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5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52화(52/353)
☆ 제52화 ☆
* * *
칸도르 백작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맹랑한 꼬마 공녀가 제게 업어달라고 한 건가.
“아코, 내 다리.”
이제는 아예 솜뭉치 같은 주먹으로 짤따란 다리를 통통 두드리기까지 한다.
기가 막혔지만, 아니, 기가 막혔기 때문일까? 칸도르 백작은 등을 내밀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름 업혔다.
예상과 다른 무게에 칸도르 백작은 잠시 휘청했다.
‘아이란 이렇게 가벼운 건가?’
잘 먹어 뺨도 통통하고 팔다 리도 오동통한 것이 꽤 무게가 나갈 줄 알았는데.
정말 솜인형이라도 되는 듯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온기가 있다는 것뿐.
“내 방으로 갈래요.”
“…….”
칸도르 백작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을 바싹 끌어안는 짤따란 팔이 영 어색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가볍고 작고 연약한, 그러나 분명한 온기.
낯설어서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도착한 아이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조그마한 티테이블에 산딸기 타르트와 우유가 차려져 있었다.
‘2인분. 내가 올 걸 예상했군.’
역시나 파에라톤의 핏줄.
보통 아이가 아니다.
“내려주세요. 할부지랑 같이 먹을래.”
칸도르 백작은 다시 인상을 썼지만, 잠자코 아이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건너편에 앉으려고 하는데一.
“…….”
의자가 핑크빛 가리비 모양이었다.
누군가에겐 아주아주 귀엽겠지만 칸도르 백작에겐 매우 끔찍했다.
“……각하께서도 이 방에서 다과를 드셨습니까?”
“응! 오빠들이랑도 먹었어요.”
가리비 모양 의자에 분수 모양 티테이블.
다기는 요정의 티파티에 쓸 것처럼 오로라 빛이었다.
“할부지, 서서 먹을 거예요?”
가리비에 앉아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아이를 보자 뭐라 말하려던 것도 사라졌다.
칸도르 백작은 삐걱거리며 가리비 위에 앉았다.
“이거 맛있어요!”
“먹을 생각 없습니다. 제 질문에 대답이나 해주시죠.”
루아티샤가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비죽였다.
하지만 투덜대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프네 나이아.”
그저 이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커다란 해일처럼 칸도르 백작에게 밀려왔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은 이름 이어서.
그는 그 충격을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감내했다.
“……어디서 그녀에 관한 소문을 들으신 겁니까.”
루아티샤가 화살 그림을 보냈을 때엔 이게 뭔가 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올리브 나무 그림을 보내자 확실해졌다.
다프네.
이건 다프네에 관한 그림이다.
이 맹랑한 꼬맹이가 햄스터처럼 여기저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프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의 관계에 그걸 이용하려는 것이다.
감히.
다프네는 고작 그런 것을 위해 쉽게 거론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칸도르 백작에게 있어 아직도 붉은 피가 나는 상처였다.
“으음, 자세히는 모르는데. 그 언니가 할아버지 여자친구였어요?”
순진한 물음.
말갛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두 눈동자.
어쩐지 맥이 탁 풀렸다.
여자친구라.
그런 말을 들어본 게 대체 언제지.
메마른 칸도르 백작의 입매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
“예, 제 여자친구였습니다.”
“와, 얘기해주세요! 연애 이야기 듣고 싶어요!”
신이 나서 조르는 아이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 엉뚱한 꼬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떻게 만났어요? 지각해서 빵 물고 뛰어가다가 쿵, 하고 부딪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대체 그건 무슨 만남이란 말인가.
“……평범했습니다. 평범한 파티에서 만났죠.”
“파티! 그렇지, 역시 파티지!”
또 뭐에 흥분한 건지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잊혔다고 생각한 옛 만남이 떠올랐다.
어느 귀족가의 이브닝 파티.
잠시 바람을 쐬러 정원에 나왔다가 구두 굽이 똑 부러져 버린 아가씨.
어쩌지, 동동거리다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망가진 구두를 던졌는데…….
하필이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의 정수리에 맞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아가씨는 사과하다 말고 왜 지켜만 보고 있었냐, 구경났냐고 화를 냈고.
“업어주세요.”
“…….”
“맨발로 갈 순 없잖아요.”
결국, 남자는 아가씨를 업었다.
다만 그날은 달빛이 너무 아름다웠고, 아가씨의 긴 물빛 머리카락이 유독 반짝거렸다.
