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35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 외전 (19)화(350/353)
외전 19화
‘때마침 아주 좋은 먹잇감이 등장했네.’
펠릭스 카이셴이 루아티샤와 사이가 좋다는 것은 제국의 귀족이라면 전부 다 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사교계의 가장 명망 높은 살롱 중 하나인 메티스의 회원이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호스트인 미첼로인 부인과 인사를 나눈 펠릭스가 곧바로 루아티샤에게 다가왔다.
루아티샤가 슬쩍 손을 올리며 웃었다.
“이야, 신수 훤하신데. 흰장미의 귀공자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네네, 새하얀 꽃 같은 귀공자님.”
“……살짝 욕 같은데. 왜 내 머리를 보면서 말해?”
“에이, 욕이라니. 머리가 아니라 얼굴을 보면서 말한 거야. 절대 뇌가 새하얀 꽃 같다고 하지 않았어. 진짜야.”
“전형적으로 찔리는 사람의 반응이군.”
“펠릭스는 내가 그런 못된 사람으로 보여?”
“응.”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두 사람은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자연스럽고 친밀했다.
영애들이 그 모습을 동경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멋져. 두 분 다 메티스의 중심이시잖아.”
“나도 언젠간…….”
채리아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저런 한심한 대화가 뭐가 멋지다는 건지.
‘제온 파에라톤과 사교계의 인기를 양분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가 보네.’
그 정도로 펠릭스 카이셴의 영향력은 강했다.
채리아는 펠릭스와 이야기하는 루아티샤를 보며 픽 웃었다.
‘지금을 즐겨둬. 곧 내 것이 될 테니까.’
채리아는 슬그머니 파티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생전 처음 오는 미첼로인 후작저가 익숙한 것처럼.
이윽고 몇 번의 모퉁이를 돌고 몇 개의 방을 지나쳤을 때.
채리아는 거대한 석상 앞에 서 있었다.
“후후, 잘 있네.”
오랜 학자 집안인 미첼로인 가에는 과거의 유물이 많이 있었다.
이 거대한 석상도 그중 하나였다.
채리아가 품에서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연 순간.
파라라라락-
마치 석상과 공명하듯 일기장의 페이지가 저절로 움직였다.
석상에게서 새빨간 빛무리가 터져 나오더니 일기장의 열린 페이지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든 빛이 빨려 들어가고 난 뒤.
닫힌 일기장은 언제 그런 빛을 흡수했냐는 듯 조용했다.
표지의 보석 일곱 개 중 하나가 붉게 물들었을 뿐.
“하아아아, 이 충만한 힘.”
채리아가 일기장의 표지를 쓸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전신이 찌릿찌릿할 정도인데 남겨진 힘을 모두 흡수하면 어떨까?
이 몸의 영혼을 완전히 밀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그 모지리 루아티샤가 내 앞에 무릎을 꿇겠지.’
선량한 척하는 아프타네스와 달리 키야스에델의 힘은 훨씬 더 실리적이었다.
신의 자리를 넘보았던 만큼, 사람을 꾀어내고 부추기고 꼬드기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꼭 사탄이 인간을 유혹해 신을 저버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것처럼.
“어디 한 번, 시험 삼아 이 힘을 활용해 볼까?”
루아티샤의 곁에 있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떠올리며, 채리아는 입술을 핥았다.
* * *
채리아는 서둘러 파티장으로 돌아왔다.
‘흥, 여전히 남자한테 정신 팔려 있네.’
루아티샤는 펠릭스와 투닥거리며 놀고 있었다.
“왜, 펠릭스는 그런 거 잘하잖아.”
“무슨……! 내가 그런 걸 잘하다니!”
“전에는 잘했으면서. 한 번 해주라. 응?”
“절대 싫어.”
‘싫다는 남자를 붙잡고 조르는 거, 진짜 없어 보이네.’
채리아는 입술을 씰룩였다.
하긴, 원래 모자란 애다 보니 저렇게 추잡하게 구는 건 어쩔 수 없다.
‘네가 그렇게 남자한테 정신 팔려 있는 동안 난 미래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는데.’
비웃는 사이, 영애들이 채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채리 양, 어디 다녀오셨어요?”
“미첼로인 후작저는 오래된 데다 넓어서 길 잃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데.”
본디 영애들은 채리아에게 호의를 가지고 대했다.
루아티샤가 데려온 손님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말을 하던 영애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채리 양은 정말 눈동자가 신비롭네요.”
