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4화(4/353)
☆ 제4화 ☆
낮아진 공작의 목소리가 무서웠지만, 더 먹는 건 정말 무리였다.
지금도 숨 쉬시기 힘들어서 후하후하 하는걸.
‘어쩌지…….’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고, 공작 각하.”
여태껏 없는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하녀 언니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비장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분위기였다.
사극에서 충신이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폭군에게 간언할 때 딱 이랬던 거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막내 아가씨의 위는 작습니다. 도련님들과 다릅니다. 이 이상 드시면 배앓이를 하실 겁니다.”
엥?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내뱉은 말이 어딘지 좀 이상했다.
파에라톤 공작은 잠시 말없이 하녀 언니를 내려다보았다.
싸늘하기만 한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이윽고 모양 좋은 그의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너는?”
“저, 저는 안나라고 합니다.”
안나였구나.
매일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이었는데 이제야 이름을 알았다.
몇 번이고 이름을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말을 꺼내기 전부터 철벽을 치는 듯한 태도에 지레 포기했었다.
타렌카 후작저에서 지낼 때 하도 무시당했던지라 포기하는 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안나가 덜덜 떨면서 말했지만, 공작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네가 앞으로 이 아이의 전담 시중을 들어라.”
그 말만 남기고.
안나가 흠칫 고개를 들어 공작을 바라보다 깊이 절했다.
“예, 각하.”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게 전담 하녀를 붙여줄 정도라면 혹시…….
“저, 여기서 계속 지내도 돼요?”
“쓸데없는 소릴.”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쫓아낼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다.
‘그래, 공작 입장에서도 어찌 됐든 서류상의 딸인 나를 쫓아내는 건 좀 그렇겠지.’
친척 집에 맡겨놨다.
여기까지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친척 집에서 학대당한 애를 데려왔는데, 다시 쫓아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귀족이니까 명예 같은 것도 중요할 테고.’
나를 탐탁잖게 생각하더라도 딴 데 보내진 않겠지.
음음. 좋아.
신변의 안전이 확보됐다.
‘진작 생각해볼걸. 그간 너무 쫄아있었나.’
그야 이곳에 태어난 뒤로 거의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존재를 부정당해 왔는걸.
어쩔 수 없잖아.
“정말 더 못 먹는 건가?”
공작이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나는 더 먹으라고 할까 봐 두려워서 얼른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음.
나는 어색함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공작은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는 먹고 있기라도 했지,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한 채 그 시선을 받고 있으려니 매우 불편했다.
나는 괜히 양손을 모아 꼼지락거렸다.
‘마치 이 쥐새끼 같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듯한 시선인데.’
누가 나 좀 살려줘.
“공작 각하.”
그 바람을 들은 것일까.
노크 소리와 함께 공작의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덕분에 나는 공작의 매서운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휴, 진짜 뺨에 구멍 뚫리는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오늘 급히 귀택하신 것 때문에 황궁에서 연락이 와서…….”
서릿발 같은 얼굴로 부관 아저씨를 노려보던 공작이 이내 옅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일로 일찍 집에 왔나 했더니 예정에 없는 일로 급히 돌아온 모양이었다.
식당을 나서기 전, 공작이 나를 돌아봤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흥, 내가 닦은 유리창이 얼마나 깨끗해졌는데.
나의 숭고한 노동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다니.
하지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나는 착한 아이처럼 “네에.”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주님께 세입자가 뭐라 따지겠습니까.
‘인생 살기 힘들다.’
나는 빵빵한 배를 부여잡고 끙끙 걸음을 옮겼다.
나를 딸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애쓸 필요 없다. 그건 전생에서 질릴 정도로 깨달았다.
‘여기서 계속 살게 된다면 일신의 걱정도 필요 없고.’
때 되면 밥 나오지, 따뜻한 물 나오지 뭐가 힘들겠는가.
타렌카 후작저에서의 생활은
차치하고, 전생과 비교하더라도 꿀이었다.
“저어, 막내 아가씨.”
방에 도착한 뒤 바로 물러갈 줄 알았던 안나가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내게 말을 걸었다.
“이제 아시겠나요? 각하께서는 아가씨를 내칠 생각이 없으세요.”
“네.”
날 내쫓는 게 파에라톤 공작가의 평판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여기선 걸레질이나 비질 같은 허드렛일은 하실 필요 없어요.”
“네.”
“아가씨께선 아직 너무 어리시고, 또 각하의 하나뿐인 따님이시잖아요.”
응?
“그러니 안심하고 즐거운 생각만 하세요.”
안심하라니.
하나도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안나 눈에도 내가 많이 불안해 보였나 보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다른 하녀 언니들 역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처음 안나가 말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말리려는 기색을 보였는데.
“그 어린 몸으로 끙끙 앓으면서 자꾸 악몽을 꾸시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하세요. 혼자 참지 마시고. 종아리 치료도 힘드셨을 텐데…….”
어라?
나는 조금 놀라서 하녀 언니들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 나를 귀찮아하는 거 아니었나?
