까!”
악트셰라켄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팩 돌렸다.
긴 머리카락이 핑그르르 돌며 꽃향기가 솔솔 났다.
‘완전 삐졌네.’
루아티샤는 흐린 눈으로 대영수를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족히 수천 년은 넘게 살았으면서 삐지는 것으로 모자라 치사하게 돈(?)으로 협박하냐!
……아니, 돈으로 협박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연륜인가?
“흥이다! 앞으로 샤이렌 꽃은 없다!”
삐진 어른 만큼 성가신 존재는 없다.
루아티샤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마마를 괴롭히지 마아!”
창을 타고 들어온 니케가 위엄 있게 앙증맞은 앞발을 휘둘렀다.
악트셰라켄이 대경하여 그 위협적인 공격을 피했다.
“……저기, 너무 멀리 피하신 거 아니에요?”
“크흠!”
악트셰라켄이 헛기침하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니케를 무서워하는 티가 역력했다.
“참나, 이렇게 귀여운 우리 니케를 왜 그렇게 무서워한담.”
화동으로 꾸민 니케는 정말 깨물어줄 만큼 귀여웠다.
루아티샤는 니케를 껴안고 물고 빨았다.
“오구오구, 누구 애기가 이케 귀여워요?”
“니케는 마마 아기야!”
니케가 배를 까며 애교를 떨었다.
악트셰라켄이 “으…….” 하며 못 볼 것을 본 얼굴을 했다.
‘영수들 입장에서는 다 큰 어른 고양이가 혀짧은 애기 소리를 내며 인간한테 애교부리는 걸로 보인댔나.’
그러든 말든 루아티샤의 눈에 니케는 영락없는 애기였다.
작고 소중하고 나 없으면 안 돼.
악트셰라켄이 “크흠.”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네 덕분에 영수계는 점점 예전의 힘을 되찾아 가고 있다. 천계와 마계도 마찬가지겠지.”
그가 루아티샤에게 축복의 꽃을 내밀었다.
“영수계로 놀러 와라.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있다.”
“……무슨 사탕으로 어린애 꼬시듯 말하네요.”
루아티샤가 피식 웃으며 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흥, 알면 됐다.”
“근데 그럼 앞으로도 샤이렌 꽃 가져가도 돼요?”
악트셰라켄이 기막힌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얘는 이 상황에서도 돈 챙기냐.
“네가 언제 내 허락을 맡고 가져갔다고. 선서리 후통보였지.”
“……나중엔 제대로 협상했잖아요.”
입을 삐죽이는 루아티샤를 보고 악트셰라켄이 웃었다.
이 작은 인간과의 대화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어주는지 알까.
‘……천성부터 타고난 폭군인 환수가 따를 정도니.’
그의 시선이 루아티샤의 품에 안긴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니케에게로 향했다.
형형한 두 눈이 말하고 있었다.
빨리 꺼져.
“네가 직접 오면 한 번 생각해 볼지도.”
“네에?”
“그럼 또 보자.”
악트셰라켄이 루아티샤의 코끝을 톡 쳤다.
“꽃도둑.”
* * *
루아티샤가 한창 예기치 못한 불청객을 맞이하고 있을 무렵.
“우와, 결혼식이 이렇구나.”
채리아는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봤던 화려한 성과는 또 달랐다.
“역시 마법이 있는 세계라는 건가.”
채리아는 중얼거리며 노트에 무언가를 바삐 써 내려갔다.
그러다 옆에 있는 나비를 툭 쳤다.
“너도 눈에 잘 좀 담아놓지, 그래?”
“…….”
“신기하잖아. 우리가 또 언제 이런 구경을 하겠어.”
채리아의 말에 나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한가하고 평화로운 성혼식 따위, 구경해서 뭐 한-.
생각하던 나비가 멈칫했다.
‘……한가하고 평화롭다, 라.’
바로 얼마 전, 채리아의 몸을 탈취한 사이비가 날뛰었다.
마물이 침략하고 성녀의 축복식은 피로 물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모여 평화와 축복을 노래하고 있었다.
심지어 피로 물들었던 축복식의 주인공인 성녀의 성혼식에.
이건 멍청하거나 기억에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니.’
나비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그곳엔 활짝 웃고 있는 루아티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저 녀석에 대한 믿음인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멸망 직전까지 갔던 세계가 어떻게 그렇게 온실처럼 평화로워 보였는지.
지금처럼, 사람들은 빠르게 회복한 것이다.
그 어떤 일을 겪어도 두려움 없이 다시 모이고 웃을 수 있게.
‘고작 한 인간에 대한 믿음 따위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비는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만약에 자신이 저 여자애와 함께였다면…….
그 숱한 멸망의 순간 속에서도-.
나비는 빈 주먹을 꽉 쥐었다.
수십 번 반복된 회귀의 유일한 변수.
놓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은 그저, 그 여자애와-.