“그러게요. 평범한 갈색인 줄 알았는데…….”
“머리카락도 오묘한 빛이에요. 검은 듯 하면서도 갈색으로도 보이는 게…….”
영애들의 눈동자가 몽롱해졌다.
“아까는 미처 몰랐는데, 채리 양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네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매력.
사람을 궁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후후, 그래. 드디어 다들 정신을 차렸네.’
채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는 자신에게 루아티샤에 대해서만 물어서 정말 짜증 났었는데.
그때였다.
“채리? 이름이 채리야?”
귓가에 뚜렷하면서도 낮은, 듣기 좋은 음성이 울렸다.
채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실례. 레이디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았습니다.”
펠릭스 카이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미하고 세련된 이목구비.
깊고 청아한 시선.
‘아.’
제온과 동갑인 이 남자가 어째서 제온만큼이나 인기 많았는지 단번에 이해됐다.
흰장미의 귀공자라는 별명도.
“으, 으응. 채리 맞아.”
루아티샤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펠릭스는 루아티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여전히 채리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펠릭스의 관심을 다시 가져가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됐네.’
채리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싱그럽게 웃었다.
“제 이름은 채리아예요. 그냥 채리라고 불러주세요! 저어, 그쪽은…….”
“펠릭스 카이셴이라고 합니다.”
“아, 펠릭스! 잘 부탁해요!”
채리아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격의 없는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루아티샤가 만류했다.
“채리, 초면에 그렇게 부르는 것은 실례야. 기본 예법은 다 설명해 줬잖아.”
“아, 맞다! 습관이 안 되어서……. 죄송해요.”
채리아가 서둘러 손을 물리는데 펠릭스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제 입가로 가져갔다.
부드럽고 단단한 입술이 채리아의 손등 위에 내려앉았다.
“어머나!”
“흰장미의 귀공자님께서……!”
“원래 차갑기만 하신 분인데, 어쩜.”
그 우아하면서도 담백한 키스에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채리아가 수줍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저는 악수를 청한 거였는데.”
“아름다운 레이디께 존경을 표하고 싶은 욕심에 무례를 범했습니다.”
“아, 아뇨! 무례는 제가 범했죠. 루루 말대로 함부로 부르고…….”
“레이디께서 내게 죄송할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영광입니다. 레이디의 입술에서 내 이름이 나오다니.”
“펠릭스…… 아, 아니, 카이셴-.”
“부디 펠릭스라 불러주십시오.”
채리아는 훗, 하고 미소 지으며 루아티샤를 힐끔거렸다.
‘후후, 표정 관리도 못 하는 것 좀 봐.’
아까부터 루아티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제는 떨떠름하다 못해 떫은 얼굴이었다.
‘역시 진짜로 매력 있는 사람은 다르다니까.’
루아티샤와 달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펠릭스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는가.
‘이게 시작이란다, 더러운 아프타네스의 계승자야.’
* * *
제도에 올라오고 난 뒤.
채리아는 사교계에서 순식간에 주목 받았다.
“채리 님은 정말 신비로워요.”
“그런데 또 그게 어렵거나 멀게 느껴지진 않아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녔지만, 태도가 이렇게 격의 없고 친근해서 그럴까요?”
“처음에는 놀랐는데, 볼수록 채리 님의 친밀한 태도가 좋은 거 같아요.”
채리아는 제 곁에 몰려든 추종자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에이! 다들 지금 저 무례하다고 놀리는 거죠. 제가 예법에 익숙하지 않다고.”
“놀리다니요.”
“헤헤, 농담이에요~.”
곁에 있던 펠릭스가 귀엽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모두가 동경 어린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런 눈빛이야.’
채리아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너희가 전에는 루아티샤를 바라보던 그 눈빛 말이야.’
지금 저런 시선을 받고 있는 건 루아티샤가 아닌, 자신이었다.
애초에 루아티샤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이 파티에 초대 받은 건 나니까!’
루아티샤가 받은 초대에 껴서 파티에 참석하던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루아티샤의 손님 채리아’가 아니라, 모두 ‘채리아’를 찾았다.
“그런데 채리, 항상 들고 다니는 책은 뭐야?”
“어?”
펠릭스의 말에 채리아가 반사적으로 일기장을 끌어안았다.
“이 책은 왜?”
“아, 예전에 루아티샤가 책을 들고 다니던 게 생각이 나서.”