일이라서 나를 돌볼 뿐, 나한테 하나도 관심 없는 줄 알았다.
그간 그들은 조용히 나타나 꼭 할 일만을 하고 사라졌다.
내가 말을 붙여도 단답으로 대답해서 나 역시 입을 다물게 됐다.
그런데.
“나 걱정했어요?”
“당연한 말을!”
왠지 울컥한 얼굴로 크게 소리치던 안나가 아차, 하고 얼굴을 붉혔다.
“크흠,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왜 그런 오해를……
“말도 안 붙이고, 말을 걸어도 대답하기 싫은 것처럼 보여서.”
“저희가 감히…….”
하녀들이 어쩐지 흐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물었다.
“막내 아가씨께서는 저희와 이야기 나누고 싶으세요?”
“네.”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하녀 언니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막내 아가씨께서는 다른 공작가 분들과는 다르시네요.”
“맞아요. 평범한 아이 같다고나 할까.”
후후, 웃으며 하는 말에 안나가 기함해서 “낸시……!” 하고 작게 외쳤다.
낸시. 낸시구나.
안나랑 낸시.
이름을 곱씹는데 낸시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실언을…….”
뭐, 나는 환생했으니까 평범한 아이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 말이 이렇게 사죄할 일인가?
“괜찮아요. 나는 평범한 거 좋아해.”
진짜였다.
나는 항상 평범하고 싶었다.
평범한 어린아이. 평범한 학생. 평범한 회사원.
그렇게 살고 싶었다.
“상냥하기도 하시지…….”
낸시가 나를 퍽 감격한 눈으로 바라봐서 나는 하하, 웃었다.
그간 감정이 없는 듯 행동하던 사람이 이렇게 쉽게 감동하니 어색했다.
하지만 싫진 않았다.
하나의 정물처럼 보이던 하녀 언니들에게 생동감이 깃든 것 같아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맛보는 사람의 활기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 * *
하녀 언니들이 나간 후, 나는 조용히 방안을 가로질러 거울 앞으로 갔다.
‘하나뿐인 따님.’
아까 들었던 말이 가슴 속에서 메아리쳤다.
‘……가족.’
가족이라.
한집에서 산다고 해서 그걸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가족을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하지만.
“네 경박한 어미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 뻔한 것을.”
“그러니 파에라톤 공작도 널 버린 게지. 넌 마기도 없지 않으냐.”
“가문의 수치를 거둬준 내게 감사해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나는 이번 생에서 평생에 걸쳐 저런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래, 안나의 말대로 내가 파에라톤 공작의 ‘친딸’이라면 불안해할 필요 없겠지.’
어찌 됐든 나를 내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공작의 핏줄이 아니라면?
엄마가 불륜해서 낳은 사생아라면, 그게 밝혀지는 순간 내쫓기는 거 아닌가?
불륜의 씨앗을 어떻게 하든 평판에 문제 생길 리 없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파에라톤 공작과 나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제련된 검처럼 날카로운 공작의 얼굴.
누가 봐도 순둥순둥한 내 얼굴.
공작의 눈은 피처럼 새빨간 색.
내 눈은 파라이바 같은 청색.
‘게다가 머리카락도…….’
칠흑 같았던 공작의 머리칼과 달리, 내 머리카락은 봄날의 꽃잎처럼 아주아주 여린 분홍빛이었다.
‘뭐 하나 닮은 곳이 없는데.’
거기다가 마기도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후작이 나를 사생아 취급할 때 마기 운운하는 것엔 이유가 있을 터.
‘파에라톤 공작가에는 마기가 내려오는 거겠지.’
능력을 준다는 소리까지 듣고 환생했는데, 공작가는 다 있다는 마기조차 없다.
점점 내가 공작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퍼즐 조각이 모인다.
‘정말로 내 친모가 바람을 피워서 생긴 자식이라면…….’
내쫓기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배신감에 날 죽여 버리는 거 아닐까.
나의 로판 레이더가 말한다.
파에라톤 공작은 폭군/흑막/악당 속성이라고.
‘으, 살아남으려면 어쨌든 내 쪽에서 노력해야 하는 거겠지.’
진짜 딸답게.
적어도 키운 정 때문에 죽이지는 않도록.
나는 이럴 때의 행동강령을 아주 잘 안다.
‘그야 나는 수천 권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었는걸!’
거울 속의 나는 히힛,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나는 감자알 같은 두 주먹을 꼭 쥔 채 커다란 문을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후하후하.
좋아, 나는 할 수 있다!
두 눈을 번쩍이며 다짐했지만, 압박감이 느껴질 만큼 거대한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용기가 스르륵 꼬리를 말았다.
공작의 집무실이라더니 문조차 이렇게 위압적일 줄이야.
‘一핑계는 그만 대자.’
사실 알고 있다.
내가 몇 분째 문 앞에서만 서성서성하며 들어가지 않는 이유.
거절당할 거를 알면서, 나를 싫어하는 줄 알면서 먼저 다가가는 것은 참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 비쩍 골은 쥐새끼는 뭐지.”
