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5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53화(53/353)
☆ 제53화 ☆
“살아있어요.”
루아티샤의 조그마한 손이 백작의 차가운 손을 꽉 움켜쥐었다.
살아있다.
흐릿해졌던 백작의 눈에 힘이 돌아왔다.
루아티샤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칸도르 백작은 굉장히 빠르게 감정을 다잡고 현실을 직시한 다음 미래를 생각하는구나.
“……만나고 싶어요?”
칸도르 백작은 당장 그렇다고 대답하는 대신, 가라앉은 눈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루아티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다프네와 자신의 아이를 만나게 해주는 것.
그러니.
“내게 무엇을 원합니까.”
“으음, 그건 많은데…….”
고개를 기울이던 아이가 곧 배시시 웃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거 하나도 안 들어줘도 그를 만나게 도와줄 거예요.”
“……어째서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루아티샤는 이미 몇 번이나 칸도르 백작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목걸이, 다프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담긴 서류, 그녀를 죽인 범인, 이제는 아이까지.
왜 그걸 이용해 거래하지 않은 걸까.
“부모가 자식을 만나는 거잖아요.”
툭, 떨어지는 말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칸도르 백작이 시선을 들어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도 아빠랑 떨어져서 삼촌네 있었어요. 삼촌이 나 아프게 했고, 나는 내 이름도 몰랐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양육비 횡령이 알려지면서, 루아티샤가 크게 풍족하게 살지 못했다는 건 들었다.
‘하지만 학대라니? 심지어 이름조차 몰랐다고?’
제도의 공작저에 있던 가신들은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파에라톤 공작이 철저히 함구시켰다.
때문에 칸도르 백작은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알아요. 아빠, 엄마 없는 거 너무 슬픈 일이야.”
“…….”
“애가 아빠 만나는 건데 내가 원하는 거 들어주지 않으면 안 도와줄 거라니. 난 그 정도로 쓰레기 아냐.”
칸도르 백작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쓰레기는 나였다.
아이는 이토록 순수하건만.
똑똑하다고 해서 순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정정해줄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자식을 만나고 싶어요? 버리지 않을 거죠?”
“당연한 말씀을.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습니다.”
“잘 생각해 봐요. 태내에 있을 때부터 실험체로 살았어요. 그럼…… 어떤 모습일지 예상 가지요?”
“상관없습니다. 제 자식입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을 수도 있어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정말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요?”
재차 확인하는 루아티샤의 모습에 칸도르 백작이 침묵했다.
아이가 얼마나 처참한 상태길래 이렇게까지 묻는단 말인가.
그는 붉어지는 눈가를 억누른 채 말했다.
“공녀님, 저도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닙니다.”
* * *
칸도르 백작이 나간 뒤.
“내가 그랬지.”
나는 닫혀 있는 안쪽 방을 향해 말했다.
“오빠네 아빠는 오빠를 만나고 싶어 할 거라고.”
닫힌 문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오빠가 안 믿을 거 같아서 몇 번이나 확인했어. 들었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대.”
약간의 침묵 후, 달칵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십 대 초반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걸이의 초상화 속 다프네를 똑 닮은 소년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도 정말 그리 생각하실까요?”
칸도르 백작의 아들은 삼십 대지만 겉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어렸다.
‘완전 아저씨라는 걸 알지만 겉모습이 이러니까 자꾸 오빠 소리가 나온단 말야.’
더 어리면서 아저씨 소리 듣고 있는 디에르 자작이 알면 억울해할 일이었다.
이 지나치게 어린 모습은 다프네가 납치당해 실험체가 된 이유와 일맥상통했다.
‘다프네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칸도르 백작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요젠하임 백작은 그런 그녀에게 접근해 정체를 알게 됐다고 말하며 고민을 들어줬다.
그렇게 경계를 풀고 신뢰를 산후엔 그대로 납치.
이런 이야기는 당연히 실험 보고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
모두 다프네와 칸도르 백작의 아들인 오빠가 알려준 거였다.
실험 보고서에는 당연히 오빠에 대한 것도 적혀 있었다.
‘칸도르 백작에게 보여줄 때는 다 검게 지운 후에 줬지만.’
내가 지운 게 아니라 오빠 본인이 지운 것이었다.
어쨌거나 보고서에서 ‘8’이란 실험체를 접한 나는 설마 하며 요젠하임 백작의 재산 징수 목록을 살폈다.