그리고 보석이 박힌 구두는 굉장히 딱딱했다.
머리를 잘못 맞은 걸까.
적어도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기엔 충분한 세기였다.
아주 평범한 만남이었고, 아주 평범한 연애가 이어졌다.
“하아, 너무 운명적이야……. 로판 한 권 뚝딱이네.”
두 손을 꼭 모은 채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아이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칸도르 백작은 그런 스스로에게 놀랐다.
다프네에 관한 말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줄이야.
상처만 남은 기억을 꺼내봤자 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여전한 행복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미소가 나오는 행복이.
“할아버지 의외로 로맨티스트였구나.”
루아티샤의 말에 칸도르 백작이 멈칫했다.
“당신 의외로 로맨티스트였네요.”
해묵은 기억 속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다프네가 했던 말.
“……그랬던 적이 있지요. 하지만 끝까지 그렇진 못했나 봅니다. 그녀가 저를 떠난 것을 보면.”
“언니가 할아버지를 떠났다고요?”
행복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어느 날 다프네가 갑자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아무런 징조도 없었기에 칸도르 백작은 인정할 수 없었다.
찾고 또 찾고, 계속 찾았다.
그녀를 찾아만 준다면 뭐든지 하겠다며 선대 파에라톤 공작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용병들이 다프네의 유품을 들고 왔다.
그가 다프네에게 선물했던 반지.
몬스터 부락의 전리품 틈에 섞여 있었다고 했다.
“……그녀에겐 사실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와 함께 다른 도시로 가던 중 몬스터의 습격을 당해 죽었습니다.”
칸도르 백작의 눈이 어둡게 침잠했다.
“이 목걸이는 몬스터 토벌에 나갔던 사람이 가져다준 것입니까.”
“아니야.”
루아티샤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훔쳤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칸도르 백작의 표정이 무너졌다.
“……흠치셨다 하셨습니까?”
“응, 다른 사람한테서 훔쳤어요. 애초에 이 목걸이가 몬스터 손에 있었을 리도 없어요.”
칸도르 백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루아티샤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다프네 나이아는 몬스터한테 죽지 않았으니까.”
“그, 게 무슨 말씀입니까.”
칸도르 백작은 떨리는 호흡을 갈무리하고 이내 흉흉한 시선으로 루아티샤를 노려봤다.
“이 늙은이를 놀리는 것이라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설령 당신이 파에라톤의 직계라 할지라도.”
“할부지.”
그런데 아이는 겁을 먹긴커녕 답답하다는 듯 “하아一.” 한숨을 내쉬는 것 아닌가.
“내가 외삼촌한테 삥도 좀 뜯고, 감사자들이랑 그 뒷배 할아버지를 깜빵에 처넣긴 했지만 말이야.”
“…….”
“나 착한 아이야.”
루아티샤가 탕탕!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아, 예…….”
떨떠름한 대답에 루아티샤가 입술을 삐죽였다.
“적어도 남의 소중한 기억을 시궁창에 넣을 정도로 못된 아이는 아냐.”
칸도르 백작이 아이의 얼굴을 빤히 봤다.
파에라톤 공작에게서 어찌 이런 게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말랑말랑한 얼굴.
하지만 쉽게 보면 안 된다.
이 아이의 수완은 결코 평범한 다섯 살 아기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리 못된 아이는 아니란 건 동의하게 되는군.’
언제나 이분법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자신이 이런 미적지근한 평가라니.
어느새 이 아이에게 말려든 건가.
“내가 말로 하는 것보다 할부지가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가리비에서 일어난 루아티샤가 안쪽 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서류 뭉치였다.
칸도르 백작은 조금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주저 없이 서류를 펼쳤다.
“이, 건…….”
어떤 것이 적혀져 있어도 놀라지 않을 각오를 했다.
하지만 서류의 내용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다프네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녀가 칸도르 백작에게서 도망을 간 것도 아니었다.
납치였다.
그리고 인체 실험을 당했다.
인간이 결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실험 내용.
절로 이가 갈렸다.
이 수많은 실험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 여린 여자가.
발바닥이 아프다고 맨발로 정원을 걷는 것조차 못 하던 여자가.
‘이걸 전부…….’
서류를 잡고 있는 손의 뼈마디가 새하얗게 불거졌다.
결국 그 잔혹한 실험 끝에, 다프네는 죽었다.
칸도르 백작은 그녀의 고통이 끝난 것에 안도해야 할지, 그녀의 죽음에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다프네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찾아내지도 못하고, 거짓된 증거와 이야기 앞에 그대로 무릎 꿇었다.