날 처음 봤을 때 공작이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후,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물론, 살갑게 대해야 한다니.
로판 여주들, 용기가 엄청났잖아!
나는 수많은 폭군 아빠 밑에서 살아남은 여주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비로소 실감했다.
‘후우, 진짜 딱, 따악 열까지만 세고 들어가자.’
콩닥콩닥한 가슴에 손을 대고 4까지 세었을 때였다.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아빠의 보좌가 말했다.
“막내 아가씨, 공작 각하께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내가 문 앞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지?
보좌 아저씨가 어서 들어오라는 듯 문을 활짝 열어주어서,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집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집무실은 내 생각보다 더 컸고, 그 안에는 내 상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그저 배경처럼 존재할 뿐, 내 눈에는 오로지 파에라톤 공작만 들어왔다.
독보적인 존재감.
소파에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는 그는 사람이라기보단 나른한 맹수 같았다.
아주 위험하고 잔인한.
공작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나를 응시했다.
나는 자꾸만 작아지려는 심장을 다독이며 활짝 웃었다.
“아빠!”
나는 도도도 달려가 그의 다리에 와락 매달렸다.
“보고 싶었어요.”
헤헤 웃으며 공작을 올려다봤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 했다. 웃자, 웃어.
많이 봐야 정도 붙는데 쫄면 안돼.
애써 공작의 눈빛 공격을 견뎌 내는데,
“……끅.”
어디선가 숨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웬 아저씨가 졸도할 것만 같은 얼굴로 옷깃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니, 쫄아도 내가 쫄지, 왜 아저씨가 쫄아요?
그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톡, 치면 파사삭 깨질 것 같은 얼굴들.
꼭 시한폭탄을 건드린 걸 본 것 같은一.
‘이, 이게 아닌가?’
공작의 다리를 꽉 끌어안은 팔에 스르륵 힘이 풀렸다.
‘보통은 날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귀엽다느니, 아빠가 보고 싶었냐느니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냐?’
어리광도 부려봤어야 알고, 사랑도 받아봤어야 알지.
전생에서도 고아였던 나는 어른들에게 어리광을 부린다는 게 정말 어색했다.
공작은 발치에서 뽀시락거리는 내가 거슬렸는지, 발로 뻥 차진 않고…… 달랑 들어 올렸다.
‘아휴, 깜짝아.’
왜 자꾸만 나를 개처럼 들어 올리는지.
“내가 보고 싶었다?”
공작은 비딱하게 턱을 괸 채 느릿하게 물었다.
협박하는 듯한 어조, 어둡게 빛나는 붉은 안광.
와들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어리광 부릴 말은 뱃속으로 쏙 들어가고 내 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불편해하더니.”
지금도 몹시 불편합니다만.
‘아니, 그보다 내가 불편해하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 사람이 내가 밥 먹을 때 무시무시한 눈으로 쳐다봤어?
설마 일부러 체하라고 쳐다본 거냐!
“아냐, 안 불편해요.”
우다다다 따지는 속마음과 달리 나는 붕붕 고개를 저었다.
“낯설어서 그래요.”
공작이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동안 아빠를 못 만났으니까.”
“…….”
“그러니까 이제 같이 있을래요.”
나는 살짝 멀어진 그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쫙 뻗었다.
“낯설지 않으려면 꼬옥 붙어 있어야 한다고 했는걸!”
그래그래, 붙어 있어야 정들지.
기른 정이 있어야 내가 친딸 아니라는 걸 알아도 안 죽이고.
암암.
“…….”
공작은 말이 없었다.
팔이 저리기 시작한 걸까? 내 몸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이 흔들렸다.
그에 따라 나 역시 허공에서 기우뚱했고, 공작의 얼굴을 향해 쭉 뻗고 있는 내 두 손은一.
“허억……!”
공작의 뺨을 콕 찔렀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합창인 줄 알겠네.
저 아저씨들은 곧 세상을 뜰 것 같은 표정 외에 다른 표정은 지을 수 없나?
나는 소파 너머의 아저씨들을 바라보다가 심호흡했다.
침착하자.
내가 공작의 뺨에 ‘예쁜 짓’을 했을 리가 없잖아.
지금 손바닥에 착 감기는 이 감촉은 피부라기엔 너무 부드러웠다.
분명 공작의 옷을 만진 거겠지. 실크 입었구나, 공작님.
옷이라기엔 꼭 사람 체온처럼 따뜻하지만.
아냐, 아닐 거야. 제발…….
나는 힐끔 시선을 내렸다.
공작이 냉엄한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 그 얼굴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야 내 앙증맞은 손바닥이 공작님의 뺨을 포옥 누르고 있었으니까.
허허, 유부남에 애 아빠인데 피부가 참 좋으시네요.
애기처럼 보드라워.
내 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신원 확인 중… 〈아프타네스〉의 계약자. 확인 완료.] [특성 〈러시 앤 캐시〉를 각성합니다.]‘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