‘8’이라는 물품을 봤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과연 목록에 있었고, 당연히 내가 소환 가능했다.
‘설마 진짜 사람일 줄은 몰랐지만.’
몬스터 같은 것에 번호를 붙인 줄 알았다.
사람을 ‘8’이라고 부르기 힘들어서 나는 그를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오빠를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운 다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네 아빠가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 물어.”
“직접 보는 건 또 다르지요. 아가씨께선 제가 징그럽지 않습니까?”
“음, 오빠는 잘생긴 편인데? 피부도 매끈하고 머리카락도 찰랑찰랑하잖아.”
“앗…….”
그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 신선한 반응.
나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나 참!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징그러우면 우리 가족은?”
“가, 감히 공작가를 누가…….”
“마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 많아. 뒤에서 흉보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웃긴 건 나는 또 마기가 없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한다는 거야.”
“아가씨…….”
“마기가 있어서 손가락질하더니 이번엔 마기가 없다고 손가락질하고. 그런 거에 자꾸자꾸 신경 써봤자 나만 손해야.”
“아가씨께서는 손가락질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정상은 아니지. 이런 다섯 살이 있을 리 없잖아. 애가 애답지 않다며 징그럽다는 사람 많을걸? 그것도 진짜 웃겨. 자기 기준에 맞는 애가 아니면 싫다는 거야, 뭐야.”
그런 사람은 세 살에 한자로 시를 쓴 김시습이 태어나도 저 징그러운 걸 죽이자고 할 거다.
“아가씨께서 특출나신 건 당연합니다. 파에라톤의 피는 특별하니까요.”
이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나는 빙긋 웃었다.
“그럼 오빠도 특별한 거네.”
오빠가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오빠는 내가 징그러워?”
“아니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은 그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무척 사랑스러우십니다.”
“고마워.”
나는 생긋 웃었다.
“나는 마기가 있는 집안에서 마기가 없이 태어난 데다가, 그 와중에 지적 능력은 어른 같은 애기야. 그런데도 오빠는 날 사랑스럽다고 하잖아?”
“네, 무척 사랑스러우세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건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나는 오빠의 물빛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상한 잡놈들이 그간 오빠를 너무 괴롭혀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그럴수록 지지 마! 오빠가 징그러운 거면 나도 징그러운 거니까, 응?”
오빠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착하다, 착해.
“아가씨께서는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나는 오빠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이제 앞으로 오빠는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해야 해.”
오빠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아주 진지한 눈으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일 수도 있어. 본인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내 결정이 잘못되면 어쩌지 하며 불안해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거든.”
불안이 오빠의 얼굴에 스몄다.
“하지만 하나씩 스스로 결정하다 보면, 곧 남의 말 따윈 듣고 싶지 않아질걸?”
나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되면 반대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도 배워야겠지만.”
“아가씨께선 잘 아시네요.”
“사실 나도 잘 몰라. 나도 배우는 중이야.”
내 말에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알기 위해선 경험해 봐야 한다고 하셨지요.”
“응, 덕분에 푸딩이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됐잖아?”
“푸딩…….”
멍하니 중얼거리던 오빠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날게요. 아……버지를.”
어색하게 발음하는 오빠를 보고 나는 활짝 웃었다.
“응!”
* * *
“흠, 이번엔 어떤 그림을 보낼까.”
전과 달리 칸도르 백작은 내가 그냥 만나자는 말만 해도 올 것이다.
하지만 계속 그림으로 메시지를 보냈으니까 이번에도 똑같이 맞추고 싶은데.
황금으로 만든 화살과 납으로 만든 화살.
월계수 나무.
일전에 내가 칸도르 백작에게 보냈던 그림은 모두 님프 다프네의 전설과 관련된 것이다.
에로스가 쏜 황금으로 된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에로스는 다프네에게 납으로 된 화살을 쏘았고, 다프네는 아폴론을 혐오하게 된다.
아폴론은 계속 다프네에게 구애하고, 다프네는 아폴론을 피해 월계수 나무로 변한다는 전설.
K-로판을 참고한 세계답게 이곳에서도 역시 지구와 비슷한 전설이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다프네는 진짜로 님프.’
무려 물의 요정이셨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크레파스를 들었다.
* * *
칸도르 백작은 집무실 창문을 콕콕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소식이다.
얼른 창문을 여니 손바닥보다도 작은 오목눈이가 자기 몸보다 큰 종이를 발에 묶고 있었다.