사랑에 배신당한 비극의 주인공마냥 절망했던 자신을 죽이고 싶다.
그 순간에도 다프네는 이리 고통받았는데.
“내가 도와줄까요?”
은밀한 속삭임이었다.
칸도르 백작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프네를 납치하고 실험하고, 할부지가 계속 찾으니까 포기하도록 거짓 증거를 만든 사람이 있잖아요.”
칸도르 백작은 탄식했다.
그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그 복수, 내가 도와줄까요?”
“제안은 감사하나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온전히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할 일이 끝나면?”
어린아이는 때로 지나치게 예리하다.
“할부지 죽을 생각이야?”
“……더 살 이유는 없지요.”
칸도르 백작은 여상하게 대답하며 감정을 배제한 채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서류 곳곳에는 까맣게 지워진 자국이 있었다.
“왜 문구가 지워져 있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몰라요.”
누가 봐도 최근에 지운 것이었다.
“범인이 누군지 제게 안 알려 줄 생각입니까?”
칸도르 백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범인의 정체를 빌미로 나와 거래하려는 것인가.
“아니. 범인의 이름을 지운 게 아니에요. 범인이 누군지는 알려줄 수 있어요. 다만…….”
루아티샤가 시무룩하게 눈치를 봤다.
“증거가 없어요. 서류에 적힌 이름도 없으니까. 내 말만 믿어야 해. 나를 믿을 거예요?”
칸도르 백작은 침묵했다.
이런 자료를 얻었으니 차근히 조사해 보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엔 실험 날짜만 있을 뿐 장소도, 관여자도 적혀있지 않아서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분명 정확한 범인을 잡아낼 수 있다.
그러니 불확실한 말을 믿지 말고 고개를 젓는 게 맞다.
그런데.
“……믿겠습니다.”
루아티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요젠하임 백작이에요.”
그 순간 온갖 생각이 칸도르 백작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진실인가? 나를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려는 건가? 아니, 이렇게까지 해서 제거할 이유가 있나? 그는 이미 감옥에 있는데. 요젠하임 백작이 왜 다프네를? 그래도 두 사람의 관계는 좋았는데.
격류처럼 흐르는 생각과 달리 고개는 끄덕여졌다.
“……그렇군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수긍이 됐다.
“요젠하임 백작한테서 다프네의 목걸이를 훔쳤어요. 난 그게 정령의 목걸이인 줄 알아서……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아이답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이유였다.
“로켓 안의 초상화를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다프네에 관한 실험 보고서를 훔쳤어요.”
“대체 어떻게 훔친 겁니까.”
“아렌트웰 세법의 도움을 받아서…….”
아렌트웰 세법?
그건 또 무슨 소리인 거지.
하지만 획득 수단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됐다.
“……다프네 언니는 할아버지가 언니를 버린 줄 알았대요.”
어떻게 감히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녀가 배신했다고 완전히 믿었는데.
“요젠하임 백작이 그렇게 말했대.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고. 이미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할아버지는 다프네 언니 때문에 결혼 안 한 거예요?”
칸도르 백작은 뛰어나다는 말로도 부족한 인물이었다.
능력, 카리스마, 수완.
어느 것 하나 최고가 아닌 게 없다.
뿐만 아니라 집안은 어떤가.
칸도르 백작가는 파에라톤의 오랜 봉신 가문으로, 유서 깊고 명망 높았다.
그만큼 공작가의 중추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엄청난 능력에 막강한 배경.
그런 그가 원로원의 수장이 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그가 주변에 벽을 치며 자신의 세력을 기르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그가 미혼에 후계자도 없기 때문이었다.
원로원의 수장 자리가 빈 지금, 사람들이 칸도르 백작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치지 않는 것도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녀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해서 사랑을 혐오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진짜로 그렇다면 적당한 상대와 정략혼을 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천천히, 칸도르 백작의 입술이 열렸다.
“사실은…… 그녀 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여자도, 그저 겉치레일 뿐이더라도, 제 부인으로 둘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마주 보는 스스로의 속마음이었다.
“그럼, 그럼 할아버지가 아무도 양자로 들이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미련한 고집이지만.”
루아티샤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다프네 언니 배 속에 아가가 있었다면.”
배 속의 아이.
그 말에 칸도르 백작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다프네가 제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단 뜻입니까?!”
“네.”
“그, 그 아이는…….”
백작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미가 인체 실험 끝에 죽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아마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