“……루루가 책을 들고 다녔다고?”
채리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책, 너무 궁금하네.”
“응?”
“아니이! 이거 그냥 빈 노트야! 내게는 제도에서의 일들이 모두 다 특별하니까 이 순간을 바로바로 기록하고 싶어서!”
채리아가 활짝 웃으며 비어 있는 일기장을 펼쳐 보였다.
“나 잠깐 레이디스룸에 다녀올게!”
채리아는 홀로 파티장을 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향한 곳은 레이디스룸이 아니었다.
정원을 한참 가로질러 이동하자 오래된 창고가 나왔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건지 자물쇠에도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흥.”
채리아는 일기장을 열었다.
일기장에서 튀어나온 힘이 자물쇠를 풀었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 안.
채리아는 그중에서도 먼지가 가득한 낡은 잔을 집어 올렸다.
“이 귀한 것을 몰라보다니. 인간들이란.”
중얼거린 그녀가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이윽고 잔에서 흘러나온 새빨간 기운이 일기장에 스며들었다.
“하아아아아…….”
채리아가 힘을 음미했다.
일기장의 표지 장식에는 붉게 변한 보석 다섯 개가 박혀 있었다.
‘앞으로 두 개.’
두 개만 더 모으면 일곱 개가 다 붉어진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어둠 속에서 채리아가 씨익 웃었다.
* * *
제도의 오페라 하우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나는 박스석 안에서 샴페인을 홀짝였다.
기감을 귀에 집중하자 아래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영애가 카이셴 소백작의 파트너라면서요?”
“언제나 동행한다던데요. 카이셴 소백작이 그렇게 흠뻑 빠진 영애는 처음이죠?”
“처음은 아니죠. 뮤리엘 사본느와 장난 아니었잖아요. 그 왜, 불륜 보고서…….”
“쉿! 그거는 오해였다잖아요.”
제도 사교계는 오랜만에 새로운 얼굴이 나왔다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활짝 웃고 있는 채리아가 보였다.
그녀의 곁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펠릭스를 비롯해서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이 한가득이었다.
“제대로 된 신분도 모르는 영애를 카이셴 소백작이 왜 그리 아끼나 했는데…….”
“실제로 보니 알 것 같네요.”
“저는 전에 봤었는데 그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눈길을 잡아끄네요.”
“이제 저 영애가 사교계의 새로운 중심이 되려나요?”
“그러게요. 성녀님이 제도에 올라오셔서 기대했는데, 막상 기대보다…….”
한창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을 때였다.
어깨에 무언가가 턱, 얹어졌다.
돌아보니 제온의 동그란 머리통이 보였다.
“제온?”
“쓰다듬어 줘.”
“아직도 애야, 애.”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제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온이 그 자세 그대로 눈만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
“……나 기분 좋아지게 쓰다듬으라고 한 거야? 제온 기분 좋으려고 쓰다듬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저딴 말 신경 쓸거 없어.”
“아.”
나는 깜짝 놀랐다.
제온이, 그 누구도 아닌 제온이 인간관계를 생각하다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니면 청소해 줄까?”
“청소?”
“응, 막내의 예쁜 귀에 더러운 말이 들리지 않도록 깨끗하게.”
“…….”
저기요.
그 청소가 제가 생각하는 청소 맞나요?
나는 짜식은 눈으로 제온을 바라보다 픽 웃었다.
“옛날 생각 나네.”
“……?”
“제온이 막내 예쁜 눈 더럽힌다고 못생긴 애들 청소하겠다고 했잖아.”
“그랬었지.”
나는 킥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청소 잘해 주는 오빠가 있어서 더러운 게 묻어도 금방 깨끗해지거든. 그리고-.”
나는 홀을 힐끗 바라보았다.
펠릭스가 혼자서 밖을 향해 나가고 있었다.
채리아를 내버려 둔 채.
“그리고?”
“아무튼 기분 나쁜 일 자체가 없었어. 나 화장실 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박스석 안을 빠져 나갔다.
* * *
루아티샤가 나간 후.
“……뭔가 꾸미고 있는 거 같은데.”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해.”
“대체 뭘 또 꾸미는 거지? 우리 몰래.”
루아티샤의 세 오빠들이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파에라톤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뭐든 오빠가 됐으면 동생이 잘 놀게 보살펴라.”
그 말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르켈 자작이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공녀님의 계략을 어린아이 놀이처럼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공녀님이 한 번 계략을 짜면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