칸도르 백작은 그 종이를 풀었다. 두 번 접힌 도화지였다.
“짹!”
“오냐, 알았다.”
칸도르 백작은 밀알을 몇 개 주었다.
오목눈이가 부리에 밀알을 넣고 몇 번 씹더니…….
퉷!
아니, 뱉었어?
오목눈이의 표정 따위 읽을 수 없어야 하는데 왠지 읽혔다.
“짹짹!”
저건 욕이다, 분명히 욕이야.
“난 널 생각해서 일부러 준비한 거다.”
하지만 오목눈이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집무 책상으로 날아가 다과를 쪼아먹었다.
‘새한테 이런 걸 줘도 되나?’
의문이 들었지만 항상 저런 식으로 과자를 쪼아 먹고 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오목눈 이가 마치 엄포를 놓듯 새 다리로 탁탁, 책상을 쳤다.
“짹!”
그리고선 창밖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성질이 꼭 제 주인을 닮았군.”
고개를 절레 저은 칸도르 백작이 접힌 도화지를 폈다.
“또 막내 공녀님께서 선물 주신 그림이에요?”
때마침 식은 차를 갈러 안에 들어온 하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됐다는 데도 자꾸 주시는군.”
“어머? 공녀님께서 주인님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크흠, 난 잘 모르겠던데.”
“자꾸 이렇게 그림을 선물하시는 걸 보면 확실해요!”
“그러고 보니 일전엔 업어달라고 하셨지.”
“어머머머? 지금 자랑하시는 거예요?”
“자랑은 무슨.”
칸도르 백작이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어디 보자, 오늘은 노란 뱀이 두 마리 있네요? 후후, 막내 공녀님은 뱀도 안 무서우신가 봐요. 씩씩하시네.”
칸도르 백작의 곁에 다가온 하녀장이 주름진 얼굴을 펴며 푸근하게 웃었다.
칸도르 백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어딜 봐서 뱀이지?”
하녀장이 다시 그림을 찬찬히 살폈다.
“어디로 봐도 뱀인 것 같은데. 뱀이 아니면 대체 뭐예요?”
“황금 화살 두 개잖아.”
칸도르 백작이 그것도 못 알아보냐는 투로 말했지만, 하녀 장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꾸로 봐도, 달리기하면서 봐도 뱀인데.”
중얼거리면서 나가는 하녀장의 뒷모습을 보며 칸도르 백작이 혀를 쯧, 찼다.
하지만 다시 그림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옅은 미소가 걸렸다.
납 화살이 없는, 황금 화살 두 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 *
칸도르 백작은 떨리는 마음으로 괜히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런 마음을 느껴본 지가 너무 오래간만이라 스스로도 낯설었다.
“할부지!”
멀리서 자그마한 분홍 토끼가 깡총거리며 뛰어왔다.
“뭘 그러고 있어요. 안 그래도 잘생겼어요.”
“크흠.”
민망해진 칸도르 백작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백작은 아이의 손에 이끌려 동쪽 정원으로 갔다.
동쪽 정원의 한가운데, 우아하고 섬세하게 솟은 가제보가 청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제보 주변으로 차가운 겨울 공기와 따뜻한 열기가 만나 대류하며 옅은 안개가 환상처럼 피어올랐다.
안개 사이로 보이는 기둥 너머에, 내 아이가 있다.
쿵, 심장이 거센소리를 내며 뚝 떨어졌다가 다시 튀어 올랐다.
어떻게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이끄는 아이의 손이 없었다면 분명 꼴사납게 서 있기만 했을 거다.
이윽고, 칸도르 백작의 발이 가제보의 턱을 넘었다.
루아티샤의 손을 잡은 칸도르 백작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나.
“…….”
아무도 없었다.
가제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아, 아버지.”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긴장과 기대, 두려움과 설렘이 심장을 꾹 조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칸도르 백작이 몸을 돌렸다.
불안한 듯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는 순간, 그의 은빛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안개 사이로 반짝이는 옅은 물빛 머리칼.
호수를 그대로 떠서 담은 것만 같은 눈동자.
자신과 다르게 선이 가는, 섬세한 얼굴.
길고 곧게 뻗은 팔다리.
어쩌면.
어쩌면 저리 제 어미를 쏙 뺐을까.
아, 정말 다프네와 나의 아들이구나.
‘내 아들.’
목이 꽉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