“참나, 그렇게 인상 찌푸리지 말고. 루루가 결혼하는 좋은 날에.”
“…….”
“뭐, 루루의 결혼에는 관심 없어도 다른 좋은 일이 있잖아?”
채리아가 웃었다.
“우리도 오늘이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텐데.”
“…….”
그렇다.
바로 오늘, 성혼식이 끝나고 난 뒤.
채리아와 나비는 루아티샤의 힘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원래 루아티샤는 아프타네스와 만난 후 곧장 두 사람을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채리아가 버럭했다.
“뭐야! 그래도 곧 결혼하는데! 결혼식은 보고 가야지!!”
그 결과, 두 사람은 결혼식 후의 이벤트로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신혼을 즐기고 싶은 루아티샤의 욕망이 들어간 결정이었다.
“아, 엄마, 아빠 보고 싶다. 이번 명절에도 본가에 안 갔는데. 돌아가면 바로 가볼까.”
“…….”
“설마 막 몇백 년 지나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왜, 차원마다 시간 흐름이 달라서 이곳의 하루가 저쪽의 10년이라거나.”
채리아가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를 듣던 나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더러웠다.
곳곳에서 루아티샤의 결혼을 축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속이 답답했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아, 나비 님. 여기 계셨군요.”
루아티샤의 하녀였다.
그녀가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나비 님이 이곳에 오실 때 가지고 계셨던 소지품이에요.”
나비는 꾸러미를 열었다.
별거 없었다.
핸드폰과 지갑.
나비의 무기는 어차피 소환형이었으니까.
‘……지갑?’
나비는 멈칫하고 지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신분증이 있었다.
그리고 신분증에는 당연히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죄, 죄송해요.’
그 모습을 본 하녀가 안절부절못하며 사과했다.
“이름을 알면서도 나비 님이라고 불러서.”
“네 주인이 나를 나비라고 불렀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그, 그건…….”
하녀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어렸을 때 아가씨께서는 본인의 이름을 모르셨어요.”
“……이름을, 몰랐다고?”
“예…….”
믿기 힘든 말이었다.
특히 가족들이 얼마나 그 여자애를 물고 빠는지를 생각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름도, 나이도 알게 되셨죠. 그때 아가씨께서 틈만 나면 자랑하셨어요. 자기 이름은 루아티샤고 네 살이라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항상…….”
하지만 그렇게 하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진실이라 말해주고 있었다.
네 살이면 말을 알아듣고도 남을 나이였다.
그런데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그때까지 그 여자애를 제대로 부르는 사람조차 없었다는 건가.’
눈치를 보던 하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어, 아가씨께서 나쁜 의도로 나비라고 부르신 건 아니에요.”
“……알아.”
“네?”
그런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름을 묻는 그 여자애의 눈이 간절했으니까.’
그런데 그 간절했던 이유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르고 불리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젠장.’
나비는 이를 악물었다.
이상할 정도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게 후회와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나비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루아티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시드리한은 홀의 커다란 문 앞에 서 있었다.
제국의 성혼 예법에 따라 신부인 루아티샤와 함께 입장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기분이 이상했다.
초조하면서도 기쁘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분.
황제의 친자로 인지 받을 때도, 처음 제국에 제 존재를 드러낼 때도 이렇진 않았다.
‘침착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적으로 식을 마쳐야 했다.
절대 흥분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상황을 컨트롤 해야 한다.
그때, 가벼운 구두 소리가 들렸다.
시드리한은 이 발걸음 소리를 알고 있었다.
루아티샤의 발걸음 소리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린 시드리한은 숨을 멈췄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루아티샤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매일 밤, 웨딩드레스를 입은 루아티샤를 열망했다.
그리고 루아티샤의 웨딩드레스 차림은 그 어떤 상상보다도 더 완벽했다.
시드리한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유트라가 루아티샤의 성혼식을 위해 제작한 드레스는 수십 벌이 넘었다.
루아티샤가 제발 그만 입어보고 싶다는 것을 달래가며 다 입혀보지 않았던가.
‘신이시여.’
그러니 그가 생전 찾지 않던 신까지 찾을 정도로 충격을 받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까까지 되뇌던 침착과 냉철은 우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시드?”
루아티샤 파에라톤이, 평생 그의 심장을 틀어쥔 주인이 현세에 강림한 여신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오로지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
루아티샤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갔다.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오직 그녀를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당장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숭배하며 발등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불경한 욕망이 일었다.
“왜, 이상해?”
가까이 다가온 루이탸사가 시드리한에게 속삭였다.
자신을 보고 무서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시드리한의 모습이 영 이상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 말에 루아티샤는 움찔했다.
이렇게 묻는 걸 보니 진짜 이상한가?
그녀가 뭐라 더 묻기 전에 홀의 문이 열렸다.
“와아아아아-!”
두 사람의 성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루아티샤가 그 인파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지금 당장 벗기고 싶어.”
시드리한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